소설리스트

〈 252화 〉탐식마(貪食魔) (252/429)



〈 252화 〉탐식마(貪食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닳을 때로 닳아빠진 말이었지만  광경에 속한 이들에게는 그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끄아아악!”
[크라악!] 콰드득!
“씨발! 의무병! 의무병!”

뿌지직! 까득! 촤악! 투다다다! 투앙!


소총과 기관총이 쏟아내는 화약 냄새, 포탄에 얻어맞고 타들어가는 고목냄새, 피비린내, 시체 썩는 냄새가 뒤섞인 전장은 도무지 뭐라고 뭉뚱그려서 표현할 수 없는 괴상한 악취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것에 신경을 쓰고 인상을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죽은 자의 군대와  자들의 군대는 사력을 다해서 서로를 파괴했다.

루마니아의 수도인 부쿠레슈티. 산 자와 죽은 자들의 각축장이 되어버린 지  시간 째. 산 자와 죽은 자의 싸움은 한 쪽으로 급격하게 기운 상태였다.


벌써? 라고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빠르게 무게추가 기운 가장 큰 원인은 루마니아 수뇌부의 정점인 대통령과 총리가 죽은 자들의 군대가 수도로 몰려오는 시간동안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영부영 하는 동안 죽은 자들의 군대는 수도에 도달했고, 그들이 내밀  있는 카드는 제대로 준비도 다 하지 못한 수도방위군이었고 그마저도 육군 병력뿐인 반쪽짜리였다. 대통령과 총리는 차마 수도에 공습 명령은 내리지 못하고 수도에서 몸을 빼었다.


시민 대피는 확실하게 해두었지만, 전장에 동원된 화력이 최고수준이 아니었다는 것과 상상을 초월하는 용력을 내보이고 있는 데스 나이트의 존재가 이토록 빠르게 승부의 향방이 가려지게 만든 원인이었다.

[푸르륵!] 쉭! 뼈밖에 남지 않은 해골마가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전차 위에 오르면, 데스 나이트가 어지간한 성인 남성 몸뚱이만한 대검을 휘둘러 반쪽을 내놓았다. 데스 나이트의 검 앞에서 보병이고 전차고 모두 평등하게 찢겨나갔다.


비상동원령을 내려서 소집한 500에 달하는 플레이어들은 가장 먼저 데스 나이트의 검 앞에 고혼이 되었다. 아니, 고혼조차 되지 못하고 찢긴 몸을 일으켜 데스 나이트의 발아래에서 동족들과 싸워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훨씬 빠르게, 한 시간 내로 승부의 향방이 가려졌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언데드로 변해서 달려들고 있는 지금은 그런 부분을 감안할 여유가 있는 이가 없었다.

네임드 데스 나이트와 그가 거느린 데스 나이트들을 맡아야할 플레이어들이 무너지고 나자 전황은 급속하게 기울었다. 그냥 죽기만 했으면 모르되, 죽은 아군이 등 뒤에서 언데드가 돼서 덮쳐드니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간신히 박살을 내놓은 구울이나 스켈레톤들도 얼마가지 않아 몸을 복구해서 달려들었다. 데스 나이트 주변에 서린 검붉은 오라가 일으킨 기적이었지만, 이렇게 실시간으로 몸을 복구해서 달려드는 언데드 군단을 상대해 본 적이 없는 병사들에게는 불사의 군대를 상대하는 암담함만이 느껴졌다. 전사자와 탈주자의 숫자가 엇비슷할 정도로.


죽음이라는 절대 명제가 바스러지고 있는 전장에서 그들이  수 있는 반항은 너무나도 미약했다. 애초부터 지고 들어가는 것과 별 다를 것 없이 시작한 싸움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쉭! 마지막 영관급 장교의 머리통이 허공에서 빙글빙글 공중제비를 돌았다. 잘린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데스 나이트는 머리의 주인의 피를 털어내고 커다란 대검을 갈무리했다. 데스 나이트의 거대한 몸뚱이를 지탱하고 있는 해골마가 떨어진 머리를 발굽으로 박살내놓았다.


데스 나이트는 자신이 벌여놓은 참상을 감상하는 것처럼 언덕 아래에 펼쳐진 도시를  둘러봤다. 산 자의 군대를 모두 먹어치운 죽은 자의 군대가 부쿠레슈티로 진입하는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미처 피신하지 못하거나, 방공호의 방어력을 믿었거나, 고향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어 한 이들 모두 평등하게 비슷한 단말마와 함께 죽었고, 죽음에서 돌아오게 되었다. 죽음이 수도를 뒤덮었다.

***


방안에 드리운 어슴푸레한 어둠은 시간이 저녁을 지나 밤으로 달려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나 방안의 누구도 불을 켜려고 움직이지 않았다.


방안에 자리하고 있는 네 명의 남녀는 하나같이 심각한 표정 그대로 굳어버린 것처럼 미동도 않은  탁자 위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냥 인상 쓰고 앉아있는 것 같았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플레이어의 시력은 도저히 글자를 볼 수 없을  같은 상황에서도 보고서 위에 쓰인 글자를 생생하게 읽어낼 수 있었으니까.

무거운 침묵을 깬  류 현, 그였다.


“....두  모두 동시에 작전을 진행해야 합니다.”

세 쌍의 시선이  현에게로 쏠렸다. 제각기 다른 눈색을 하고 있었으나, 마력으로 안력을 끌어올리고 있는 그녀들의 눈은 모두 새파랗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예, 진심입니다. 그렇게 안하면 우리가 카이로 쪽을 처리하고 돌아오면 지중해에 사람 말고 언데드들이 헤엄치는 꼴을 보게  겁니다.”
“전에 보신 적 있다고 하셨죠? 데스 나이트.”
“예.  때는 영국에 출현했었고, 그 전에 반파된 런던이 그 때 완전히 박살이 났죠. 영국은 결국 수도를 옮겼고요.”
“런던 그 얘기 들었을 때는 믿으려고 하긴 했는데 그래도 잘 안 믿겼는데 이걸 보고 나니까...”


화련의 시선 끝에는 루마니아의 수도 방어선을 부숴버리고 수도 내의 시체를 이끌고 북상 중인 언데드 군단이 찍힌 사진이 있었다. 머리가 반쯤 뜯어 먹혀서 구울이  군인의 사진은 마치 좀비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이었다.

“믿기 싫어도 안 믿을 수가 없네요. 솔직히 구울이  단위로 있어도 현대군이랑은 화력 면에서 비교가 안 되잖아요. 보고서 보면 리치는 없는  같고.”
“맞는 말씀입니다. 구울 쪽이 재생을 못하면 그렇겠지요. 아무리 생전보다 강해진다곤 해도 인간의 근력 기준이고, 플레이어 같은 경우에는 능력을 못 쓰게 되니 육체계열이 아니면 오히려 전력 감소고요. 이 녀석만 없었다면 말이죠.”


 현은 보고서 더미에서 보고서  장을 뽑아들었다. 보고서 귀퉁이에는 시대를 한참 착각한 것 같은 판금갑옷으로 전신무장한 자가 찍혀있었다.  현이  것도 없이 데스 나이트라고 확신한 놈이었다.


“그 때도 이렇게 재생했었나요?”

잠자코 지켜만 보던 희란이 물어왔다. 류 현은 고개를 내저으며 대꾸했다.

“하긴 했었는데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죠. 반경 500미터 안에 있는 놈들은 완전히 뭉개버려도 한 시간 내로 완전 복구가 됐었는데...이번 경우는 재생속도도 빠르고 데스 오라 적용 범위가 못해도 그 배는 되는 것 같군요. 보고서가 과장된  아니라면요.”
“데스 오라?”
“놈의 주변에 있는 언데드들의 신체능력이 오르거나 재생을 하는 걸 보고 붙인 명칭입니다. 사진에는  찍혀있는데 직접 눈으로 보면 붉은 안개 같은 게 깔려있거든요. 거기 닿으면 언데드는 강성해지고, 생명체는 약해집니다. 괴수, 인간 가릴 것 없이요. 플레이어들은 항마력 때문에 좀 덜하긴 합니다만...어지간한 수준이 아니면 무시를 못하니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는 건 가망이 없죠.”
“그 한 놈이 광역 버프에 광역 디버프도 겸한다고? 망할만 했네. 웨인도 그 전에 죽었다면서?”
“예. 나름대로 분투하긴 했었는데...놈을 잡을 한 명이 없었으니 별 수 없었죠.”
“근데 정말로 두 곳 다 작전 진행하실 거에요?”

화련은 우려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보면 볼수록 어느  곳 만만해 보이는 곳이 없었던 탓이다.

“그게 아니면 한 쪽을 해결하더라도 돌아왔을  한 쪽은 아주 답이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을 겁니다. 언데드 군단이 몸집이 커지는 것도 골치 아프긴 하지만, 그보다 혼란이 퍼지는 게 훨씬 뼈아프게 다가올 테죠.”
‘다른 놈들은 몰라도 리치나 데스 나이트는 활개 치게 두면 안 돼.’

시간이 지나면 제 군세를 불릴  있다는 점도 골치 아프지만, 확산되는 혼란과 공포가 여타 괴수와 비교도 안 되기 때문이다.

 인류가 절대 명제라고 믿고 있는 죽음을 희롱하는 놈들이니까. 실제로는 시체에 마력을 부어넣어서 인형처럼 쓰는 것이지만, 일반인들에게 그런 냉철한 판단을 내리길 바라는 건 바보짓이라는 걸 류 현은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언데드 군단을 거느릴 수 있는 상위 언데드 괴수는 실질적인 인명피해도 그렇지만, 인류에게 가하는 정신적 피해가 상상을 초월한다. 당장 언데드 군단이 할퀴고 지나간 루마니아에는  사이비 종교가 성행할 것이다. 종교는 전부 사이비 취급하는 류 현이 보기에도 사이비 종교라고 밖에  수 없는 그런 미치광이 소리를 하는 것들이 말이다.

‘젠장, 칼리프 클랜이 뚫리는  아니라 유럽이 안쪽부터 무너지게 생겼군.’

유럽에 호감이나 학살당할 유럽시민들에게 연민을 느껴서는 아니었다. 지벡 건터가 제 지기와 자신을 봐달라며 털어놓은 얼마 안 되는 정보 중에는 검성을 죽이려고 계략을 짜고,  현에게 ‘광대들’을 보낸 작자들의 본진이 유럽일 것이라고 확정할 만한 것들이 있었으니까. 지벡 건터 본인은 확신은 없는 것 같았지만, 류 현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니 유럽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가질만한 이유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류 현이 회귀를 겪지 않았다면 있는 그대로 싫어했을 것이다. 유럽이 무너지든 말든 방관했겠지.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전생에서  현은 강력한 소수의 한계가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놈들이 국경을 넘어서 2개 나라만 더 휘젓고 나면  때부터는 손쓸 도리가 없어집니다.”


혼란과 공포에는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1+1이 2가 아니라 500이 될 수도, 1000이 될수도 있다. 현대의 정보통신망을 생각하면 그보다 더할 수도 있다. 인류는 아직 문명사회를 잃지 않았고, 언론과 인터넷은 잘만 돌아가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네임드 몹을 상대로 팀을 나눌 수는 없잖아요.”


화련의 지적은 말을 꺼낸  현 본인도 고개를 끄덕이고 싶을 정도로 지당했다.  현도 원래 그럴 계획 같은 건 없었다.  드래곤 때처럼 바로 지원해줄 수 있는 거리에서 각개격파를 시도하는 거면 모를까, 네임드  상대로 전력을 분산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이번처럼 대륙단위 변고가 터지지 않았다면 그랬을 것이다.


‘차라리 붙어서 출현할 것이지...’

붙어서 나타나서 그들을 괴롭게 했던 본 드래곤과 리치 듀오나 ‘펠릭스’와 ‘업화의 아이들’같이  붙어서 나타나지 않았냐고 불평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아프리카 쪽은 더 미루기 힘들어. 땅이 솟아나는 속도가 둔화됐다지만 아주 그친 게 아니니까. 칼리프 그 여자 말대로라면 보통 재앙이 아니야. 그 현상 자체로도 이미 준 네임드 몹급 재앙이고. 추가적으로 뭔가 더 터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손놓고 구경하는 건 바보짓이지. 그렇다고 데스 나이트를 방치할 수는 없다. 어차피 놈이 본격적으로 뛰어다니면서 휘젓고 다니면 아프리카 원정대도 깨져. 이런 대처는 별로지만  수 없지...’
“지벡 건터씨에게 유격대를 부탁할 생각입니다.”
“네?”“...네?”
“누구? 지벡? 너 진심이야?”


세 여자가 동시에 학을 떼는 듯한 동작을 취해보였다. 류 현은 얼마 함께하지도 않았음에도 저렇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지벡 건터를 떠올리며 쓴 웃음을 지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아프리카 쪽은 더 방치해뒀다간 무슨 일이 터질지 알 수가 없고, 데스 나이트 쪽을 내버려두면 아프리카 원정대 자체가 깨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언데드 군단을 내버려 둬선 안 되고요.”
“아니,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그...”
“저도 지벡 건터가 믿음직해서 유격대 역할을 맡기려고 드는  아닙니다.  수 있으면 웨인씨에게 부탁했겠죠. 하지만 그러기엔 아프리카 상황이 어떤지 모르지 않습니까. 최대 전력을 확실하게 투사하는 게 답이죠. 그동안 유럽이 유령의 집이 되지 않도록 시간을 끌어줄 유격대가 필요합니다.”
“하, 하지만 유격대라는 거  분이 맡아줄까요...? 네임드 몹이고...언데드 몹도 엄청나게 많아서...”

맞는 말이었다. 말이 유격대지 자살 특공대다. 다름 아닌 네임드 몹이 이끄는 괴수 군단을 상대로 시간을 끌어야하니까. 심지어 지치지도 않고, 재생까지 하는 언데드 군단이 상대다.

세간에 알려진 지벡 건터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런 역할을 맡을 거라고 장담하는 쪽이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을 것이다.

류 현은 희란의 우려에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대꾸했다.

“당사자가  나서면서 우리 집은 왜  지켜주냐고 누구한테 따지겠습니까. 그리고 그 분이 저한테 빚이 있거든요. 꽤 큰 빚이 말입니다.”

화련과 희란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류 현은 미소만 지어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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