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8화 〉탐식마(貪食魔) (148/429)



〈 148화 〉탐식마(貪食魔)

‘...어?’


류 현은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가, 마력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확실하게, 확실하게 확인해야 한다.’


류 현은 조심스럽다 못해, 편집증적으로 세아의 거부반응에 맞춰서 마력을 움직였다. 가슴께에서 한참 머뭇거리던 그의 마력이 천천히 어깨를 넘어서, 머리로, 양팔로 흩어져갔다.

전에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류 현은 마력조작에 온 신경을 쏟았다. 저도 모르게 찌푸려진 미간 사이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


세아의 정수리까지 도달하고도  현은 마력을 거둬들이지 않고 거듭 확인했다. 자신의 짐작이 맞더라도  볼일 없는 손가락 하나하나까지 일일이 다시 확인했다. 자신의 집중력이 한계에 달할 때까지.

“후...”
“현아?”

류 현이 손을 놓자 세아도 따라서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뜨고 있어도 거의 보이지 않는 눈이었지만, 류 현을 따라서 바짝 긴장했던 세아는 동생이 꽤나 지쳤다는 걸 눈치 챘다.


“아, 괜찮아. 간만에 집중하니까. 조금 빡세네. 하하.”

 현은 과장되게 웃어 보이며 세아의 우려를 받아넘겼다.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지만 말이다.

“나 세수 좀 하고 올게.”
“응, 갔다 오렴.”

계속 평정을 가장하고 있을 자신이 없었기에 류 현은 일단 자리를 떴다. 평소라면 병실에 딸려있는 화장실을 썼겠지만, 류 현은 세아가 이상하게 여기기도 전에 복도로 나왔다. 그는 병실문에서 네다섯 걸음 떨어진 후에 벽을 짚으며 멈춰섰다.


‘저번에 봤을 때보다 눈에 띄게 늘어났어. 이게 대체...’

빠득!  어금니를 씹어 먹기라도 할 것처럼,  현은 이를 사려 물었다. 지금 상황은 어떻게 봐도 청신호라고 보긴 어려웠다.

‘대체 왜...? 누나 몸에 마력이 쌓일만한 요소는 전혀 없는데?’


플레이어들은 어떤 능력을 각성했든 간에 던전에 들어가서 괴수를 잡아, 마력을 쌓아가는 것으로 성장한다. 플레이어가 가진 능력이 자동차 엔진이라면, 마력은 가솔린이라고 할 수 있다. 가끔 마력만 깨우치고, 별다른 능력이 없어서 맨바닥에서 마법사의 길을 걷는 경우도 존재하지만, 그 경우에도 마력을 깨우친다는 건 변함없다.


마력에 대한 인지와 그 무형의 힘을 쌓을  있는 토대가 생기는 것. 그것이 플레이어와 일반인의 차이점인 것이다.


만에 하나 준비가 안 된 일반인의 몸에 마력이 들어가는 일이 발생하면?

둘 중의 하나다. 끔찍한 격통에 시달리다가 그 자리에서 죽거나, 아니면 천천히 내부 장기들이 하나 둘씩 망가져서 죽거나.

류 현의 누나인 세아의 경우에는 후자 쪽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되기 전에 아지다하카의 극독에 죽었지만, 당시에 류 현이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었으니 아마 그렇게 되었을 터.

즉, 각성이라는 준비가 되지 않은 인간에게 마력은 독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애초에 세아의 병세는 마력이라는 이물질이, 그녀가 일하는 도중에 아주 극소량이나마 들어왔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수치로 표현하기도 어려운 극소량의 마력이 온몸에 퍼져서 그녀의 몸을 갉아대고 있는 것이다.


‘...그 때보다 못해도 세 배는 늘었어. 대체 왜?’


저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께까지 물이 들어찬 기분이었다. 류 현은 가슴이 죄여 들어오는 듯한 감각에 제 가슴을 두드렸다. 그러면서 발걸음을 다시 떼었다.

‘마력이 늘었어. 그건 분명해. 거기에...겉으로 보기에는 누나 상태도 나빠진  없어.’

세아의 안에 자리를 잡고 있던 마력이 늘어났다. 어떻게 봐도 좋게 보기 힘든 변화였다. 그녀의 병은 괴수 시체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스며든 마력으로 인한 것이다.


원리? 모른다. 그걸 알 수 있었다면 류 현이 마력 포션 레시피를 태양그룹에 제공한 것만으로, 10자리가 넘어가는 돈을 버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또, 세아 같이 고통 받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마력이 병세의 원인이라고 결론을 내렸을 뿐, 그 외에는 어떤 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어떤 이는 같은 작업을 해도 멀쩡하고, 어떤 이는 세아와 같은 증상을 호소했다. 체내에 침투한 마력량의 차이에 주목할 법도 했지만, 그걸 측정할 방법도 없었다.  현 조차 자신의 기준을 세우고 숫자를 매기고 있을 뿐, 다른 이의 몸에 적용할만한 잣대는 아니었다. 누나의 치료에 쓰일 잣대로는 더더욱.

애초에 그가 쓰는 단위를 적용하기에는 양이 너무 적었다. 이전 생에서는 말이다.


‘비교도 안 된다. 그 때...랑 비교해도 압도적이야.’

잠깐 세아가 죽기 직전의 일을 떠올린 류 현은 애써 분노를 억눌렀다. 아무리 꿈꾸기를 반복하고, 덤덤해지려고 해도 그 때 일을 떠올리면 주체가 되질 않았다.

‘...이러다가 아지다하카 그 새끼랑 맞닥뜨리자마자 닥돌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군...젠장, 집중해라. 멍청아, 지금이 그런 생각할 때냐?’

류 현은 비틀비틀 걸음을 옮겨, 화장실에 도달했다. 류 현은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출입문을 닫아걸고 걸쇠로 잠갔다. 이 층을 전세  것과 다름없는 상태인지라, 들어올 만한 사람도 없었지만 격리된 느낌이 필요했다.


‘...정리하자. 누나의 마력량이 늘었어. 병세는 누나가 숨기는 게 아니라면 동일하다. 왜 늘었을까?’

용의선상에 바로 떠오르는 건 하나 밖에 없었다. 송장목 진액.


‘송장목 진액?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저 마력량 증가는 설명이 안 돼.’


 현이 세아에게 몸보신용으로 꾸준히 복용시킨 송장목 진액은 분명히 마력을 함유하고 있다. 던전에서 나온 괴수의 피 같은 것이니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걸 장복했다고 마력량이 늘어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송장목 진액의 해독방법이 널리 알려진 뒤에도 그런 사례는 들어본 적이 없다. 애초에 괴수고기 같은 걸 집어먹는다고 해서 류 현같이 마력량이 늘어나진 않는다. 마력을 받아들이기 좋은 몸이 되는 것 뿐. 그것도 플레이어에게나 해당 되는 소리다.

만에 하나 효과를 본 이가 숨기려고 했다고 해도, 숨기기에는 송장목 진액의 수혜자가 너무 많았다. 송장목이 희귀괴수라고는 하나, 3차 ‘대소환’ 이후에는 그런 구분이 무의미해진다. 그리고 그 수혜자 중에는 돈 많은 일반인들도 있었다.

류 현 본인은 섭취할 경우 마력을 얻을 수는 있지만, 그건 송장목 진액의 특성이 아니라 류 현의 특성일 뿐이다. 거기다가 늘어나는 마력량도 극히 미비하다.

‘송장목 진액이 문제를 일으켰을 가능성은 적어. 아니, 없다고 봐야겠지...차라리 다른 게...다른 게 뭐가 있지?’

머리를 움켜쥐어 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류 현은 눈을 돌려 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지만, 일반인 몸에 마력이 들어앉아있는 게 좋지 않다는 건 확실하니까.

‘빨아들일  있나? 화련  때처럼?’


류 현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다. 화련이 벽을 넘게 해줄 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돌아왔다. 마력 조절능력은 그 때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월등해졌다. 힘을 되찾는 와중에 치른 전투들도 계속 경험치로 쌓였으니까.


하지만 류 현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 누나가 버틴다는 보장이 없어.’

류 현이 제 마력에 섞여있는 ‘탐욕’을 떼어내더라도, 세아가 버틸 수 있을  같지가 않았다. 맞게 변환한 것도 아닌 남의 마력을 몸에 집어넣는 건 플레이어에게도 굉장히 부담스러운 행위다. 실제로 화련은 그 때 시술이 수월하게 되었음에도, 거의 12시간을 뻗어있었다.


더군다나 세아는 마력에 취약한 일반인이 아닌가?  몸 안에 있는 마력만으로 몸에 상당한 부하가 걸려있을 텐데, 그보다 많은 마력을 밀어 넣었다간  안의 마력을 빨아내기도 전에 사단이 터질 수도 있다.

‘잠깐, 그럼 희란 씨는...? 그 정도 컨트롤 능력이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일반인한테 ‘연결’이 통하나?...젠장, 또 테스트 대상을 구해야하나? 희란 씨한테는 어떻게 설명해야...’


 현이 화장실을 나선 건, 돌아오지 않는 동생을 걱정한 세아가 그에게 전화를 건 후의 일이었다.


***

“후우...”


류 현은 셔츠 단추하나를 풀고 넥타이를 끌어내렸다. 그 상태대로 둔다고 플레이어인 그의 강대한 육체가 영향을 받을 일은 없지만, 이러니 한결  나은 듯했다. 마음 같아선 맞지도 않는 정장을 벗어던지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일이 남아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현이 뒷목까지 주무르기 시작하자 가만히 지켜보던 화련이 물었다. 그녀도 류 현처럼 멀끔한 정장차림이었다. 전날에 전화했을 때는 사이즈 안 맞으면 못 나갈 수도 있다고 투덜거렸지만, 불편한 기색이라곤 없었다.


“일...일이라...아닙니다.”
“백프로 있으시네...속여 넘길 의욕은 있는 거에요?”
“...하하.”


류 현은 공허하게 웃으며 소파에 몸을 기대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녀의 말처럼 멀쩡한 척을 할 의욕조차 나질 않았다. 유성우에 대한 거래를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면, 협회의 요청이고 뭐고 다 무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휴식기 동안 잘 쉬는 게 중요하다면서 던전 근처에도 못 가게 해놓고는 정작 본인은  그래요?  봐도 잠도 제대로 못 잔거 같은데. 것도 하루가 아니고 며칠. 세아 언니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요? ...사흘 전에 갔을 때는 괜찮으셨는데?”

화련의 돌직구에  현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했다. 그에게 대놓고 세아에 상태에 대해서 언급하는 사람은 그녀 밖에 없다. 그와 교류하는 이들 모두가 세아가 어떤 상태인지 알 고 있으니까. 좋아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알고 모두가 언급을 피하고 있다.


가족이 같은 일을 겪고 있는 화련도 요 근래에서야 이렇게 대놓고 묻게 되었지만.

‘처음 아프리카 다녀온 이후였나...?’


“나빠진 건 아닙니다.”
“그럼 우울해 하시는 거에요? 전에 갔을 때 보면 이것도 아닌 거 같은데...”
“그게...좀 이야기가 깁니다만.”
“뭐 어때요? 아까 그 아저씨 표정 보니까, 한참 통화하고 올  같은데 시간 때우기로 괜찮겠네요.”


웨인의 대리로 온 협상자는 류 현이 설명을 끝마칠 때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마스터가 마력조정을 잘 하는 줄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객관적인 지표로 써먹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감으로 잡은 거고, 제 컨디션에 따라서 조금씩 변하니까요.”
“그거 감안해도 대단한 거죠. 남들은 그냥 되는 대로 마력 때려 박는 식인데. 그나저나 흠...세아 언니 안에 마력이 늘어난 건 언제부터에요?”
“확실한 건 청뢰를 얻고 나온 직후였죠. 그 때 확인 했으니, 그 이전에는 어느 정도 페이스로 늘어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도 공백기가 길어서...”
“그럼 열 달 정도 된 거네요. 그 동안 세 배 가량 늘었고...송장목 진액 타서 먹였다고 하셨죠?”
“예, 그런데 그건...”
“원인으로 보긴  그렇죠. 일반인보다 마력 받아들이기 좋은 플레이어도 그거 먹는다고 늘어나거나 하진 않으니까요. 하지만, 확실히 달라진  이거뿐이잖아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일단 이것부터 끊고 보죠. 하나하나 제하다 보면 뭔가 잡혀도 잡히긴 하겠죠. 저, 마스터 그런데...”
“?”


 현은 갑자기 머뭇거리는 화련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제 무릎을 탁 쳤다. 이렇게 무신경할 수가!

“이모님 마력량 체크는 언제쯤 할까요?”
“빠, 빠르면 좋긴 한데. 휴식기인데 괜찮으시겠어요?”
“아뇨, 제가 너무 무신경했습니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아! 맞다. 마스터 이건 어때요?”

화련은 갑자기 뭔가 떠올렸다는 듯이, 탁자위에 올려져있던 계약서 견본을 하나 뒤집더니 그 안에 선을 죽죽 긋기 시작했다.  현은 순식간에 화련의 설명에 빠져들었고,


“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죄송합니다. 워낙 중요한...?”


후덕한 인상의 협상자가 돌아올 때까지 그녀의 설명은 계속 되었다.


***

병실 안은 때 아닌 별빛으로 가득했다. 시력을 거의 잃다시피 한 세아조차 확연하게 느낄  있을 정도로, 병실 안은 별빛을 닮은 마력반응으로 가득했다.

그 중심에서 가장 빛나는 기둥의 중심에 서있던 화련은 한계까지 끌어당겼던 긴장의 끈을 슬쩍 놓았다. 그녀가 긴장을 끈을 놓자, 방안을 가득 채우던 별빛들이 거짓말처럼 사그라졌다.


“후우, 끝났어요.”

미간에 맺힌 땀을 찍어내는 화련의 어깨가 잘게 오르락내리락 했다. 꽤나 지쳤는지, 얼굴이 살짝 질려 보일 정도였다.

“고생하셨습니다.”
“마스터도 우리 이모 봐주시느라 고생하셨으니까. 쌤쌤이죠.”


류 현은 눈웃음으로 답했다.


그는 병실 천장을 올려다보며 눈으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병실 천장에는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옅은 안개 같은 것이 어려 있었다. 집중하지 않으면 느낄 수도 없는, 자연 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마력밀도. 류 현은 의자를 가져와서 밟고 오른 뒤에 손으로 슬쩍 천장을 훑어보았다. 정말 미미한,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고 만지지 않으면 모르고 넘어갈만한 저항감이 느껴졌다.


‘이런 느낌인가...뭐, 누나가 불편할 일은 없겠네.’

화련이 병실 안에 둘러놓은 건 일종의 필터였다. 화련은 그보다는 논두렁의 물길 같은 거라고 했지만, 류 현이 느끼기에는 그랬다.

목적은 병실에 자연스럽게 밀려드는 마력을 비껴나게 하는 것. 세아의 몸 안에 마력이 쌓이고 있다는 말에 화련이 생각해낸 대책이었다. 뭐가 원인인지 알 수가 없으니, 일단 차단할 수 있는 것들은 다 차단해서 진전되는 거라도 막고 보자는 의견이었다.

누나의 몸에 쌓이는 마력에 발만 동동 구를 뿐, 뾰족한 방법을 찾아내지 못해서 밤잠만 설치던 류 현은 단박에 동의했다. 그 결과, 류 현은 화련의 이모의 상태를 확인해주고,  병실 모두에 이렇게 결계를 설치한 것이다.


영구적으로 유지되는 것도, 에너지원을 해결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 정도 불편함은 감수할 만했다. 아무것도 못하고 손 놓고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다...끝난 거니?”
“네, 언니. 달리 신경 쓰실 건 없어요. 이전이랑 똑같다고 느끼실 테니까.”
“그렇구나...”


화련은 힘든 작업을 방금 마친 사람답지 않게 삼십 여분을 세아의 말상대를 해주었다. 류 현은 평소처럼 그 모습을 구경만하다가, 늦었으니 화련을 바래다주라는 세아의 성화에 등 떠밀려 병실 밖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병실 밖으로 모습을 감춘 후, 혼자 남은 세아는 멍하니 병실천장을 올려다봤다.

그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세아는 시력이 실명에 가깝게 약해진  후부터, 뭘 봐도 흐릿하게만 보이는 눈으로 뭘 보는 것보다는 감고 있는 쪽을 택했다. 차라리 막혀 있다고 여기는 게 훨씬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시력을 잃다시피 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시선처리가 이상할 거라는 우려도 섞여 있는 행동이었다.

그런 세아의 두 눈동자가 천장을 훑어 내리듯 빠르게 움직였다.


세아의 눈에는 평소처럼 희뿌연 광경만이 비춰질 뿐이었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화련이 그려놓은 마법진의 궤적을 정확하게 훑었다. 마법진을 새겨놓은 화련도, 눈의 주인인 세아조차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그녀의 눈동자만은 그것을 기억하려는 듯 마법진의 중심을 응시하다가 눈꺼풀이 감겼다.


그대로 선잠이 들었다가  현의 귀환과 함께 깨어난 세아는, 자신이 천장을 바라봤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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