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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9화 〉탐식마(貪食魔) (229/429)



〈 229화 〉탐식마(貪食魔)

“그러니까, 집어삼키는 것 같은 느낌이라는 거야? 아니면  다른 거야?”
“그게 아니라...”


 현은 좀처럼 눈을 마주치지 않고 바닥만 보는 세아의 태도에 의아해 했다. 돌아가신 부모님 역할을 대신하던 날부터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는 버릇을 자신에게 들여놓은 이 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류 현은 다그치지 않고 세아가 말을 가다듬기를 기다려주었다. 자신의 누나가 각성한  얼마 되지 않았고, 플레이어를 위한 교육 또한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조급증을 애써 억눌렀다.

“물감 떨어뜨린 것처럼 퍼지나가는 그런 느낌이었어. 그렇다고 옅어지지는 않고...”
“물감? 검은색?”
“응? 으응...”

어떻게 알았냐고 화들짝 놀라는 세아를 내버려 두고 류 현은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한 번 들어본 바 있는 표현이었다.


‘희란 씨가 저렇게 표현했었지. 검은색 물감이 퍼져나가는 그런 느낌이었다고. 그런데 희란 씨는 ‘강림’을 안 썼을 때도 그렇다고 하지 않았나?’

“현아?”
“어? 아, 전에 희란 씨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거든. 그게 생각나서.”
“희란이가? 희란이도 나처럼 보는 쪽이니?”
“어, 음...자세히 설명하자면 복잡한데. 보는 쪽은 아니고, 다른 방향으로 서포트 형이지.”

세아는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희란도 같은 말을 했다는 것에 용기를 얻은 것인지 이전보다  확신을 담아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평소 때도 비슷하긴 한데 뭐라고 해야 할까? 음...평소에는 물감이 퍼지는 느낌인데, 그 때는...”

세아는 류 현이 ‘강림’을 사용했던 순간을 떠올리기 위해서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고심하는  하던 세아는 뭔가에 놀란 것처럼 집중 상태에서 벗어나더니 더듬더듬 말을 늘어놓았다.


“둘  퍼져나가는 형태는 비슷해. 그 뭐라고 하지...파동? 파형? 그런데 퍼져나간 다음이 좀 많이 달라.”
“뭐가 다른데?”
“음...현이 네가 ‘강림’이라는 거 썼을 때가 더 얌전해.”
“뭐?”


전혀 의외의 대답이었다. 지금 남매가 서로 원하지 않음에도 류 현의 마력이나 능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유가 ‘강림’을 쓰고  이후에 세아의 반응 때문이었으니까. 두 번째 ‘강림’이후 세아의 이상반응은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 세아 본인도 인지하고 깜짝 놀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마녀’가 눈에 시커먼 빛까지 달고 갑자기 확 바뀐 태도로 달려들면서 류 현은 더 이상 조심스럽게  문제에 접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카드를 아끼고 말고할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세아의 몸에 이상만 없다면 ‘강림’이고 뭐고 팍팍 쓸 생각이었다.

그 때가 되었을 때 혹시나 세아의 몸에 영향을 끼쳤을 경우까지 생각해서 가슴을 졸이고 있었는데, 막상 세아가 말하는 건 정반대가 아닌가?

좋은 소식임이 분명했지만 웬지 김빠지는 기분이었다.

“평소에는 주변이 검은 색으로 물들어도, 물든 부분이  날뛰는 그런 느낌이야. 마력? 마력 맞다고 했지?”
“어, 희란씨가 그랬으니까. 아마 맞을 거야. 난 누나나 희란 씨처럼 그런 것까지는  보니까.”
“근데 ‘강림’을 썼을 때는 달랐어.  표현은 못하겠는데...훨씬  안정적이었어. 평소가 무거운 걸로 눌러둔 느낌이면...그 때는 아예 편입된 느낌?”
“편입됐다고? 주변 마력을 장악한 게 그렇게 보이는 건가.”
“두 경우 다 같은 색깔로 변하긴 했으니까  다 장악된  아니니?”
“나야 색깔 구분하고, 그런 느낌 구분하면서 쓰는 게 아니니까. 희란 씨나 누나  이해하기가 더 힘들지. 내 입장에서는 그냥 쓸 수 있는가 아닌가 차이 뿐이라.”


류 현의 능력자체가 세세한 컨트롤과는 별 인연이 없는 쪽이었다. 자신보다 스펙상으로 압도적인 네임드 몹을 거의 혼자 상대하다보니, 있는 힘없는  쥐어짜내느라 세부 컨트롤까지 늘어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류 현은 방대한 마력량을 믿고 펑펑 써대는 쪽이었다. 그 방대한 마력량 덕택에 따라오는 항마력과 재생력을 믿고 몸을 마구 던지기까지 하니, 괴수의 마력흐름은 몰라도 자신이 장악한 주변 마력흐름을 신경 쓸 일은 없었다.

“뭐 이 부분은 나중에 시간나면 천천히 파보면 될 거고. 그럼 누나 대체 왜 그랬던 거야? ‘강림’을 쓴 후가 더 안정적이라면서. 설마 누나 쪽으로 흘러들어가기라도 한 거야?”
“아, 아냐. 그건 아닌데...”

류 현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오자 세아는 손을 내저으며 몸을 뒤로 빼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누나 쪽으로 흘러들지도 않았다면서?’  현은 세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누나, 누나도 봐서 알겠지만 지금 상황이 뭘 말하기 싫다고 해서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누나 몸에 문제가 생겼으면 그렇다고 말을 해줘야 나도 거기에 맞춰서 그 괴물을 어떻게 상대할지 정할 수 있다고.”
‘‘강림’이 막히면 좀 심각해지겠지만.’


‘강림’이 세아의 몸에 이상을 일으킬 여지가 있다면 류 현은 ‘강림’을 버리거나 ‘마녀’가 세아를 노릴 수 없게 만드는 쪽으로 공략 방향을 정할 생각이었다.


어느 쪽이든 간에 고되다는 말로도 다 표현 할 수 없는 고생길이 열리겠지만, 류 현은 누나의 건강과 목숨을 저울에 올려놓고 도박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런  아니야. 그게, 그러니까...”


세아는 말을 할 것처럼 입을 떼었다가도 류 현을 눈치를 보며 어물어물 말끝을 흐렸다. 류 현은 세아의 눈에 깃든 불안감 같은 것을 읽어낼  있었지만, 그것이  때문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하니 지금 와서 내가 싸우는 거 못 보고 있겠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앞의 곤란함과는 비교도 안 되는 곤란함과 직면하게  것이다. 류 현의 표정이 점점 험악해져가자, 자신이 머뭇거려서 그렇다고 오해한 세아는 동생을 위해서 걸러내려고 했던 말까지 함께 내뱉고 말았다.

“내가 그 ‘강림’이라는 걸 썼을 때 시커먼 구덩이를 보는  같은 느낌이 들었어. 그래서 현이 너한테 문제가 생길까봐. 아...”

세아는 뒤늦에 뱉지 않으려고 했던 말까지 모두 내뱉었다는 사실에 두 손으로 입을 가렸지만, 그런다고 나간 말이 되돌아오지는 않았다.

“그게 무슨 의미야? 시커먼 구덩이라니.”
“...내가 말을  못한 거야. 그러니까...”
“누나.”

류 현은 세아를 부른  눈을 맞추고는 다른 말을 더하지 않았다. 세아는 처음에는 눈을 맞춰주다가 이내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시선을 피했다.  현은 진득하게 태도를 유지했고, 결국 백기를 들어 올린 건 세아였다.

“‘강림’상태일 때 현이  주변이 시커멓게 물드는 건 평소 때랑 전혀 달라.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상관없어. 얘기해줘.”
“...현이  중심으로 커다란 구덩이가 생긴 것처럼 보였어. 하, 하지만 그건 처음뿐이었고 갑자기 검은 색이 들어차니까 그렇게 보였던 것뿐이야. 현아 그러니까...”


뒷수습을 하려고 애쓰는 세아였지만 류 현은 이미 ‘검은 구덩이’라는 단어에 집중한 상태였다.


“검은 구덩이라는  구체적으로 어떤 거야? 추상적이라도 상관없으니까 최대한 자세하게. 누나, 나한테는 정말 중요한 문제야.”


류 현의 요구에 세아는 어깨를 떨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그 때의 감각을 되살리기 싫었고, 또 그  한순간이나마 동생에게 그런 감정을 느꼈다는 사실을 떠올리기 싫어서였다. 하지만 류 현의 ‘자신에겐 중요한 문제’라는 말에 세아는 억지로 그 기억을 끌어올렸다.


“종이 위에 무거운  같은  떨어뜨리는 느낌이었어. 현이 너를 중심으로 마력의 흐름이 움푹 들어가서 그대로 땅속으로 빨려드는  같은 느낌...”


세아는  견디지 못하고 팔로 어깨를 끌어안고는 다시 부르르 몸을 떨었다. ‘맞아, 그 때 그건 그냥 색깔만 입히는 그런 게 아니었어. 같은 곳으로 끌어당기는...’


“누나? 누나?”
부들부들 떠는 세아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며  현이 그녀를 불렀지만, 세아는 그 때의 광경에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했다.


[아직 여기 있었구나.]

류 현은 뒤통수 방향에서 들려오는 인간이 아닌 목소리에 몸을 돌리며 주먹을 내휘둘렀다. 주먹에 걸리는 감각이 없자, 류 현은 그대로 세아를 들쳐 업고 뒤로 훌쩍 뛰어올랐다.

‘마녀’는 류 현의 예상과는 다르게 꽤나 멀찍이 떨어진 허공 위에 떠있었다. 류 현은 안도감과 함께 동시에 의문 또한 느꼈다.

‘뭐지?’ 방금 전은 최적의 기습타이밍이었다. 여태까지의 ‘마녀’의 행보를 봐선 이런 절호의 기회를 이런 식으로 날리는 건 이상했다. 아무리 이전의 공세 때부터  바뀐 태도를 보였어도 말이다.


류 현이 고심하든 말든 ‘마녀’는 여유롭게 주변을 휘돌아보더니 검지로 커다란 원을 그렸다. 류 현을 중심으로 반경이 20미터는 족히 넘는 그런 원이었다.

[바루스.]

콰콰쾅! 칼리프 클랜의 최정예 원정대를 덮쳤던 번개와 폭발이 다시금 사막을 뒤흔들었다. 이번에는 ‘마녀’가 그려놓은 가상의 원을 따라서!

‘뭐하는 거야?’

‘마녀’의 행동을 예의주시하며 여차하면 ‘강림’상태에 들어가서 달려들려던 류 현은, 갑자기 사막을 헤집어대는 ‘마녀’의 행태에 쉽사리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폭발이 일어난 주변부를 살폈다.

그리고 그것이 ‘마녀’가 바란 결정적인 틈이었다.

‘마녀’는 검은 안개와 빛으로 이루어진 팔로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를 들어올렸다.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녹색보석으로 이루어진 안구형태의 장식물을. ‘마녀’는 그것을  오른손을 통해서 오른팔을 이루고 있는 검은 안개를 밀어 넣기 시작했다. 녹색보석이 터질 것처럼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뭐야? 저건 또 뭔...’


녹색보석이 발한 빛은 멀찍이 떨어져있는  현에게도 아주  보였다. 류 현은 생전 처음 보는 기괴한 빛에 소름이 돋아 오르는 것을 느끼자 냅다 뛰기 시작했다. ‘마녀’의 반대방향으로.


‘마녀’는 눈에 깃든 검은 빛에 어울리지 않게 새하얗게 웃었다. ‘마녀’는 그 짧은 순간에 자신이 정한 원의 반경의 반은 뛰어나간 류 현을 향해서 검지를 내휘둘렀다.

그 직후,


쿠웅! 굉음과 함께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것처럼 모래먼지가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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