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화 〉탐식마(貪食魔)
세상 사람들이 평하길, 지벡 건터는 또라이라고 했다.
그에 대해서 가장 호의적인 평가를 내놓는 이도 그를 표현하는 문장에서 또라이라는 말을 빼지 못했고, 그를 수식하는 말들에는 꼭 마지막에 또라이가 따라붙었다. 자유를 찾아 미국을 뛰쳐나온 또라이, 자기가 정의의 여신인줄 아는 또라이, 그냥 상또라이 등.
지벡 건터 스스로도 이런 또라이라는 평에 대해서 별 불만은 없었다. 자신이 막 나가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세간의 평은 사실에 기반을 둔 아주 담백한 증언에 가깝다.
물론 면전에서 그런 소리를 기분 나쁘게 지껄이는 인간이 있다면, 몸에 새길 교훈을 남겨 줄 테지만.
그리고 그런 상또라이 지벡 건터는 자신에 대한 세간을 평을 만든 수많은 또라이짓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붙여주고 있는 감에 굉장히 켕기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이번 일 촉이 별로야. 아주 좆같아. 나이지리아에서 ‘위스프’새끼들한테 폭격 맞은 뒤로 이런 느낌은 처음인데?’
지벡 건터는 또라이라는 평에 크게 일조한 항상 실실 쪼개는 표정도 집어치우고, 우거지상을 한 채로 기내를 돌아봤다. 그의 시선에 여덟 명의 플레이어들이 걸렸다. 몇몇은 아는, 꽤 오래 전에 일면식을 끝낸 이들이었고 몇몇은 이번에 처음 보는 이들이었다.
검성이라는 칭호로 더 유명한 나승하와 그녀가 데리고 온 백혜라.
감히 자신을 제치고 유럽을 대표하는 플레이어 자리를 꿰찬, 협회 대표 웨인 크로이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클랜인 칼리프 클랜의 정점이자, 칼리프라고 불리는 자파르 알 사디크의 오른팔인 알 라시드와, X던전 사태 때 혜성처럼 등장한 그의 제자 마람 압둘아지드.
그리고 그 X던전 사태를 거의 단독으로 해결했다는 평가까지 받으며, 공공연하게 최강팀으로 거론되는 정원이 달랑 셋 뿐인 용잡이 팀.
‘그 쥐톨만한 나라에서 괴물이 대체 몇 이나 나오는 거야?’
처음으로 대면한 용잡이 팀에 대한 지벡 건터의 평은 그랬다. 뜬금없이 등장한 괴물 트리오. 곧 검성에 버금가는 괴물이 될 것이라는 세간의 평이 이상하지 않은 작자들.
‘젠장, 뭘 캐낼 건덕지가 있어야 캐내든 말든 하지. 빌어먹을 스폰서놈들, 나흘 전에 밀어넣고 뭘 알아내라는 거야?’
지벡 건터가 이 작전에 참가하는 것이 확정된 건 닷새 전 일이다. 대책본부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 나흘 전. 또라이라는 평가를 달고 사는 지벡 건터마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더러운 타이밍.
결국 지벡 건터가 중국으로 건너와서 한 일이라고는 용잡이 팀 소속의 오희란이라는 여자에게 껄떡거린 것이 전부였다. 억지로라도 뭘 캐고 다니려면 못할 건 없지만, 지벡 건터는 그를 지원하는 스폰서들도 다 알고 있듯, 성실한 자는 아니었으니까.
팀 안에 스며드는 것이 곤란한 처지가 되었다는 것을 인지하자마자, 지벡 건터는 다른 것에 눈을 돌렸다. 팀에 합류하자마자 눈에 확 들어온 동양인 여자에게로 말이다. 정작 그 대상은 지벡이 말을 걸 때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눈웃음과 함께 슬쩍 사라져버렸지만.
‘이러다가 진짜로 건지는 거 없이 돌아가게 생겼군. 아니, 다 돌아갈 수는 있으려나?’
지벡 건터는 입맛을 다시며 오른쪽 대각선 방향을 주시했다. 그곳에는 오희란이, 같은 용잡이 팀인 여자와 함께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것인지 작게 키득거리고 있었다. 지벡 건터는 그 광경을 지나쳐, 가장 앞자리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별의 별 또라이를 다 만나봤지만, 저 새끼가 이제 원탑이다. 원탑.’
용잡이 팀의 대장, 류 현. 그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 저 상태 그대로 목적지까지 갈 생각인 모양이었다. 끈끈한 전우애나, 초단위로 짜인 기계장치처럼 돌아가는 작전을 원한 건 아니었지만, 떨떠름해지는 것은 별 수 없었다. 폭격기에 몸을 싣기 전에도 류 현은 변변한 작전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말씀드렸던 대로, 제가 돌입해서 마법을 흩어놓는 걸 확인하시고 진입하시면 됩니다.’
이런 통보에 가까운 이야기만 했을 뿐. 지벡 건터는 생전 처음으로 협회의 허술함에 대해서 짜증났다. 저런 미친놈이 돌아다니게 놔두면서 왜 자신은 그렇게 죽어라 귀찮게 군단 말인가! 어디를 보나 저놈이 훨씬 더 해로운 미친놈인데!
‘미친놈 그런 걸 계획이라고!’
지벡 건터는 팀에 합류한 첫날에 들은 전술 개요랍시고, 류 현이 지껄인 개소리를 곱씹으며 얼굴을 구겼다.
‘지가 밀고 들어가면서 큰 마법은 알아서 쳐낼 테니 뒤따라서 진입하라고? 미친놈.’
그건 계획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류 현이 최선두에서 리치들의 대형마법들을 받아넘기면, 뒤따라 진입한 인원들이 리치들을 밀어내며 성안으로 진입한다.
이 폭격기에 탑승한 인원 외에도 플레이어만 백 명이 넘게 투입되는 작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식한 계획이었다.
가장 어처구니없는 건, 지벡 건터가 그 말을 듣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돌아봤을 때 동감한다는 표정을 지은 이가 없다는 거였다. 중국 측 떨거지 플레이어들의 반응은 알지 못했고,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발의자 본인을 제외하고 일곱 명씩이나 되는 최상위 플레이어 중에서 그 말도 안 되는 황당한 계획에 반대하는 이가 없다는 건 다른 의미에서 충격이었다.
그렇다고 지벡 건터가 황당무계한 계획에 바로 동의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지벡 건터는 류 현에게 검증을 요구했고, 류 현은 뚱한 표정으로 응했다. 검증 방법은 매우 간단했다. 만전 상태의 거너 건터의 마법을 여섯 발을 어떻게든 견딜 것!
말이 검증이지, 류 현이라는 미치광이놈을 때려눕히고 어떻게든 말도 안 되는 계획 실행을 막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지벡 건터는 자신이 1:1로 절대 이길 수 없는 괴물이 검성 말고도 하나 더 생겼다는 불쾌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류 현은 거너 건터의 마법 여섯 발을 정면에서 버텨내었다. 아니, 지벡 건터의 마법은 하나도 류 현에게 닿지 못했다는 게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첫 네 발의 마법은 류 현의 항마력이 먹어치웠고, 괴수보다 더한 항마력을 보고 내쏜 나머지 두 발은 류 현의 손짓 몇 번에 허무하게 사그라들었다.
마법사답지 않게 정확하고, 빠르게 가진 기예를 쏟아 부어 괴수고, 눈이 뒤집힌 플레이어고 가리지 않고 요리해서 붙여진 거너 건터라는 별칭. 이 별칭이 무색하게 류 현이라는 괴물은 그가 쏟아낸 마법들을 아주 우습게 흩어버렸다. 적의조차 내보이지 않고, 파리 쫓듯이.
자존심을 잔뜩 구긴 지벡 건터는 류 현이 지껄인 그 황당한 계획에 더 이상 반발하기 어려워졌다. 그렇지 않아도 스폰서들이 억지로 자리를 만들어서 우겨넣은 터라 발언을 하기가 쉽지 않은 위치였는데, 실력적으로도 류 현의 아래라는 걸 스스로 증명했으니까.
또라이든 뭐든 간에 플레이어 간의 관계에서는 실력이 첫 번째일 수밖에 없다. 고아한 인격이나 믿음 같은 건 괴수를 죽이는 데 별다른 도움이 안 되니까. 믿음은 괴수를 때려죽이면서 쌓으면 그만이고, 고아한 인격은 볼에 튄 괴수의 체액을 닦아내고 그런 척을 하면 그만 아닌가. 지벡 건터 또한 지극히 플레이어다운 사고방식을 가진 또라이였다.
‘대체 저런 괴물이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작정하고 만든다고 해서 어떻게 만들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스폰서놈들은 저놈이 어느 큰 손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던데...개소리지. 저런 괴물은 기를 수 없어. 만에 하나, 저놈을 키운 작자가 있더라도...이미 이 세상 인물이 아니겠지.’
리치성이 부유성이 되더니, 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리는 마을이고 도시고 전부 갈아버리기 시작한 지 일주일 째. 타이위안 시를 말 그대로 초토화 시켜버린 리치성은, 살육에 맛이라도 들린 것처럼 항로를 이리저리 뒤틀며 근처의 인구밀집 지역들을 죄다 갈아버렸다.
그 사이에 중국정부가 쏟아 부은 공군력이 아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쓸려나간 건 덤이었다. 따로 떨어져 있다면 5성리치 마저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화력을 리치성은 우습게 버텨내었다.
산둥 성내의 어지간한 도시는 정확한 집계 없이 대충 봐도 이재민이 더 많을 지경이었고, 베이징 시민들은 산둥 성을 초토화시키는 리치성의 진행방향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리다가 갑자기 북진하기 시작하자 혼란에 빠진 채 정부청사 문에 매달렸다.
류 현의 황당한 계획이 수용된 건, 이런 배경을 둔 게 꽤 크게 작용했다. 적어도 지벡 건터는 그렇게 봤다.
‘지가 못 막아내고 뒈질 거 같으면 다른 인원은 투입하지 말고 보존하라는 것도 꽤 솔깃했겠지. 멍청한 중국놈들. 어중이떠중이들이 이 지옥에서 도망이나 칠 수 있을 거 같았나?’
지벡 건터의 입장에서는 헛웃음도 나오지 않는 얕은 계산이었다. 인간만 보면 눈이 뒤집히는 괴수가 성 진입을 위해서 가까이 접근한 놈들을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지 않은가? 거기다가 저 성 안에는 7성 리치. 얼마 전 등장했던 6성 리치의 기록을 깨는 최고위 리치가 웅크리고 있다. 이쯤되면, 이 전장에서 몸을 빼내는 것 자체가 실력보증으로 쓰여도 될 정도다.
‘뭐, 나랑은 상관없지만.’
지벡 건터는 자신과 별 상관없는 상념을 떨쳐내며, 여전히 말없이 앉아있는 류 현을 노려봤다.
‘그냥 덮어놓고 허풍 치는 거 같진 않은데...대체 무슨 수를 숨기고 있는 거지?’
그 때, 영원히 덮여있을 것 같던 류 현의 눈꺼풀이 들렸다. 지벡 건터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시간이 됐군요. 먼저 내려갈 테니, 계획대로 따라오시길.”
류 현은 무슨 산책이라도 나가는 것처럼 덤덤하게 말하더니,
기기긱! 폭탄창을 열어젖혔다. 류 현이 걸친 옷가지들이 미친 듯이 펄럭거리며 기괴한 비명 같은 소리를 내었다. 지벡 건터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떤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뭘 어쩔 건데, 미친놈아!’
그러나 류 현은 지벡 건터가 외칠 새도 없이 훌쩍 폭탄창 아래로 뛰어내렸다. 고도 2천미터 상공에서 뛰어내리는 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온한 얼굴로.
지벡 건터는 사전에 이야기 된 것도 아닌데도 열린 폭탄창으로 모여드는 일곱 명의 대열에 자신도 끼었다. 방금 뛰어내린 류 현은 이미 점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최상위 플레이어조차 아무런 조치 없이 뛰어내리면 뼈도 추리기 힘든 높이에서 거의 맨몸으로 뛰어내린 그를 바라보는 시선들 중에서 걱정 어린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지벡 건터는 용잡이 팀원들의 시선까지 확인하고 불가해한 기분을 느꼈다.
‘보기엔 멀쩡하던데 둘 다 미친년인건가?’
그러는 동안에도 류 현은 점점 점에 가까워져가고 있었다. 류 현의 머리와 팔다리를 구분하기 힘들어진 그 시점이었다.
쿠우우우! 류 현보다 한참 아래, 그보다 더 큰 점처럼 보이던 리치성의 표면이 갑자기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지벡 건터는 곧바로 자신의 눈이 잘못된 정보를 보내왔음을 알았다. ‘아니, 마력이 움직이는 거다!’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지벡 건터는 팔뚝의 솜털이 전부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저 성안에 우글거리는 리치들은 2천 미터 상공에서 떨어지고 있는 인간마저 감지하고 요격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거, 몸 빼내는 건 잘 되려나?’
뜨드득! 빠드득! 성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들끓던 마력은, 한순간에 얼굴을 바꾸더니 거대한 얼음의 창이 되었다. 그저 적을 꿰뚫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치는 공간마저 얼어붙게 만드는, 얼음창!
굵기만 해도 이 전략폭격기의 동체만한 것이 중력을 무시하는 것처럼 천천히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지벡 건터쯤 되는 마법사가 그 위력을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미친, 말로만 듣던 7성 리치의 마법인가? 저놈은 뼈도 못 추리겠군. 이제 슬슬 탈출을...’
지벡 건터가 류 현의 명복을 빌어주며 등을 돌리던 때,
푸홧! 저 아래에서 거대한 존재감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나타났다. 지벡 건터는 폭격기 후미로 옮기려던 발길을 돌려 폭탄창에 다시 매달렸다. 그리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뭐야, 저 시커먼 건? X던전에서 얻은 아티펙트인가?’
리치성 위로 자유낙하하고 있던 이제는 거의 점이나 다름없게 된 류 현의 몸뚱이가, 그 몸뚱이에서 튀어나온 시커먼 뭔가로 뒤덮였다. 이 거리에서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부글부글 들끓어 오르고 있는 마력이나, 불길한 존재감이 지벡의 머릿속을 엉망진창으로 휘저어놓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류 현은 꾸준히 얼음창과의 거리를 좁혀갔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지벡 건터는 저것이 비행능력을 제공하는 아티펙트가 작동하는 모습이 아닐까하는 추론을 내놓았다. 그렇지 않으면 류 현의 목숨은 끝장일 테니까!
그러나,
콰지직! 파창! 양 자의 충돌은 지벡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식으로 결판이 났다. 시커먼 뭔가에 뒤덮인 채로 추락하던 류 현과 부딪힌 얼음창은 요란한 파열음과 함께 그 속부터 터져나갔다.
류 현은 그대로 혜성이 불꽃의 꼬리를 끌고 나는 것처럼, 꼬리 같은 잔흔을 남기며 리치성을 향해 내리꽂혀갔다. 얼음창이 파훼되자 뒤늦게 리치성에서 폭죽 같은 마법들이 내쏘아올렸지만, 류 현에게 닿지 못했다.
지벡 건터는 넋이 반쯤 빠진 채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의 머릿속에는 한가지 생각으로 가득찼다.
‘저새끼 대체 정체가 뭐야?’
그것까지 확인한 후,
펄럭! 펄럭! 후웅! 기다렸다는 듯이 열린 폭탄창에 매달려있던 세 여자가 뛰어내렸다. 선두는 승하, 그 뒤는 화련, 희란 순이었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지벡 건터가 세 여자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지만, 그런다고 그녀들이 도로 올라오는 건 아니었다.
파악! 백혜라가 그 뒤를 쫓으며 그의 혼란을 가중시킬 뿐!
그리고 마람 압둘아지드와 알 라시드까지 그 뒤를 따르자, 지벡 건터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대해서 더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그가 아무리 답 없는 또라이 소리를 들어도, 공약을 당당하게 지킨 임시대장을 믿고 뛰어내리는 팀원들을 두고 내빼는 답없는 종자까지는 아니었으니까.
활짝 열린 폭탄창에 몸을 내던지며 지벡은 외쳤다.
“젠장, 더럽게 걸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