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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화 〉탐식마(貪食魔) (139/429)



〈 139화 〉탐식마(貪食魔)

화련의 금주령으로 인해 류 현과 승하는 할  없음에 몸부림치고, 몰래 마시다가 걸리기를 반복하는 와중에도 시간은 착실하게 흘러갔다. 은둔을 빙자한 휴식이 이주 하고도 이틀째 되는 날.


류 현은 왠지 모르게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웨인과 함께 미국과의 협상에 대해서 이야기 중이었다.

“지벡 건터가 독일로 망명한 뒤로  이야기가 없어서 의식 안하고 있었는데..미국은 미국이군요. 헌팅 레벨이 정확하지 않다는 건  아쉽긴 합니다만...”
“어쩔 수 없지요. 미국과 협회의 관계가 그러니까요.”

웨인은 어깨를 으쓱 해보이며, 제 앞의 서류를 갈무리했다. 미국과 플레이어 협회. 서로 손잡고 싶어도 태생 때문에 그럴 수 없는 관계이니까.


협회가 결성된 이유  하나인 플레이어에 대한 압제의 대표자가 미국이었다. ‘대소환’ 초창기에 플레이어에게서 슈퍼솔져의 가능성을 본 미국은 말 그대로 눈이 돌아 가버렸고, 그건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더 강압적인 방식을 선호한 미국이 대표로 포화의 표적이 되었을 뿐.

2차 ‘대소환’이 터지면서  세계에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플레이어 협회가 결성되었고, 자연스럽게 협회와 미국은 서로 대척점에 서게 되었다. 미국은 협회가 구축하려는  던전 인프라를 외면하는 채했고, 협회도 굳이 손을 내뻗진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물밑에서는 교류가 오고갔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서로를 견제하고 조소했다. 미국을 대표하던 지벡 건터가 독일 망명행을 택한 이후로, 미국은 협회와의 교류에 더욱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지벡 건터가 망명행을 택하며 외친 플레이어들의 자유를 위해서 라는 말에, 제 2의,  3의 지벡 건터들까지 전부 유럽으로 망명을 택했으니까.


플레이어들에게 악의 축으로 몰린 미국은 던전의 시대를 이끌어줄 히어로도 없이, 역량을 쥐어짜서 ‘대소환’에 적응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러 정보를 건네준 협회의 조력이 있었음을 말할 필요도 없었다.

서로의 패를 제대로 까지 않고 가늠해보는 관계였지만,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확실했다.

웨인과 류 현이 뒤적거렸던 서류 더미는 그 교류의 결과였다. 표면적으로 협회가 구축한 플레이어 인프라를 거부했다던 미국은, X던전에 들어갔던 원정대 인원의 이력과 협회가 만든 헌팅 레벨 추정치를 세세하게 기입해서 보고서를 보내왔다. 미국이 얼마나 급한  확인  수 있는 대목이었다.

X던전 원정이 처참한 형태로 끝을 맺자, 미국은 체면이고 뭐고 협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류 현의 원정대가 X던전을 공략하고 나오기 전부터 말이다.

그 요청은 류 현의 원정대의 귀환과 함께 거의 애원조가 됐고, 협회는 미국을 살살 달래면서 사태파악에 힘을 썼다. 기다림이 길어지자, 미국 협상단 측은 간이고 쓸개고 꺼내줄 것처럼 굴며, 원정대 일개 대원이라도 좋으니 만남을 주선해달라고 요청했다. 류 현이 보기에는 전혀 협상에 도움이  되는 한국 정부에 협상카드까지 제시해가면서 말이다.

엊그제 그에게 애국심을 들먹거리다가 아무런 소득도 없이 돌아간 재경부 차관은 그 때문에 찾아온 것이었다.

‘거기다가 뭘 닦아주면 뭐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데.’


“그 말씀은 실제로는 안 그렇다는 의미 같은데...맞습니까?”

웨인은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이렇게 자세한 자료까지 넘겨준 마당에 부정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협회가 보안을 지키기 위해 애쓰던 석비는 사라졌고, 협회가 석비에 역량을 쏟아 붓고도 해석해내지 못한 정보까지 류 현에게 간 상황이다. 이 후에는 어찌될지 모르지만, 이번 X던전에 한 해서는 뭔가를 숨기고 자시고  상대가 아닌 것이다.


‘이 후에도 별 다를 것 같진 않지만...’

웨인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성장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남자를 향해서 농담조로 덧붙였다.

“어디 신문사에 가서 제보하시면 안 됩니다. 기자양반들 자기의 저널리즘이 아주 비싸다고 생각하거든요.”
“알만 하군요.”
“사설은 이쯤하고...이걸로 확실해졌군요. 카이로와 뉴욕의 원정대 모두 그렇게 괴멸할 수준은 아니었다는 게 말입니다.”

 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이 주간 류 현이 소파와 하나가  수 있는지를 시험해보는 동안, 협회에서는 류 현의 원정대의 성공을 미끼로 다른 두 곳의 원정에 대한 정보를 긁어모았다.

“미국에서 그렇게 애가 닳아하는 것도 당연해 보이는군요.  정도로 준비를 해서 들어갔는데 결과가  꼴이니, 안에 들어있는 게 튀어나오면 어찌될지 상상하기도 싫겠지요.”


정확한 원정대 구성, 지참해  아티펙트 구성, 던전 진입 후 목격한 지형과 괴수 종류, 탈출 당시 외부와 내부에서 발견한 던전의 변화 등.


긁어모은 정보들을 취합해  결과는 그랬다. ‘원정에 실패하더라도 괴멸당할 수준은 아니었다.’ 였다. 검성이나 웨펀 마스터, 알 라시드 같은 국가나 클랜을 대표하는 간판스타급 인원은 없었지만, 한 쪽은 긁힌 상처 몇 개 빼고 멀쩡하게 나왔는데 다른 한쪽은 셋 중 둘이 던전에 뼈를 묻을 정도의 격차는 아니었다. 허무하게 정찰역 다섯을 잃고 나서는 맞서지 않고 도망쳤다고 했었으니까.

보통 던전이면 출구를  열어서 몰살이었겠지만, X던전은 달랐다. 클리어 하지 않아도 출구가 열려있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그들은 X던전의 보스몹 얼굴도 보지 못하도 나왔다고 했다. 도망치는 데 급급했을 작자들이 그런  어떻게 구분했냐 싶기도 하지만,  현은 다른 이유로 납득했다. 그를 애먹인 그 골렘과 동급의 괴물과 만났다면 1/3만 돌아오는  아니라 전부 던전에 뼈를 묻었을 것이다.

류 현에게는 쓸데없는 과정을 한 번  거친 것에 불과했지만,  거쳐야하는 절차였다.


[알고 있었는데 사지로 들어가는  그냥 내버려뒀습니다. 왜 그랬냐고요? ‘열쇠’가 없어서 닫지는 못해도 지연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못 닫는  어떻게 알았냐고요? 누구한테 들었냐면 칼리프  오르시아라는 여자한테서 들었는데  여자가 글쎄...] 라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 두 곳에서 원정대가 탈출하자마자 ‘문’이 열리지 않은 걸로 봐선 칼리프 말과 달리 바로 열리는 거 같진 않은데...아니, 게이트라고 했으니까. 지금 천천히 열리는 중인건가? 내가 들어가서 닫으면 지연되는 거고? 음...어느 쪽이든 간에 두 원정대가 갈려나간  효과가 있는 거 같진 않지만...덕분에 판은 잘 깔렸군.’


잔혹한 이야기였지만,  현은 조금 아깝다는 생각 이외의 다른 감정은 느끼지 못했다. 애초에 살살이풀이나 송장목 진액에 대해서 정보를 푼 것도 상위 플레이어가 살아남아, 다가올 3차 ‘대소환’에 등장할 괴수 군단을 하나라도 더 죽여주길 바라서이지 다른 이유가 있는  아니었다.

레시피가 안 풀리는 바람에 죽어나갈 이들의 목숨이 안타까워서?  현은 그렇게 감수성 넘치는 인간이 아니다.

‘문’은 그도 접해 본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칼리프라는 기묘한 존재가 해결책을 제시하긴 했지만, 제한이 꽤 심한 방법이었다. 자신 외에는 해결  수가 없는데, 그의 몸과 ‘열쇠’는 하나였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이 카이로와 뉴욕 원정을 감행하는 걸 말릴 수도 있었지만, 류 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설득을 위해서는 칼리프에게 들은 정보를 풀어야하기도 하고, 류 현은 다른 두 곳에 원정대가 들어가 있으면 ‘문’의 개방이 지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퍼플 이하의 일반 던전에서도 플레이어가 들어가 있으면 포화기간 카운트다운이 멈추니까.

지금 상황을 봐선 별 의미 없는 일에 생목숨이 갈려나간 꼴이었지만, 류 현은 후회하진 않았다. 확실하지 않은 방법이라도 다른 길이 있다면 시도해야만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죄책감? 죄책감은 이전 생에 최전선에서 사흘을 잠도 안 자고 뛰어다니고 나서 너무 피곤해 쪽잠 30분 잔 사이에, 플레이어 천 명이 드래곤 브레스 한 방에 녹아버릴 때 같이 녹아내렸다. 사람 목숨이 사람 목숨답게 보이지 않게 된지 오래다.

류 현은 그 때 자신 안에서 뭔가가 고장 났다는 걸 알았지만, 고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괴수를 죽이는 데 죄책감은 쓸모없으니까.

‘협회나 미국은 날 의심 하고 있겠구만. 그래봤자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애매하게 정보를 풀어서 일이 끝난 후에 곤란한 꼴을 겪게 되는 경우는 피했고, 그에게 유리한 판이 깔리게 되었으니까. 의심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드러내지 못하게 되면, 그 의심은 없는 것과 다름없다.

당장 미국만 봐도 의심하는 기색을 감쪽같이 감춘 채 읍소하고 있질 않은가. 내일 만나기로 약속이 잡힌 미국  인사가 부통령인 것만 봐도

문제될  없다. 없지만...

‘...이번에도 곱게 죽긴 글렀군. 칼리프 그 여자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었으니까...지옥에서 받아주긴 하려나?’

 현은 말라붙은 제 내면을 돌아보며 조소했다.


***

[파주의 X던전을 완파한 원정대 미국으로 출국!]
[리어던 부통령은 류  원정 대장과 어떤 협상을 하였는가?]
[위스프, 플레이어의 권리와 약소국들을 억압하는 패권주의 국가에 먼저 간 것은 크나큰 실수.]
[리어던 부통령, “류의 자신감이 나에게 신뢰를 주었다. 그는 미국의 히어로가 되어줄 것.”]
[재경부 차관은 박대했지만, 리어던 부통령과는 단 번에 협상한 류 현 원정 대장. 미국 귀화 암시?]
[떠오르는 신성,  현과 검성의 관계 집중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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