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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7화 〉탐식마(貪食魔) (217/429)



〈 217화 〉탐식마(貪食魔)
화련은 허공을 향해서 내뻗은 손가락을 천천히 내리그었다. 손끝에서 세어 나오는 마력 한 방울의 움직임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집중한 상태로.

“후우우.”

작업을 마무리한 화련은 여태껏 참은 숨은 원껏 내쉬었다. 그대로 허물어지듯이 뒤로 드러누운 화련은 눈마저 감은 채 말했다.

“끝났드아...”
“고생하셨어요. 언니.”
“머리가 깨질 거 같아...희란아 미안한데 나 좀 욕실까지 데려다 줄래? 밥이고 뭐고 일단 자야겠어.”
“잠깐만요. 욕조에 물 틀어놓고 올게요.”

어엉 하고 건성으로 대꾸한 화련은 그대로 수마의 나라로 떠나려는 정신을 부여잡으려고 애썼다. 그 때문에 화련은 머리까지 다가온 인기척을 조금 늦게 발견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류 현이었다.

“고생은요. 저도 두 발 뻗고 자려면 해야 하는 일인데요.”

화련은 임시거처를 자신의 공간으로 완벽하게 장악했다. 하얀 여자가 들이닥치더라도 화련은 곧바로 반응할 수 있도록.


이전부터 자신의 집에도 해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아서 시도도  해본 작업이었다. 준비도, 휴식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듯이 시도해서 이렇게 성공한  용할 지경.

“그래도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죠.”

그리 말하며 손을 내밀어온  현의 오른 팔을 붙잡고 화련은 바로 앉았다. 현기증이 와서 머리가  돌았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자고 일어나서 다시 물어볼 거 같은데, 지금 물어봐도 되요?”
“안   뭐가 있겠습니까.”
“그 하얀 여자 마스터가 상대해본 괴수에요?”


류 현의 표정이 잠깐이나마 얼어붙었다.  임시 거처를 수배하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류 현은 승하와 희란, 혜라, 화련이 상대한 하얀 여자에 대해서 들을 수 있는 정보는 대강 다 들어둔 상태였다. 화련의 위상차원 어쩌고 하는 설명은 알아듣진 못했지만, 특징 정도는 이해하기 어려움이 없었다.

‘마스터도 상대 못 해본 종류면 진짜 답도  나와.’

화련은 제발 그가 찢어 죽인 괴수 목록에 그 하얀 여자가 들어가 있기를 빌었다. 아니면 정말 끔찍해질 테니까. 자신들을 타겟으로 잡고 기습해온 것만 봐도 이미 충분히 끔찍한 상태였다.


“예, 아마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런 특성을 가진 다른 네임드 몹은 없었고요. 외견은 인간 여성 인 거 보면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직접 봐야 확정할 수 있겠지만요.”


화련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다... 마스터도 생판 처음 보는 놈이라고 하면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감이 안 왔었는데. 이제 좀 안심하고 푹 자겠네요.”
“그렇다고 봐야겠죠.”

그리 대꾸하는  현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지만 피로했던 화련은 눈치 채지 못했다. 화련은  맞춘 것처럼 딱 맞게 돌아온 희란의 손에 이끌려 욕실로 향했다.

***


네 명의 남녀는 1층 거실에 모여 앉아있었다. 그들의 주변에는 대충 허기를 채우고 치워둔 배달음식들이 쌓여있었다. 승하는 다 마신 캔 콜라를 찌그러뜨리며 물었다.

“그러니까, 그게 칼리프 클랜을 박살낸다고? 혼자서?”
“정확히는 수뇌부가 박살나서 나중에 분열 됩니다.  라시드가  사디크를 살리긴 하는데, 복귀를 장담할 수 없는 중상이었거든요. 거기다가 당시에 아프리카 저지선도 사실상 붕괴된 상태라서 분열된 클랜이 버틸 세상이 아니었고요.  사디크가 죽었다고 소문이 나버린 게 결정적이었죠.  뒤에 잔존 세력을 알 사디크가 규합하긴 하는데...그래봐야 이전 칼리프 클랜의 반의 반 규모도 못 미쳤죠.”
“그게 그거지. 지금 칼리프 클랜 윗대가리 다섯만 사라져도 공중분해 되서 반은 테러리스트로 전직할 걸? 그 때는 처음부터 거길  거야?”


극단적인 가정이었지만 류 현은 반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승하의 말처럼 정말로 그럴 테니까. 칼리프 클랜은 단순히 플레이어 집단이라고 볼 수 없는 조직이니까.

“예, ‘마녀’가 등장했고, 전생에서 초기에 활동했던 구역은 중동 쪽입니다.  녀석이 분탕질 친 덕분에 저지선이 박살났고, 그 뒤로는 크림반도까지 활동영역을 넓혔죠.”
“우리랑 본 거랑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면...그렇게 됐어도 별로 이상하진 않네. 코앞에서 마법 캐스팅해도 눈치를 못 채는데, 저런  텔레포트까지 쓰는 데 어떻게 막아?”
“예, 그 때 러시아 서부에서 저지한  기적이었죠.”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화련은 승하가 뭔가 고심하는 상태에 들어서자 류 현에게 물었다.


“저를 공격한 그 불덩어리들은 정령이라고요? 정령류가  그렇다는  진짜에요?”
“다 그 정도는 아니고, 그놈들이 네임드 몹이라서 유독 심한 겁니다. 나중에 화이트 던전이 터지면서 정령류 괴수도 등장하는데, 그놈들도 감지가 굉장히 어렵긴 하지만 코앞에 있어도 모를 수준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마녀’라고 부르신 여자도 비슷한 느낌이었는데요? 위상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희미한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 부분이 저도 의문인데...아무래도 네임드 몹  마리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뭔가 바뀐  같습니다.”
“듣기만 해도 골 아프네. 원래도 짜증나는 놈들이 더 업그레이드 돼서 왔다는 소리잖아?”
‘그 정도로 끝나주면 좋겠지만..’

류 현은 우려를 바로 입 밖으로 내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마녀’의 특성을 직접 겪고 세 여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리 정보가 중요해도 지금 상황에서 좋지 못한 전망을 더 주입하는 건  도움이 안 될게 뻔했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저것들이 어떻게 우리를 타게팅 해서 습격해왔느냐입니다. 저야 사고 현장 조사차 리비아에 들린 적이 있으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노출됐다고 쳐도. 습격당하신 희란 씨는 전혀 연결고리가 없으니까요. 희란 씨는 저랑  며칠 동안 만난 적도 거의 없는 데 말입니다.”

류 현의 골치를 가장 아프게 만들고 있는 게 바로 이 부분이었다. 대체 왜 자신들을 타게팅 했냐는 것. ‘나야 그렇다 쳐도, 희란 씨를 습격한  우연이 아니라면 진짜 골치 아파지겠군.’


만에 하나라도 ‘마녀’가 처리해야할 플레이어 우선순위 목록을 작성할 정도로 지능이 남아있다면 문제는 더 끔찍해질 테니까. 정말 가정이라도 생각하기 싫은 상황이지만,  현은 마냥 낙관할 수가 없었다.

희란은 승하와 합류하기 전까지만 해도 기분 나쁜 시선이나 마력을 느끼긴 했어도 공격을 받은 건 아니라고 했었다.

‘마녀’가 희란의 존재를 알고 바로 그리로 텔레포트  것이 아니었을 테니, 근처의 다른 플레이어를 습격할 기회는  해도  댓번은 있었을 것이다. 그런 괴수가 희란을 딱 골라서 쫓아다닐 이유가 뭐란 말인가?

또 정말 우연히 희란의 근처로 텔레포트 했다고 해도, 인간을 보고 눈이 뒤집어지지 않을 지능이 남아있는 놈이 희란을 관찰하고, 쫓을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인간을 보면 들끓는 본능을 억누르면서까지 그렇게 해야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아지다하카 그 새끼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젠장 진짜 내가 회귀한 것 때문에 이러는 건가?’

문제는 전부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켕기는 게 그거 하나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반복해서 여쭤봐서 죄송합니다만, ‘마녀’가  말 다시 말씀해주실  있겠습니까?”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그쪽이 용사 같다고? 이쪽도 용사가 아닌 것 같진 않은데...어쩔  없지. 일단 물러나야겠구나. 생각지도 않은 공간마법에  대 얻어맞기도 했고. 돌아가자.]. 하고 쉭 하고 사라졌어. 그거 텔레포트 맞지? 련아.”
“아마도요.”
“엥? 아마도요는 또 뭐야. 텔레포트 말고 그렇게 사라질 수 있는 게 또 뭐가 있는데?”


화련은 승하에게 눈을 흘겼지만, 평소 같은 앙칼진 기세는 없었다. 그녀는 작게 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마녀’가 부린  중에서 알아볼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텔레포트를 연속해서 사용하고 있는 상태라고 한 것도 정확하지 않구요. 보통 그렇게 큰 에너지 덩어리들을 텔레포트 시키고 나면 흔적이 안 남을 수가 없는데, 그 때는 그것도 없었다고요.”
“미친, 너도 못 알아본다고?”

승하와 화련의 대화내용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현은 당장이라도 머리가 터져버릴  같은 기분이었다. 또다시 네임드 몹이  동시 출현한 것도 골치가 아픈데, 한 쪽은 말까지 한다니!

‘진짜  넘어 산이군. 이젠 말도 한다고? 이러다가 진짜로 아지다하카 놈도 말하는 거 아냐?’

이 부분이 희란을 쫓은 게 우연히 마주쳐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결정적인 근거였다. 놈은 본능에 잡아먹히지 않고 자신의 판단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기습을 한 대 얻어맞고 후퇴를 택하고, 말을 할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 때  방법이 먹힐까? 씨발 그 때도  고생을 했었는데...’


‘마녀’는  현이 단독으로 사냥한 네임드 몹 중에서도, 가진 화력이 아니라 상대하는  자체가 까다로워서 애를 먹인 대표적인 예 중 하나였다.

일반적인 상태에서는 물리적인 타격이고 마법이고 전부 씹어버린다. 거기에 엄청난 기동성까지. 공격력과 재생력으로 밀어붙이는 류 현에게는 끔찍할 정도로 짜증나는 상대.


‘마녀’와 다시 붙느니 차라리  싸움에 오른쪽 팔다리와 왼쪽 팔, 오른쪽 눈, 심장을 뭉개버리며 자신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붙였던 화룡과 리매치를 택할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이었다.

‘‘마녀’와 ‘업화의 아이들’을 동시에 치는  불가능하다. 내가  명 있어도 그렇게 상대해서는 안 돼. 팀을 나눠서 각개격파 해야 하는데...’

도무지 견적이 나오질 않았다. 전생에서는 ‘마녀’에게 칼리프 클랜과 그 근처 플레이어들이 갈려나간 덕에 정보를 꽤 모을  있었다. ‘업화의 아이들’도 출현 지역 플레이어과의 싸움으로 정보를 모을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바로 그들을 습격해 왔으니 그런 행운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였다.

화련이 ‘마녀’를 타격했다는 희소식도 있었지만, 상대해야할 게 ‘마녀’만 있는  아니었으니까.

‘전생 정보만 믿고 들이박을 수도 없고.’


3차 ‘대소환’은 이상하리만치 진전이 느리고, 네임드 몹들은 그걸 보충이라도 하는 것처럼 전생보다 강한 상태로 최소 두 개체씩 튀어나온다. 전생의 정보는 이제 거의 무의미해진 수준. ‘진짜 돌겠군.’

“...현, 류 현?”
“예? 예에. 아, 죄송합니다. 잠깐 생각하느라.”
“아니 뭐 사과할  없고. 궁금한 게 하나 있어서.”
“뭐가 궁금하길래 그러십니까?”
“‘마녀’ 네가 잡았다면서. 그 괴물 어떻게 잡은 거야? 들어보니까 련이랑 팀 짜기도 전인  같던데. 텔레포트 방해할 때처럼  거야?”
“그런 걸로는 택도 없을 걸요. 아까도 내가 그랬었잖아요. 쉽게 설명하려고 그렇게 말한 거지 진짜로 연속해서 텔레포트 하고 있는 상태는 아니라고. 진짜 마스터는 어떻게 잡은 거에요?”


 여자의 묘하게 기대감 섞인 눈빛에 류 현은 두 손을 슬쩍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솔직히 이번에도 먹힐 지는 의문입니다만.”

‘그래도 해 봐야겠지.’ 류 현은 결심을 굳혔다.

하지만 그런 류 현의 결심이 섞인 일화를 듣던 화련과 승하의 기대감이 어처구니없음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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