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9화 〉탐식마(貪食魔) (159/429)



〈 159화 〉탐식마(貪食魔)

“알겠소. 내 다시 검토해보고 연락을 드리지.”


강 찬은 팔짱을 껴 보이는 것으로 이야기를 지속할 의사가 없음을 표현했다. 강 찬의 앞에 앉아있던 정장차림의 남자는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더니, 탁자위에 펼쳐놓은 서류들을 서둘러 갈무리했다.

“바쁘신 와중에 시간 내주신 점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소식이 오길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허리를 꾸벅 숙여 보이는 남자에게  찬은 대충 손만 흔들어서 배웅했다. 남자가 문을 나서자마자 그는 깊은 한숨을 내어쉬었다.

‘들개 같은 놈들.’


강 찬이 남자가 사라진 문을 향해서 험한 소리를 내뱉으려고 할 때였다. 문이 열리더니  입곱살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불쑥 얼굴을 디밀었다. 방안을 한 번 빙 둘러본 뒤 방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오늘 당번은 수연이 아니었냐?”


강 찬의 물음에도 남자아이는 대꾸도 없이 그를 향해서 다가왔다. 눈에 띄게 왼쪽 다리를 절면서 말이다.  찬은 아이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짧은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아이를 부축하려고 일어서지는 않았다. 아이가 그걸 원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이렇게 교육시킨 것도 자신이니까.


“수연이 지금  바르고 자.”


강 찬의 짧은 팔이 닿을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오고 나서야 아이는 입을 떼었다. 그 나이 대 아이가 낸 소리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메마른 어조였지만, 강 찬은 그것보다는 다른 쪽에  더 집중했다.

“약? 다쳤어?”
“화로 보겠다고 하다가 데였어.”
“얼마나?”

강 찬은 당장이라도  수연이라는 아이에게 달려갈 기세였다. 그의 턱을 다 덮은 턱수염이 바르르 떨렸다. 어지간히 담이 좋은 사람도 흠칫할 정도로 살벌한 모습이었지만, 남자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뚱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대꾸했다.


“팔뚝에 조금. 진액 발랐더니 다 나았어. 지금 자.”
“후으으...계집애 화로는 내가 알아서 한다고 해도 기어이...”


강 찬은 의자 위에 늘어졌다. 그는 수연이라는 여자아이에게 어떤 벌을 내려야 잘 먹힐지 고민하다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남자 아이의 모습을 발견하곤 손을 내저었다.


“차도 안 내주고 내보냈으니까 치울 거 없다. 가서 쉬거라. 아니, 수연이 옆에서 수발 좀 들어줘라.”
“...알았어.”

시원스러운 대답과 달리 남자 아이는 다시 들어올 때처럼 절뚝거리면서 방을 빠져나갔다. 남자아이가 걷는 것을 걱정 어린 눈초리로 바라보던 강 찬은, 남자아이가 문을 닫고 사라지자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마른세수를 하듯이 눈가를 비비적거리던 강 찬은 다시 등받이에 몸을 실으며 몸을 뒤로 젖혔다.

‘하이에나 같은 새끼들.’

다름 아닌 문전박대나 다름없는 대접을 받고 나간 남자를 향한 소리였다. 정확히는 그 남자를 보내온 기업과 정부부처에 대한 짜증. 자신이 투자자들을 찾아 나설 때는 문전박대를 하거나, 제대로 된 연구비는 지원도  해주고 어떻게든 기술을 빼내가려고 기를 쓰던 작자들이 이제야 협력관계를 맺고 싶다고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연구비는 대주기 싫고, 결과가 나오니까 이제 와서 결과물만 홀랑 취하겠다고? 흥, 어림도 없는 소리지.’

너무 뻔해서 짜증내는 것조차 감정낭비로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그 혼자서 낸 결과물은 아니었지만.


‘류 현. 그 친구가 이렇게 단시간 내에 거물이  줄이야.’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요 두 달간  찬을 찾아온 이들 중에서  정도는, 류 현이라는 그의 투자자를 보고 찾아왔을 것이다. 플레이어 커리어를 시작한지 이제 3년째인 그 괴물과 연결될 방법자체가 아주 드무니까. 이런 접점이라고 하기 힘든 작은 요소조차 무시하긴 힘들 것이다. 겸사겸사 강 찬이 낸 성과들에도 손을 뻗치고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운이 좋았던 건 나였군. 당장 재료 수급이 급해서 엉겁결에 맺은 인연이 여기까지 올 줄이야.’


류 현과  찬이 만난 것은 류 현이 플레이어가 된지 반년이 조금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류 현은 굉장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긴 했지만 장례를 보장하기 힘든 루키였다. 그래서 강 찬도  기대는 하지 않고 그와 계약을 했다. 어마어마한 성장세를 보여주는 루키가 벽을 만나서 망가지거나, 꽃을 다 피워보기 전에 시체가 되는 일은 매우 흔했으니까.


그 때는 그저, 그가 가진 기술을 넘보던 기업체와 손을 끊고 나서 재료 수급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임시변통으로 인연을 맺은 것뿐이었다.  때 시작한 인연이 3년 넘게 이어질 거라고는, 그 루키가 그의 연구 진전에 핵심역할을 해줄 거라고는 당시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지금에 와서는 그가 거의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 부산물이나 유물 없이는 공방은 돌아가더라도 연구 계획을 모두 폐기해야할 판이었다. 아니, 아마 공방이 지금 같이 돌아갈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무리 길게 버텨도  년 안에 다시 기업체 밑으로 들어갔어야 할 테니까. 방금 전에 응접실을 치우려고 들어왔다가 나간 소년 같은 아이들을 계속 데리고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 이상은 과분하지.’

강 찬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의 생각을 음미하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던 그는 거의 복대처럼 보이는 허리띠에서 작은 원통 하나를 뽑아내었다. 원통 보다 굵은 손가락으로 능숙하게 그 안에 든 돌돌말린 종이를 꺼내어 펼친 그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몸체 부분이 우그러져서 끝까지 힘이 전달되지 않는다고 하였지. 하지만 여기서 그 부분을 더 보강하면 무게 중심이 엉망이 되는 정도로는  끝날 텐데. 끙...균형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긴 했지만 말이지...’


그의 VVIP가 그에게 제작 의뢰한 물건이었다. 벌써 네  넘게 반복된 주문이라는 건 강 찬에게는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일회용으로도 쓰기에 괴악한 원가와 무기의 무게 중심이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대체 이런 물건을 어떻게 쓰는 겐지...주문을 수정해오는 걸로 봐서는 써먹어 보고 개선점을 찾아오는 것 같은데 도무지 상상이 안 가는군. 통짜  드래곤 뼈로 만든 물건이 한 번 찌르고 우그러질 정도면 분명히 준 퍼플급 몹일 텐데...이걸 쓰는 것도 신기하지만 이런 걸 한 번 쓰고 버리다니...그 친구 금전감각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군.’

강 찬이 끙 앓는 소리를 내며 들여다보고 있는 설계도에는 무게 중심이고, 무기 수명이고 모조리 무시한 듯한 커다란 송곳이 그려져 있었다.

손잡이 부분에서 멀어질수록 점점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굵어지는, 어떻게 봐도 괴악하다는 말 밖에 안 나오는 무기를 대체 어떻게 써먹고 있는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재료도 샌 드래곤 뼈를 고집하는 통에, 중심에 현철을 조금 박아 넣은 것 말고는 섞인 것도 없어서 유연성이라고는 찾아볼  없는, 그런 괴악한 물건이었다. 그런 물건을 류 현은 계속 사용 후기 겸 수정안을 들고 와서 수주를 넣고 있는 것이다.

‘음...이번에 엘릭서 얘기를 꺼낼  슬쩍 떠 볼까?’

강 찬은 몇 초 지나지 않아서 자신의 생각을 부정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마 그날 류 현은 자신의 질문을 받을 정신머리가 없을 것이다. 저번에 엘릭서 얘기를 꺼냈을 때도 그랬으니까. 그날  찬은 엘릭서 연구의 진전에 대해서 알려달라는 요청과 함께 류 현이 왜 엘릭서에 집착하는지   되었다.

‘하나 뿐인 혈육이 그리 되었다니 쯧쯧...’

 찬은 거의 기부라고 해도  정도로 투자를 퍼붓고 있는 스폰서의 사정을 외면할 정도로 뻔뻔하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신경 쓰던 엘릭서 연구에 힘을 쏟을 이유가 하나  생긴 셈이었다.  찬이 돌보고 있는 아까 그 소년도 비슷한 사정 때문에 다리를 절고 있었으니까. 겉보기에는 다리 저는 것으로 끝났을 뿐이다.


‘이렇게 보고 있어봐야 답도 안 나오니 조제실에나 가 봐야 겠군.’

 찬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오늘은 좀 더 오래 조제실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생각이었다.

한 편  찬의 후원자인 류 현은,

[키이이이!] 콰직! [꺄아아아아악!] 뿌드득! 빠지직!

동화 속 나무꾼 마냥 혼신의 힘을 다해서 나무를 베는 중이었다. 동화  나무꾼과 그의 차이점이라면,


[끼이이이이!] 뚜두둑! 촤아악!

그가 도끼로 두들기고 있는 검은 나무가 아파트 10층 높이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놈이라는 것과 도끼질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 검은 나무는 동물의 것 같은 비명을 내지르며 거대한 몸을 뒤틀었다. 그 와중에  현과 인접해있는 가지들이 그를 향해서 쇄도했지만,

터텅! 뚜둑! 무형의 장막에 가로막혀 부러져나갔다.  현이  필요 없다고 했지만 화련이 바득바득 우겨서 그에게 걸어놓은 방어막이었다. 방어막은 류 현의 예상보다 훨씬 굳건하게 그의  뒤를 지켰다. 그 방어막을 쳐준 화련은 지금도 류 현의 등뒤 방향에 떠있으면서 방어막이 닳아 없어지는 타이밍만 기다리고 있었다.

‘음, 힘 낭비하지 말고 정비 시작하라고 하면 화내겠지?’

마음은 콩밭에 가있었지만 류 현의 도끼질은 강맹했다.

콰지직! 류 현이 있는 힘껏 내휘두른 도끼가 다시 나무의 몸을 파고들었다. 그 틈으로 자신이 식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검붉은 액체가 솟구쳤다. 류 현은 신경 쓰지 않고 도끼를 끌어당겼다. 아니, 아주 신경 쓰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으니까. 살이 드러난 부분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송장목의 진액까지 얼굴 여기저기에 묻어있어서 험악하기 그지 없는 모습이었다.

‘퍼플 던전 보스 꿰찬 송장목은 처음 보는데...덩치도 그렇고, 이놈 방어막 강도도 그렇고 블랙에 한 발 걸치고 있다고 봐도 될 수준이야. 송장목 보스몹이라...진액 효과도 더 괜찮겠지? 강 찬한테 1/3 정도 넘기면 연구에 도움이 되려나? 아냐, 한 번에 그렇게 다 넘기기는 건 좀...’


 퍼플 던전급의 보스몹 몸에 매달려서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류 현은 딴 생각을 하며 도끼를 계속해서 후려쳤다.

[끼아아악!]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듯한 송장목의 비명만이 회색 숲에 울려 퍼졌다.

***

꾸우웅! 현실세계의 숲이라면 숲속의 온갖 새들이 동시에 날아오를 법한 굉음이 숲을 울렸다. 그 소리에 반응할 만한 괴수까지 모두 몰살시킨 후라서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지만.

“으뜨뜻-”

나무가 아니라 아파트 붕괴현장이라고 해도 좋을 폐허 속에서 걸어 나오면서  현은 한가롭게 기지개를 켰다. 그런 류 현의 표정을 드물게도 밝기 그지없었다.

뒷산에 운동 나온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저 남자가 10층짜리 아파트 규모의 덩치를 가진 괴수를 혼자 벌목해버린 이라고 하면 누가 믿을까. 화련은 고개를 작게 내저으며 류 현에게 수건을 내밀었다.

“고생하셨어요.”
“아, 감사합니다. 화련 씨랑 희란 씨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젠 퍼플은 안정궤도에 올랐다고 해도 될 정도네요.”
“아, 네. 수, 수고하셨어요. 마스터.”
“혼자서 저런 걸 벌목해버리고 나서 띄워주셔도 하나도 안 신나거든요?”

화련이 삐뚜름하게 그를 올려다보며 대꾸하자 류 현은 허허 웃었다. 그리고 자신이 떼어버린 송장목의 머리 부분을 가리켰다. 살아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파릇파릇한 몸통과 달리 머리 부분은 비쩍 말라비틀어진 채였다.

“아시다시피 저놈이 보통 비싼 놈입니까. 보통 놈들처럼 본체를 땅 속에 묻어두고 있으면 모르겠는데 저렇게 되어있으니 제가 나서야지요.”

송장목이라는 카테고리를 거부하는 것처럼 거대한 놈은, 보통 송장목과 구조마저 달랐다. 땅속에 뇌와 소화기관을 숨겨놓는 게 아니라 위쪽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류 현이 달려들어서 머리 부분을 쳐내고 재생하기 전에 에너지 드레인으로 빨아들여서 죽였다. 송장목의 진가는 몸통의 체액이니까.

“판적도 없으신 분이 비싸다고는 말은  하시네.”
“두 분 몫은 충분히 후하게 쳐 드릴 테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류 현은 계속해서 웃는 낯이었다. 화련은 류 현의 표정을 한 번 뜯어보더니 픽 웃으면서 말했다.


“저도 이런  가지고 돈 더 달라고 할 정도로 수전노는 아니거든요? 엘릭서인가 뭔가 진전 있으면 그 때 저 따돌리지나 마세요.”

류 현은 입가의 미소를 더욱 깊게 하며 대답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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