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3화 〉탐식마(貪食魔) (153/429)



〈 153화 〉탐식마(貪食魔)

남자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탁자 주변을 서성거리던 남자는 손톱을 짓씹어대더니, 다시 의자에 앉고 5분을 채 채우지 못하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그 와중에 편집증 환자라도 되는  알아들을  없는 말을 무어라 중얼거렸다.

턱의 괴고 그 모습을 뚱하니 지켜보던 승하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렇게 불안하면  쪽으로 가던가. 여기는 내가 보고 있을 테니까. 네가 그러는  보고 있으니까 나까지 불안증 생길  같네.”


남자의 고개가 그녀를 향해서 휙 돌아갔다. 남자, 류 현은 심히 억울하다는 시선으로 승하의 핀잔에 응수했다.

“그럼 똥마려운 강아지 마냥 그러질 말던가. 정신 사나워 죽겠네.”

승하의 불평에 류 현은 한숨을 토하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오래가지 않아서 다리를 떨기 시작했지만, 승하는 포기했다는 듯이 그 모습을 슬쩍 외면했다.


“...진짜 가봐야 하나?”

혼자 중얼거리는 말에 승하는 못 말리겠다는 표정이 되어선 그를 뜯어말렸다.

“6성 리치는 처음 발견되긴 했지만,  마리뿐이잖아? 그 옆에 딸려있는 골렘이 좀 켕기긴 하지만 5미터는커녕 3미터도 힘들어 보인다고 하고.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런데, ‘예거즈’애들이 그렇게 약하진 않거든? 구정아가 쓸데없이 딴 짓거리 하고 있어서 그렇지.”

류 현의 고개가 목 관절 건강이 염려될 정도로 휙 돌아갔다. 류 현은 5성과 6성은 반지 하나 차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 존재라고 열변을 토하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지금 시점의 그는 몰라야하는 정보니까. 이번 생에서는 6성 리치는 이번에 첫 발견된 거니까. 6성부터는 개체마다 차이가 크지만 기상조절 마법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는 것도, 지금 이 시점에서는 아무도 몰라야하는 일이다.


거기에 승하의 말은 납득할만한 것이기도 했다. 검성이 있든 없든 ‘예거즈’는 강하며, 이전보다 빠른 6성 리치 출현에 피해가 커질 수는 있어도 못 막을 정도는 아닐 것이다. 웨인에게 들은 바로는 ‘예거즈’ 단독이 아니라 군도 같이 연계하는 듯하니까. 옆에 골렘이 붙어있다곤 하지만 전해들은 바로는 블랙급 크기이니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젠장,  진정해. 그 정도면 ‘예거즈’에서 알아서 처리할 수 있어. 평양에 있는 놈들이 누나가 있는 병원까지  일은 없다고.’


생각과는 달리  현의 시선은 탁자 위에 올려둔 휴대폰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

나승하는 제각기 다리를 떨고, 손톱을 다 먹어치울 기세로 짓씹고 있는 남녀 한 쌍을 번갈아보다가 소리 없이 한 숨을 내쉬었다. 자신만 보면 떽떽거리던 혜라의 심정이 이해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슨 팔자도 없는 보모짓...아니지, 쟤들은 그런 식으로 훈계도 못 하잖아.’


“둘  계속 그러고 있을 거야?”

승하의 물음에 두 쌍의 시선이 그녀에게 모였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원하는 대답은 들을  없었지만, 승하는 류 현과 화련의 시선이 류 현의 휴대폰에 꽂혀있는 것만으로도 대답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이런 소리 하게  줄 몰랐는데, 그러고 있는 거 기력낭비야.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고.”


화련과 류 현은 약속이라도  것처럼 동시에 승하를 흘겨봤다. 승하는 반대 입장에서 수없이 들어봤어도 해본 적은 거의 없는 핀잔을 내뱉으며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부러움 비슷한 감정 또한.

‘가족...이라.’


그녀의 기억 속에는 가족이 없다.

지금 같은 시대에는 매우 흔한 일이다.

각국 정부는 괴수 방어체제가 완벽하다고 호언장담하지만, 괴수로 인한 민간인 피해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으며, 7년도  된 과거라면 그건 거의 일상에 가까운 일이었다. 피해 당사자들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커다란 흉터겠지만, 혈육을 잃는 일은 던전의 시대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류 현, 류세아 남매가 정부가 지원해주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던 것도, 정부가 고아 구제에 특별한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시대가 그랬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에서 부모의 직업을 묻는 게 아니라, 양친의 생존여부부터 묻는 시대.

나승하는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자신이 운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녀는 천애고아였지만, 그녀에게는 괴로움을 느낄 기억 같은 게 없었으니까. 자신을 어르는 어머니의 손길도, 누가 봐도 독보적인 미모를 가진 딸의 미래를 걱정하면서도 흐뭇해할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그녀는 가지고 있지 않다.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지우개로 지워버린 것처럼, 양친에 대한 기억이 사라진 것이다.

아니, 사라졌다는 표현은 이 경우에는 적절치 않을지도 모른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 들어가기 전 기억 자체가 그녀에겐 없으니까. 부모의 손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행복하게 살던 공주님이었을지, 그 이전에도 고아였을지 그녀는 알지 못한다. 최초의 기억은  세상은 불바다였고, 구조요원이 자신을 들쳐 업고 그 지옥에서 탈출했다는 사실.

사라진 기억을 보충해  기록조차 없다. 출생신고도, 이름도 고아원으로 들어가면서 생겼다. 그녀는 제 정확한 나이조차 모르는 것이다.

그런 내력으로 괜한 심술이나 한 번 부려볼까 싶었지만, 승하는 이내 생각을 접었다. 그걸로 기운을 차리면 해보겠지만,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화만 낼 게 뻔했다.

“그렇게 걱정되면 전화라도...”

그 때였다. 류 현이 눈빛으로 구멍을 낼 기세로 바라보던 휴대폰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류 현은 벌떡 일어나서 휴대폰을 내려다 봤다. 휴대폰 화면에는 웨인 크로이츠라는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  현은 휴대폰이  번 떨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예, 류 현입니다. 웨인 씨, 뭔가 변동사항이라도...? 네, 네.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상통화가 아니어서 바다 건너에 있는 웨인이 볼 수 없음에도 류 현은 휴대폰에 대고 절이라도 할 것처럼 허리를 구부렸다. 류 현은 전화를 끊자마자 무너지듯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현이 전화를 받을 때 같이 벌떡 일어서서 안절부절 못하던 화련이 먼저 입을 떼었다.

“뭐래요?”
“잡았답니다. ‘예거즈’의 ‘사냥개’팀이랑 산군의 ‘산지기’팀이 연합해서 평양 외곽에서  다 잡았다고 합니다.”

뒤로 갈수록 목소리가 가늘어졌지만 화련은 그런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화련은 류 현과 마찬가지로 자리에 무너졌다. 그녀는 뭔가 얹힌 사람처럼  가슴을 몇 번 때리더니 길게 한 숨을 뿜어내었다. 승하는 턱을 긁적거리면서 류 현의 기색을 살피다가 그와 눈이 마주치자 물었다.

“피해는?”
“아, 부상자는 좀 있는데 사망자는 없답니다. 자세한 사항은 웨인 씨도 아직은...”
“흐응...그래도 6성이라길래 피 좀  줄 알았는데 의외로 쉬웠나 보네?”


‘예거즈’나 ‘산군’의 관계자가 듣는다면 거품을 물만한 발언이었지만, 류 현은 굳이 그 사실을 지적하진 않았다. 파주의 X던전에서 그들은 6성에 한없이 가까운 5성리치를 한 번 상대해봤으니 승하가 그리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실제로 승하보다 6성리치의 전력을 잘 아는 류 현도 원정대가 고전하리라고 예상했었으니까. 그래서 승하에게 한 소리 들을 정도로 안절부절 했던 거고 말이다.

‘그 6성리치 수준이 생각보다 떨어진 건가? 그래도 리치만큼 개별 전력이 균등한 놈도 없는데...아님 역사가 달라져서 김수혁의 포텐이 더 빨리 터지기 시작한 걸까?’

류 현은 추가 김수혁의 성장 쪽으로 기우는 것을 느끼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변수에 연달아 펀치를 얻어맞고 나서인지 몰라도, 근거 없이 위안거리를 찾게 될 정도다.

‘긍정론은 도움이 안 돼. 정신 차려라.’

뒷목을 주물럭거리며 자책하던 그는 자신이 밤 내내 한 숨도 붙이지 못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하룻밤 날로 샌다고 문제가 생길 몸은 아니었지만,  며칠 돌아가는 꼴을 보면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 컨디션 관리를 허투루 할 수는 없다.


“전   붙여야겠습니다. 이제야 잠이  거 같네요.”


***

“예...?”

류 현은 되물으면서 스스로에게도 자문해봤다.

‘진짜 내 손이 안 미치는 곳부터 터지는 건가?’

스스로 생각해도 웃기지도 않는 가정이었다. 하지만 류 현은 그 웃기지도 않는 가정을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그가 자리를 비우자 한국에 뜬금없이 6성리치가 나타나고, 그 사건이 정리 된지 반나절도 안 돼서 연달아 일이 터졌으니까.

자신이 카이로를   전에 떠났고, 계속 있을 예정이 없었다는 사실은 그의 머릿속에서 밀려난 지 오래였다. 그 사실을 떠올렸더라도 그에겐 별로 도움이 안 되었을 것이다. 눈앞의 광경은 그만한 충격을 그에게 선사했으니까.

류 현은 멍하니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봤다. 그의 옆에는 이미 한 번 봤지만 이 기괴한 광경에 눈을 뗄 수 없는지, 마른 침만 꼴깍꼴깍 삼키고 있는 팀원들이 붙어있었다. 덤으로 백혜라까지. 그녀들은 반쯤 벌린 입에 누가 손가락을 집어넣어도 모를 정도로 영상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재생되고 있는 영상은 음소거가   마냥 조용했다. 카메라가 조금씩 움직이면서 간간히 나오는 소음이 아니었다면 무음촬영이라고 믿을 정도였다. 카메라는  곳을 비추고 있었다. 인간이 사라진 후 녹음을 되찾은 초원을 비추고 있었다. ‘대소환’ 이후, 무인지대를 넘어서 금인지대가 된 그 초원을 뭔가가 가로지르고 있었다. 하나가 아니라  십 개가.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것들은 영상 상으로는 점으로 보일 뿐이었다. 특이한 점은 점들이 하나같이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

여기까지였다면 별 특별한 점을 찾아볼 수 없는 다큐멘터리 영상이었을 것이다.


갑자기 카메라가 움직임을 멈췄다. 쿠웅! 영상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런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카메라맨이 떠는 것인지, 아니면 카메라가 설치된 땅이 떨리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카메라가 잘게 위아래로 떨었다.


그리고 진동을 일으킨 존재가 카메라 렌즈에 모습을 드러냈다.


카메라와 얼마나 근접한 거리를 스쳐지나갔는지 몰라도, 그것은 앞서 카메라가 찍은 점들보다 월등하게 컸다. 원근감을 고려하더라도 못해도 3미터는 가볍게 넘길 듯싶었다. 그 거대한 존재는 카메라맨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한 것인지 방향을 꺾어, 앞서간 점들이 향한 방향으로 뒤따랐다. 거대한 존재가 점점 작은 점들처럼 변하고, 영상은 거기서 끝이었다.


“...라가 챔피언.”


류 현이 거대한 존재의 정체를 입에 담자,

-예, 맞습니다. 육안으로 식별할 만한 영상은 이것뿐입니다만, 그 외에 목격담이 셀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웨인의 목소리가 그에 동의해왔다.  현은 또 다른 노트북 화면에 출력되고 있는 그의 얼굴을 돌아보고 말했다.


“확실한 겁니까? 협회의 정보력을  믿겠다는 게 아니라...”
-이해합니다. 저조차도 세 차례 더 확인해봤을 정도니까요. 보자마자 당장 카이로로 날아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래선 구경꾼만 하나 더 늘리는 꼴 밖에 안 되겠죠.-

류 현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것이 조작된 영상이 아니고, 웨인이 수집한 증언들도 사실이라면 저곳에 필요한 건 플레이어만이 아니다.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겁니다만, 협회가 끌어 모은 석판 중에서 저런 현상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까?”


화면 너머의 웨인은 쓴웃음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요, 없습니다. 있었다면 아프리카를 저렇게 방치하지도 않았겠지요. 손해를 보든 어쩌든 폭격을 강행했을 겁니다.-

류 현은 입을 감싸 쥐고 침음성을 삼켰다.


‘미치겠군.’


그가 다시 들여다본 노트북에는 다시금 그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이걸 날 더러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검은 점들이, 라가들이 어딘가로 향하는 장면이 말이다.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평생 없던 편두통도 생기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속사정을 안다면 누구나 류 현의 기분에 동의 했을 것이다.

웨인이 지금까지 끌어 모은 정보에 의하면 저런 행동을 보이고 있는 라가무리가 만을 헤아리고 있었으니까. 이로 인해서 아프리카 전역이 계엄령이 떨어진 건 덤이었다.

그리고 웨인이 조심스럽게 내놓은 예측경로를 통해서 류 현은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사실까지 유추해낼 수 있었다.


‘설마...진짜 카이로로 가는 거야? 왕의 영지라는 이름이 이런 의미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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