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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8화 〉탐식마(貪食魔) (218/429)



〈 218화 〉탐식마(貪食魔)
화련은 평소라면 절대 짓지 않았을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작은 입이 파리가 들어가도 모를 정도로 떡 벌려졌다. 승하나 희란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뭘 어떻게 잡았다고요?”
“그러니까, 첫 시도에서는...”


류 현은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처음부터 친절하게 설명해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화련은 그 친절에 폭발했다.

“아니, 마스터 진짜 제정신이에요!  때는 언니도 계셨다면서요?”

류 현은 다시금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려고 입을 벌렸다가, 화련의 서슬 퍼런 기세에 입을 도로 다물었다.  작은 몸에서 어디서 그런 기운이 솟아나는 지 모를 일이었다. 그녀가 서 있고, 자신이 앉아있긴 하지만 이렇게 압도되는 기분을 느낄 줄은 몰랐다.

“아무리 재생력이 깡패여도 그렇지! 마스터가 목숨이 아홉 개 되요? 진짜 전생에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에요!”

 전체를 장악해뒀기에 화련은 있는 대로 소리를 꽥꽥 질렀다. 방음은 회의 시작 전부터 조치해 두었고, 누가  근처로 다가오면 곧바로 알  있으니 만에 하나라도 이 대화가 세어나갈 일은 없다.

“저도 나름대로 고심해서...”
“그게 고심한 거면 다른 경우는 안 봐도 훤하네요. 마스터 혼자서 단독 작전 벌일 생각은 꿈에서도 하지 마세요.”

화련은  대꾸하면 물어뜯기라도 할  같은 기세였다. 으르렁 거리는 화련을 피해서 다른 이들에게 구원 요청을 보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별로 다르지 않았다.


“나도 그런  보고 작전이라고는  해. 그 때야 네가 외로운 처지였었으니까 아주 이해 못할 건 아니지만...음, 그건 좀 아닌 거 같아.”
“맞아요. 너, 너무 위험해요. 좀 돌아가더라도 안전한 방법을 찾는 게...”
“그리고 세아 언니도 털고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으셨잖아요. 그런데 그런 자살 특공을 한 번 더 하겠다고요?”


화련의 덧붙이는 말은 여러 가지로 류 현의 가슴을 뜨끔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고분고분하게 그녀들의 뜻을 따라줄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달리 없습니다. 저 말고는 접근하는 것 자체가 자살행위에요.”
“그건  무슨 말도 안 되는 핑계...”
“잠깐만, 련아. 일단 뭐라는 지 들어는 보자.”

다시 일어서려는 화련을 제지하며 승하는 턱짓으로 류 현을 재촉했다.

“제가 겪어본 바로는 ‘마녀’는 에너지 드레인을 사용합니다. 근접했을 때 나오는 패턴이라, 지금은 어떨지 확신은 못하겠습니다만 아마도 그 능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에, 에너지 드레인이요?”

희란이 눈에 띄게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에너지 드레인이 어떤 능력인가. 류 현의 간판 기술이다. 제 몸집보다 열 배, 스무 배는 더 큰 괴수들이 악착같이 달라붙은  현의 에너지 드레인에 말라죽어갔고 희란은 그 모습을 수없이 많이 지켜봤었다.


괴수의 쉴드고, 총알마저 튕겨내는 겉가죽도 전부 뚫어버리는  능력을 괴수가 가지고 있다니, 이보다 더 끔찍한 소식이 있을까?


“어, 니가 쓰는 그거?”
“완전히 똑같지는 않고요. 좀 많이 달랐는데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설마 너처럼 이상한 연기 흩뿌리고 그러는 건 아니지? 그럼 진짜  없는데.”
“이상한 연기라니...아뇨. 접촉한 대상으로만 쓸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딜도 거의 안 들어가는 녀석이 그런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는 거지. 진짜 스트라이커들 다 나가 죽으라는 소리잖아?”
“그런 괴물 상대로 그런 자살 특공을 했다고요? 그리고 이번에 또 그렇게 하겠다는 거에요? 적 능력도 뻔히 알면서?”


화련이 재차 터질 기세가 보이자 승하가 희란에게 손짓을 했다. 희란은 헤헤 웃으며 화련을 끌어당겼다. 화련은 희란의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련이 너 못 듣고 있겠으면 나가서 머리라도 좀 식혀. 이러다가 하루 종일 안 끝나겠다.  들어놔야 다른 대책을 짜든 말든  거 아냐?”


화련은 부루퉁한 얼굴이 되었지만 반발하진 않았다. 류 현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보낼 뿐이었다. 승하는 화련이 나갈 생각이 없어보이자 소리 없이 한 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원래 쟤가 해야 하는 건데...팔자에도 없는 참모 노릇 하게 생겼네.’


“네 말대로라면 진짜 답이  보이긴 하는데, 그렇다고 그런 방식을 채택할  없어. 그건 말 그대로 도박이잖아. 직접 해봤으니  현 네가 제일 잘   아냐? 거기다가 이번에는 잡아야 하는  한 마리도 아니고.”
“그게 제일  문제죠. 네 분이서 목격한 바에 따르면 ‘업화의 아이들’도 엘더 리치에게 굴복한 본 드래곤 마냥 지시를 받는다는 소리인데...솔직히 제가 두 명 있어도  둘을 동시에 감당할 자신은 없습니다.”
“‘업화의 아이들’인지 뭔지 하는 불덩어리들 목숨이 여러 개라는  대체 무슨 소리야? 진짜 여러 번 죽여야 하는 거야?”
“그건 아닌데, 불덩어리가 여러 개로 나뉘어 있는 건 보셨습니까?”
“어, 네가 오기 직전에 ‘마녀’가 도망칠 때 봤었어. 추가 병력까지 왔나 하고 다 죽었구나 싶었는데, 불덩어리들 오자마자 도망가더라고. 운이 좋았지. 엄청나게.”

류 현이 생각하기에도 ‘마녀’가 순순히 퇴각한 건 천운이었다. 화련의 기습이 성공하지 않았다면, ‘마녀’에게 리스크를 계산할 지능이 남아있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멀쩡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보기에는 인간 여자 같지만, ‘마녀’는 단독으로 칼리프 클랜의 수뇌부를 박살낸 괴수니까.


“예, 천운이라고 해도 될 정도죠. 솔직히 그 정도로 도망간  놀라울 정도죠.”
“용사 어쩌고 하던 건 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만. 너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

류 현은 속내와 정 반대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짚이는 구석이 아주 없진 않았다. ‘칼리프 드 오르시아...그 여자가 관계된 건가?’


 외에는 용사거린 인간은  적이 없었다. 인간인지 조차 의심스러운 존재이긴 했지만.

‘그런 거면  직접  여자를  찾아가고 여기서 난리인 거야?’

스스로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온갖 요소들이 스트레스를 주는 판국에 그런 고민까지 자청해서 떠안을 생각은 없었다. ‘이러든 저러든 잡아야하는 괴수다. 내버려두면  전생에서 했던 짓을 할 수도 있어.  전에 우리부터 치우려고 들테고.’


류 현은 그 생각을 구석으로 밀어두기로 했다. 어차피 고민해봐야 칼리프 드 오르시아를 만날 방법도 모르고, 가능할 지도 의문이지만 괴수랑 타협할 생각은 요만큼도 없었다.


“다시 돌아가서. ‘업화의 아이들’은 제가 겪어본 바로는 여섯이서  개체인  특이한 괴수입니다. 여섯으로 나뉘어서 독립적인 활동이 가능한데, 나뉘어있을 때는 소멸시켜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골치 아픈 특성이 있지요.”
“여섯? 우리가 본  열은 넘은 거 같은데?”
“예, 이번에는 숫자가 좀 다른 것 같더군요. 저를 습격한 놈은 아홉은 넘었으니 말입니다.”
“진짜 좋은 소식이라곤 없네.”“하하..”
“나눠져 있을 때는 소멸시켜도 소용없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한 번에 여섯 마리 전부 쳐야한다는 뜻이에요. 아님, 뭉쳐 놔야한다는 뜻이에요?”
“둘 다입니다.”
“네?”
“뭔 소리야 그게?”


류 현은  대신 종이와 펜을 가져와서 큰 동그라미를 하나 그렸다. 그리고 그 주변에 작은 동그라미 여섯 개를 그렸다. 그는 작은 동그라미 하나를 짚었다.


“이게 분열한 ‘업화의 아이들’  개체입니다. 보통 때는 이렇게 독립해서 돌아다니다가 소멸될 정도로 커다란 타격을 입으면...”


류 현은 선을 찍찍 그어 커다란 동그라미와 작은 동그라미를 이어놓았다.

“독립된 상태가 풀리고 다른 개체들에게  개체가 가진 에너지가 할당됩니다. ‘업화의 아이들’이라는 커다란 우물로 돌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일정시간이 지나면 소멸한 개체가 다시 분열해서 여섯 마리로 되돌아갑니다.”
“미친, 그게 말이 돼...? 어떻게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직 던전들이 본격적으로 터지지 않아서 분류가 안 생겼습니다만...전생에서는 정령류라고 환수종 옆에 다른 분류를 만들어놨었습니다. 핵이 파손되면 천천히 무너지는 골렘같은 무생물 괴수랑 다르게 이놈들은 핵에 손상을 입어도 천천히 회복해서 복수하곤 했었거든요. 분열하는 경우도 굉장히 드물지만 네임드 몹 이외에도 존재 했었고요. 화력이나 재생력면에서는 이놈들이랑은 비교도 안 되긴 했지만요.”
“...둘 다라는 건 무슨 의미죠?”

조금 전보다는 가라앉은 화련의 목소리였다. 류 현은 모든 작은 동그라미와 큰 동그라미를 선으로 이어놓고는 말했다.


“이놈들을 잡으려면 분열한 여섯 전부를 소멸시킨 후에, 합쳐진 놈을 다시 잡아야합니다. 문제는 이놈들이 그 상태가 약점인 걸 아는지 분열된 개체수가 세 마리 이하가 되면, 재분열하는 속도가 확 빨라진다는 거죠.  마리까지 밀어붙인 적이 있는데, 하나 처리하고 남은 하나를 처리하려고 하니까 그 새 분열해 있더군요. 힘의 총량까지 줄여가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둘 다라고...”
“예, 모든 개체를 한 지역에 모아놓고 동시에 없애버리는 게 아니면 답이 안 나오는 놈들이라.”
“...설마 이놈들도 칼질이나 마법 안 먹히는 건 아니지? 말하는 거 보니까 더럽게 안 죽는  특성 같은데.”
“저항이 상당하긴 해도 ‘마녀’처럼 평소에 완전 무시 수준은 아닙니다. 그런데 화력이 문제죠. 아마 유전 사고가 그놈들 짓일 겁니다. 그놈들이 가진 화력도 몰아서 한 번에 잡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죠. 그놈들이  뒤집혀서 도시에 불을 지르고 다니면...그야말로 불지옥이  겁니다. 선결 과제는 놈들을 터질게 많은 도시로부터 떼놓는 것.”
“진짜 난이도 널뛰기 장난 없네...”


승하는 제 뒷머리를 헤집으며 투덜거렸다. 뒤이어 화련은 한 숨을 푹 내쉬었고, 희란은 머리를 헤집거나 한숨을 쉬진 않았지만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의욕이 꺾일 만도 하지.’


 현 스스로도 현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 욕지거리부터 떠오를 지경이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문제가 있다면  현이 이들을 다독거려서  괴물들을 잡아야 하는 입장이라는 거였다.


‘젠장, 이런 건 젬병인데.’


류 현이 피로로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닦달하며 말을 짜내려는 때였다.


“에휴,  수 없지.”
“그러게요. 내가 어쩌다가 이런 대장을 만나서...”
“?”
“뭘 그런 얼굴을 하고 있어. 걱정 마. 못 잡겠다고 너만 두고 도망은 안 갈 테니까. 우리 도망가 버리면  또  작전 같지도 않은 작전 실행할 거 아냐?”
“맞아요. 혹시나  말도 안 되는 자살 특공 다시 시도할 생각만 해봐요. 언니한테 전부...”“언니...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안 돼. 안 이러면 각만 보이면 그렇게 들이박을 게 뻔 하다니까.”

다른 의미로 불타오르기 시작한 세 여자를 바라보며 류 현은 헛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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