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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3화 〉탐식마(貪食魔) (223/429)



〈 223화 〉탐식마(貪食魔)

푸스스 작은 모래언덕이 무너지면서 나는 소리였다. 어느 방향을 봐도 모래뿐인 사막에서는 신경 쓸 것도 없는 소리였지만,

푸확! 파사사 류 현은 선잠에서 깨어나 모래더미 속에서 뛰쳐나왔다. 덩달아 그의  뒤에 업혀있던 세아도 잠에서 깨었다. 물늑대 가죽으로 만든 옷과 망토에 싸여있어서 고개를 빼꼼 내민 세아의 얼굴은 모래더미 속에서 휴식을 취하던 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멀끔했다.

물 위를 걸어 다니다가도 천적이 다가오면 잠수해서 공격을 피하고는 하는 물늑대는, 그 가죽이 침낭이나 망토용도로 아주 각광받았다. 방수효과는 물론이고, 과도한 열이나 외부에서 온 이물질도 걸러내기에 언제나 ‘가방’의 적재량으로 골치를 썩는 플레이어들에게는 필수 아이템이었다.


 때문에 가격도 어지간한 슈퍼카 값이었지만 없어서  파는 물건이었다.  없어서 못 파는 물건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칼리프 클랜에게 보급지원을 받고 있는 류 현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지만.

다리부근에 덮어두었던 물늑대 가죽이 흘러내렸지만 류 현은 신경 쓰지 않고 모래바다를 박차며 뛰어올랐다. 류 현이 두 번째 도약으로 3미터 가량 떠올랐을 때였다.

[그어어!]  현이 발을 디뎠던 곳의 모래가 손모양을 띄며 일어나며 그를 쫓았다. 류세아가 흠칫하며 뒤를 돌아봤지만, 그녀는 동생과 자신을 쫓고 있는 괴물을 전부  수 없었다. 손 크기만 해도  현 세 명을 한 번에 움켜쥘 만 했고, 몸통은 그 손에 걸맞게 어마어마하게 컸으니까.

마치 사구가 그대로 몸을 일으킨 것 같은 거대한 모래 괴물은 류 현이 모래바다 위로 착지는 것에 맞춰 철구현장의 철구 같은 주먹을 내려쳤다.

류 현은 모래 괴물의 그림자가 자신을 뒤덮는 걸 보고 슬쩍 위를 올려다봤다. 세아의 시선도 류 현을 쫓았다. 거대한 주먹이 무너지는 것처럼 내려쳐지고 있었지만 세아도, 류 현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류 현은 슬쩍 제 주먹을 내밀었다.

뻐어엉! 겉보기에는 그저 주먹을 슬쩍 마주 내밀었을 뿐이었지만 효과는 엄청났다. 주먹은 물론이요, 팔꿈치까지 날아간 모래 괴물은 뒤로 넘어가며 모래 파도를 일으켰다.


 현은 피어오르는 모래먼지에 인상을 찌푸리더니 세아의 머리 주변에 둘러놓은 망토를 끌어당겼다. “금방 끝날 테니까. 다시 자. 밤 동안 거의  잤잖아.” 세아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느껴졌다. 류 현은 발을 놀리기 시작했다.


퍼엉! 훌쩍 위로 뛰어오른  현은 그대로 활강하는 것처럼 모래 괴물에게로 몸을 날렸다. 모래괴물은 날아간 팔을 재생시키느라 한 박자 늦게 그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후읍-”

류 현은 심호흡과 함께 검은 안개를 끌어올렸다. 평소처럼 온몸에서 뿜어내는 것이 아니라, 주먹 쥔 오른 손과  다리에 둘렀다.


뻐어엉! 빠지직! 모래괴물이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류 현은 있는 힘껏 싸커킥을 갈겼다. 파고든 발끝으로 검은 안개가 스며들었고, 모래괴물의 머리가 그대로 폭발했다.


하지만  현은 그걸로 멈추지 않았다. 천천히 무너져 내리는 모래괴물의 몸뚱이를 발판 삼아 다시금 도약했다. 쏜살이 된 류 현은 그대로 대각선 아랫방향으로 주먹을 박아넣었다. 팔뚝을 넘어서, 어깨가 닿을 정도로 모래바닥 깊숙이!

빠직- 퍼서석! 주먹 끝에 닿은 것이 깨져나가는 느낌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현은 손을 펴서 몇  휘적거린 후에 주먹을 뽑아내었다. ‘귀찮은 것들은 다 만나보게 생겼군.’

손안에는 보석이라고 해도 될 만한 광택을 자랑하는 붉은 돌조각이 쥐여져있었다. 전생에서는 사막 귀신의 보석이라고 불린, 사막 귀신이 가진 제2의 심장이었다.


퍼플급에서 준 블랙급으로 평가받는 사막 귀신은, 칼리프 클랜을 수차례 엿 먹인 것으로 유명했던 괴수였다. 모래로 이루어진 몸뚱이를 박살내서 머리와 심장을 파괴해도, 제 2의 심장인  보석 같은 것을 파괴하지 못하면 시간이 꽤 걸리더라도 다시 몸을 회복해서 분탕질치는 그런 놈이었다.


그보다는 귀신같은 이동방식과 습격방법으로 더 유명한 놈이었지만.

‘어떻게 봐도 정상은 아니야. 사막 귀신이 간도 안 보고 닥공이라니. 설마 진짜 괴수들을 장악해서 포위망을 펼친 건가?’

벌써 48시간째, 류 현은 사막 한가운데서 꾸역꾸역 몰려드는 괴수들을 때려죽이면서 북상 중이었다.

사막으로 뛰어들 때만 해도  현은 이리되리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었다. 기껏해야 ‘마녀’와 ‘업화의 아이들’이 번갈아가면서 자신을 괴롭히거나, 죽이기 위해서 전력으로 덤비는 것을 생각했을 뿐.

이처럼 사막에서 꾸역꾸역 몰려드는 괴수들과 무제한 데스매치를 벌이게  줄은 생각지 못했었다. 어느 쪽이 낫냐고 굳이 묻는다면 앞의 것보다는 지금의 상황이 훨씬 낫다고 대답하겠지만 말이다. 네임드 몹 두 개체의 협공이라니,  현은 만에 하나라도 두 개체가 동시에 나타나면 뒤도  돌아보고 도망갈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마녀’가 몰아넣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최소 퍼플 던전에서 최대 화이트 던전에서 발견되는 괴수들이 꾸역꾸역 자신을 쫓고 있었으니까. 놈들이 방금 사막 귀신 마냥 평소 사냥 패턴마저 내다버리고 맹목적으로 자신에게 덤벼들고 있었다. 정확히는 자신과 류세아에게 말이다.


‘최소한 ‘마녀’가 다른 괴수들을 미치게 하는 정도는 가능하다고 생각해야겠군. 젠장,  자꾸 원래 없던 능력까지 달고 튀어나오는 건데? 좀 쉽게 가면 어디가 덧나나?’

북쪽으로 향하는 와중에도 생각은 끊이지 않았다. 너무 생각할 것이 많아서 머리가 터질  같아서 문제지, 사막을 거닐고 있다고 심심할 일은 없었다. ‘마녀’의 이상행동도, ‘마녀’가 보낸 괴수행렬도 모두 류 현을 골치 아프게 했다.

‘인간형이라서 더 그런 걸까? 아니면 이 녀석만 지능이 더 돌아온 걸까?’

 중 가장 골칫거리는 ‘마녀’였다. 사냥 난이도가 지랄 맞게 높은  둘째쳐도 될 정도로, ‘마녀’의 행동은 류 현을 놀라게 했다.

‘마녀’에게 이곳 사우디아라비아로 납치되고 한 번 쫓아 내고나서 ‘마녀’가 다시 덤벼들었을 때, ‘마녀’는 류 현에게 정면으로 덤벼들지 않았다. 류 현이 타격할 수 없는 상태임에도 류 현과 함께 있던 세아를 노린 것이다.

류 현은 대경실색하며 반쪽짜리나마 ‘강림’카드를 꺼내들었고, ‘마녀’는  현의 꼴을 보고 다시 놀라서 도망가 버렸다.

‘마녀’가 자신이 아닌 막 플레이어가 된 누이를 노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류 현은, 그 길로 칼리프 클랜 지부로 찾아갔다. 정보 공개를 꺼릴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운 좋게도  라시드는 별 조건도 없이 보급지원을 해주겠다고 나섰고, 사막에 들어서자마자 괴수들이 달라붙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아프리카의 사하라에서도  수 없는 상위 괴수군단의 습격이 시작되었다.

5성 리치는 애교였고, 라미아나, 방금 전처럼 현생에서는 아직 관찰된 바가 없는 사막 귀신같은 퍼플과 블랙급 사이에 서 있는 놈들이 계속해서 덤벼들었다. 이 넓은 사막에서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 류 현과  세아를 노리고.

어떻게 봐도 인위적인 손길을 탄 게 분명해보였다.  포인트 마다 떨궈져 있는 보급품을 찾으면서  라시드가 전해온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괴수들의 움직임을 표시한 지도를 보고  현은 확신했다.

‘마녀’나 ‘업화의 아이들’ 중 하나가 괴수를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그것으로 자신을 몰고 있다고. 어디로 몰려고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좋은 소식이 아님은 분명했다.

그리고 류 현은 ‘마녀’가 범인일거라고도 거의 확신했다. ‘업화의 아이들’은 두 번째 교전에서 ‘마녀’가 놀라서 도망갈 때 잠깐 시간만 끌었을 뿐, 그 뒤로는 계속해서 네 여자 쪽을 괴롭히고 있으니까.

‘마냥 인내심 싸움만 할 수는 없어. 승하 쪽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이쪽도 그렇게 여유로운 상황도 아니니까. ‘마녀’가 이대로 계속 모습을 안 드러낸다면...진짜 자동차로 대륙횡단을 해야 할 수도. 사막을 빠져나온다고 괴수를 안 몰아넣을 거라는 보장이 없는 게 문제라면 문제인데...’


 현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부분이었다. ‘마녀’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계속해서 괴수만 그에게 보낼 경우, 대응책이라고  만한 것이 없었다. 계속해서 덤벼드는 놈들을 때려죽이고, 마력을 조금씩이나마 늘릴 수야 있겠지만, ‘마녀’가 나타나지 않으면 죽일 방법이 없다.

애초에 류 현의  괴수전 전술은 인간에 대한 살의를 대전제로 깔고 나서야 성립되는 것이다.

이번의 ‘마녀’처럼 겁을 집어먹고 도망치는 경우는 본 적도 없고,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베스트는 승하 쪽에서 ‘업화의 아이들’을 소멸시키고 이쪽으로 합류해주는 건데...저쪽 라인업이랑 그 빌어먹을 정령들이랑 상성이 안 좋아.’


특히 승하가 상성상 편하지 못할 터라, 팀의 공격력이 급감할 것이 뻔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현은 쓸데없는 기대는 접기로 했다. 큰 부상 없이 버티고만 있어줘도 대단한 일이다.

“음?”

류 현은 속도를 늦추고 내딛었던 곳을 고개를 돌려 돌아봤다. 뭐라 똑 부러지게 말하기 어려운 위화감이 느껴졌었다. ‘화이트 던전 게이트 볼 때랑 비슷한 느낌이었...’


푸확! 사구가 폭발하며 하얀 동체가 드러났다.


입은 화살표처럼 뾰족했고, 몸뚱이 뒤덮은 하얀 비늘은 작고 매우 촘촘해서 태양빛 아래에서 요란하게 빛났다. 버스 두 대 분량은 되는 몸통 굵기 만한 네 다리들은 갈고리 같은 끝을 가지고 있었고, 여덟 개의 눈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며 사방을 경계하는 듯했다.

“씨발 저게 왜 지금 튀어나와?”

류 현은 세아가 업혀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욕지기를 내뱉었다. 업혀있던 세아가 들썩거리며 무슨 일이냐고 물어왔지만 류 현은 고개 들지 말라는 말로 대꾸를 대신했다.

[크오오!]

사구에서 튀어나온 괴수는 모래밭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꼬리를 휘저어 사구를 완전히 흩어놓았다. 드러난 괴수의 꼬리는 잠수부들이 사용하는 오리발을 두  접붙여 놓은 형태였다.

류 현은 저 괴수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사냥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떴다하면 아무리 빨리 대처해도 도시 하나를 쑥밭으로 만들어서 잊을 수 없는 놈이었다.

인류가 쌓아올린 건축물들을 어느 놈보다 더 많이 무너뜨린 괴수, 지룡이다.


아직 등장하지 않은 화이트 던전에서 튀어나오는 괴물.

‘설마 내가 오는 거에 맞춰서 화이트 던전을 터뜨린 건가? 아니겠지?’

스스로 부정하면서도 류 현은 자신이 감이 맞다는 생각을 지워내진 못했다. 대충 얼버무리기에는 너무 중요한 사안이었다.


류 현은 구르는 것처럼 달려드는 지룡을 향해서 내달렸다. 상황이 얼마나  끔찍해지든 간에 눈앞의 괴수를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


[이해가 안가는 구나. 어떻게  분의 마력을 불신자가 가지고 있을 수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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