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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5화 〉탐식마(貪食魔) (205/429)



〈 205화 〉탐식마(貪食魔)

 후로 희란은 거의 반시간 가까이 제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일행은 그녀가 내뱉은  열 마디 중에서 한 두 마디도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 화련이 없었다면 한 두 마디도 이해하지 못하였다고 했어야 했을 터. 희란과 연계해서 게이트나 텔레포트에 대해서 연구했었던 화련이 있으니 이렇게라도 건질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상 늘어놓을 말이 떨어진 희란은 류 현의 눈치를 살폈으나, 희란의 걱정과 달리  현은 실망감 같은 건 느끼지 않았다.


‘만약 전생에서도 ‘링커’와 이렇게 일찍 만났다면...뭔가 더 알아냈을 수도 있겠네. 아니지, 희란 씨랑 ‘링커’가 동일 인물이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이건 좀 아닌가.’


아쉬움이 아주 없진 않았으나, 실망감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희란의 능력에 감탄할 뿐.

‘이미 ‘링커’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건 별 의미 없어지긴 했지만...이정도 일 줄은. 설명을 제대로 못하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화련이 옆에서 열심히 부연 설명했음에도 이정도이니 희란이 완벽하게 이해하기 전에는 제대로  설명을 요구하는 것은 힘들어보였다. ‘애초에 그런  기대하고 인선에 포함시킨  아니니까...뭘 더 요구하는 건 억지지.’

대충 생각이 정리되자  현은 희란에게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류 현과 시선이 맞은 희란이 흠칫하며 상체를 뒤로 빼었다. ‘이러는 것만 봐도 동일인이라고 생각하긴  그렇지.’


류 현은 혼자 그렇게 대충 결론을 내리고는 입을 떼었다.


“음,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만. 희란 씨랑 화련 씨가 열심히 설명해 주셔도 저희 둘이 이해하기는  어렵군요.”
“야, 나까지 왜 같이 끌고 들어가?”
“그럼 승하 씨는  이해하셨습니까? 전 공간의 유리에서부터 알아들은 게 없는데, 그럼 설명 좀 해주시죠.”
“아니 듣기가 좀 그렇다는 거지...그래, 나도 하나도 이해 못했다! 됐어?”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십니까.”


그리 말하며 류 현이 귀를 후비적거리자 승하가 눈을 흘겼으나, 류 현은 못 본채 했다. 류 현은 승하보다는 아직까지 눈치를 살피며 불안해하고 있는 희란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캐물어 놓고 이렇게 말하긴  그렇지만...지금 단계에서는 별 의미 없는 질문이었군요. 하긴,  스스로도 제대로 능력의 정체를 파악 못한 판국에 희란 씨께 답을 요구한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요.”
“그, 그렇지 않아요. 누구라도 마스터랑 같은 상황에 놓이면 똑같을 거에요. 저만해도...”
“뭐, 저만 해도 희란이나 마스터 정도는 아니어도 헷갈릴 때는 누구라도 붙잡고 확답을 듣고 싶을 정도니까요. 처음으로 제대로 대화했을 때 ‘네 능력의 정체를 알고 있다!’했던 사람은 사실 알고 있는 것도 그다지 없고.”
“...죄송합니다.”

화련이 눈을 흘기거나 하지 않았음에도, 도둑이 제 발 저리더라고  현은 거의 반사적으로 사과했다. 그로서는 드물게도 위가 바늘로 찔리는 느낌마저 들었지만, 자신이 미래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납득시키기 위해서 식은땀 빼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편했다. ‘미친놈 취급  하는 것만 해도 어디야.’

속마음까지야 지금  자리에서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류 현은 현 상황정도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그의 팀원들에게서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신뢰받고 있다는 걸 확인한 셈이었으니까.

화련은 예전일을 탓할 생각은 없는 지 더는 말이 없었다.  현은 화련의 기색을 슬쩍 살핀 후,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펴보이며 말했다.

“정리하면 제가 이해한 부분은 두 가지 정도군요. 제가 다루는 검은 안개. 그러니까, 에너지 드레인과 그걸 움직이는  내부의 마력성질이 전혀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 외에 에너지 드레인의 발동 없이도 주변의 장악하는 성격의 제 3의 마력이 있다. 맞습니까?”
“그게...제가 볼 때는 내부 마력이랑 외부를 장악하는 마력이랑 본질적인 차이는 없...아, 이건 제 사견이라서요. 근거라고 할 만한 건 제...”


그 뒤로 더듬더듬 뭐라고 웅얼거리긴 했지만 류 현의 귀가 아무리 좋아도 사람의 말이라고 하기 힘든 것을 알아들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딱히 신경 쓰이는  아니라서 캐물을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아무리 희란이라도 이렇게 얼버무리려고 하진 않을 테니까.

‘확인을 해보고 싶어도 지금 당장은 힘들지. 이 상태면.’

류 현은 몸 상태를 슬쩍 확인해보곤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희란이 마력을 건네준 덕택에 이렇게 앉아있긴 했지만, 정신을 잃고 대체 뭘 했는지 궁금할 정도로 몸 안이 엉망진창이었다.

‘‘강림’을 썼다지만 들은 바로는 지속 시간은 10분도   돼. 그런데 이렇게 소모가 심하다니...’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마력이 바닥나버린 것이다. 이전 생에서 몇 번이고 ‘강림’을 써온 류 현조차 드문 경험.

‘직전에 데스 나이트에게 입은 부상이 꽤 크긴 했지만 이렇게 바닥날 정도는 아니었어.’


그녀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강림’상태였던 걸로 추측되는 이상상태는 채 5분이 될까 말까한 수준으로 그쳤었다. 전투의 밀도 차이라는 변수를 집어넣어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였다.

8성 리치에게  다른 비장의 수가 있었고, 그로인해서 전투가 격화되었다면...


‘이 세 사람이 이렇게 멀쩡할 수는 없지. 으음...멀쩡하다는 건  아닌가.’

슬쩍 봐도 건강이 우려되는 짙은 다크써클을 달고 있는 두 여자의 얼굴을 보고 금세 말을 바꿨으나, 생각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화룡 때도  정도까지는 아니었지. 정확하게 측정은 못했지만  때는 ‘강림’을 최소 세 시간 이상 유지했었어. 아지다하카를 상대한 것도 아닌데 10분은커녕, 5분도 될까 말까한 시간동안 마력이 동이 났다는 건 이상해.’

문제는 목격담으로는 추측은 고사하고, 혼란만 더 가중되고 있다는 것.

‘만일 ‘강림’에  변화가 생긴 거라면 골치 아픈데...3차 ‘대소환’이 시작됐으니 던전 클리어하고 사이사이에 휴식기를 넣기도 벅차. 거기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전처럼 ‘강림’수련에 승하를 동원할 수도 없고.’

“...야! 너! ...코!”
“예...?”


생각에 잠겨있던  현은 승하가 손가락질 하며 소리를 지르자 선잠에서  것처럼 허둥거리다가 코 근처를 손으로 더듬었다. 살짝 검은빛을 띈 피가 코를 훔친 손에 묻어났다.


‘뭐야 그냥 코피잖...어?’

별  아닌 걸로 호들갑을 떤다며 승하를 타박하려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시야가 가장자리부터 일그러지며 머리가 핑 돌았다. 그와 동시에  몸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현은 제 시야가 갑자기 위로 훅 솟구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했다.

상체만 일으키고 있었던 류 현은 침대턱이 뒤통수를 호되게 부딪쳤지만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했다. 정말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했다.


“어어? 류 현?”
“마스터?”
“너, 너스콜 버튼이...”

고개를 돌릴 수조차 없었기에 류 현은 세 여자가 혼란상태에 빠졌음을 목소리로만 눈치 채야만 했다. 진정하라고 무슨 말이라도 꺼내려고 했으나,  또한 불가능했다. 입술을 달싹거리긴커녕, 입술이  자리에 붙어있는 지조차 알 수 없을 지경이었으니까.  현은 그대로 눈꺼풀의 통제권까지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까무룩 잠들었다.


***


“뭐, 무리는 아니죠. 섬이 해방된 지 하루 이틀 지난 것도 아니고, 사체가 작은 것도 아니고 그렇게 크니까 말이죠. 훼손부위를 보고 이상한 기사가  난 걸로 만족해야죠.”
“이렇게 말씀해주시니 마음이 좀 놓이는군요. 병원 밖에서 하도 이상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와서...조금 걱정했었습니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어떻게 되든 간에 크게 손해  건 없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사체를 얻는  성공하면 공을 추켜세우는 쪽으로, 얻지 못하면 정부가 무능하다고 성토하는 쪽으로 기사를 내면 그만이니. 그쪽에서 뭐라고 하던 간에 신경 쓰는  이쪽 손해죠. 유럽일도 있었고요.”

류 현은 픽 웃는 채 하며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류 현의 태도에 안심했는지, 침대 옆에 자리를 잡고 있던 웨인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이전 생에서의 경험 때문에 약간의 노선 변화정도는 있었지만 언론에 대한  현의 태도에는 별 변화가 없었다. 무릎 위에 놓은 신문 다발에 찍혀있는 기사들의 꼴로 봐서는 이번 생의 끝에 달해도 그리 크게 달라질  같지는 않았다.


‘대체 뭔 생각을 하면 기여도도 없는 괴수 사체를 탐내도 된다고 할 수 있는 건지.’


무릎 위에 올려져있는 신문들의 일면에는 졸지에 무인도가 되어버린 시모시마 섬에 방치되어 있는 본 드래곤의 사체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정확히는 일본에서 사냥당한 본 드래곤의 사체에 대한 분배권을 주장하기 위한 각종 근거들로 가득했다.

상위 괴수가 출몰한 나라의 원정대가 아니라, 원정을 위해서 입국해있던 원정대가 사냥했을 시에 해당 나라의 요청에 따라서 사체의 일정 비율을 매각하는 정말 흔치 않은 사례부터 속지주의까지 끌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정말 드물게도 시모시마 섬 상륙 당시 같이 진입했던 ‘인형사’와 그녀를 중심으로 한 일본 원정대의 참여를 기반으로 통상 배분율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류 현으로서는 어이없는 일이었다.  팀을 데리고 들어간  류 현이 딱히 원해서 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인간 바리케이드로 잠깐 써먹긴 했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없어도 되었을 도움이었다. ‘강림’을 발현시킨 후의 상황 증언들을 보면 더욱 그랬다.


그렇다고 화가 나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웨인에게 말했듯이 이런 건 일일이 화내는 쪽이 손해 보는 거니까.


‘욕심이야 당연히 나겠지. 유럽 놈들이 그렇게 난리를 쳐댔었으니까.’

검은 리치성 공략 이후, 유럽 측은 분배받은 망가진 라이프 배슬 연구로 재미를 굉장히 많이 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류 현이 태양그룹에 넘긴 마나포션의 뒤를 잇는 새로운 마나포션을 개발하였고, 기존의 아티펙트 생산에도 꽤나  영향을 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얼마나 재미가 좋았으면 자신들과 별 상관없는 본 드래곤 공략에 관심을 기울일 정도였다.

‘문제는 정부 측에서도 언론이 찔러보는 거에 슬쩍 편승하고 있다는 건데. 거참, 정치꾼들 일이  이런 거라지만 태세변환이 너무 빠르잖아. 어차피 안, 아니 못 주지만.’


그러니 시모시마 섬 돌입 직전만 해도 간이고 쓸개고 전부 빼줄 것 같이 굴던 일본 정부의 태세변환이 이해 못할 건 아니었다. 어디를 가도 비슷한 반응이 튀어나올 것이다. 당하는 입장에서 어이 없는  변함없었지만 굳이 뭐라고 대응할 생각은 없었다.


‘이 정도야 뭐 애교 수준이지. 유럽 여론도 이거랑 크게 다르진 않았고. 직접 헛짓거리 안 하는 이상에야...신경 써봐야 내 손해지.’


류 현은 신문 다발을 척척 쌓아서 바닥으로 옆으로 밀어두었다. 예상한 것과 별 다를 것 없는 반응까지 확인했으니, 여기에 신경을 할애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런데 미국에서 호위의사를 타진한 건 좀 의외군요. 들어보면 딱히 대가를 요구하는 것 같지도 않고요. 협회 측에서 제시한 조건도 거부했다고 하셨지요?”
“예, 무슨 바람이  건지 던컨 대통령이 핫라인으로 윈스턴 경에게 요청했다고 하더군요. 협회에서 저희 팀을 호위할 병력을 보내긴 불편할 테니, 필요하면 일본의 동맹국인 미국 측에서 보내주겠다고요. 이번 사태에서 얻은 사체를 원하는 게 아닌 가 싶어서 보유 중인 라이프 배슬을 대가로 지불하겠다고 했었습니다만...거절했다더군요.”
“천공성 일도 있으니 어떻게든 확보해두고 싶어 해야 정상인데 거참...”

웨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으려다가 목덜미에 드리운 서늘한 한기에 어깨를 떨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자, 승하가 째진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웨인이 돌아보자 아무것도 없는  손목을 톡톡 두드려 보이기까지 했다.

지난 일주일 간  번이고 봤던 제스처였기에 웨인은 의미를 단박에 이해했다. 벌써  시간을 채운 모양. 웨인은 순식간에 표정을 정리하고는, 옷소매를 슬쩍 걷어 손목시계를 보는 채하며 말했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요.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군요.”
“오늘은 컨디션이 좋은 편이라 좀 더 계셔도 될...”
“류 현.”


엉덩이를 들어 올린 웨인을 붙잡으려던 류 현은 자신의 부르는 목소리와 함께 웨인이 느꼈던 한기를 똑같이 느꼈다. 웨인은 류 현이 멈칫한 동안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 작별의 말을 몇 마디 내뱉고는 순식간에 병실문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졸지에 버려진 것 같은 신세가 된 류 현은 뻣뻣한 동작으로 목소리의 주인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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