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화 〉탐식마(貪食魔)
오희란의 능력은 플레이어라는 범주 내에서도 굉장히 특이한 편이다. 플레이어의 능력은 아무리 특이해도 괴수에 대한 공격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 같은 게 대부분이다.
류 현의 ‘에너지 드레인’이나 ‘강림’은 대놓고 상대적으로 플레이어보다 강대한 괴수를 겨냥하고 있는 듯하고, 화련이 언제나 입버릇처럼 효율이 나쁘다고 한탄하는 그녀의 공간 마법은, 괴수가 상대가 아닌 경우에는 현재 수준으로는 염동력의 다른 버전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효율은 염동력이 압도적이다. 염동력의 경우에는 단단한 투사체 없이는 괴수의 항마력의 가장자리도 긁어내지 못하니 문제가 있지만.
검성이 이능력 대신 받은 마력 운용방법에 대한 기억은 다른 부류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괴수가 상대가 아니면 그보다 파괴적인 무기는 현대에 널려있다. 그녀의 마력검이 아무리 대단해도 도시단위를 한 방에 쓸어버릴 수는 없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플레이어들의 능력은 결국 괴수를 상대할 때 가장 빛을 발하는 것들뿐이다. 혹은 괴수 상대가 아니면 현대 병기에 밀려 빛을 잃게 되는 것이거나.
마법사가 10분 가까이 차지해서 쏘아내는 대규모 화염마법은, 괴수가 파괴 대상이 아니라면 국방부 장관 지시 한 번에 쏘아지는 지대공 미사일 하나보다 못하고, 여태껏 못 뚫은 괴수가 없는 검성의 마력검도 대인살상력으로는 포탄 한 방보다 못하다. 대 플레이어 전이 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결국 대 괴수전에서 그들의 능력은 가장 크게 빛을 발한다.
하지만 희란의 능력은 좀 다르다. 그녀의 능력은 그 자체로 공격력이 없는 건 물론이요. 대 괴수 전이라고 해서 비상한 효율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괴수를 대상으로 하는 능력도 아니다.
그녀의 ‘연결’을 최대 효율을 뽑으려면, 마력탱크라고 불러도 무방한 이가 팀원 중에 한 명 있어야한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머리가 조금이라도 돌아가는 우두머리가 있다면 그녀의 능력으로 이득을 보는 게 어렵진 않겠지만, 지금 같은 효과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녀 또한 이 정도 성장속도를 보이는 것은 불가능 했을 테고.
거기에 희란의 능력은 그 본인조차 한계를 모를 정도로 모호한 면이 있다. 비 팀원이면서 몇 번이나 퍼플급 이상 던전을 같이 들락거린 웨인이나, 캐물어볼 기회가 있음에도 별로 관심이 없는 승하는 단순히 그녀의 능력을 마력 파이프라인쯤으로 알고 있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정확하게 희란의 능력은 두 지점을 잇는 것이다. 공간적 제약? 그런 건 있지도 않다. 굳이 공간적 제약이 있다면 그녀가 능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인지 범위정도다. 희란이 ‘이 이상은 어렵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범위가 한계가 되어버린다. 그 마저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의 종류? 그녀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현재야 전투시에 마력 파이프라인 역할만 하고 있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건 화련과 차분하게 연구한 결과 이미 드러났다.
화련의 텔레포트 연구는 아직 이론이 완성되지 않았음에도, 실행이 가능한 황당한 상태에 놓여있다. 희란의 능력으로 두 지점을 이어놓으니, 화련은 그냥 입구, 출구를 뚫으면 끝인 것이다. 희란이 인지할 수 없는 거리라면, 화련이 좌표보정을 돕는다. 그 짓을 반복하다보니, 화련은 짧은 거리는 감으로 혼자 이동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그 본인조차 제대로 정의하기 힘든 모호한 능력을 가진 희란은, 제 능력 때문에 비밀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사무실로 대뜸 찾아온 그녀를 당일에 팀으로 들여 준 대장에 대한 비밀을.
치이익! 빠지직! [---!]
타는 냄새가, 흙이 타들어가는 듯한 냄새가 사방에 가득했다. 골렘의 소리 없는 포효가 울려 퍼졌지만, 이전 것들과는 다르게 위압감은커녕 처량함마저 느껴졌다. 몸이 타들어가고 있는 골렘은, 허공에 두 팔을 휘저을 뿐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했다. 던전 안에 있는 괴수들을 모조리 흡수한 것 같은 거대하고 강건해 보이는 몸뚱이는, 약간의 연명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듯했다.
검은 짐승은 골렘의 가슴에 딱 달라붙은 채, 골렘을 말 그대로 찢고 있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저거 무력시위 하는 거 같지 않아?”
잔뜩 가라앉은 승하의 목소리에 반응한 건 화련과 희란이었다. 화련은 이 상황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냐는 듯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고, 희란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런 거라면 좋겠지만...’
희란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검은 짐승이 날뛰고 있었다. 희란은 복잡한 심경을 애써 눌러 담으며, 미쳐 날뛰고 있는 그녀들의 대장의 상태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와 연결된 무형의 파이프라인을 통해서.
‘읏...’
희란은 거대한 존재감이 자신을 짓누르기 전에 들여다보는 것을 그만두었다. 육안으로 보이고 있는 흉포함 이상의 뭔가가 그녀를 마주 봤기 때문이었다. 희란은 저도 모르게 오른손으로 심장부위를 움켜쥐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희란아? 어디 안 좋니?”
“아, 조...조금 답답한 기분이 들어서...괜찮아요. 언니.”
그렇게 말하면서도 희란의 호흡은 꽤 거칠어진 상태였다. 화련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희란을 살피다가, 그녀가 자신의 옆에 자리 잡고 앉자 이마를 짚어보는 등 본격적으로 살피기 시작했다. 희란은 어색하게 웃으며 잠자코 그것을 받아들였다. 화련에게 조금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녀에게 신경을 기울일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훨씬 더 커졌어...저게 뭘까...?’
본격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은 그만뒀지만, 희란은 가늘게나마 이어져있는 통로를 통해서 류 현의 상태를 엿볼 수 있었다. 그녀의 대장은 검은 안개에 완전히 뒤덮인 외견보다 훨씬 더 격렬한 격류를 내부에 품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그의 몸을 뚫고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힘을 품은 격류를!
류 현조차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류 현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능력을 주로 마력을 분배해주는 파이프라인 쪽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이전 생에서 그녀를 만났던 그였기에 다른 쪽으로 더 생각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이전 생에서 ‘링커’와 화련의 연계는 잠시나마 악룡을 대지로 내려앉게 만들 정도였으니까. 그 포텐에 집중했기 때문에 류 현은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했다.
희란이 ‘연결’을 통해서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자신이 신경 쓰지 않고 ‘연결’에 응할 경우, 그녀가 자신의 마력에 짜부라질 수도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 있어도, 그녀가 마력의 성질을 파악하고 있다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다. 이전 생에서 그녀와 똑같은 능력을 가졌던 ‘링커’는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희란은 용잡이 팀에 합류한 이후로 훈련을 겸해서, 끊임없이 류 현과 ‘연결’을 시도했었고 그 덕에 희란은 류 현 본인 다음으로 그의 안쪽에 자리 잡은 것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녀 또한 그의 안에 자리 잡은 게 뭔지는 몰랐지만, 보통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류 현이 기절초풍할만한 일인 건 분명했다.
‘...에너지 드레인이라고 하셨지? 그걸 쓸 때마다 확실히 눈에 띄게 커지는 것 같은데...’
심지어 그녀가 장기간의 관찰을 거친 덕에 성장일지를 써도 될 정도로 관찰 자료가 많다는 걸 안다면, 류 현은 진지하게 희란의 정신이상을 의심할지도 모른다. 그가 아는 한, 자신 안에 들어앉아있는 것은 차분하게 관찰하고, 평범하게 자신을 대할 수 있을만한 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희란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안을 엿보고 있었다. ‘강림’을 쓴 이후로 미친 듯이 내부에 마력의 풍랑이 몰아치고 있어, 개구멍 수준의 구멍으로 엿보는 정도지만.
‘저번에 자세히 봐뒀다면 비교하기 좋았을 텐데...너무 흥분해서 좋은 기회를 놓쳤어.’
류 현이 들었다면 기겁했을만한 자기 질책을 곱씹으며, 희란은 그의 내부에서 밖으로 눈을 돌렸다. 골렘의 동체를 거의 반으로 갈라놓는 데 성공한 류 현의 몸뚱이는 싸움을 시작했을 때보다 더 두텁게 안개에 휩싸여있었다.
마치 짐승 같은 모습을 취하게 된 류 현은,
뜨득! 빠드득! 정말 짐승이라도 된 것처럼 두 손과 입만 이용해서 골렘을 말 그대로 잡아 뜯고 있었다. 뉴욕의 X던전에서 골렘을 망치 하나로 요리한 것과는 상반돼 보이는 모습이었다.
일견하기에, 광기마저 엿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원정대원 중에서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던전에 진입하기 전에 그가 보여준 게 있었으니까.
던전 피로도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 공언한 류 현은, 던전에 입장하기 전날 따라나서기를 원한 일행 네 명에게 시술했다. 그들에게 제 마력을 집어넣었다. 화련을 용잡이 팀에 집어넣기 위해서 그녀의 벽을 깨줬을 때처럼.
그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자신 안의 탐욕과 함께 마력을 밀어 넣고, 탐욕을 바로 떼어내진 않았다. 그 때문에 원정대원들은 지금 놀라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안에 무시무시한 뭔가를 직접 보진 못했어도, 그 편린을 봤으니까. 지금 보이고 있는 무시무시한 모습도, 한계까지 억누른 것임을 알고 있으니, 평정을 가장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대범한 승하마저 직후에는, 류 현의 손짓하나에도 흠칫 놀랄 정도였다.
다른 이들은 그게 정확히 뭘 뜻하는지 몰랐지만, 희란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주 잠깐이지만...그 때 마스터한테 편입 됐던 거야. 손이나 발처럼...피로도가 회복된 건 마스터의 회복력을 나눠받았기 때문이고...하지만...’
희란은 이제 골렘의 핵을 두 손으로 두드리고 있는 그녀의 대장을 바라봤다. 그의 몸 위로는 검은 안개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시술 당시에 그녀를 집어삼켰던 탐욕의 안개가.
‘단순히 먹는 게 아니야. 저건...먹어서 살이 찌는 그런 게 아니야.’
희란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저걸 뭐라고 생각해야하는 것일까?
“많이 안 좋니? 마스터한테 말할까?”
희란은 자신이 류 현에 대해서 화련이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다는 걸 눈치 채고 있음에도, 캐묻지 않고 자신을 친동생처럼 챙겨주는 화련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처음 시작은 의도치 않았다곤 하나, 자신도 몰래 들여다보고 있는 판국에 류 현의 동의 없이 말해줄 수 없는 노릇이니 희란은 결국 입을 꾹 다무는 쪽을 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의도치 않게 그런 화련을 걱정시키게 되자, 희란은 고민을 뒤로 미루기로 했다.
‘결국 나도 언니처럼 마스터가 말해주시길 기다리는 건 똑같네.’
빠지직! 그녀의 상념을 때려 부수듯 류 현의 주먹이 골렘의 핵을 부수고 들어갔다.
***
“봐요, 데리고 들어오길 잘 했죠?”
류 현은 자꾸 감기려는 눈꺼풀을 사이로 어이없다는 시선을 내보냈다. 화련은 전혀 개의치 않고 가슴을 쫙 편 자세를 유지했다. 류 현은 뭐라고 쏘아붙일까 하다가 금세 포기했다. 그녀에게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니, 트집잡는 데 기운 빼고 싶진 않았다.
화련은 기세등등하게 제 발밑에 펼쳐진 마법진을 둘러보며 말했다.
“하긴, 이 정도로 크면 마스터라도 찾기 어렵겠죠. 사방에 마법진이 만들어내는 위화감으로 가득하니까.”
“예, 예. 화련 씨가 없었으면 하루정도는 날려먹었을 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마법진 끌어올리는 데는 이틀?”
“.....”
류 현은 천연덕스럽게 자기 공적을 덧붙이는 화련을 빤히 쳐다봤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와 마주봤다. 예전에는 좀 더 뭐랄까,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 같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승하랑 붙어 다니는 걸 너무 오래 방치한 탓일까? 아니면 승하의 말대로 따돌려졌다고 생각해서 이번 기회에 분풀이라도 하는 걸까?
류 현은 새어나오려는 한숨을 삼키고 오른 손을 허공을 향해서 들어올렸다. 그의 머리 위에는 도시규모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거대한 마법진이 허공에 떠올라있었다. 마법에 대해 문외한이 보기에도 마법진은 앞의 두 곳의 X던전에서 본 것과 유사했다.
어찌됐거나, 땅속에 박혀있던 이 거대한 놈을 찾아내서 띄운 것만으로도 화련의 억지를 들어준 보람은 생긴 셈이었다. 왜 땅에 박혀 있었는지, 왜 ‘열쇠’를 발동시켜도 반응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걸 생각할 만한 여유도 없었다.
‘진짜 이번에 나가면 한 한달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자. 죽겠다 진짜...’
류 현의 오른손에 새겨진 ‘열쇠’가 빛을 발하고, 그들의 세상도 빛에 삼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