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6화 〉탐식마(貪食魔) (166/429)



〈 166화 〉탐식마(貪食魔)

투투투! 헬기의 프로펠러가 허공을 후려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소음 외에도 모래먼지가 앞을 보기 힘들 정도로 자욱하게 일어났다.

류 현은 조종사가 오케이 사인을 내기도 전에, 헬기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헬기와 착륙장 땅과는 5미터 가량의 거리가 남아있는 상태였지만, 비명을 지르거나 기겁하는 이는 없었다. 자신들이 모셔온 자가 어떤 괴물인지 대충 귀뜸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예상대로, 류 현은 가뿐히 착지한 후에 자신을 마중 나와 있었던  남자를 맞았다.


“이리 빨리 답변을 직접 주셔서 감사드리오. 우리 중국 공산당은 물론이고...”
“아직 인사를 받을만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실례라는  알지만 일단 성을 보고 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괜찮겠습니까?”
“이를 말씀입니까. 리커창 이 친구가 안내해드릴 겁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리커창을 대동한  나타난 장이셴은, 안내역으로 리커창을 붙여준 후에 김빠질 정도로 빠르게 물러났다.


‘중국 내 여론이 아주 들끓고 있나 보군. 어지간히 급한 가봐.’


멀어져가는 장이셴의 등을 바라보던 류 현은, 곧 리커창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것을 움직이자는 신호로 받아들인 리커창이 말했다.

“...이쪽입니다.”

여전히 딱딱한 어조였지만, 류 현은 이것도 어딘가 하며 묵묵히 따라나섰다. 잠깐 몇 밤을 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주 본격적으로 점령하기 위해서 신경 써서 세운 티가 팍팍 나는 임시 진지를 지나쳐서 나오자, 본격적인 모래의 바다가 그를 맞이했다.


‘그러고 보면 사막에서 싸운 적은 없네. 극지에서는 싸워봤어도...원래 있던 사막에서는 싸워본 적이 없어. 거참, 이번 생에는  경험해 보라 이런 건가?’

얼마나 남았다, 지루하지 않느냐 같이 안내역이 할만한 멘트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묵묵히 걷기만 하는 리커창의 등만 바라보며 큼직한 사구를 네 개 정도 넘었을 때였다.


‘...여긴가.’

바로 전 언덕을 넘을 때만 해도 느껴지지 않던, 위화감이. 주변보다 훨씬 짙은 마력의 잔향이 그의 감각을 건드렸다. 리커창은 류 현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순간 멈춰 섰다.

“여기입니다.”

뒤돌아서서 리커창이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거대한 구덩이가 푹 파여 있었다. 무심코 몸을 기울여 들여다보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구덩이가.

그리고 뭐든지 빨아들일 것 같은 그 구덩이 안에는 성이 있었다. 모래의 바다 위에, 그것도 움푹 들어간 지반이 약하디 약한 구덩이 속에 서있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굳건하고, 거대한 성.

장이셴이 류 현에게 보여준 영상에 나온 리치들의 성이다.


‘...그 때보다 더 큰 거 같은데. 젠장, 당연하지.  때 영상에 나온 리치 숫자만 봐도, 자리 잡은  최소  달은 넘었다고 봐야해.’


영상과 달리 성 밖에 나와 있는 리치도, 영상 속에서 죽어나갔던 병사들의 흔적조차 없어 휑한 느낌마저 들었지만, 류 현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엘더 리치의 성이다. 7성 리치라고 해도 네임드가 아닌 이상 이렇게 만들진 못해. 지맥 침투는...아직 인 거 같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면서  현은 자신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리커창에게 물었다.


“저기 저 구덩이 입구에 있는 텐트는 괜찮은 겁니까? 일반 병사들이면 저기서 뿜어 나오는 마력 때문에 못 버틸 텐데요.”

 현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 끝에는 구덩이 부근에 자리 잡고 있는 텐트촌들이 있었다. 보다 구덩이 가까이 서서 경계를 서고 있는 인원들은 어쩔  없다고 쳐도,  십 마리의 리치가 똬리를 틀고 있는 성 가까이 숙영지까지 차리고 있을 줄이야.


“경계인원 전원이 플레이어입니다. 평균 헌팅레벨이 140가량입니다.”
“아...그랬군요.”

140가량이면 가진 능력에 따라서 블루에서 퍼플 블루에 발을 걸칠 수 있는 실력자들이다. 요새 터진 사건들이 기존의 던전 등급 밖의 것들이라 그렇지,  정도면 어지간한 길드에서 중견 취급정도는 받을 수 있는 수준이다.

최상위 던전을 공략하는 자들이 트렌드 메이커라면, 이쪽은 그 메인 스트림에 올라타서 던전이라는 광산에서 금을 캐는 광부라고 할  있을 터. 어떻게 보든, 이렇게 소모품 취급 당할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의미다.


‘하, 그 꼴을 보고도 이만한 인원을 버림패로 밀어 넣다니...중국은 중국이군. 하긴, 내가 중국의 사상을 바꿀 정도로 큰일은 치고 다닌 건 아니니까. 이런 사고방식은 바뀌지 않는 게 당연하네.’

스스로를 납득시켜 봐도, 떨떠름한 기분은 가시지 않았지만 류 현은 자신의 기분과는 전혀 다른 말을 내뱉었다.


“저기 가서 조금 둘러봐도 되겠습니까?”


리커창은 이전과 다르지 않게 무뚝뚝한 태도로 대꾸했다.


“원하시는 대로.”


***

“다시  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장이셴은 볼까지 흘러내린 식은땀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겨우겨우 입을 떼었다. 그렇게 어려워하는 장이셴의 요청을  현은 아주 가볍게 받아들였다.


“내일 아침, 저 혼자 저 성으로 진입할 수 있게 경계인원들을 물려주시길 바랍니다.”


류 현에게 몰려있던 장중의 시선이 미친놈을 바라보는 그것으로 바뀌었다. 대놓고 티를 내는 자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조심스럽지도 않았다. 태연하게 그 시선들을 받아내고 있던 류 현에게 리커창의 오른쪽, 그러니까  현과 대각선 방향으로 꽤 떨어져있는 나이 지긋한 남자가 물어왔다.

“내가 군무 말고는 할 줄 아는 일이 없어서 그런데...혹시 플레이어 식으로 농담을 하신 것이오?”

줄 두 개와 그 사이에 별이 네 개 들어가 있는 견장을 달고 있는 남자는, 소개 받을 때 대교 계급이니 어쩌니 하고 들었지만 류 현은 전부 잊어버린 상태였다. 남자의 얼굴에 떠올라있는 불만스러움도 마찬가지로 오늘 내로 잊을 예정이었다.


“아니요. 말씀 드린 그대로입니다. 제가 성에 접근해서 정보를 캐낼 동안, 구덩이 주변에 경계를 서고 있는 인원과, 이 진지에 머물고 있는 병력들을 10km밖으로 물려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누가 쉬었는지 모를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자 연이어 작은 한숨들이 터져 나왔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에서 가장 연장자이고, 상황을 이끌어 가야할 장이셴 마저 소리 내지 않고  숨을 내쉴 정도였다.

“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아무래도 납득하시기 어려우신 모양이군요.”
“...손을 빌려달라고 먼저 요청한 쪽에서 보일 태도라는 건 알고 있소만, 저 성 안에 정확히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니까 혼자 들어가 보겠다니...류 현공, 우리 입장에서 생각해 달라고  것도 없이 본인에게도 큰 위험이 되는 일이 아니오?”
“네 뭐, 장위원님이 우려하실 만 하긴 하죠. 하지만 말씀 드렸던 대로입니다. 정보 없이 대규모 병력을 움직일 수도 없고, 또 저 혼자만이라면 어떻게든 몸은 빼낼 수 있습니다. 물론, 주변에 신경 쓸 만한 것이 없다는 가정 하에서만 말입니다.”


장이셴은 자신을 중앙위원까지 올려준 인내심으로  숨이 터져 나오는 것을 막았다. 말이야 쉽지, 한 개 사단과 백여 명의 상위 플레이어를 갈아버린 저 리치소굴에 단독으로 진입해서, 정보만 얻은 후에 몸을 빼낸다? 백 중 아흔아홉은 류 현이 빠져나오지  한다에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대박을 노리는 자일 테고.

‘저 성에 대한 정보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그래서 이렇게 무모한 짓을 하려는 것이고? 하지만 리치만 수십 마리인데 정보가 있다한들...’

어쩔  없을 것이다. 장이셴은 그리 딱 잘라서 결론을 낼 수가 없었다. 눈앞의 괴물은 백 여 명에 이르는 상위 플레이어를 집어삼킨 던전을, 열 명도 안 되는 원정대를 이끌고 모조리 클로징 해버린 괴물 중의 괴물이니까.


그래서 자신도 부정적인 입장을 펴는 보좌진의 설득도 무시하고, 한국까지 날아간 것이 아닌가? 중앙위원인 그가 고작 플레이어 하나에게 고개 숙이러 한국까지 갔다고, 정적들에게 씹을 거리까지 제공해 가면서 움직인 것이다.


‘그러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뜸 그렇게 하시오.  부탁드리겠소. 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막말로 류 현이 자기 고집대로 하다가 죽는 것에 그쳐도 골치가 아픈 일이다.


그런데 다른 것 다 떼고도 검성에 버금갈 거라는 실력을 가진 플레이어가 곱게 죽을 리도 없고, 저항과정에서 리치들을 잘 못 자극해서 구덩이 안에서 튀어나오기라도 한다면 장이셴은 정적들의 비아냥거림도 들을 수 없는 처지가  것이다. 아니, 구덩이에서 튀어나온 리치로부터 목숨을 부지하는 것조차 힘들겠지.


그리고 무슨 명분으로 군을 물리는 명령을 내릴 것인가? 결국에는 주석의 귀에 까지 들어가게 될 일이다.

만약 리치들이 튀어나오는 참사가 터진다면 본 드래곤의 분탕 때문에 끓어오른 중국 내의 여론에 리치 군단이 사는 성이라는 기름까지 끼얹어지면, 그저 골치 아픈 수준으로는  끝날 것이다.


‘문제는 다른 마땅한 대책도 없다는 것인데...’

류 현이 자신감의 근원인 정보라도 공개하지 않을까 하고 힐끗 봤지만,  현은 더는 입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오히려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제가 있으면 의논하시는 데 방해가 될 것 같으니, 저는 숙소로 돌아가 있겠습니다. 자고 있지는 않을 테니 결정이 나면 언제든 불러주시죠.”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횡하니 텐트를 떠나버린 그를 보고, 그에게 반론을 제기했던 대교 계급장을 달고 있는 자가 궁시렁 거렸다.

“나 원, 제 죽을 자리에 들어갈 테니 협조해달라고 하는 건 내 생전 처음 보는군.”

장이셴을 제외한 모든 인원이 남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장이셴은 회의를 다시 진행하기 위해서 손을 슬쩍 들어올렸다.



그로부터 2시간 후, 류 현에게 작전을 승인한다는 소식이 전달되었다. 류 현은 소식을 전달해준 병사가 당황할 정도로 짙게 미소 지으며 생각했다.


‘그래, 너희들 성격에 물 줄 알았지. 보나마나 병력들 냅두고 자기들끼리 말한 거리의 두 배는 뒤로 빠져서 대기 타겠지...제발 여기는 정상적으로 엘더 리치가 있어줬으면 좋겠는데, 변수는 본 드래곤  마리로 이미 충분하다고.’


중국 측 인원이 들으면 기겁할 생각을 품으며, 류 현은 긴장을 풀고 있던  몸을 일깨웠다. 병사는 하루 쉬면 어떻겠냐는 제안까지 같이 전달해줬지만, 그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

[흐아아아!] 푸스스스! 퍼엉! 화르륵! 빠지직! 뻐벙!


“씨발!”


배경 음악처럼 내리깔린 귀곡성 사이로 화염구, 전격의 창, 얼음 철퇴가 굉음과 함께 하늘을 수놓았다. 그 중 단 하나도  현에게 닿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를 전혀 기쁘게 만들지 못했다. 5성 이하의 리치가 이제 전생의 전성기급의 기량을 보유하게 된 류 현의 항마력을 뚫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일뿐더러, 그의 기분을 똥통에 쳐 박을만한 소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없어, 왕관 쓴 놈이! 엘더 리치  새끼 대체 어디 간 거지?’

자살시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오해까지 사가면서 진입한 구덩이 안에는, 성 안에서 다 같이 튀어나온 리치 중에는 엘더 리치가 없었던 것이다.


콰르르릉!

“아오, 씨발. 안 그래도 짜증나는데. 저 새끼가!”

대신 류 현의 항마력을 뚫고 한  먹일 수 있는 7성 리치가 그를 반길 뿐!

류 현은 욕지기와 함께 제자리에서 뛰었다. 도움닫기도 없이 뛰어오른 것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높이 떠오른 그는 각도가 잡히자, 사냥감을 발견한 매 마냥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오랜만에 전격마법 맛을 보여준 7성리치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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