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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0화 〉탐식마(貪食魔) (170/429)



〈 170화 〉탐식마(貪食魔)
짠 내와 비린내가 뒤섞인 바닷바람이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현은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기묘한 비린내에 코끝을 찡그렸지만, 자리를 떠나진 않았다. 그는 바다를 보고 있는 게 매우 중요한  인양, 자리를 지키고 서있었다. 시야 안에서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고 있음에도 말이다.

실제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그의 머릿속이었다.


시드니의 본다이비치. 세계 최초로 이름을 달고 나타난  드래곤 두 마리의 추적 및 섬멸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출국한 이들이 있기에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곳.


‘협조를 받게 된  좋은데...지금 상황을 좋아라 하는 건  그렇지.’

계획의 이정표에 들어있지 않은 이곳에 머물게  것은, 그가 목표로   드래곤의 예기치 못한 기행 때문이었다.


‘얌전히 눈이나 퍼먹던 놈들이 갑자기 필리핀에서 분탕질 칠 줄은...괴수가 인간을 공격하는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엘더 리치의 지휘를 받는 것치고는 일관성이 없어. 내가 모르는 뭔가가 더 있는 건가?’


류 현이 비밀 공개를 공약으로 내걸며 본 드래곤 추적을 천명한 다음날, 필리핀 상공을 지나던 본 드래곤은 뭐가 거슬린 것인지 필리핀의 케손시티를 공습했다. 아무런 전조도 없는, 어린아이의 변덕 같은 공격이었다.

초토화. 어린아이의 변덕처럼 갑작스럽게 시작된 그 공격에,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는 참상이 벌어졌다.


본 드래곤의 공격방법은 간단했다. 20m상공까지 내려온 그것들은 러시아에서 눈과 얼음을 퍼먹은 게 이걸 위해서였다는 듯, 브레스를 있는 힘껏 내뿜었다. 자신들의 시야 안에 살아 움직이는 도시 내의 인간이 남김없이 얼어붙을 때까지. 케손시티는  그대로 얼어붙은 도시가 되었다.

필리핀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본 드래곤의 공습이 계속 되었던 2시간동안 투입한 공군병력이  드래곤의 몸뚱이에 긁힌 자국조차 만들지 못하고 격추 당했을 뿐.


그렇게 두 시간동안 브레스를 번갈아가면서 퍼붓던  드래곤들이 떠나고 나서야, 케손시티에 사람이 접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네임드 괴수가 만들어낸 참상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도시 상공에 나타난 본 드래곤을 보고 몸을 웅크렸다가 그대로 얼어붙어버린 여자나, 서로 자식들을 감싸다가 한 덩어리로 얼어붙은 가족 등.  시간전만해도 살아 움직이던 도시가 통째로 얼어붙은 참상에, 어떻게든 생존자를 찾으려고 진입했던 구조대는 할 말을 잊었다.

구조대를 넋 놓게 만든  참상은 만 하루가 되기도 전에 전 세계에 알려졌고, 세계 시민들의 불안감은 증시 폭락이라는 형태로 터져 나왔다. 2차 ‘대소환’ 초기에나 보이던 폭락폭에 증시 문을 일시적으로 닫아야하는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아무리  괴수전력이 약하다고는 하나, 두 시간 만에 도시를 통째로 얼려버리는 괴수의 존재는 사람들의 이성까지 얼려버리기에 충분했다.


그 괴수가 비행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필리핀의 공군력에도 끄덕도 안 했다는 소식까지 보도 되자, 대형마트의 통조림 코너가 거덜 나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당장 본 드래곤을 때려잡지 않는 한, 혼란을 수습하기는 요원해 보였다.


시민들을 진정시켜야하는 각국 정부마저  사태에, 자국의 최고 길드의 장이나 기관장을 불러서  미친 괴수를 어떻게 처리할 거냐고 닦달할 지경이었으니까.


핵이라도 쏘지 않는 이상 화기로는 생채기 내기도 힘들어 보이는, 저 커다란 괴물이 두 시간이면 작은 도시 하나를 초토화시킬 수 있다. 그것도 뼈밖에 없는 날개로 날기까지 한다! 던전이나 플레이어에 대해서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자들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저건 전투기로 떨굴 수 없는 전략 폭격기나 다름없다는 것을 말이다. 플레이어들이 어떻게든 매달려서 상처를 내야하는 상대임을 감안하면 그 보다 더 끔찍해질 수 있다는 외면하고 싶은 현실 또한!

 드래곤의 이동경로에서 멀찍이 벗어난 국가마저 그 불안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저 미친 괴수는 생긴 것처럼 지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니, 길을 가다가 심심풀이로 자국에 와서 도시 하나를 얼려버릴 수도 있지 않은가? 인간의 도시를 보고도 본채 만  하며 제 갈길 가던 놈이 왜 갑자기 필리핀에서 분탕질  것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으니까.

그  협회가, 협회장 클라우드 윈스턴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민들의 혼란에 전염된 것처럼 아우성치는 기자들을 향해서 윈스턴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협회는 이미 대책반 가동에 들어갔으며, 대책반의 인선은 현실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제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라인업으로 짜였습니다.”

한 기자가 반문했다. “제가 알기로는 대책반을 신설하기는커녕, 각국 정상들과 협조를 구할 시간도 없으셨을 텐데 어떻게 최고의 라인업을 구축했다는 겁니까?”


‘최고의 플레이어들은 협회에 속해있지도 않은데, 각국 정부에 손도 안 벌리고 어떻게 최고의 라인업을 짰다는 거냐?’라는 속내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질문이었다.

무례하다면 무례하다고 할 수 있는 질문에, 윈스턴은 젊었을 시절 뭇 여인네들의 가슴을 녹인 자신만만하며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대꾸했다.

“대책반은 파주, 뉴욕, 카이로에 등장했던 X던전을 클로징을 주도한 용잡이 팀. 그 팀의 장인  현대장과 검성이 진두지휘하기로 했습니다. 이 정도면 만족할만한 대답이 되셨는지?”

윈스턴의 대답에 기자들은, 오늘 집에는 다 갔구나 하고 야근을 직감했다.

그렇게 본 드래곤의 분탕질과 협회장의 언론 푸쉬까지  해져서, 류 현은 예상보다 훨씬 협조적인 호주 총리와 이야기를 끝마친 상태였다.


진행방향을 봤을 때, 본 드래곤이 갑자기 미쳐서 왼쪽 깜빡이를 넣고 미국으로 돌진하지 않는 이상, 다음 휴게지는 호주가 될 것으로 보였으니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곤란한  총리 쪽이긴 했지만.


‘그 영감님이 이런 식으로 밀어줄 거라고는 생각 안 했었는데 말이지.’

끽해야 거쳐 가는 나라들의 수뇌부에게 부탁해주는 정도가 전부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예상을 비웃듯이, 기자회견 한 방으로 이렇게 인지도를 끌어올려줄 줄이야.

전생의 기억을 가진 그였기에 생각지 않고 있었던 맹점이었다. 언론이 불구대천의 원수였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같은 편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인지도가 필요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으면서도, 전생에서 쌓은 언론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적극적으로 언론을 이용하는 짓은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류 현은 스마트 폰을 조작해서 기사 하나를 띄우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자신을 무슨 본 드래곤이라는 괴수의 공포로부터 세계를 구해낼 영웅 취급하는 기사가 이것뿐만이 아니라 수십 개는 되었다. 화련이 깔깔거리면서 보여준 것들이  정도는 된다는 의미다. 류 현에게는 제 이름을 검색해보는 취미는 없었으니까.


‘나 원, 기사 내리라고 깽판  수도 없고...안 될 것까진 없지만 벌써부터 이렇게 설레발치다가 역풍 맞는  아닌가 몰라.’


당장 지금 상황만 놓고 봐도 호주에 온지 사흘째, 용잡이 팀과 승하, 백혜라 듀오가 더 해진 본 드래곤 대책반은 관광지에서 빈둥거리는 중이다. 협회장에게 구두로 대책반 직함을 받고 본 드래곤 추적을 결심한지는 일주일이 되었다.

본 드래곤이 필리핀에서 호주로 직행하는  아니라, 뱅골 만까지  둘러서 인도양에서 미적거리는 동안 다음 휴게지로 예상되는 호주로 재빨리 입국한 것이다. 그러니  드래곤을 기다리는 건 딱히 이상할 건 없지만,

‘총리라는 인간이 이런 상황에 접대에 더 정신 팔려있다니...전생에서 그렇게 망한 게 당연하긴 하네.’

총리의 권유로 관광지에서 대기하면서 놀고 있는  어떻게 봐도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그 권유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 놀고 있는 팀원은 없으니 크게 문제될 건 없지만, 신경  쓰고 있었던 언론이 신경 쓰이게 되었으니,  일이 다 켕기기 시작한 류 현이었다.


‘...본 드래곤 놈들이 안 오니까  생각이  드는군.’

의도적으로 두 괴수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도 있었다. 두 마리 전부가 네임드 몹이라는 것도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오는데, 하는 짓이 단순히 지휘개체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될 정도로 해괴한 짓거리를 거듭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을 공격한 건...이해 못할  아니야. 괴수놈들의 적의가 논리적으로 설명될만한 것도 아니고, 잠깐 제어가 풀린 순간에 눈 돌아가서 도시 하나 작살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왜 이렇게 미적거리는 거지?’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케손시티 파괴 사건은  현에게 있어서 일어나야할 일이 소규모로 벌어진, 다행스러운 케이스였다.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아마, 인간에 대한 괴수의 적의를 다시금 인지하게 될 것이다. 어마어마한 인명피해가 난 이상, 이전처럼 다른 세상 이야기 취급 받을 일도 없을 것이고.

하지만,


‘그 두 놈의 목적지는 남극이 분명해. 거기에 엘더 리치가 있든, 없든 그리로 가겠지. 엘더 리치의 명령일 가능성이 크지만...그냥 가서 있는 것만으로도  두 놈한테 이득이 되는 곳이니까. 지나치게 미적거리는 것만 빼면 말이야.’

언데드라는 육안으로 보이는 인상적인 특징 말고도 본 드래곤은 냉기를  마력으로 축적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전 생에서, 네임드 몹이었던 첫 번째 본 드래곤은 아니었지만 엘더 리치 휘하의 보통 본 드래곤이 북극에서 싸울 때, 냉기를 끌어 모아서  단계 높은 브레스를 내쏘거나 수복속도를 빠르게 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러니  현이 보기에 본 드래곤  마리가 남극으로 가는 건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필리핀의 도시를 공격하기 전에 봤던 무수히 많은 인간들의 도시를 무시한 게 더 이상했지.


‘뜬금없이 필리핀을 공격한 거나, 괜히 뱅골만으로 선회해서 미적거리는 건 엘더 리치의 지휘로는 그냥 퉁치기가 힘들지. 지휘 개체의 명령이었으면 남극으로 직행했을 거다. 그 엘더 리치놈은 어떻게 한 건지는 몰라도 지들 본능을 상당히 억누르는 데 성공한 걸로 보이니, 그렇게 갑자기 비효율적인 공격을 명할 가능성은 낮아. 인간을 족치는 게 목적이면 바이칼 호까지 움직이면서 중국을 빙판으로 만들었어야 하고.’


류 현은 왜 자신이 본 드래곤들의 행적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는 걸 자제하고 있었는지, 금방 떠올릴  있었다. 오 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차라리 이전 생처럼 그냥 미쳐 날뛰었으면 그냥 쫓아가서 때려잡기만 하면 될 텐데. 류 현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터무니없는 불평을 토해내려다가 그만두었다.

‘다 사서 하는 고생이지.’

“왜 혼자서  그렇게 죽상을 하고 있어?”


 뒷머리를 헤집으려던 류 현은 뒤쪽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멈칫했다. 뒤돌아보니, 가벼운 차림의 승하가 히죽 웃으며 서있었다.


“제가 마력 운용은 이틀 뒤부터 하시라고 말씀 안 드렸던가요? 그러다가 다 아문  말짱 도루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자청해서 입었던 내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할 말이 없는 건 그녀도 마찬가지인지 어깨를 한  으쓱하더니 대꾸했다.

“하지만 비상사태에 그런 걸 가릴  없잖아?”
“비상사태요?”
“본 드래곤이 호주에 상륙했어. 호주의 뭐에 꽂힌 건지 갑자기 가속하더니 전투기 뺨치는 속도로 날아왔다더라. 총리는 당장이라도 지하벙커에 들어갈 기세던데?”
“...하여간. 다른 분들은?”
“네 방에 모여 있어. 네가 또 궁상떨고 있을까봐 내가 온 거고.”
“일단 갑시다. 그리고 두  앞에서 궁상이니 어쩌니 하면 진짜로 국물도 없을 줄 아십쇼. 대련이고 뭐고  쌩깔 겁니다.”
“야, 너 배려해서 아픈 몸 이끌고 마중온 친구한테 이러기야?”
“그럼 그 배려 계속 해주시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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