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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5화 〉탐식마(貪食魔) (175/429)



〈 175화 〉탐식마(貪食魔)

세상 사람들이 평하길, 지벡 건터는 또라이라고 했다.


그에 대해서 가장 호의적인 평가를 내놓는 이도 그를 표현하는 문장에서 또라이라는 말을 빼지 못했고, 그를 수식하는 말들에는 꼭 마지막에 또라이가 따라붙었다. 자유를 찾아 미국을 뛰쳐나온 또라이, 자기가 정의의 여신인줄 아는 또라이, 그냥 상또라이 등.


지벡 건터 스스로도 이런 또라이라는 평에 대해서 별 불만은 없었다. 자신이 막 나가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세간의 평은 사실에 기반을 둔 아주 담백한 증언에 가깝다.

물론 면전에서 그런 소리를 기분 나쁘게 지껄이는 인간이 있다면, 몸에 새길 교훈을 남겨 줄 테지만.


그리고 그런 상또라이 지벡 건터는 자신에 대한 세간을 평을 만든 수많은 또라이짓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붙여주고 있는 감에 굉장히 켕기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이번 일 촉이 별로야. 아주 좆같아. 나이지리아에서 ‘위스프’새끼들한테 폭격 맞은 뒤로 이런 느낌은 처음인데?’


지벡 건터는 또라이라는 평에 크게 일조한 항상 실실 쪼개는 표정도 집어치우고, 우거지상을 한 채로 기내를 돌아봤다. 그의 시선에 여덟 명의 플레이어들이 걸렸다. 몇몇은 아는, 꽤 오래 전에 일면식을 끝낸 이들이었고 몇몇은 이번에 처음 보는 이들이었다.


검성이라는 칭호로 더 유명한 나승하와 그녀가 데리고 온 백혜라.

감히 자신을 제치고 유럽을 대표하는 플레이어 자리를 꿰찬, 협회 대표 웨인 크로이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클랜인 칼리프 클랜의 정점이자, 칼리프라고 불리는 자파르 알 사디크의 오른팔인 알 라시드와, X던전 사태 때 혜성처럼 등장한 그의 제자 마람 압둘아지드.

그리고 그 X던전 사태를 거의 단독으로 해결했다는 평가까지 받으며, 공공연하게 최강팀으로 거론되는 정원이 달랑 셋 뿐인 용잡이 팀.


‘그 쥐톨만한 나라에서 괴물이 대체 몇 이나 나오는 거야?’

처음으로 대면한 용잡이 팀에 대한 지벡 건터의 평은 그랬다. 뜬금없이 등장한 괴물 트리오. 곧 검성에 버금가는 괴물이 될 것이라는 세간의 평이 이상하지 않은 작자들.

‘젠장, 뭘 캐낼 건덕지가 있어야 캐내든 말든 하지. 빌어먹을 스폰서놈들, 나흘 전에 밀어넣고 뭘 알아내라는 거야?’


지벡 건터가 이 작전에 참가하는 것이 확정된  닷새 전 일이다. 대책본부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 나흘 전. 또라이라는 평가를 달고 사는 지벡 건터마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더러운 타이밍.


결국 지벡 건터가 중국으로 건너와서 한 일이라고는 용잡이 팀 소속의 오희란이라는 여자에게 껄떡거린 것이 전부였다. 억지로라도 뭘 캐고 다니려면 못할 건 없지만, 지벡 건터는 그를 지원하는 스폰서들도 다 알고 있듯, 성실한 자는 아니었으니까.


팀 안에 스며드는 것이 곤란한 처지가 되었다는 것을 인지하자마자, 지벡 건터는 다른 것에 눈을 돌렸다. 팀에 합류하자마자 눈에 확 들어온 동양인 여자에게로 말이다. 정작  대상은 지벡이 말을  때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눈웃음과 함께 슬쩍 사라져버렸지만.


‘이러다가 진짜로 건지는 거 없이 돌아가게 생겼군. 아니, 다 돌아갈 수는 있으려나?’

지벡 건터는 입맛을 다시며 오른쪽 대각선 방향을 주시했다. 그곳에는 오희란이, 같은 용잡이 팀인 여자와 함께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것인지 작게 키득거리고 있었다. 지벡 건터는 그 광경을 지나쳐, 가장 앞자리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별의  또라이를 다 만나봤지만, 저 새끼가 이제 원탑이다. 원탑.’

용잡이 팀의 대장, 류 현. 그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  상태 그대로 목적지까지 갈 생각인 모양이었다. 끈끈한 전우애나, 초단위로 짜인 기계장치처럼 돌아가는 작전을 원한 건 아니었지만, 떨떠름해지는 것은 별 수 없었다. 폭격기에 몸을 싣기 전에도 류 현은 변변한 작전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말씀드렸던 대로, 제가 돌입해서 마법을 흩어놓는 걸 확인하시고 진입하시면 됩니다.’


이런 통보에 가까운 이야기만 했을 뿐. 지벡 건터는 생전 처음으로 협회의 허술함에 대해서 짜증났다. 저런 미친놈이 돌아다니게 놔두면서 왜 자신은 그렇게 죽어라 귀찮게 군단 말인가! 어디를 보나 저놈이 훨씬 더 해로운 미친놈인데!


‘미친놈 그런 걸 계획이라고!’


지벡 건터는 팀에 합류한 첫날에 들은 전술 개요랍시고, 류 현이 지껄인 개소리를 곱씹으며 얼굴을 구겼다.


‘지가 밀고 들어가면서 큰 마법은 알아서 쳐낼 테니 뒤따라서 진입하라고? 미친놈.’

그건 계획이라고  것도 없었다. 류 현이 최선두에서 리치들의 대형마법들을 받아넘기면, 뒤따라 진입한 인원들이 리치들을 밀어내며 성안으로 진입한다.


이 폭격기에 탑승한 인원 외에도 플레이어만  명이 넘게 투입되는 작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식한 계획이었다.

가장 어처구니없는 건, 지벡 건터가  말을 듣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돌아봤을 때 동감한다는 표정을 지은 이가 없다는 거였다. 중국 측 떨거지 플레이어들의 반응은 알지 못했고,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발의자 본인을 제외하고 일곱 명씩이나 되는 최상위 플레이어 중에서 그 말도  되는 황당한 계획에 반대하는 이가 없다는  다른 의미에서 충격이었다.

그렇다고 지벡 건터가 황당무계한 계획에 바로 동의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지벡 건터는  현에게 검증을 요구했고,  현은 뚱한 표정으로 응했다. 검증 방법은 매우 간단했다. 만전 상태의 거너 건터의 마법을 여섯 발을 어떻게든 견딜 것!

말이 검증이지, 류 현이라는 미치광이놈을 때려눕히고 어떻게든 말도  되는 계획 실행을 막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지벡 건터는 자신이 1:1로 절대 이길 수 없는 괴물이 검성 말고도 하나  생겼다는 불쾌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류 현은 거너 건터의 마법 여섯 발을 정면에서 버텨내었다. 아니, 지벡 건터의 마법은 하나도 류 현에게 닿지 못했다는 게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첫  발의 마법은 류 현의 항마력이 먹어치웠고, 괴수보다 더한 항마력을 보고 내쏜 나머지  발은  현의 손짓 몇 번에 허무하게 사그라들었다.

마법사답지 않게 정확하고, 빠르게 가진 기예를 쏟아 부어 괴수고, 눈이 뒤집힌 플레이어고 가리지 않고 요리해서 붙여진 거너 건터라는 별칭. 이 별칭이 무색하게  현이라는 괴물은 그가 쏟아낸 마법들을 아주 우습게 흩어버렸다. 적의조차 내보이지 않고, 파리 쫓듯이.


자존심을 잔뜩 구긴 지벡 건터는 류 현이 지껄인 그 황당한 계획에 더 이상 반발하기 어려워졌다. 그렇지 않아도 스폰서들이 억지로 자리를 만들어서 우겨넣은 터라 발언을 하기가 쉽지 않은 위치였는데, 실력적으로도 류 현의 아래라는  스스로 증명했으니까.

또라이든 뭐든 간에 플레이어 간의 관계에서는 실력이 첫 번째일 수밖에 없다. 고아한 인격이나 믿음 같은 건 괴수를 죽이는 데 별다른 도움이 안 되니까. 믿음은 괴수를 때려죽이면서 쌓으면 그만이고, 고아한 인격은 볼에  괴수의 체액을 닦아내고 그런 척을 하면 그만 아닌가. 지벡 건터 또한 지극히 플레이어다운 사고방식을 가진 또라이였다.


‘대체 저런 괴물이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작정하고 만든다고 해서 어떻게 만들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스폰서놈들은 저놈이 어느  손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던데...개소리지. 저런 괴물은 기를 수 없어. 만에 하나, 저놈을 키운 작자가 있더라도...이미 이 세상 인물이 아니겠지.’

리치성이 부유성이 되더니, 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리는 마을이고 도시고 전부 갈아버리기 시작한 지 일주일 째. 타이위안 시를 말 그대로 초토화 시켜버린 리치성은, 살육에 맛이라도 들린 것처럼 항로를 이리저리 뒤틀며 근처의 인구밀집 지역들을 죄다 갈아버렸다.


그 사이에 중국정부가 쏟아 부은 공군력이 아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쓸려나간 건 덤이었다. 따로 떨어져 있다면 5성리치 마저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화력을 리치성은 우습게 버텨내었다.

산둥 성내의 어지간한 도시는 정확한 집계 없이 대충 봐도 이재민이 더 많을 지경이었고, 베이징 시민들은 산둥 성을 초토화시키는 리치성의 진행방향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리다가 갑자기 북진하기 시작하자 혼란에 빠진 채 정부청사 문에 매달렸다.


류 현의 황당한 계획이 수용된 건, 이런 배경을  게 꽤 크게 작용했다. 적어도 지벡 건터는 그렇게 봤다.

‘지가  막아내고 뒈질 거 같으면 다른 인원은 투입하지 말고 보존하라는 것도 꽤 솔깃했겠지. 멍청한 중국놈들. 어중이떠중이들이 이 지옥에서 도망이나 칠 수 있을 거 같았나?’

지벡 건터의 입장에서는 헛웃음도 나오지 않는 얕은 계산이었다. 인간만 보면 눈이 뒤집히는 괴수가 성 진입을 위해서 가까이 접근한 놈들을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지 않은가? 거기다가 저 성 안에는 7성 리치. 얼마 전 등장했던 6성 리치의 기록을 깨는 최고위 리치가 웅크리고 있다. 이쯤되면, 이 전장에서 몸을 빼내는 것 자체가 실력보증으로 쓰여도 될 정도다.


‘뭐, 나랑은 상관없지만.’

지벡 건터는 자신과 별 상관없는 상념을 떨쳐내며, 여전히 말없이 앉아있는 류 현을 노려봤다.


‘그냥 덮어놓고 허풍 치는 거 같진 않은데...대체 무슨 수를 숨기고 있는 거지?’


 때, 영원히 덮여있을 것 같던 류 현의 눈꺼풀이 들렸다. 지벡 건터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시간이 됐군요. 먼저 내려갈 테니, 계획대로 따라오시길.”


류 현은 무슨 산책이라도 나가는 것처럼 덤덤하게 말하더니,

기기긱! 폭탄창을 열어젖혔다. 류 현이 걸친 옷가지들이 미친 듯이 펄럭거리며 기괴한 비명 같은 소리를 내었다. 지벡 건터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떤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뭘 어쩔 건데, 미친놈아!’


그러나 류 현은 지벡 건터가 외칠 새도 없이 훌쩍 폭탄창 아래로 뛰어내렸다. 고도 2천미터 상공에서 뛰어내리는 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온한 얼굴로.

지벡 건터는 사전에 이야기 된 것도 아닌데도 열린 폭탄창으로 모여드는 일곱 명의 대열에 자신도 끼었다. 방금 뛰어내린 류 현은 이미 점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최상위 플레이어조차 아무런 조치 없이 뛰어내리면 뼈도 추리기 힘든 높이에서 거의 맨몸으로 뛰어내린 그를 바라보는 시선들 중에서 걱정 어린 것은  하나도 없었다. 지벡 건터는 용잡이 팀원들의 시선까지 확인하고 불가해한 기분을 느꼈다.

‘보기엔 멀쩡하던데 둘 다 미친년인건가?’

그러는 동안에도 류 현은 점점 점에 가까워져가고 있었다.  현의 머리와 팔다리를 구분하기 힘들어진 그 시점이었다.


쿠우우우! 류 현보다 한참 아래, 그보다 더  점처럼 보이던 리치성의 표면이 갑자기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지벡 건터는 곧바로 자신의 눈이 잘못된 정보를 보내왔음을 알았다. ‘아니, 마력이 움직이는 거다!’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지벡 건터는 팔뚝의 솜털이 전부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성안에 우글거리는 리치들은 2천 미터 상공에서 떨어지고 있는 인간마저 감지하고 요격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거, 몸 빼내는 건 잘 되려나?’

뜨드득! 빠드득! 성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들끓던 마력은, 한순간에 얼굴을 바꾸더니 거대한 얼음의 창이 되었다. 그저 적을 꿰뚫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치는 공간마저 얼어붙게 만드는, 얼음창!


굵기만 해도 이 전략폭격기의 동체만한 것이 중력을 무시하는 것처럼 천천히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지벡 건터쯤 되는 마법사가 그 위력을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미친, 말로만 듣던 7성 리치의 마법인가? 저놈은 뼈도  추리겠군. 이제 슬슬 탈출을...’

지벡 건터가 류 현의 명복을 빌어주며 등을 돌리던 때,


푸홧! 저 아래에서 거대한 존재감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나타났다. 지벡 건터는 폭격기 후미로 옮기려던 발길을 돌려 폭탄창에 다시 매달렸다. 그리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뭐야,  시커먼 건? X던전에서 얻은 아티펙트인가?’

리치성 위로 자유낙하하고 있던 이제는 거의 점이나 다름없게  류 현의 몸뚱이가, 그 몸뚱이에서 튀어나온 시커먼 뭔가로 뒤덮였다. 이 거리에서도 무시할  없을 정도로 부글부글 들끓어 오르고 있는 마력이나, 불길한 존재감이 지벡의 머릿속을 엉망진창으로 휘저어놓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류 현은 꾸준히 얼음창과의 거리를 좁혀갔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지벡 건터는 저것이 비행능력을 제공하는 아티펙트가 작동하는 모습이 아닐까하는 추론을 내놓았다. 그렇지 않으면 류 현의 목숨은 끝장일 테니까!


그러나,

콰지직! 파창! 양 자의 충돌은 지벡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식으로 결판이 났다. 시커먼 뭔가에 뒤덮인 채로 추락하던 류 현과 부딪힌 얼음창은 요란한 파열음과 함께  속부터 터져나갔다.

류 현은 그대로 혜성이 불꽃의 꼬리를 끌고 나는 것처럼, 꼬리 같은 잔흔을 남기며 리치성을 향해 내리꽂혀갔다. 얼음창이 파훼되자 뒤늦게 리치성에서 폭죽 같은 마법들이 내쏘아올렸지만, 류 현에게 닿지 못했다.

지벡 건터는 넋이 반쯤 빠진 채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의 머릿속에는 한가지 생각으로 가득찼다.

‘저새끼 대체 정체가 뭐야?’

그것까지 확인한 후,

펄럭! 펄럭! 후웅! 기다렸다는 듯이 열린 폭탄창에 매달려있던 세 여자가 뛰어내렸다. 선두는 승하, 그 뒤는 화련, 희란 순이었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지벡 건터가 세 여자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지만, 그런다고 그녀들이 도로 올라오는 건 아니었다.


파악! 백혜라가 그 뒤를 쫓으며 그의 혼란을 가중시킬 뿐!

그리고 마람 압둘아지드와  라시드까지 그 뒤를 따르자, 지벡 건터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대해서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그가 아무리  없는 또라이 소리를 들어도, 공약을 당당하게 지킨 임시대장을 믿고 뛰어내리는 팀원들을 두고 내빼는 답없는 종자까지는 아니었으니까.

활짝 열린 폭탄창에 몸을 내던지며 지벡은 외쳤다.

“젠장, 더럽게 걸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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