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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7화 〉탐식마(貪食魔) (207/429)



〈 207화 〉탐식마(貪食魔)

처음은 이마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 지울 수 없는 흉이 남았을 법한, 이마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커다란 상처가 불과 이주전만해도 존재했었다.


지금은 아니었다.


허리가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큰 외상을 입고, 내상에, 마력고갈까지 겹쳤다지만 피부조직이 좀 파헤쳐진 상처를 류 현의 재생력이 고치지 못할 리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세아의 손끝은 그 상처를 직접 눈으로  것처럼 정확하게 짚어나갔다. 류 현은  손길에 이미 완치된 상처가 다시 벌어진  아닐까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절절한 기분이 전해져  리가 없었으니까. 느낌일 뿐이었지만.

그렁그렁한 눈을 하고는 입은 꾹 다문 채, 이마를 더듬고 있는 세아와 얼굴을 볼 자신이 도저히 없었던 류 현은 눈을 감는 쪽을 택했다. 불러도 아무런 대꾸도 없고, 평소와 달리 눈도 마주쳐주질 않는 누이 앞에서 그가 할  있는 일은 이런 것뿐이었다.


류세아는 그런 류 현을 보고 아무 말이 없었고, 류 현은 누이를 닦달하지 않았다. 누이의 손길이 깊게 패였던 곳에서 멈칫할 때마다 저도 흠칫하며  자리에 상처가 났었는지 되짚어보는 정도였다.

그렇다고 류 현이 아무런 의문도 없이 잠자코 세아의 손길을 받아들이고 있는  아니었다. 얌전한 건 겉으로 보이는 태도뿐이었고, 속으로는 몇 번이고 세아를 붙잡고 다그쳐 물은 후였다.


예를 들면,


‘대체 뭘로 보고 있는 거지?’ ‘마력이 또 늘었어. 이렇게 정리된  보면...마력을 다룰  있게 된 거야?’

같이 수많은 의문들이 류 현의 머릿속에서는 휘몰아치는 중이었다.


은근슬쩍 운을 띄우려고 실눈을 뜨면 맞이하게 되는 세아의 눈물 고인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있을 뿐.


‘상태를 확인해야...확인해야 하는데...’


류 현이  상태에서 해방된 건  시간이 지나고 나서의 일이었다.

***


화련은 우거지상을  채로 태블릿 피시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화면에 떠오른 글자들을 눈빛으로 찍어낼 것 같은 기세였다. 내용을 이해하는 것보다는 글자 자체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아.”


그런 화련의 손에서 태블릿 피시를 빼내간 승하는 그것을 몇 번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대체 뭔데 그렇게 심각하게 봐? 너네 욕이라도 적혀있어? 어디보자...리비아 유전 폭발 사고? 여기 땅이라도 사뒀어?”
“무슨 말이 그래요?”

화련의 말처럼 그냥 대수롭게 넘길만한 규모의 사고는 아니었다. 그냥 유전시설이 망가진 정도가 아니라 근처 마을까지 날아간 대형사고였으니까. 보름 사이에 이번이  번째로 터진 폭발사고라는 점이 기사에는 꽤나 강조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백만 단위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레이드를 성공시킨 팀의 일원이 죽을상을 쓰고 있을만한 일은 아니었다. 승하가 생각하기에는 말이다.

류 현이 말한 바에 따르면 그런 정신 나간 스펙을 가진 괴물들은 앞으로 계속해서 나타날 테니까.

승하는 안타까운 기사지만 백단위의 인명피해가 터진 사고를 신경 쓰는 것보다는, 이미 한  ‘네임드 몹’을 사냥한 성과를  팀의 일원으로서 컨디션 관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화련의 표정도 그리 침통해 하는 얼굴이 아니라는 점이 그녀를 더욱 부추겼다.


“아니, 접점이 전혀 없잖아? 그렇다고 딱히 안타까워서 그렇게 노려보고 있었던 거 같지도 않고.”

화련은 승하를 뚱한 얼굴로 올려다보다가 태블릿 피시를 잡아채었다. 그리곤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심심하면 혜라한테 놀아달라고 해요. 괜히 정신 사납게 굴지 말고.”
“에이, 또 괜히 틱틱 거린다. 너네 요즘 상태 이상한 거 류 현 때문이잖아?”

그러나 승하는 전혀 개의치 않고 화련의 옆자리에 내려앉았다. 냉랭함을 가장하여 승하를 쫓아내는데 실패한 화련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뭘 어쩌게요. 저 상황이 제 삼자가 끼어들만한 상황도 아닌데.”
“끼어든다고는  했는데. 애초에 난 무슨 상황인지도 정확하게 모르는데 어떻게 그래? 희란이랑 네가 귀국하고 나서 계속 죽상 안 쓰고 다녔으면 류 현이 그냥 누나한테  많이 혼났구나 하고 넘겼을 걸.”


화련은 다시금  숨을 푹 내쉬었다. 희란이야 표정관리와는 거리가  사람이니 그렇다고 쳐도 자신도 티를 내고 있었을 줄이야.


‘마스터가 왜 이전 생에서 의도적으로 거리 벌렸다는 건지 알 것도 같네. 일본에서도 그렇고...진짜 희란이 걱정할 처지가 아닐지도.’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제 삼자가 끼어들 상황 아니에요. 가정사인데다가,   들었잖아요? 세아 언니가 마스터가 겪은 이전 생에서 어떻게 됐는지. 우리라고 좋아서 죽상만 쓰고 있겠어요? 괜히 건드렸다가 마스터 멘탈에...”
“아니 너 날 대체 어떻게 보는 거야? 나도 끼어들 생각 없거든? 내가 뭐라고 남의 가정사에 끼어들겠어. 류 현 평소 하는 것만 봐도 섣부르게 누나얘긴 안 되는 뻔히 보일 정도인데.”
“그럼  어쩌려고요?”
“어떻게 된 건지 자초지종을 알아야 이후에 커버하는 것도 쉽지 않겠냐는 거지. 류 현네 누나랑 너희 둘이야 언니 동생 하고 지내는 사이지만 난 너희한테 건너들은 거 말고는 쌩판 남이잖아?”
“커버라니 그게 무슨 세아 언니는 환자...”
“그냥 환자가 아니잖아? 혼자서 네임드 몹을 씹어 먹는 동생을 둔 누나지. 그리고 동생이 그런 괴물인 걸 전혀 모르고 있고. 대충 상황 돌아가는  보니까 이번에 류 현이 그저 그런 플레이어가 아닌 것도 알게 된  같은데. 맞지?”


승하의 물음에 화련은 다시금 한 숨을 몰아쉬었다. 일본에서의 네임드 몹 사냥이 끝난 직후, 그러니까 류 현이 혼수상태에 들어가고 나흘째에  연락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현의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숫자가 병원 연락처라는 것을 알고 저도 모르게 받긴 했는데, 화련이 뭔가를 말할 것도 없는 연락이었다. 세아가 시력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임에도 정상인과 다름없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처음에는 법적 보호자가 아닌 자신에게 사정을 술술 부는 간호사가 약이라도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이어지는 세아의 영상통화를 통해서 간호사의 말이 사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아는 영상통화 중에 시선을 맞추진 못했지만 화련이 병실에 쳐놓은 결계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복도에 나와 있는 환자들의 성별을 맞추는 등 보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몇 개나 말했다.

단, 색깔은 거의 구분해내지 못했다. 색 차이는 인지하고 있는 듯했으나, 무슨 색깔인지는 말하지 못한 것이다. 종이에 글자가 쓰인 것은 읽을 수 있었지만, 그 종이가 무슨 색인지는 알지 못했다. 세아가 마지막에 덧붙인 부분이 그거였다.

시력이 회복된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보인다’고. 류 현이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보다 보이는 정도가 훨씬 강해져서, 색깔 구분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만 빼면 시력을 잃기 전보다   보일 정도라고 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도 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다른 시각을 통해서 동생에 대한 이야기도 보았다고 말이다. 화련은 이 부분에서 자신이 낭떠러지 앞으로 떠밀린 기분이 들었다. 류 현의 당부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간호사와 간병인들에게 저주를 퍼부으면서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현을 변호하려고 했으나 별 의미 없는 노력이었다.

세아는 열 마디 말 대신, 일본에 내려앉은 네임드 몹 세 마리와 류 현이 격돌하려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 들어가 있는 기사를 내보였다. 기사 최하단부의 ‘류 현 원정대장은 사냥이 끝난  사흘 째 의식불명 상태.’라는 문장을 강조표시 해놓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된 화련에게 세아는 다그치는 대신 부탁을 했다.

‘적어도 현이가 귀국할 수 있게 될 때까지는 말하지 않아줬으면 좋겠어요. 안 보이던 게 보이니 조금 당황스럽긴 하지만 몸에  문제가 생긴  아니니까.’

화련은 그러겠노라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그게 최선이었으니까. 이후 화련은 세아의 연락책 역할을 전담해야만 했다. 세아는 미안해하면서도 하루에  번 류 현의 상태를 물어왔고, 그 과정에서 희란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계속 숨길 생각은 아니었다. 세아가 말했던 대로 류 현이 귀국할  있을 정도로 몸을 추스르고 나면 말할 생각이었다. 그 동안에 자신도 몸을 좀 추스르고 말이다. 말은 안했지만 그녀들도 만만치 않게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일본 기자들이 병원으로 비집고 들어오고, 그걸 이유로 류 현이 호위 병력까지 불러서 귀국을 서두를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류 현이 멀쩡하게 거동할  있게  세아와 마주하게 되었고,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류 현은 거의  시간째 세아와 병실에서 꼼짝 않고 있고, 사정을 알고 있는 희란과 자신은 죽상을 쓰고 면담 결과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해두지만, 제 삼자가 참견할 만한 일이 아니에요. 알겠죠? 어디까지나...”
“알아, 알아. 원래 나도 상관할 생각은 없었어. 솔직히 내가 일반인이랑 알고 지내서 좋은 영향 끼치는 부류는 아니잖아? 그래서 만날 생각도 없었어. 회귀 이야기 듣기 전까진. 근데 이미 들어버렸잖아.  때 말하는 거 대충 들어봐도 누나한테 또 무슨 일 생기면 눈 뒤집어질 거 같은데 전후 사정을  알아야 힘을 보태주든, 뻥을 쳐주든 하지.”
“...언니는 뻥쳐서  키우는 부류 같은데요. 거짓말  할  같지도 않고.”
“에이, 그러지 말고. 응?”

슬쩍 어깨동무를 걸어오는 승하의 넉살에 화련은  숨을 내쉬려다가, 벌써 세 번째라는 것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괜히 일 키우는  아닌가 몰라.”

화련은 결국 세 번째 한 숨을 내쉬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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