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2화 〉탐식마(貪食魔) (172/429)



〈 172화 〉탐식마(貪食魔)

“쯧, 내뺐군.”


류 현은 본 드래곤들과 리치가 방금 전까지 떠있었던 하늘을 보며 혀를 찼다. 아주 예상 못한 건 아니었지만, 이런 식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분명히 그놈은 지켜보고 있었어. 공격을 더 허용하면 위험해지는 타이밍에 정확하게 치고 들어왔다.’

류 현이 보기에, 엘더 리치는 싸움을 관전하다가 정확한 타이밍에 끼어들었으니까. 그것도 리치답게 몸을 사리다가 어쩌다 좋은 타이밍에 끼어든 것으로 볼  없을 정도로 정확한 타이밍이었다.


‘간 보고 있다가 각 잡고 들어온  맞아. 아니었으면 내가 본 드래곤 몸뚱이에 ‘송곳’을 꽂아 넣을  끼어들었어야해. 놈이 사태를 지켜보면서 정보를 모을 이성이 있다고 봐야겠지.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대비를 해야 한다.’


언뜻 들어보면  것 아닌 소리였지만, 류 현에게 있어서 이보다  끔찍한 이야기는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여타 상위 괴수에 비해서 지능이 높은 편이라 골머리를 앓게 하는 네임드 몹이, 인간을 보고 미쳐 날뛰지 않는 걸로도 모자라서 미끼를 던져놓고 정보를 모은다니!

‘진짜 돌아버리겠군...이러다가 아지다하카 그 새끼는 아예 인간 말이라도 배워 오는 거 아냐?’


헛웃음조차  나오는 가정이었지만, 류 현은 그냥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그가 전생에서 얻은 경험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없는 변수들이 쏟아지고 있었으니까. 네임드 괴수가 다른 네임드 괴수의 통제를 따르는 것도 어처구니없는데, 지휘개체가 인간 세상을 보고도 미쳐 날뛰지 않고 정보를 수집할 이성까지 있다니. 괴수 대신 자신이 미쳐 날뛰고 싶은 심경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놈이 리치 특성까지는 못 버렸다는 것 정도로군. 그대로 총공세를 퍼부었으면, 나를 빼면 최소  달짜리 중상을 입었을 텐데. 본 드래곤 하나는 어떻게든 잡았겠지만 어떻게 봐도 우리 손해지. 남은 한 마리로 분탕치고 다녀도 충분히 개판 만들 수 있으니까. 젠장, 화련을 제일 먼저 타겟으로 잡은  보면 우리팀 포지션 정도는 눈치 깐 거 같던데...’


하지만 류 현의 상념은  이어지지 못했다. 귀에 익숙한, 그러면서도 무시로 일관할 수 없는 목소리가 바로 아래에서 랩하는 것처럼 자신을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스...”
“저 안 죽었습니다.”


류 현은 그 짧은 시간동안 얼마나 불러댄 것인지, 목소리가 점점 잠기고 있던 화련에게 류 현은 무덤덤하게 대꾸했다가 그녀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려도 이상하지 않을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우셨습니까?”
“내가 울긴 왜 울어요!”

빽 소리치지만, 기세가 영 시원찮았다. 류 현은 말 한 번 잘 못 뱉었다가 죄인이 된 기분으로 다른 일행들을 맞았다.


“류 현 너, 갑자기 왜 팔을...”
“마스...헉헉...”

자신이 뜯어버린 오른팔을 내려다보며 황당함을 드러내는 승하와 저 멀리 떨어져있었을 텐데, 어느새 코앞까지 달려와서 헉헉 거리고 있는 희란에게 말했다. 남은 팔로는 반쯤 넋이 나간 화련을 다독이면서.

“안 떼어냈으면 그대로 냉기에 먹혔을 겁니다. 그리고 치료할 수 있어서 그렇게 한 거니까 그렇게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류 현은 그리 말하며 넋이 나가서 무어라 중얼거리는 화련을 턱으로 가리켰다. 승하는 몇 마디 더 하려다가 그 모습을 보고 어깨를 늘어뜨렸고, 희란은 화련의 상태를 살피려고 했지만 화련이 축 늘어져 있어서 쉽지 않았다.

“쟤 또 이러네. 할 땐 하는 애라서 실전에서는 괜찮을  알았는데.”
“또요?”
“X던전 다녀오고 나서였나? 훈련시켜주다가 내가   맞아서 뼈 부러진 적이 있거든. 지금 보다 덜하긴 했는데, 완전 하얗게 질려서 그  훈련이고 뭐고 다 때려치웠지. 달래느라 좀 진땀 뺐었어.”
“그, 그 때는 완전 골절돼서 팔목이 덜렁거릴 정도였잖아요. 언니.”

희란의 증언에  현은 슬쩍 눈을 흘겼다. 승하는 그 강렬한 시선을 못 본채 하며 눈을 돌렸다.

‘어쩐지 못 들은 이야기다 싶었어. 나 모르게 사고치고 송장목 진액으로 다시 붙였나 보네.’

화련이 훈련 중 상대에게 부상을 입혔다고 훈련을 계속 못할 정도까지 놀랐다는  좀 의아했었는데, 그 정도면 아예 이해가 안  수준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좀 놀랍기는 했지만.


‘...한동안 훈련도 직접 못 봐주고 너무 방치하긴 했지. 마냥 승하한테 맡겨 놓을 일도 아니고. 이번 일 끝나면...맞다, 그 얘기도 있었지.’

호주로 떠나기 전에 내뱉었던 말이 떠오르자, 슬며시 골치가 아파왔다. 류 현이 미간을 찌푸리자, 승하가 반응했다.

“류 현? 너 진짜 괜찮은  맞어?”
“아, 예. 잠깐 딴 생각을 하느라. 일단 돌아가도록 하죠. 그놈들이 돌아 와줄 거 같지도 않고, 와준다고 해도 일단 피해야 할 판이군요.”
“저건 어쩌고?”


승하가 턱짓으로 가리킨 건 류 현이 뜯어낸 제 오른팔이었다. 몸에서 떨어져 나가자 더욱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리치의 빙결마법에, 언뜻 보면 커다란 냉동육으로 보이게 된 그의 팔은 어떻게 봐도 가망이 없어보였다. 그 정도 수준의 리치가 쏘아내는 빙결마법은 단순히 냉동시키는 게 아니니까.

마력의 불꽃에 화상을 입은 플레이어에게 통상적인 화상치료가  의미 없는 것과 똑같이, 어떻게 해도 저 팔을 살리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저 상태면 누가 와도 어떻게 못 합니다. 그냥 두고 가죠.”
“너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아니지, 팔 떨어진 애가 괜찮을 리가...”

겉보기에는 태연해도 승하 또한 놀란 건 마찬가지인지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류 현은 의외로 훨씬 침착한 희란과, 그 침착한 희란이 내팽개치고  장비를 수습해서 뛰어오고 있는 백혜라를 번갈아 보고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건 적응 안 된다고.’
“일단 숙소로 돌아가지요. 거기가야 오른팔 치료도 수월해지니 거기가기 전까지는 좀 참아주시지 않겠습니까?”

마지막 말은 오른쪽 어깨 단면에 얼굴을 들이밀려던 희란을 향한 것이었다. 표정 관리하는  한계인지, 그녀는 아직까지 어깨로 숨을 쉬고 있었다. 팔을 잘라 내야하는 중상을 입은 건 자신인데, 왠지 죄인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빨리 돌아갑시다. 화련  숨넘어가기 전에요.”


품속의 화련이 뭐라고 반문하긴 했지만, 그 웅얼거림은 류 현은 대충 무시했다.

***

달그락 달그락

스위트룸을 두 개 합친 것 같은 넓은 방에 어울리는 식탁과, 그 식탁의 다리가 걱정될 정도로 올라와있는 그릇들이 무색하게 소리를 내는 건 포크 하나뿐이었다. 나머지 네 명은 식사시간에 어울리지 않게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한 채, 상석에 앉은 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상석에 앉아서 포크를 바쁘게 놀리던 류 현은 마지막 그릇 해치우자 포크를 놓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오른쪽 팔이 어깨부터 사라진 그 모습은, 방안의 엄숙한 분위기의 원인으로 충분해 보였으나, 정작 당사자인 류 현은 느긋한 표정이었다.


류 현이 괴수 고기 말고 처음으로 먹을 것으로 불룩하게 튀어나온 배를 하나 남은 손으로 쓰다듬고 있자, 기다리다 못한 승하가 재촉했다.

“안  거야? 아님  하는데  수 있다고 한 거야?”


 현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물을  모금 마신 후에 말했다.


“제가 그런 거짓말을 뭣하러 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제일 불편한 건 저인데요. 소화되기를 기다리는 겁니다.”


승하가 그게 무슨 말 같잖은 소리냐고 반박하려고 할 때였다. 주방장이 주문을 받아들고 질릴 정도로 많은 양을 먹어치워서 불룩하던 류 현의 배가 거짓말처럼  내려가는 게 아닌가? 승하는 입을 반쯤 벌리고  광경을 멍하니 쳐다봤다.

‘괴수 고기가 아니어도 저럴 수 있는 거였어?’ 괴수 고기를 소화시켜서 마력으로 바로 환원하는 게 더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계속 그 꼴을 봐온 승하에게는 이쪽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진짜 보실 겁니까? 보시고 나면 식사 못하실 수도 있는데요. 결국 저 혼자 다 먹었잖습니까.”

 현이 오른팔을 치료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숙소로 돌아오자 그를 맞이한 경악과 질문을 모두 물리치고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주문했을 때 그녀들의 인내심은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그럼 네가 그 꼴을 하고 있는데 밥이 넘어가겠어? 물만 마셔도 체하겠다.”
“...저는 분명히 경고 드렸습니다. 오늘 식사 못 하셔도  탓 아닙니다.”

눈을 돌리거나,  밖으로 나가려는 자세를 취하는 이는 없었다. 방안의 분위기에서 조금 붕 떠있는 백혜라 조차도 말이다. 류 현은 한 숨을 푹 내쉬고는 남은 왼팔로 오른쪽 어깨 죽지를 붙잡았다.

“진짜 저는 책임 못 집니다.”


별 의미 없는 마지막 경고였다. 어서 하라는 승하의 재촉만 있을 뿐.

“흐읍!”


뿌드드득! 까드득! 소름끼치는 뼈 소리와 함께 어깨의 절단면에서 불쑥 하얀 것이 튀어나왔다. 희란이 그것을 보고 엉덩이를 들썩거렸지만, 외면하진 않았다.  현은 계속해 나갔다.

뜨드득! 까드득! 절단면에서 튀어나온 하얀 것은 안에서 밀려나오는 것처럼 점점 자라나기 시작했다. 조금 앞으로 나가더니 뭉툭하게 끝이 맺혔고, 그 뭉툭한 부분에서 다시 하얀 것이 맺혀 자랐다. 그것이 류 현의 명치 부분까지 자라났을 때, 그녀들은 의심할 것도 없이 그것이 팔뼈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들의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찌지직! 지직! 팔뼈가 어느 정도 형태를 갖추고 나자, 절단면에서 이번에는 시뻘건 살과 근육들이 밀려나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좋게 말해도 역겹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모습이었지만, 눈을 돌리는 이는 없었다. 방안에 뼈와 근육이 뒤틀리고 찢어지는  같은 소리만이 울렸다.

“후우...”

팔이 ‘돋아나는’ 작업은 그리 길게 가지 않아 끝이 났다. 류 현이 경고를 입에 담은 시간까지 쳐도 10분가량. 어느 정도 기반이 마련되자 정말 거짓말처럼 쑥쑥 자라났으니까.  위를 피부가 뒤덮는  걸린 시간은 그보다 훨씬 짧았다. 류 현이 자라난 팔을 휙휙 돌려보이자 화련의 얼굴이 다시 하얗게 질릴 정도로 비현실적으로 빠른 복구.


“그거 진짜 나은 거 맞아?”
“지금 당장 만전 상태로 싸울 수 있냐면 그건 아니지만, 일상 생활하는 데는 문제없습니다. 지금 마력을 때려 부으면 팔이 터질지도 모르지만요. 정 의심되면 만져보시렵니까?”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던 승하는 사양 않고, 류 현의 오른팔을 덥석 붙잡았다. 그의 말이 사실인지, 정말로 살과 가죽과 뼈로 된 팔이었다.

“...그만 하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응? 너 련이 표정 안 보여?  지금도 내가 너랑 입 맞추고 구라치는 거 같다는 표정인데.”


찰싹 화련은 승하의 말을 부정하듯이 그녀의 손을 쳐서,  현의 팔에서 떼어내었다. 당장이라도 뒤로 넘어갈 것처럼 비틀거리는 화련의 모습에 승하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무서워서 친구끼리 장난도 못 치겠네.”
“시끄러...워요.”

그게 화련이 제정신으로 내뱉은 마지막 말이었다. 그녀는 그것으로 힘이 다했는지, 앞으로 고꾸라졌다.

“엇차, 얘도 참 대단해. 중간에 기절하겠지 싶었는데 끝까지 버티네.”

가볍게 화련을 몸을 안아든 승하가 말했다.


“...그렇다고 억지로 재울 수도 없고 말입니다. 회복하는  걸리는 시간만 따지면 화련  쪽이 더 중상인데.”
“뭐, 얘도 당장 어디   못 쓰는 것도 아니니까.  쉬기만 하면 될 거고. 그래서 이제부터 어쩔 거야? 아까 보니 총리가 네 팔 보고 거의  빠진 얼굴이던데.”
“일단 좀 자야겠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재생 시킨 것도, 영양이랑 휴식이 필요해서거든요. 저도 지금 눈 감기려고 하는데 억지로 버티고 있는 겁니다.”
“아아, 불쌍한 총리 아저씨. 기자들도 몇 명 보이던데.  무지하게 먹겠네.”
“그거야 총리님이 알아서 하셔야하는 거고요. 전 숙소 근처에 기자들 되도록 안 보이게 해달라고 분명히 부탁했었습니다. 왜 저렇게 몰려있는지 안 봐도 비디오지만, 어쩌겠습니까. 일이 이렇게 된 걸.”
“너 갈수록 좀 막나가는 거 같다. 지금까진 내숭  거고, 이게 본성인가?”

제 페이스를 되찾은 승하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류 현은 어깨만 한  으쓱했다.

“저 아마 아침까지  일어날 겁니다. 그동안 화련 씨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류 현은 어느새 식탁에 엎드린 채로 꿈나라로 날아간 희란을 곁눈질로 가리켰다. 승하는 히죽 웃으며 장난스럽게 경례를 올려붙였다.

“Sir, yes s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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