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1화 〉탐식마(貪食魔) (141/429)



〈 141화 〉탐식마(貪食魔)

던전 안으로 들어가면서 플레이어는 한순간이지만 무중력 공간에 던져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단순히 붕 뜨는 정도가 아니라, 위아래가 뒤바뀌고 좌우가 마구 뒤섞이는 것 같은 위화감에 휩싸이는 것이다.

무조건 느끼는 것은 아니고, 개인차가 있고 상위 던전 일수록 이런 위화감을 느끼기 쉬우며 경우에 따라서는 던전 돌입 당일을 통째로 날려먹을 정도로 심한 멀미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현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경험이 많았다.

‘어? 뭐야? 씨발?’


그리고  현이 던전 입구 안으로 몸을 완전히 집어넣었을 때, 그를 덮쳐든 압력은 그의 수많은 경험들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이질적인 것이었다.

‘이거 무슨 공간이...’


물속에 던져지거나, 가슴 위에 두꺼운 책이 올라와있는 느낌 정도가 아니었다. 공간 자체가 오그라들면서  전체를 찌그러뜨리는 느낌!

당장 재생력이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명백하게 이상했다. 던전과 괴수로 점칠된 그의 삶에서도 이런 경우는 없었으니까. 이 던전이 그냥 보통의 던전이 아니라, ‘문’이라는 특이 케이스라는  감안해도 이상점은 사라지지 않았다. 파주에서 그가 공략했던 ‘문’과도 달랐으니까!

‘이제 하다하다 별 개 다...’


류 현은 욕지기를 삼키며 앞으로 몸을 던졌다. 눈앞이 확 밝아지는 듯하더니, 몸을 감싸던 압력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류 현은 앞으로 굴렀다. 그가 일어서서 뒤따라올 일행들을 돌아보기도 전에, 그의 뒤를 이어 묵직한 것들이 땅바닥을 굴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무래도 그 기묘한 압력을 느낀 건 류 현 혼자가 아닌 모양이었다.


‘젠장, 이젠 다른 던전은 참고도 안 되겠군. 아주 죽어라 굴리...’


쿠웅! 실제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류 현은 그런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어...?’

던전 입구를 통과할 때 느꼈던 압력은 시작에 불과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몸을 일으키려는 그의 몸을 보이지 않는 손이 짓눌렀다. 중력이 갑자기 몇 배나 세진 것처럼, 펴지려던 류 현의 무릎이 덜컥하고 다시 내려앉았다.


다른 일행들에 비하면 류 현은 양반인 편이었다. 두 손을 땅에서 떼고 있는 건 류 현 뿐이었으니까. 상태가 가장 좋은 웨인이나 승하도 두 손으로 몸을 지탱하는 게 다였고, 나머지 인원들은 헛구역질을 하거나 이미 점심  먹은 것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진짜 날로 먹는 꼴을 못 보겠다는 건가.’

 현은 몸을 다시 일으키려고 했다. 일어서서 ‘열쇠’를 발동시킬 생각이었다. 파주의 던전과는 다른 상황이긴 해도, 빛의 사슬이 이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열쇠’라도 쥐여준 게 어디냐...젠장.’

 중압을 항마력으로 떨치고 일어나기도 전에,

쿠르르! 쿵!


“...?”

외면하려야 외면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감을 가진 뭔가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류 현은 경종을 울려대는 제 감에 닥치라고 욕을 해준 후에 고개를 돌렸다.

“하, 씨발 진짜...못해 먹겠네...넌 또 뭐냐, 그거 배고파서 쳐 먹은 거냐?”

 현이 돌아본 곳에는 거대한 골렘이, 파주의 던전에서  것의 갑절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골렘이 서있었다. 완전히 박살난 유적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골렘은, 제 몸 곳곳에 던전 안에 거주하고 있었던 걸로 보이는 괴수들을 박아 넣은   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오옹!] 골렘의 어깨에 박혀있는 샌 드래곤의 머리가 서글픈 울음을 토해내는 것을 신호로 골렘의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오른팔이 뒤로 당겨졌다.

쿠구구!

“화련 씨! 방어막!”

류 현은 ‘열쇠’를 발동시켜 빛의 사슬을 뒤쪽으로 흩뿌리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의 몸 위로 피가 터져 나오는 것처럼 검은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류 현은 골렘을 따라하듯이 오른쪽 팔을 한계까지 잡아당겼다.


쿠웅! 쩌엉! 콰르르!

도무지 체급 차이를 계산하기 힘들 정도의 부피 차를 가진 두 주먹이 격돌하자, 상식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터져 나왔다. 류 현의 몸이 뒤로 날려간 것까지는 정상적인 결과였지만, 골렘의 몸에 비해서도 비대한 오른쪽팔이 밀려, 어깨가 이탈해 밀려올라간 것이다.

퍼엉! 충돌음보다 한 박자 늦게 화련의 펼친 방어막을 때린 마력의 파동도 상식 밖의 일이었다. 단순한 주먹간의 충돌인데 이런 마력 파동이라니?

‘크읏...이게 대체...’

화련은 팔을 타고 오르는 저릿한 감각에 이를 악물었다.  현의 주먹질이 그냥 주먹질이 아니라는  알고 있지만, 그녀의 방어막을 두들기고 있는  거대한  마력이 부딪힌 결과물이다.


그 말인즉슨, 눈앞의  괴물 같다는 말 밖에 안 나오는 골렘이 류 현처럼 마력을 운용하고 있다는 의미!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아무래도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더, 끔찍한 곳에 자청해서 발을 들인  같았다.

***

호지슨 버넷은 영국의 한 작가의 것과 비슷한 이름과 달리 미주리  캔자스시티 태생으로, 그의 고향을 연고로 하는 캔자스시티 로얄스의 광적인 팬이었다.

호지슨은 자신만큼이나 야구광인 아버지의 지원을 받으며 메이저리거의 꿈을 키웠고, 하위 라운드 픽이긴 하지만 로얄스 휘하의 싱글A팀 윌밍턴 블루 락스의 선수가 되는데 성공했다.

호지슨은 2년이 되기도 전에 트리플 A의 3루수로 안착했고, 메이저리거가 되고 싶어 하던 그의 꿈은 멀지 않은 듯 했으나 거기까지가 그의 한계였다. 빅리그의 문턱은 높았다.

수비 구멍이라는 소리를 듣던 동료 유격수가  번의 콜업의 기회를 그랜드 슬램으로 보답하면서 붙박이 주전이 되고, 자신은 7타석 무안타로 마이너리그로 굴러 떨어진 날 호지슨은 꿈을 포기했다. 그의 나이 29살 때의 일이었다.


서른을 눈앞에  호지슨은 제 미래를 걱정하며 코치의 길을 걸을지, 야구를 포기할지 고민했지만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2차 ‘대소환’이 터지면서 짜기라도 한 것처럼 그도 플레이어가 됐으니까.


호지슨은 자신의 조국이, 자유를 부르짖던 미국이 플레이어들을 구금하고, 실험하고, 강제징용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지만, 현실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허술했던 괴수 방위망을 뚫고, 도시로 진입한 괴수가 그가 뭘 해보기도 전에 그의 가족들을 찢어 죽였다.


모든 게 허무해진 호지슨은 플레이어고 괴수고 모두 잊은 듯 방황했고, 그 방황의 끝은 그와 아무 상관없는 한 가족의 죽음이었다.


어느 날 장을 보러 나온 호지슨은 월마트 입구에서 괴수에게 걸려 찢겨죽은  꼬맹이의 잘린 손을 쥐고, 맨몸으로 괴수에게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가 거의 죽을 지경이 돼서 구조되었다. 호지슨은 자신을 구해준 플레이어 부대에 투신했고, 자신의 재능이 공을 치는  아니라 괴수를 때려죽이는 데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호지슨은 부대의 일원이 된지 채 5년이 되기 전에 소대장이 되었고, 그  3년간 미국민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퍼플 던전을 전전하면서 혁혁한 성과를 올렸다.

부대의 존재 자체가 기밀이었기에, 그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거리가 멀었지만 호지슨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아무 죄도 없는 아이를 찢어 죽이는 빌어먹을 괴수놈들을 죽일 수 있으면 족했다.


그런 호지슨이 X던전 2차 원정대에 참가하게 된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호지슨은 자신을 원정대에 포함시킨 인선이 심각하게 잘 못된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느꼈다.

쿠웅! 콰앙! [끄르라악!][화라락!]

용이 하늘을 날았다. 용이 불을 내뿜고, 피를 토했으며 그 용의 발치에는 용의 발가락 크기 밖에  되는 여자가 매달려 있었다. 여자는 덩치 차이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용의 배를 칼로 사정없이 쑤셨다. 155mm포탄에 직격당해도 멀쩡한 용의 비늘이, 뱃가죽이 두부마냥 뚫렸다. 검성 나승하는 변종  드래곤의 내장을 뒤섞으려는 것처럼 칼을 내휘둘렀다.


호지슨에게 집중력이 조금만  있었다면 용의 생김새가 그가 알던 괴수와 흡사하면서도 다르다는 걸 알았겠지만, 그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더 현실감 없는 광경이 바로 밑에서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소리 없는 포효와 함께 터져 나온 마력의 파동이 호지슨의 팔뚝을 훑고 지나가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호지슨은 살기 넘치는 포효를 터뜨리는 저 골렘이 정말 생명체가 아닌지 의심스러웠지만,


떠엉! 콰르르! 우지직!

골렘의 가슴을 후려치는 거대한 망치를 보고 그런 의심을 접었다. 골렘의 가슴이 생명체라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움푹 들어갔다. 하지만 골렘은 버텨냈다. 생명체가 아니었으니까. 피를 토할 필요도, 숨을 돌릴 필요도 없었다.

충격으로 몸이 뒤로 젖혀졌지만, 아주 잠깐의 일이었다. 골렘에겐 여유가 있었다. 그 충격을 반동삼아 망치를 향해 반격으로 있는 힘껏 왼 주먹을 날릴 정도!


콰앙!


망치 자루와 골렘의 주먹이 부딪히자, 폭탄이 터지는  같은 굉음과 함께  다시 마력의 파동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의지를 표명하는 정도로 얌전한 것이 아니라, 일반인 있다면 내부가 갈가리 찢길 정도의 거친 파동이었다.

파지직! 지직! 그러나 마력의 파동은 호지슨을 감싼 무형의 장막 앞에 허무하게 스러졌다. 호지슨은 저도 모르게, 방어막을 펼친 술사를 돌아왔다. 거의 2미터에 달하는 키를 가진 호지슨보다 머리 두 개 반 분량은 작은 붉은 머리의 동양인 여자가 두 손을 하늘을 향해서 내뻗고 있었다. 여자의 눈에는 하얀 귀기어린 빛이 일렁거렸고, 몸 주변에는 아지랑이 같은 것이 일어나고 있었다.


꾸웅! 호지슨이 한눈 판 사이에도 싸움은 계속 되었다. 호지슨은 골렘의 오른쪽 어깨를 부순 망치를 볼 수 있었다. 콰르르! 정확히는 제 몸만 한 머리를 가진 망치를 장난감처럼 휘두르는 이 원정대의 대장을 말이다.

‘holy shit...fucking crazy.’


호지슨은 자신의 애병, 워해머라고 불리는 망치를 내려다봤다. 한 번도 그를 배신한 적 없는 든든한 전우가 오늘은 왠지 초라해 보였다. 그의 망치 머리도 여자 허리만한 상식외의 크기였지만, 성인 남자만한 머리를 가진 공성 병기급의  망치와 비교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무기를 다루는 기량으로는 비교하는  자체가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정확하게 관절부만 노리고 있다. 그리고 타점에서 힘을 폭발시키는 저 집중력은...’

호지슨은 잠깐이지만 기묘한 이름을 가진 원정대 대장이 타자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마저 했다. 아마 풀스윙에 공이 터지지 않았을까? 심판은 공이 터져버리면 인플레이 선언을 할까 아니면 파울을 선언할까?

던전 안에 들어와서 할 상상은 아니었지만, 호지슨은 감탄하는 것과 망상하는  이외에는 다른 할 일을 찾기 힘들었다.


미국의 1차 원정대가 내놓은 정보에 의하면  던전 안에는 중세양식의 성 같은 구조물이 있어야 하는데, 그들을 반기는 건 파주에서 봤다던 거대 골렘의 업그레이드 버전 같은 괴물뿐이었다. 그 괴물은 덩치와 무게라는 어마어마한 무기로 만족할 생각이 없는지, 돌주먹에 마력까지 가득 담아서 미친 듯이 날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괴물은 더 괴물 같은 한국인 원정대장의 망치질에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있다. 호지슨은 원정대 동료의 활약을 보면서 자신감이 사라질  같은 기묘한 기분을 맛보고 있었다.


콰르르! 떠엉! 골렘은 지치지도 않는 지 다시 류 현에게 주먹을 내리꽂았지만, 류 현이 어퍼 스윙으로 망치를 올려치자 팔꿈치부분까지 팔을 날려먹고는 뒤로 넘어갔다.

“희란 씨!”

우르릉! 콰르릉! 빠지직! 류 현의 외침에 대답이라도 하듯, 벽력이 무너진 골렘의 뒤쪽에서 튀어나오던 괴수들을 후려쳤다. 개중에는 이 던전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퍼플급 괴수인 칼날늑대도 있었지만, 현재  수 있는 최대 위력까지 짜낸 청뢰 앞에서는 버티지 못했다.

그렇다고 즉사한 건 아니었다.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눈이 반쯤 뒤집힌 칼날늑대는 그 희란에게 돌진했지만,


스칵! 희란의 앞을 틀어막고 서있던 웨인의 일검에 목을 잃고 고꾸라지는 신세가 되었다. 웨인은 그대로 앞으로 무너진 유적을 향해서 내달렸고, 희란도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

호지슨은 그 모습을 잠깐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들의 뒤를 따랐다.

처음에는 류 현과 검성이 각각 괴수들을 틀어막고 화련이 보조하며, 나머지 인원은 유적으로 진입한다는 터무니없는 계획에 반발했지만, 저런 말도 안 되는 무위를 뽐내는 걸 보고 있자니 따르지 않는  더 터무니없는 일인 것 같았다.

“대장, 우리 이래도 됩니까?”
“저만큼 할 수 있으면 남아도 된다. 알렌.”

합리적인 의심을 제기하는 소대원에게 호지슨이 해줄  있는 대답은 그것뿐이었다. 보고서를 작성할 때 문제가 되긴 하겠지만, 어쩌겠는가. 그들을 모셔온 부통령도 그들이 저 정도로 괴물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텐데.

그나마 들러리가 되어도 상관없으니 생존에 치중하라던 상부의 지시가 있었으니 마음은 가벼웠다. 그런 말을 했으니 소대장인 자신을 갈굴지언정, 부하들을 괴롭히진 않을 것이다.


호지슨은 점점 가까워지는 유적을 바라보며 보고서에 저 괴물을 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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