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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0화 〉탐식마(貪食魔) (250/429)



〈 250화 〉탐식마(貪食魔)

“고생하셨어요. 세아 씨. 오늘 측정은 이걸로 끝이에요.”
“아, 네. 네...후우.”

어깨로 숨을 쉬면서도 검사관님도 고생하셨다고 말을 건네는 세아를 내려다보는 검사관의 눈길 흐뭇한 감정이 묻어났다. 방안에 자리하고 있는  다른 이의 존재를 떠올리고는 금세 거둬들였지만.


“흠흠, 취침 전에 종아리부분은 냉찜질 하고 주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검사관은 조언을 늘어놓으며 방구석에 놓인 간이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현은 태블릿 피시에 집중한 상태였다.

‘별 일이네.’ 그에겐 나쁜 일은 아니었기에 검사관은 류 현이 뭐라고 붙잡기 전에 검사 결과는 정리가 되자마자 보내주겠다고 작별의 말까지 해치우고는 병원을 떠났다. 검사대상이 아무리 눈이 돌아갈 정도로 예쁘고 성격마저 참한 아가씨라도, 옆에 붙어있는 동생이 직장인 협회의 vvip니 작업 건다는 인상조차 주고 싶지 않았다.

검사관이 그러든 말든 류 현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는 쪼그려 앉아서 어깨를 들썩거리고 있는 세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생했어, 누나. 오늘 좀 많이 빡셌지?”
“으응, 괜찮아. 엄청 힘든 일도 아니고 운동부족인 거니까.”
‘딱히 그렇진 않은데.’


오늘 검사관은 막 각성한 플레이어 기준으로 검사를 시행했다.  현의 요청에 따라서.


그러니까 조금만 더 훈련하면 올림픽 출전 선수 목록에 이름을 올릴 법한 운동천재들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다. 세아가 감당하기에는 벅찰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아의 육체능력은 각성한 플레이어 치곤 형편없는 수준이었으니까. 일반인 여성과는 비교도  수 없는 수준이지만, 플레이어 기준에서 보면 툭 치면 억하고 넘어가는 극단적으로 몸이 약한 마법사 수준이라는 거다.

“운동 부족이 아니라 저번 검사랑 강도가 달라서 그래. 이번에는 진짜 플레이어 기준으로 검사 해달라고 했거든. 어느 정도 수준으로 각성했는지 알아야 치료하는  용이하니까.”
“아...”


세아는 저도 모르게 제 눈가를 더듬었다. 플레이어로 각성하고, 건강을 되찾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아직 빛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기존의 시각과 다르게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생활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지만, 류 현은 적당히 넘어갈 생각이 요만큼도 없었다.


“...그랬구나. 현이 네가 보기엔 어땠어?”

류 현의 팔에 의지해서 일어서던 세아가 휘청했다. 류 현은 어깨에 팔을 두른 채로 거의 들어 올릴 것 같은 상태로 병실로 발을 옮겼다.


“자세한  검사 결과를 그쪽에서 보내줘야 알겠지만...내가 보기엔 완전 물 몸이야. 체력이나 내구성, 근력 전부 다. 아마 검사 결과도 비슷하게 나올 것 같은데.”


 현은 가감 없이 솔직하게 본 바를 털어놓았다. 이후 수련에 따라서 바뀔  있다는 말은 일부러 하지 않았다. 그는 그러지 않길 바랐다. 건강을 위해서 최소한의 수련은 하게 하겠지만, 그 이상은 곤란했다.


지금 같이 아쉬워하는 표정을 볼 것도 없이, 요즘 들어 세아는 꽤나 노골적으로 플레이어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자신의 스펙이 어느 정도인가와 그 스펙으로 어디까지 비벼볼  있는가 하는 것을 말이다.

 현의 가슴이 철렁하게 만드는 사실이었다.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 지 세아는 어떻게 비벼볼 구석을 찾는지  현의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안 돼.”

밑도 끝도 없는 거절.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기에 세아는 류 현이 뱉은 말의 뜻을 짐작하고 시선을 떨구었다.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이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류 현은 말을 짜내었다.


“누나, 누나 아직 시력도 안 돌아왔잖아. 협회 전체가 정신 줄 놓지 않는 이상 사냥 허가 내줄 일 없어.”


거짓말이었다. 협회는 형식적으로는 각성한 플레이어들의 각성여부를 판별해주고, 플레이어의 능력이 안정화된 이후에 던전 사냥 허가를 내주곤 있지만 정말 허례허식에 불과한 절차였다.

보통은 협회 허가를 받기도 전에 사냥에 나서고, 협회도 그에 대해서 딱히 터치는 하지 않는다. 던전 사냥을 열 번 넘게 한 기록이 있는 이가 사냥 허가를 신청해도 그러려니 하고 내주는 편. 그렇지 않아도 인력이 부족하니 별 쓸모도 없는 절차에 힘을 쏟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가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각성해서 협회를 찾는 이들 때문에 폐지만  했을 뿐.

일반인들은 알 길도, 필요도 없는 업계인간들만 아는 사실. 플레이어에 대한 정보는 구글 검색 이외에는 접할 방법이 없는 세아에게는 꽤 잘 먹히고 있는 거짓말이었다. 세아도 다 믿는 것은 아니고, 이러든 저러든 동생이 막으려고 들면 협회가 눈치 볼 수밖에 없다는 걸 알기에 따지고 들지 못하는 것이었지만. 협회에 대해서 아는  없는 세아가 보기에도 협회 측에서 류 현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세아에게도 포기하지 못할 이유가 있었다. 그녀의 뇌리에는 ‘펠릭스’의 끔찍한 존재감이 그대로 남은 채였다. 류세아는 동생이 그런 괴물과 싸우고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끔찍했다.  자신이 괴수를 무서워하면서도, 다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괴수와 비벼보겠다고 나서는 건 그 때문이었다.


능력이 없으면 모르되, 사막을 헤매는 동안  현에게 들었던 말들로 유추해보면 자신이 깨우친 능력은 상당히 쓸 만하게 느껴졌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하는  한계였다. 자신이 끼어들었을 때 지게될 리스크나, 성장가능성 같은 걸 고려할 여유는 전혀 없었다.

“누나 이렇게 혼자 걸을 수 있게 된 지도 얼마 안 됐어. 다른 부분은 다 회복됐지만 시력이 안 돌아오는 거 보면 아직 다 회복된 게 아닐 가능성이 크고. 그러니까 제발 지금은 낫는 것만 생각하자 응?”


본래라면 환자에게 불안감을 심어줄만한 말은 입이 찢어져도 하지 않았을 테지만, 류 현도 다급했다. 전생에서는 이럴 일이 없었다. 세아가 제 발로 돌아다니고, 원래의 시각은 아니지만 세상을 볼 수 있게 돼서 일어난 일. 거기에 ‘펠릭스’와의 전투라는 생각지도 못한 변수까지 끼어든 것. 류 현도 다른 일처럼 무덤덤하게 넘기긴 힘들었다.

간절함이 전해진 것일까? 세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이상 보채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

“너 컨디션 안 좋아 보인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불쑥 치고 들어오는 승하의 물음에  현은 곧바로 아니라고 대꾸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자료에 집중해있던 팀원들의 시선이 모두 쏠렸다. 류 현은 늦었다는 걸 알면서도 부정의 말을 입에 담았다.

“아닙니다. 피해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저도 모르게 표정이 좀 굳은  같네요.”
“뻥치시네. 그런 표정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말하는 승하 위로는 검집에 꽂혀있는  두 자루가 정신없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소리 없이 허공을 유영하고 있는 검들은 그냥 날아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검격을 나누는 것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승하는 손을 내저어 허공에서 검격을 나누던 검들을 멈추었다.

“에이,  효과 없네. 무협지 완전 엉터리.”
‘마력 낭비도 참 기발한 방법으로 하네.’

승하는 희란의 ‘연결’로 류 현으로부터 마력을 공급받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승하는 검 두 자루를 띄우고 검격을 나누게 만든 지 30분이 지났음에도 멀쩡해 보였다. 눈에 보이는 기세 상으로는 만전상태였다.

‘진짜 미쳤다니까. 나도 제대로 이해 못한 걸 대충 전해 듣기만 해서 자기 걸로 만들다니.’

류 현이 호흡만으로 그 방대한 마력통을 다 채울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승하는   본인도 잘 모르는 호흡법을 알려달라고 매달렸고 떠오르는 대로  지껄인 류 현의 가르침을 전부  것으로 만들다 못해 발전시키기 까지 했다. 그녀 본인도 그냥 느낌가는 대로  거라 남을 가르치지 못한다는  흠이라면 흠이었다.

그렇게  번 해보곤 마나통이 확 늘었다고 좋아라하더니, 지금 같은 별 괴상한 짓을 수련이랍시고 이거저거 다 해보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반쯤 장난인 줄 알았지만 무협소설을 들고파는 태도가 너무 진지해서 말리기도 뭣했다.

“그래서, 뭐가 문제 길래 그렇게 죽상이야?”
“아무 문제 없...”
“마스터, 제 눈은 옹이구멍 아니거든요?”
“끄응...”

류 현은 한 숨과 함께 고개를 내저었다. 그 자신에게는 심각한 일임이 분명했으나, 이런 자리에서 운운할 일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막말로 털어놔서 해답이라도 얻을  있다면 눈 딱 감고 지르겠는데, 그것도 아니니 어쩌겠는가.


“정말  일 없습니다. 거의 매일 같이 얼굴 보는데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으려고요.”
“마스터 표정이 그게 아닌 거 같은데...”
“맞아. 네 표정이 지금 어떤지 알아? 네 누나...아...”

그녀들도 눈치가 없는 건 아니었기에 류 현이 계속 빼기만 하자 무엇이 원인인지 대강 유추해내었다. 류 현이 저렇게 대놓고 빼기만 하는 경우는 하나 밖에 없었다. 유일한 혈육인 세아가 관련된 경우.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그 사실을 내뱉은 승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시선을 먼 곳으로 보내며 딴청을 부렸고, 화련의 추궁하는 듯한 시선은 누그러지다 못해 상담모드로 전환될 것 같은 태세였다.

“저 때문에 자꾸 얘기가 딴 곳으로 새는 군요. 죄송합니다.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아, 아니. 뭐 네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그치 혜라야?”


백혜라는 승하에게 슬쩍 눈을 흘겨준  마지못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생각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들 자료는 대충 훑어본 것 같은 데 본안에 들어가도록 하지요. 모두들 알고 계시겠지만 다시 한 번 더 확실히 해두지요. 현재 협회 측에서 카이로 탈환을 위한 상륙작전에 용잡이 팀의 합류 요청을 해왔습니다. 작전 결행 예정일은 한 달 뒤. 좀 많이 빠듯합니다.”
“그 때까지 얘네가 살아있긴 할까.  라가 뱃속으로 들어가서 소화까지 끝났을 것 같은데.”

승하가 짚고 있는 종이 끝자락에는 볼드체로 강조된 추론들이 적혀있었다. [...현재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인구이동은 라가의 주도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보고서에 적힌 대로 아프리카 대륙 각지에 퍼져있던 괴수들은 이제 라가류가 아닌 녀석까지 카이로였던 땅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것도 바로 씹어 먹어야 정상인 인간들을 몰아가면서!


위성이  기능을 못하는 상황이라 단편적인 사진만으로 추론을 펼쳐야하는 상황이었으나, 어떻게 봐도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뭐 때문에 사람들을 몰아서 데리고 가는지는 몰라도 보호해주려고 그러는  아닐 거고, 가는 길에 까먹을 도시락 아니면 그보다 끔찍한 뭔가라는 건데...어느 쪽이든 한 달 뒤에 살아있을 것 같진 않은데.”
“좀 바보 같은 질문인 거 아는데. 이전에 이 비슷한 일 없었어요?”
“전혀. 거미류 괴수가 사냥한 인간 숨 붙여놓고 자기 둥지에 끌고 간 덕에 구조된 사람이 ptsd 때문에 자살한 경우는 있어도 이렇게 대규모로 인간 몰이한 적은 없어. 새끼 먹이려고 한다는 가정도 쓸모없지. 이놈들 먹이사슬도 무시하고 단결해서 인간을 몰고 있잖아. 새끼 먹이려고 살려서 몰아가는 거면 눈앞의 천적부터 족쳤겠지. 뭔가에 홀려서 이렇게 움직이는 거야.”
“확실히 그렇긴 하지만...그럼 대체 왜...”
“그걸 모르겠단 말이지. 이놈들을 조종하는 녀석이 인간을 고문하는 취미에 눈을 뜨기라도 했나? 그렇더라도 이건 너무 많아.”


승하의 말 대로였다. 카이로로 몰이 당하고 있는 인원은 못해도 만 단위는 된다는 게 두통 유발 원인이었다. 인간 몰이를 하는 괴수도 듣도 보도 못했는데, 그걸 아주 체계적으로 만 단위 규모로 실행한다?


괜히 발등에 불이 떨어진 유엔과 협회가 작전 실행 예정일을 그리 잡은  아니었다. 이미 병력과 장비들의 동원은 반 정도 완료되었음에도 눈앞에 펼쳐진 이상현상에 쉽사리 전진을 외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 부분이야 저희가 어떻게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 어쩔 수 없죠.”

류 현은 가볍게 어깨를 들먹거리며 받아넘겼다. 이렇게 넘길만한 주제는 아니었지만, 용잡이 팀에서 붙들고 있을만한 문제도 아니었다. 열 명도 안 되는 용잡이 팀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카이로 어딘가에 있을,  사태를 조종 중인 뭔가를 거꾸러뜨리는 것이니까. 몰이 당하고 있는 인명들은 유엔과 협회의 몫이다.


먼저 말을 꺼낸 승하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표정이 풀리진 않았다.  현은 구태여 그것을 지적하진 않았다. 그녀가 지금은 기분 나빠할지언정, 작전에 들어가면 누구보다 집중할 것임을 알았으니까.

“다시 돌아가서. 협회와 유엔에서는 카이로 돌격팀에 대한 전권과 카이로 내에서 얻은 성과 절반의 지분을 보장하겠다고 했습니다. 이게 기본이고 세부내용은 조율해 갈 예정입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아마 지분 조율은 작전이 끝난 후에 하게  겁니다. 작전 구역이 카이로에 국한된 게 아니고 진입루트 전체니 작전기간만큼 오래 걸릴지도 모르죠.”
“너무  크게 지르는 걸. 나중에 땡깡 부리겠다고 예고하는 건가.”

그럴 가능성도 없진 않았지만 류 현은 픽 웃어넘겼다. 앞으로 전 세계에 아프리카에 벌어진 지옥의 축소판들이 생겨날 걸 생각하면 몇 푼 더 먹겠다고 아등바등 하는 짓은 더할나위 없이 웃긴 짓이었다.


그렇다고 땡깡을 그냥 받아줄 생각은 없었지만.

“몇 푼  먹겠다고 스스로 걸러져주면 그것도 나쁘진 않지요. 갑자기 뒤통수 맞는 것보다야.”

한쪽 입 꼬리만 쓱 밀어 올린 류 현의 미소에 백혜라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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