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46화 〉탐식마(貪食魔) (246/429)



〈 246화 〉탐식마(貪食魔)
류 현은 들여다보던 타블렛 pc를 내려놓았다. 인도네시아에 해일이 덮쳐들어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과 인도차이나 반도에 자리한 나라들도 인도네시아에 비해 덜할 뿐 나라가 휘청 일만한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이었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국내 순방 중이던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머물던 호텔이 해일의 직격탄을 맞는 바람에 실종상태라 시간이 갈수록 혼란이 가속화 되는 형국이었다. 당장 혼란을 수습하는 것조차 힘에 겨운 그런 상황.


불행한 일이긴 하나, 류 현이 신경 쓴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수해 복구기금에 한 손 보탤 수야 있겠지만, 카이로에 상황을 생각하면  기사를 띄워서 내민 웨인의 의도가 아리송하기만 했다.


“불행한 사고인건 알겠습니다만, 왜 지금 이걸...?”


류 현은 최대한 말을 거르려고 애썼다. 의도치 않게 웨인은 자신을 대의를 위해서 기꺼이 몸을 던지는 이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고, 그 오해에 발목 잡힐 생각은 없어도 최대한 우려먹을 생각정도는 있었다.

웨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류 현이 내려놓은 테블릿 pc를 조작했다. 동영상 하나를 재생시킨 후 웨인은  현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평소랑 좀 다른데? 왜 이래? 사람 겁나게.’

영상의 첫 부분은 까만 밤하늘이었다. 별빛이 아니었다면 웨인이 장난을 치는 거거나, 문제가 있는 영상을 틀어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촬영자는 상태가 좋지 못한지 하늘을 찍었다가, 땅을 찍었다가를 30초 정도 반복하다가 본격적으로 땅 위를 찍기 시작했다.

초반 30초가량은 거의 보이는 것이 없었다. 촬영자는 아주 넋이 빠진 건 아닌지 곧바로 조명을 비추었고, 그제야 제대로 땅위의 것들이 비춰지기 시작했다.

촬영자가 거닐고 있는 곳은 주인이 떠난 숙영지 같았다. 집기도구들이 사방으로 흩어져있고, 텐트는 성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한눈에 봐도 무슨 사고가 있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숙영지에 묵고 있었을 인원이 사고를 당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핏자국이나 살점 같은 것들 말이다. 그들이 자리를 비웠을  재앙이 덮친 것 마냥 주변은 핏자국 하나 없었다.

이곳저곳을 비추던 촬영자는 바닥에 널브러진 물통 하나를 집어 들었다. 어떻게 봐도 군용품이 분명해 보이는 수통에는 원래 주인의 것으로 보이는 핏자국과 손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화면이 블랙아웃 되었다.


“카이로 주변에 포위망을 형성하고 주둔하고 있던 주둔군 숙영지를 촬영한 겁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웨인이 덧붙였다. 류 현은 추가 설명을 요구하려고 고개를 돌릴  블랙아웃 되었던 화면에 새로운 광경이 비춰지기 시작했다. 웨인이 손짓으로 권하자 류 현은 의문감을 억누르고 화면에 다시 집중했다.


이번에는  높은 고도에서 촬영한 것인지 모든 게 작아보였다. 휭휭 거리는 바람 소리 때문에 다른 소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정도. 카메라가 계속 흔들리더니 비명 같은 목소리와 함께 한 지점을 비추기 시작했다.

피사체는 전체적으로 검은 빛이 도는 바위산이었다. 잠깐 산 정상을 비추던 카메라는 산기슭을 비추기 시작했다. ‘뭐?’ 류 현은 눈을 비비고 다시 화면을 직시했지만 보이는 건 똑같았다. 산이, 산기슭부분이 천천히 밀려나고 있었다.

마치 새살이 돋아 오르는 것 마냥 땅이 솟아오르면서 산을 밀어내고 있었다. 새로 솟아오른 땅은 눈이라도 내려앉은 것처럼 새하얘서 못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별 다른 소란도 없이 땅이 솟아나고 있었다.

‘이게 대체...’


촬영자도 당혹스러운 건 마찬가지 인지, 화면이 휙휙 돌아가다가 얼마가지 않아 영상은 종료되었다. 화면이 블랙아웃 되었음에도  현은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설마 카이로의 그거랑 관계있는 건가? 하지만 이런 경우는...젠장, X던전 자체가 원래는 없던 거잖아. 전생 경험은 이이상은...’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쳤다가 가라앉아갔다.  현은 자신의 앞으로 내밀어진 사진을 발견하고는 웨인을 슥 돌아봤다. 웨인은 사진을 보는 게 먼저라는 듯, 손짓하고는  현이 사진 하나를 집어 들자 입을 떼었다.

“카이로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다국적군과 마지막으로 연락이 닿은 건 9시간 전. 정기 연락 시각에 맞춰 연락이 없어서 확인 차 인원을 보냈을 때는 이미 그런 상태였다고 합니다. 전투의 흔적은 없고, 파괴된 숙영지와 그 수통에 찍힌  같이 극소량의 혈흔 말고는 그냥 증발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죠.”
“...포위군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지요.”
“비전투 인원까지 합하면 4만 가량이라고 들었습니다. 카이로가 저렇게 되면서 이집트 군이 움직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졌으니까요.”
“4만...그렇게 대규모인데 위성이나 감시 장비에 걸린  없답니까?”
“거기에 대해선  사진을.”

웨인이 짚은 사진은 부옇게 안개가 껴서 도무지 제대로 찍힌 것이 없는 것이었다. 어느 곳에서, 어디를 향하고 찍었는지조차 분간이 안 가는 수준.

“포위군이 운용하고 있던 cctv중 하나에 찍힌 겁니다. 여기보시면 시간대도 같이 나와 있죠. 포위군이 당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는 시간대 내에 벌어진 현상입니다. 어디를 찍고 있었든 간에 똑같이 이렇게 나왔더군요. 적외선 필터가 달린 것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럼...”
“예, 포위군을 습격한 놈들 중에서 전자 장비를 마비시키는 능력을 가진 놈이 있거나, cctv를 의식한 상태로 시야를 이렇게 가렸다는 뜻이 되겠죠.”
“어느 쪽이든 반가운 이야기는 아니군요. 전자보다는 후자의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고요.”
“용종 괴수 같은 게 무리 지어서 덮쳤을 수도 있잖아. 그놈들 쉴드나 항마력 정도면 이렇게 만드는 것도  것 같은데.”
“그런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그랬다면 이렇게 깔끔하게 화면만 나가진 않았겠죠. 웨인 씨?”
“예, 회로가 타버리거나 한 경우는 없다고 보고 받았습니다. 아직 확인 못 한 게 더 많긴 합니다만...”
“더 확인할 것도 없겠네. 끙...갈수록 태산이네 태산. 어떻게  게 갈수록 더 답이 없어지냐?”

승하는 드러누울 것처럼 소파에 몸을 기대더니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 심정이 이해 안 가는 건 아니어서 류 현은 타박하는 것보다는 웨인에게 말을 걸었다.


“그럼 이 땅이 솟아나는 현상은...?”
“처음 목격된 건 포위군이 형성한 포위망 근처였다고 합니다. 그 뒤에도 계속해서 같은 현상이 벌어져서 이렇게 촬영된 거고요. 솔직히 저도 아직 실감이  납니다만...이 해일건만 봐도 현실이 아니라고는 못하겠더군요.”
“아프리카 쪽은 이상이 없답니까? 땅이 솟아나는데 괜찮을 리가 없을  같은데요.”
“놀랍게도 아프리카 쪽은 별 이상이 없다더군요. 땅이 솟아난 곳 근처 주민들이 약한 진동을 느낀 것 이외에는 말입니다.”
‘...미치겠군. 왜 땅이 솟아나고 난리야? 정작 솟아난 곳에서는  이상 없다는 걸 보면 X던전이나 네임드 몹 중 하나는 연관됐다는 소리인데...대체 뭐야?’

류 현이 침통한 표정으로 골몰하는 듯 하자 웨인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현재 협회의 조사반 1반이 출발했고, 위원회 회의가 끝나는 대로 UN조사반과 구원군을 보낼 예정입니다. 답답하시더라도 조금만 기다려주시길.”

***

“허어...이거 진짜에요?”

화련은 고개를 내저으며 태블릿 pc를 내려놓았다. 화련의 어깨에 딱 달라붙어서 같이 그것을 보고 있던 희란도 마찬가지로 반쯤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류 현은 격하게 동의를 표하고 싶었으나, 팀 리더가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예. 협회 조사단이  번, 세 번 확인 한 사실입니다.”
“아니, 이게 대체...전생에서도 이랬어요?”
“아뇨. 이런 일이 있었으면 말씀을 드렸을 겁니다. 전생에서도 이 비슷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진짜 말도  돼.”

화련은 그대로 소파에 몸을 내맡기고는 축 늘어졌다. 희란이 류 현의 눈치를 보면서 어깨를 흔들었지만 류 현은 고개를 내저어 그것을 만류했다. 그럴만하다고 여겼으니까.

‘먹는 시간, 자는 시간 줄여가면서 수련했는데 나와보니 이러면 저럴 만도 하지.’


웨인과의 미팅이 벌써 이틀 전 일.


희란과 화련이 들어간 레드 던전 위치를 알고 있었으나 류 현은 그녀들을 불러들이지 않았다. 불러 모아놓고 뭐라고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서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화련과 희란은 수련 일정을 끝내고 나와서야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이틀 전과 동일하게 뭐라고 해야 할지 류 현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상태는 여전했고, 협회 조사단은 이렇다  성과를 낸 게 없었다.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소식뿐이었다.

예를 들자면 카이로 중심부가 포위군 cctv에 잡혔던 것과 동일한 안개 같은 것에 휩싸여 있어서 안으로 진입하지 않는 이상 뭘 볼 수가 없다는 소식.


“...왜 안 불렀냐고 화낼 생각이었는데 이럼 화낼 수도 없겠네요.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건데 대응책은 생각해두신 거 있어요?”


류 현은 고개를 내저었다. 화련은 실망감을 표하거나 하진 않았다. 류 현이 그런 게 있다고 하면  현이 더 뭘 숨기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해야할 판이었으니까. ‘진짜 말도 안 되잖아. 대체 동시 연산된 마법이 몇 개야? 마법이 맞긴 할까?’

땅을 뚫고 한눈에 봐도 이질적인 땅이 솟아나오는 그 광경은 화련에게는 배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저것이 그냥 끼워 넣은 수준이 아님을 알 수 있었으니까. 아프리카 본토에서는 작은 진동 이외에는 이상을 못 느꼈다는 말에 확신할 수 있었다.

‘솟아난 게 아닐 거야. 밑에 지각판은 그대로 연결 되어있고 위상차원에 집어넣고 겹쳐놓은 거지. 그게 아니면 잔잔한 진동 정도가 아니라 아주 대륙이 뒤집혔을 테니까...근데 이게 말이 돼?’


자신이 내놓은 추측이었지만 믿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화련이 얻은 유일한 위안은 직접 가서 본 게 아니니 확실하지 않다는 사실 정도였다.

“...제가 보기에는 이건 그냥 땅이 솟아난 게 아니에요. ‘펠릭스’가 사용하던 거랑 비슷한 상태일 거에요. 그보단 더 복잡하긴 한데...만지거나 딛을  있다고 하셨죠?”
“예, 그래서 그 쪽에서도 지질 조사를 한다고 착수하긴 했는데  기대는 하지 말라더군요.”
“저도 직접   아니니 이 이상 뭘 말씀 드릴 수 있는 게 없네요.”

화련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을 마쳤다가 여전히 굳어있는 류 현의 표정을 보곤 물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휴식기에 들어가면서 류 현은 최소 일주일의 휴식기를 가질 것이라고 했었다. 상황이 허락한다면 한 달 이상의 휴식기를 가질 것이라고 했었으나, 이런 천재지변이나 다름없는 상황을 상정하고 한 말은 아닐 것이라고 화련은 생각했다.


‘문제는 휴식기를 깨고 거기 가도 당장 뭘  수 있나 싶긴 한데.’

“이번에 벌어진 일이 일인 만큼 이후 상황파악이 되는 대로 대처해야할 것 같습니다만...당장 우리가 간다고 해서 뭔가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휴식기는 필수인 상황이니 다른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휴식기를 유지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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