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33화 〉탐식마(貪食魔) (233/429)



〈 233화 〉탐식마(貪食魔)

“9시 방향!”


류 현은 크게 움직이지 않고 왼손 약지를 한번 까딱이는 것으로 날개를 조종했다. 비행 궤도가 확 꺾이자,

꽈르릉! 기다렸다는 듯이 허공에서 검은 번개가 쏟아졌다. 검은 번개가 멎자마자 류 현은 급제동을 걸었다.


슉! 허공에서 ‘마녀’의 것으로 보이는 손이 튀어나왔다. 그대로 진행했다면 꼼짝없이 머리나 목덜미를 잡혔을 위치였다. 그냥 받아넘길  없는 각도에서 마법 공격 후 연속해서 텔레포트를 이용한 기습.


단순하지만 효과는 확실한 공격법이다. 벌써 여섯 시간 넘게  짓을 반복하고 있음에도 섬뜩한 걸 보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류 현도 전생에서 이 공격법이 수차례 엿을 먹었었다. 아니, 한 번의 공격을 제외하면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텔레포트를 제한 ‘마녀’와 맞먹는 기동성, ‘마녀’의 위치나 공격조짐을 읽을  있는 감지능력. 둘  하나라도 없으면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걸 피할 수 없다.

심지어 ‘마녀’본인은 보통 상황에서는 이쪽의 공격을 모두 무시하기까지 하니, 혼자서 대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방대한 마력량과 그에 버금가는 재생력으로 어지간한 건 몸으로 때우고 보는  현도 그 깔짝깔짝 견제 같은 공격에 정말 죽을 뻔 했었으니까.


칼리프 클랜이 ‘마녀’에게 알 라시드를 잃고, 그 상처가 치명타가 되어서 분열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조건이 맞지 않으면 ‘마녀’는 무적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류 현도 ‘마녀’를 공략한 게 아니라  좋게 죽일 수 있었던 것뿐이니까.

‘화력 같은 건 엘더 리치가 우위겠지만...저런 말도 안 되는 특성이 달려있으니 그런  의미가 없지.’

다시 붙어서 죽이라고 하면 백퍼센트라고 확신하기 힘든 녀석이었는데, 다른 놈들은 나타나질 않는 데  녀석이 순서도 뛰어넘어서 떡하니 나타날 줄은 몰랐다. 아마 세아의 각성과 지금 같은 기연 둘  하나라도 없었다면 도망 다니는 것만으로도 큰일이었을 것이다.

세아가 아무리 ‘마녀’의 위치나 공격 방향을 예측하더라도  현의 기동력은 그저 그런 수준이고, 기동력을 얻었어도 저 단순하지만 강력한 공격패턴을 기동력 하나로 다 피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엘더 리치라...날개 형태도 그렇고, 아까 그 채찍도...내가 진짜 놈의 지식을 흡수한 건가?’

류  본인도 생각지도 못한 기연이었다. 전생에서도 이런 일은 없었다. 네임드 몹을 뜯어먹고 경지가 일 진보  적은 있어도, 이런 식으로 지식이 남았던 적은 없었다. 웃긴  류 현은 그 지식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뜯어볼 수는 없다는 거였다.

날개를 만들 수는 있지만, 어떻게 만든 것인지는 본인도 몰랐다. 파괴 구체를 만들고, 그것을 엿가락처럼 변형 시킬 수 있지만 중심부 밀도조절 어쩌고 하는 설명은 하지 못한다. 어림대중으로도 말이다. 그저 할 수 있고 없고의 구분만이 처음부터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었던 것 마냥 자리 잡고 있었다.


온갖 괴상한 경험을 다 해본 류 현이 보기에도 명백하게 이상했다. 플레이어들이 각성 후 능력을 다루는 과정이 이보다는 더 착실할 것이다.


그 부분을 제하더라도 이렇게, 연구나 연습도 없이 이렇게 바로 이런 규모의 힘을 다룰 수 있게 된 경우는 플레이어 전체를 통틀어도 극히 드물리라. 지식의 출처를 생각하면 이상할 정도였다. 겉보기에는 마법 같아 보여도,  현이 하고 있는 짓은 엘더 리치의 기술로  마력을 다루는 것이었다. 마법보다는 초능력에 가깝다.

마탑의 연구자들이 봤다면 그를 두고 마법과 초능력의 경계에 대한 격렬한 토론을 벌였겠지만, 류 현은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평온한 상황이었다면 이 지식을 써먹어도 문제가 없는 걸까 하고 고민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런  가릴 때가 아니었으니까.

“앞쪽 4시 방향!”


류 현의 손짓에 검은 날개가 기괴하게 변하며 감속과 동시에 하강을 동시에 수행했다. 그러면서도 멈추진 않았다. 피잉! 류 현은 오렌지 빛 섬광이 허공을 꿰뚫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머리 위쪽 대각선 방향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슈슉! 맞춘 것처럼 ‘마녀’의 팔이 어깨까지 허공에서 쑥 뻗어 나왔다.  현은 미리 뻗어둔 손을 움켜쥐었지만, 얻을  있는 건 잡히지도 않은 팔을 기겁하며 빼는 반응뿐이었다. 류 현은 개의치 않고 늦추었던 속도를 다시 올렸다.


‘왜 인지는 몰라도 이성이 남아있었을 때가 잡을  있는 틈이 있었지. 딱 봐도 당황하는 티도 났었고. 용사가 어쩌니 이상한 소리만 하는 통에 뭘 건지진 못 했지만...쯧, 그 때 끝을 봐야했어. 타격이 들어오는 거랑 동시에 텔레포트 되게 조건을   있을 줄은.’

몇 번의 반복 끝에 류 현은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데미지를 줄 방법이 거의 없다시피 한 ‘마녀’가 타격이 들어옴과 동시에 도망가는 조건부 텔레포트까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게 결정타였다. 류 현이 틈을 노려서 데미지를 쌓는 방식을 포기하게  이유였다.


지금 상태에서는 데미지를  수나 있을까 의구심이 들 지경이지만.

‘...한 번에 잡아야 한다. 놈의 텔레포트는 엘더 리치랑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야. 방해를 한다고 먹히지도 않을 거야. 여기로 올 때처럼 그런 행운은 없다고 생각하는 게 맞아. 놈이 그런 실수를  번할 것 같지도 않고.’


“밑에서! 엄청 많아!”


세아의 목소리가 째질 것처럼 울렸다. 류 현은 망설이지 않고 등 뒤의 날개로  몸을 감싸고, 그 안을  몸에 휘돌고 있는 검은 것으로 가득 채웠다. 등에 업혀있는 세아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숨 안 참아도 돼.”

투두두두! 따다다다! 콩 볶는 소리와  보다 좀  굵은 소리가 동시에 날개와 장막 위를 때렸다.  현은 그 와중에 코끝이 아려지는 것 같은 냄새를 잡아내었다. ‘이젠 독탄까지 날리냐. 가지가지 하는군.’  현은 검은 것을 끌어당겨 세아의 머리주변을 꼼꼼하게 둘러쌌다. 그 주변을 매만지며 독기를 빨아들이도록 조치를 하던 류 현은,


“현아 정면!”

슈슉! 치이익! “끄윽?!”


다시금 허공에서 뻗어 나온 ‘마녀’의 손길을 피하지 못했다. 뜨끔하는 통증과 함께 자신의 일부가 뜯겨져 나가는  감각은 에너지 드레인이 분명했다. 류 현은 주먹을 휘둘러 ‘마녀’의 손을 떨쳐내려고 했으나, 허망하게 통과될 뿐이었다.


후웅! 날개를 원래대로 되돌리고 힘껏 솟구친 후에야 류 현은 ‘마녀’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현아 괜찮은 거니? 현아?”
“어어, 괜찮아.  놀라서 그랬어.”


가슴께를 짚으며 얼버무리는 류 현의 시야에는 어느새 몸 전체가 다 튀어나온 상태의 ‘마녀’가 들어왔다. ‘마녀’는 에너지 드레인을 행한 손을 움켜쥐고 무엇이 그리 기쁜지 부르르 떨더니, 검은빛으로 불타고 있는 눈으로 류 현을 흘겼다.  현은 자신이 표정 읽는 재주는 없지만 ‘마녀’의 눈에 깃든 것이 무엇인지는 알  같았다.

증오와 소유욕. 그것들이 ‘마녀’의 검은눈 안에서 뒤섞여서 회오리치고 있었다. 당연히 류 현도 괴수에게서 이런 시선은 처음 받아봤다.


‘미친 이젠 별...’


류 현은 더 볼 것도 없이 몸을 날렸다. 검은 날개가  전보다 크고 화려한 문양을 그리자,  현의 몸이 소리를 따돌릴 기세로 쏘아져나갔다.


 와중에도 류 현은 엘더 리치의 지식으로 검은 구체를 띄워 올려, 뒤에서 따라 날아오고 있는 ‘마녀’에게로 날렸다.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아니, 그렇기에 그는 이를 악물고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

“...라시드! 빨리!”

알 라시드는 갑자기 눈을 찌르고 들어오는 빛에  팔로 눈을 가렸다가, 팔을 잡아끄는 손길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그리곤 바로 아차했다. 그의 완력을 생각하면 깨우던 이가 큰 부상을 입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이라면 빨리 조치를 취해야하는 상황일지도 몰랐다.

후다닥 몸을 일으킨  라시드는 자신 앞에 서 있는 이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람 압둘아지드가 다급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공주님이 왜 저러지? 대련하다가 영감님 팔이라도 부러뜨렸나?’


잠에서 덜깬 머리로  생각이 지금 상황에서는 일어나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기도 전에, 마람이 그의 팔을 잡아서 방밖으로 끌고 나갔다.

‘잠깐만, 영감님 왼손이 날아갔잖아. 그럼 대련 못하는데. 어, 공주님도 어제 던전에서 돌아왔잖아? 어제? 아, 날 샜지.’


점차 정상궤도로 돌아오는 알 라시드의 사고가 끝나기 전에, 마람은 마호가니 문을 밀어젖혔다. 벽면 하나를  가리고 있는 거대한 모니터가 두 사람을 반겼다. 방안에 있던 이들 중 몇몇이 그들을 돌아봤지만, 그건 정말 소수였다. 대부분은 모니터에 비춰지고 있는 광경을 더 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공주님 왜 또...”

마람은 말로 대답하는 대신 화면을 턱짓했다. 이런 때에는 다그쳐 물어도 백말이 소용 없다는 아는 알 라시드는 눈을 비비적거리며 화면에 집중했다.

그리고 방안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화면에는 흐릿하지만 검은 날개를 펴고 있는 남자가 힘없이 하얀 ‘마녀’의 폭격에 몰리고 있는 모습이 반복해서 비춰지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남자 쪽은 힘이 다   같았다. 검은 날개는 알 라시드가 기억하던 것에서  이상이 찢겨져나갔고, 남자를 감싸던 검은 기운도 화면상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누가 봐도 12시간 가까이 계속된 술래잡기에서  현이 패하기 직전의 상황.


“이 뒤는?”
“‘마녀’쪽이 감지한 건지, 드론이고 헬기고 다 격추돼서 이게 끝이야.”


알 라시드는 그대로 방밖으로 뛰쳐나가려다가, 어깨를 붙잡는 손에 눈을 흘겼다. 어깨를 붙잡아 세운 이는 마람이 아니라 알 사디크였다.

***


퍼엉! 검은 불꽃이 타닥하고 튀더니 강렬한 폭발이 류 현의 복부를 후려쳤다.  현은 맥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류 현의 날갯죽지 부근에 떠있던 검은 날개가 연기처럼 흩어져버렸다.  현은 몸을 일으키려다가 울컥 피를 토했다. 12시간 가까이 지속된 소모전 앞에서 류 현의 재생력도, 항마력도 힘을 다한 것이다.


하지만 ‘마녀’는 그것으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후웅! 파아악! ‘마녀’의 손끝에서 오렌지 빛 채찍이 뻗어 나와 류 현의 어깨를 후려쳤다. 이전과는 다르게 검은 빛이 완연해진 채찍은 류 현과 세아를 연결하는 어깨부분 벨트로 모자라서, 류 현의 오른쪽 어깨회전근을 찢어놓았다. 눈앞에서 동생의 피가 튀자 세아의 새된 비명이 울렸다.

“현아!”

짜자작! 빠지지! 퍼엉! 류 현은 대답할 새도 없이 검은 번개를 받아내야 했다. 등 뒤에 세아가 있었기에  현은 정신이 반쯤 날아간 상태에서도 항마력을 복부에 집중해서 관통을 막았다. 관통되는 대신 세아와 류 현을 연결하는 마지막 벨트가 터져나갔고, 세아는 뒤로 날려가는 류 현보다 멀리 나뒹굴었다.


“현...아...”
“끄륵...누...커윽...”


단번에 정신을 잃을 정도로 큰 충격은 아니었으나, 며칠 동안 긴장상태를 유지하면서 갓 각성한 능력을 계속 사용해온 세아는 그것으로 정신을 놔버렸다. 류 현은 내장이 쏟아질 정도로 배에 크게 난 구멍을 손으로 틀어막은 채로 일어서서 세아에게 가려고 했으나,

촤악! 찌익! ‘마녀’의 채찍이 류 현을 다시금 후려쳤다. 이번에는 슬개건을 잃은  현은 모래바다에 얼굴을 쳐 박았다. ‘마녀’는 쓰러진 류 현의 바로 머리 위까지 내려오더니 씹어뱉듯이 말했다.

[이처럼 약하고 멍청한 존재가 그 분의 것을 잇다니...그 분의 것을 가지고도 이렇게 약할 수가 있는 거지? 어째서 왜! 내가 아니라 너 같은...]

류 현이 일어서기 위해서 땅을  손으로 짚자 ‘마녀’는 그의 머리에 대고 발길질을 날렸다.  현은 저항하지 못하고 옆으로 넘어갔다. ‘마녀’는 당장이라도  현의 머리를 밟아 터뜨릴 것처럼 눈으로 증오를 불태웠다.

그러다가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숨이 넘어갈 것처럼 자지러지게 깔깔거리던 마녀는 웃음을 그치더니  현의 터진 어깨를 짓밟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도 덕분에 나도  분의 것을 잇게 되었으니 네게 고맙다고 해야 할까? 이렇게 잘  줄이야. 네가 가진 재능은 그릇으로서의 것인지도 모르겠구나. 형태를 잃지 않고,  분의 것을 이렇게 순화시켜서 보관할 수 있다니.]


‘마녀’는 검은 안개와 빛으로 이루어진 제  오른팔을 황홀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처음의 오렌지 빛은 희미해져서, 이젠 검은 안개만으로 팔을 만들었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마녀’의 시선이 다시 류 현에게 돌아왔을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그렇다고 네가 그것을 가지고 있어도 좋다는 건 아니지. 그건 네겐 너무 과분한 것이야.]

‘마녀’는  현의 멱살을 쥐고 일으켜 세웠다. 좀처럼 시선을 고정하지 못하는 류 현은 제 발로 서지 못했다. ‘마녀’는 목이 졸리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자신의 눈높이까지 류 현을 끌어올렸다. 류 현의 목에서 숨 막히는 헐떡임이 터져 나왔다.


[자, 그럼 받아가도록 할게?]

‘마녀’는 놀고 있던 오른 손을 뾰족하게 세워  현의 가슴으로 내질렀다. 그 순간 반쯤 기절한 것처럼 보였던 류 현이 몸을 틀어 심장의 직격을 피했다. 오른쪽 폐가 뚫리는 중상을 피하진 못했지만.

‘마녀’는 일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곧 여유를 되찾고 자신의 말을 실현하는 데 집중했다. 에너지 드레인! ‘마녀’는 류 현으로부터 흘러드는 검은 힘에 입가를 끌어올렸다.


그 때였다.


‘마녀’는 류 현과 눈을 마주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죽어가던 남자가, 더 없이 유쾌하다는 듯 웃고 있었다. 자신이 쳐놓은 함정에 빠진 사냥감을 보는 사냥꾼의 모습으로.

류 현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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