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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화 〉탐식마(貪食魔) (194/429)



〈 194화 〉탐식마(貪食魔)

흥분해서 달려드는 척 했지만 류 현의 머리는 맹렬하게 회전 중이었다. 호흡기까지 파고든 독 때문에 전투태세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핑 돌았지만, 그는 거듭 자문했다.

‘대체 왜? 7성급 마법이면 위력은 충분하긴 하겠지만...8성 리치라도 그것까지 완벽하게 다룰 여유가 있나? 그리고 하나 남은 7성 리치는 대체 어디 간 거야?  안개랑 불꽃 채찍은 지중해에 있었던 그놈 기술인데...’


후웅! 후웅! 화르르륵! 엘더 리치의 오른손 검지 뼈에서 불꽃 채찍이 치솟았다. 엘더 리치가 방금 전 겪었던 고통의 보람도 없이 그대로 맹렬하게 휘두르는가 싶더니, 도중에 마법을 해체해버리자 불꽃 채찍이 무너지며  현을 덮쳐들었다. 엘더 리치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다시금 불꽃 채찍을 뽑아내더니, 그 길이가 반절까지 자라나기도 전에 그 행동을 반복했다.

‘미친, 이 새끼 마력이 얼마나 남아도는 거야? 이미  일대 장악 끝난 거 아냐?’


불로 이루어진 뱀이 덮쳐드는 듯한 광경에  현은 겁먹거나 놀라기 보다는 황당해 했다. 저 안에 때려 박힌 마력의 단위수가 눈에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속형 마법을 발현하자마자 저렇게 쓸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젠장, 페이스 배분해야 하는데.’

그리 생각하면서도 류 현은 이를 악물었다. 이미 끌어올린 마력들이 주변에서 형태를 갖추고 흐느적거리고 있었으나, 그것을 움직이는 데 들어가는 심력소모가 보통이 아니었다. 검은 안개가  현의 의지에 호응해서 천천히 머리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화르륵! 쿠우우- 뻐벙! 무너지던 불꽃 채찍과의 거리가 한 뼘 가량 남았을 때,  현의 머리주변으로 모여들었던 검은 안개가 폭발했다. 불꽃의 파도를 말 그대로 찢어발긴 검은 안개는 목줄이 풀린 맹수마냥 미쳐 날뛰었다.

후와악! [크아아!] 검은 안개에 아직 닿지도 않았음에도 엘더 리치가 발악하는 소리를 내며 뒤로 훌쩍 물러났다. 남극에서의 기억 때문에 바로 텔레포트를 시도하진 못했다. 류 현이 노린 곳도 영 다른 곳이었다.


치지직! 검은 안개가 들러붙은  엘더 리치의 몸 주변에서 흐늘거리던 무지갯빛 촉수 같은 것이었다. 그곳을 공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잠깐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던 엘더 리치가 뒤늦게 몸을 뒤채었다.

[크흐아아아!] 통증을 느낄 수 있는 신경계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타는 듯한 통증이 엘더 리치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엘더 리치는 통증 뒤에 도사리고 있는 진짜 위협에 질겁하여 촉수다발을 제 손으로 끊어내었다. 그것도 상당히 늦은 대처라, 옮아 붙은 검은 안개가 리치의 손가락뼈를 갉아대었다.

엘더 리치는 고통 속에서  부분을 깎아내는 것으로 대처했다. 마음 같아선 잘라내고 싶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반지를 빼는  소멸을 자청하는 것과 다름없으니 다른 대처를 하기에는 여의치 않았다.

‘멍청한 새끼. 남극에서 그 꼴을 봐놓고, 날 봤는데 연결을  끊어?’


엘더 리치가 고통에 비틀거리던 그 순간은 달려들 절호의 기회였지만 류 현은 숨을 몇  고르는 것으로 그 시간을 소비했다.


‘저 새끼 하나만 잡고 끝날 일이 아니야. 천천히, 차분하게.’ 그건 이번 사냥을 계획하면서  현이 정한 컨셉이었다. 남극에서 내상이 제대로 터지고, 그 일로 당혹스러운 경험을 했던 류 현은 페이스를 달리 가져가는 걸 고려해야만 했다.

네임드 몹의 수준이 오른 것도 꽤 영향을 끼쳤지만, 검성이라는 도무지 전생에서 어떻게 죽은 건지 신기할 정도로 최근에 미친 재능을 뽐내고 있는 친구 덕에 자신까지 경지가 반 강제로 끌어올려졌기 때문이었다.

승하가 칼질 하는 걸 보고 자신의 능력이 왜 반응했는지 스스로 궁금할 지경이었으나, 그에게 주어진 숙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발동시켰다 하면 내상이 터지는 ‘강림’이나,  이상으로 경지가 올라버린 ‘에너지 드레인’은 정말 죽을 각오로 능력을 운용했던, 전성기 마지막 싸움을 치르던 당시의 자신도 다룰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남극에서 저 놈 쥐어   뭔가 머릿속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감각도 그렇고,  쓰기  그렇단 말이야...방금 마력 빨아들인 것도 그렇고.’


방금  류 현이 검은 안개로 갉아댄 촉수 같은 건 보이는 형태와는 달리 실제로는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 일종의 마법식이었다. 주변의 마력을 장악하고, 땅 자체를 언데드의 땅으로 바꿔버리는 마법식.


 현조차 전생에서 딱 한 번 봤었던, 장악이 끝나고 나면 나라 하나 정도는 우습게 갈아버릴 수 있는, 실제로 전생에서 일본을 결딴내놓은 것도 이거였다.

‘근데 진짜 무슨 속셈이지? 침투를 그만 안 두는  그렇다고 쳐도,  부하가 가지고 있던 마법은 왜 쓰는 거야?’


마법사가 주력으로 다룰  있는 마법의 숫자는 한정되어있다. 마법 자체에 대한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저런 마법을 마구 쓰다가 혼선을 빚을  있기 때문에 생기는 한계였다. 여러 가지 변화구를 한 이닝에 마구 섞어 쓰던 투수가 혼자 혼선을 빚어서 이도저도 아닌 변화구를 던지다가 자멸하는 것과 같은 경우였다.

인간 마법사보다 한 단계에서 두 단계 위라고 평가받곤 하는 리치들조차 마법의 종류가 반지와 뼈 속의 결정 개수로 한정된다. 뼈 속의 결정의 경우에도 반지라인업과 아주 다른 마법을 가지진 못했다. 한참 하위의 다른 종류인 마법이라면 또 모를까.

마법사들은 그것을 보고 리치들마저 그런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들 하였지만,  현은 보다 확실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리치들의 장악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7성 리치와 6성 리치를 동시에 사냥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전투 중에 한쪽 손이 잘려나간 7성 리치가 먼저 소멸당한 6성 리치의 반지를 남은 손에 끼더니 자멸해버린 일이었다. 6성 리치의 반지에서 터져 나온 마력과 사기에 잡아먹히던 그 모습은, 그 전에 동급의 리치의 반지를 끼고 저항하던 5성 리치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그 차이에 대해서 고민했던  현은 한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전자는 반지를 낀 손만 떨어져나간 상태였고, 후자의 5성 리치는 반지 세 개가 파괴된 상태였다는 거였다.

‘장악력이 그렇게 넘쳐나면 반지를 더 만드는 게 정상 아닌가? 대체  이런 식으로 화력 낭비를...그리고 반지도 없는데 어떻게 그놈 마법을 쓰는 거지?’

잠깐이나마 ‘강림’을 억누르니  돌던 머리가 그나마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남극에서 승하가 머리통 딴 7성 리치쪽 반지인가? 그놈  안에 지니고 있는 걸 수도 있겠네. 그럼 반지만 열다섯이야? 젠장, 대체 어떻게 되먹은 게 과거 지식은 먹히는 게...’


퍼억! 달구어진 부젓가락이 옆구리를 쑤시는  같은 통증에  현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엘더 리치는 방금 전까지 허둥지둥했던 것이 연기였던 양, 여유 만만한 태도로 손가락을 겨누고 있었다.


류 현은 연달아 같은 곳이 찢어져서인지, 약간 흘러나온 장을 손으로 쑤셔 넣었다.  안개나 연이은 폭발 때문에 저쪽에 보이지 않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였다면 아마 또 난리가 났을 것이다. 야구공만한 크기의 상처가 물이 차오르는 것처럼 순식간에 아물었다.

‘방금 그건 뭐였지. 발동 전조 같은  염동력 비슷한 느낌이었는데...이건 자기 반지 마법인가?’

염동력 같은 단순한 힘으로는 류 현의 항마력을 뚫고 이렇게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없다. 류 현이 전생에서 수차례 확인한 사실이었다. 네임드 몹 중에서 염동력을 주력까지는 아니어도 꽤 다루는 놈들은 많았으나,  어떤 놈도 염동력으로는 류 현의 몸뚱이를 뚫지 못했다. 아지다하카 마저 말이다.

다른 가능성을 틀어막는 전제를 깔고 생각하는 건 좋지 않은 버릇이긴 하나,  현은  문제로 골머리를 썩일 생각은 없었다. 발동 전조가 조용한  염동력을 닮긴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일으킨 염동력이 소규모일 때 이야기였다.

‘뭔지 모르지만 같은 마법에 반복해서 이렇게 당하는  오랜만이네. 설마 감추고 있는 반지가  저런 수준인건가? 젠장, 그건 좀 곤란한데.’

류 현이 추가타를 얻어맞기 전에 놈의 품안으로 뛰어들기 위해서 잔뜩 웅크렸을 때였다.

슈슉! 류 현이 멈춰있는 동안 텔레포트 준비에 힘을  것인지, 놈의 몸뚱이가 노이즈와 함께 천천히 허공에 녹아 사라지려고 했으나,


투웅! [?!] 반쯤 투명화 되었던 놈의 몸은 공간을 뛰어넘지 못하고 튕겨져 나왔다. 류 현에게 붙잡히기 직전에 10미터 거리를 뛰어넘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반응. 당황한 엘더 리치가 주변을 휙휙 돌아봤지만, 추측거리는 보이지 않았다.


주변 빌딩에서 화련이 공간 왜곡장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전투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엘더 리치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방금 걸로 화련이 코피를 왕창 쏟았다는 사실 또한.


“니 주특기가 도망이라는 걸 알았는데 대비를  했겠냐!”

엘더 리치가 볼 수 있는 건 이젠 머리까지 시커먼 안개에 휩싸인 류 현이 달려드는 모습 뿐이었다.


***

콰르릉! 벽력이 하늘을 찢으며  드래곤, 타칼란을 후려쳤다. 몇 번을 보아도 적응이 되질 않는 창백한 번개의 위용에 웨인 크로이츠는 잠깐 움찔하였으나,

뻐어억! 금세 평정을 되찾고 있는 힘껏 망치를 휘둘렀다. 본 드래곤의 대가리가 그대로 땅바닥에  박혔다. 류 현이 X던전에서 골렘을 박살낼 때 썼던 망치에 가까운 크기를 가지고 있는 그것은, 당장이라도 망치머리가 녹아내릴 것처럼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드래곤의 쉴드와 항마력, 그리고 웨인이 팔이 터져라 밀어 넣고 있는 마력이 맞부딪힌 결과였다.

쿠르르! 투드득- [크르르-]  드래곤은 거의 바로 땅에 쳐 박았던 대가리를 치켜들었지만,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거듭된 타격으로 본 드래곤의 두개골은 실금과 당장 떨어져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골절들로 뒤덮여 있었다. 전투 초반에 두개골을 반으로 가르는 골절도 몇 번 회복한 것을 감안하면, 근성의 승리라고 할 만했다.


“후욱, 후욱.”

제 수십 배에 달하는  드래곤을 여기까지 밀어붙이느라 웨인 또한 체력이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마력은 ‘연결’ 때문에 질릴 정도로 빠졌다가 채워지길 반복했지만, 등허리 근육이 뻣뻣해지고 손아귀 힘이 점점 줄어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희란의 청뢰 지원사격이 있긴 했지만, 희란도 페이스 배분을 하느라 호주에서 같이 있는 대로 화력을 쏟아 붓지는 못했다. 그나마 전투 초반에 웨인이 꽂아놓은 ‘송곳’ 덕택에 화력이 극대화돼서

‘그럭저럭 흉내는  편이려나...그래도   쓰고 버려야 한다니 좀 아까운데.’


웨인은 망치 머리를 슬쩍 뒤로 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벌겋게 달아오른 망치 머리 부분은 이번 전투에서 녹거나, 깨지지 않더라도 다음을 기약하긴 어려워보였다. 웨인은 그 점이 못 내 아쉬웠다.


‘하긴 그런 전투를 두 번이나 견뎠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건가.’

이 망치는 X던전의 전투에서 류 현이 요긴하게 써먹은 것을 약간의 보강을 거친  웨인의 손에 들어온 것이었다. X던전의 골렘이나, 눈앞에 있는 본 드래곤의 쉴드 강도나 항마력을 생각하면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게 용할 지경.


류 현은 웨인에게 망치를 건네준 후에, 그가 X던전에서의 자신의 전투법을 흡수하는 속도를 보고 놀라워했지만, 웨인은 이 망치의 강도나 탄성에 놀랐다. 전투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도 레시피를 슬쩍 물어볼 궁리를 할 정도였다.

망치에 들어간 현철 제련 과정에 류 현의 피가 다량 들어갔다는 것은 본인이 입을 열지 않는 한   없는 일이기에, 웨인은 그런 줄은 꿈에도 모른 채로 집중력을 가다듬었다.

또다시 날아오르려고 발악하는 본 드래곤을 향해서 훌쩍 뛰어오른 웨인은,

“마스터!”


화련의 찢어지는 것 같은 비명에,


후웅! 터엉! 파창!  드래곤에게 커다란 빈틈을 노출하여 꼬리에 호되게 얻어맞고 반대편 건물 벽에 쳐 박히는 꼴이 되었다. 비척비척 몸을 일으킨 웨인은 높아진 시야로 주변을 살핀 결과 화련에게 불평조차 토할 수 없게 되었다.

“류 현님?”

웨인의 시선 끝에는 오른팔과 허리가 반절 가까이 날아간, 서있는  신기할 지경인 처참한 상태의 류 현이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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