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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3화 〉탐식마(貪食魔) (133/429)



〈 133화 〉탐식마(貪食魔)

[츠르르!][쉭쉭!][끼아악!] 콰직! 콰르르!

다갈색 비늘로 덮인 거체가 요동칠 때마다 미궁 벽이 두부마냥 깎여나갔다. 에너지 드레인을 동반하지 않고서는 류 현의 파쇄권으로도 한 번에 구멍을 뚫는  불가능했던 벽이 퍽퍽 깎여나갔다. 그토록 강건한 미궁벽이 크래커 마냥 부서져 나가는 건 트윈 헤드 라미아가 사방에 흩뿌려놓은 맹독 때문이었다.

[끼이익!] 쉭! 빠직! 빠지직! 콰릉!

트윈 헤드 라미아는 제 몸집에 비해 좁은 미궁통로에 불만을 표하듯 꼬리로 사방의 벽을 후려치며 미쳐 날뛰었다. 쉭! 쿠웅! 콰릉! 후왁! 그 와중에도  개의 거대한  머리 사이에 끼인 인간 여자의 상체부분은 독 안개가 옅어질 법하면, 온몸을 부풀렸다가 독 안개를 힘차게 토해내었다. 독 안개는 마치 표면장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일정 범위이상 퍼지지 않고, 라미아의 주변에 머물렀다.

그 덕에 트윈 헤드 라미아가 날뛰고 있는 땅은 이미 시커멓게 죽은 지 오래고, 힘들여 부셔놓으면 맥 빠질 정도로 빠르게 수복되던 미궁 벽은 독에 타들어가서 수복이 더뎠다. 여태껏 만난 괴수들이  던전의 환경에 디메리트를 얻고 도살당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


[우웅!]

자력으로 지형마저 바꿔버리는 괴수를 향해서 날아든 건 상대적으로 작은  넘어서, 인간을 기준으로 해도 아담하다는 소리를 들을 법한 여자였다.

‘찍어 누르는 게 아니라, 무거운 걸 올려놓는 이미지로...’


여자의 눈동자는 보통 사람처럼 검지 않고, 하얀빛이 머물고 있었으며 몸 주변에는 마력의 움직임 때문에 아지랑이 같은 것이 보일 정도였다.


‘프레셔!’

여자가 이미지 구축을 끝내는 순간,


쿠웅! 어마어마한 압력이 트윈 헤드 라미아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라미아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여자의 눈에는 반투명한 거대한 모루가 트윈 헤드 라미아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니, 보이게 만들었다.


[키이익!][캬아악!][후왁!] 갑작스레 밀어닥친 무형의 압력이 두 개의 뱀머리와 여자의 상체 부분이 독을 내뿜고, 몸을 뒤트는  발악했지만, 여자의 몸에 드리운 마력의 아지랑이가 더 짙어질 뿐 압력을 떨쳐내진 못했다.


트윈 헤드 라미아를 찍어 누르는  성공한 여자, 화련은 여력을 쥐어짜내듯이 외쳤다.

“오래는 못 버텨요!”


화련의 외침에 응답하듯, 독무를 뚫고 인영하나가 그녀의 옆으로 펄쩍 뛰어올랐다. 화련은 뇌혈관이 끊어질 것 같은, 마법의 여파로 얻은 지독한 압력 속에서 그를 돌아봤다. 그녀의 대장,  현은 날개를 펼치듯 외날도끼와 그녀의 머리통보다 더 큰 머리를 가진 슬레지 해머를 펼쳐쥔 채로 트윈 헤드 라미아를 향해서 내리꽂혀갔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류 현이 스쳐지나가면서 중얼거린 말이 신호였다. 화련은 그가 착지하는 것을 보기도 전에 마법을 해제했다. 트윈 헤드 라미아를 짓누르던 가상의 모루가 거짓말처럼 허공으로 흩어졌다.

[키이이?][캬아악!] 갑자기 제 몸뚱이를 짓누르던 압력이 사라지자, 트윈 헤드 라미아는 당황스러워했지만, 그 당황스러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콰악! 떠엉! 오른쪽 목 위에 무사히 착지한 류 현이 그대로 외날도끼를 박아 넣고, 도끼머리에 있는 힘껏 망치를 후려쳤으니까.

푸쉭! 에너지 드레인을 한껏 머금고 라미아의 비늘과 가죽을 갈라버린 도끼는 망치질 한 방에 완전히 박살났지만, 라미아의 오른쪽 머리가 입은 타격도 그리 가볍진 않았다. 목줄기의 1/2가량이 달아난 트윈 헤드 라미아는, 왼쪽 머리로 기성을 토하며 괴로워할 뿐 오른쪽 머리는 그대로 바닥에 쳐 박힌 채 기성조차 토해내지 못했다. 소화전이 소화수를 쏟아내는 것처럼, 핏물을 쏟아낼 뿐. 조금씩 경련하는 것이 즉사까지는 아닌  같았으나, 회복하기 쉽지 않아보였다.

바닥에  박힌 오른쪽 머리와 함께 같이 땅에 내려선  현은 곧바로 내달리지 않고, 잠시 상황을 살폈다. 방금 그건 류 현조차 숨고르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일격이었다. 밖에서 보면 단순하기 그지 없지만, 무기가 그의 능력을 버텨내질 못하니 조금이라도 힘 전달을  하려기 위해서 수고로움이 배로 들었기 때문에 더했다.


검성은 라미아의  뒤로 돌아가더니 등에 매달리고 있는 건지 보이질 않았고, 알 라시드 마람 커플은 주먹 부피의  배는 되어 보이는 건틀렛을 끼더니, 옆구리 비늘을 다 벗겨낼 기세로 달라붙어 쥐어뜯는 중이었다. 떼어낸 비늘만으로도 어지간한 괴수의 살가죽은 우습게 베어내는 라미아의 비늘과 가죽이 과자 포장지 취급 받는 순간이었다.

저들이 미궁벽을  그대로 태우는 극독 속에서도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수정 덕이었다. 빨강, 주홍, 노랑, 초록, 파랑, 남색. 삼 주가 넘는 기간 동안 모아온 여섯 개의 수정은, 류 현이 명령에 따라 원정대원들에게 하나씩 들러붙어서 독을 정화하는데 전력을 다하는 중이다.


웨인과 수정에 대해서 연구하다가 발견한 기능으로, 우습게도 수정의 주인인 류 현만은 수정이 부족해서 그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에게 배당된 수정은 주변에 퍼진 독안개가 너무 짙어지면 범위 정화하는 데 쓰였다. 자체적으로 재생과 해독을 반복하고 있는 그의 몸위로 하얀 연기가 끊임없이 스며 나왔다.


삐익-

 현의 뒤편에서 고막을 찌르는 것같은 높은 소리가 터져나왔다.

산채로 라미아를 잡아 뜯던 커플이  소리에 반응한 것처럼, 갑자기 뒤로 훌쩍 물러났다. 정말로 라미아 등정에 도전 중이었는지 검성도 꽤 높은 곳에서 훌쩍 뛰어내리는 것이 보였다.

그 직후,

콰르릉! 미궁 내에서는 있을 리 없는 벽력이 내려치는 소리가 미궁 전체를 뒤흔들었다. 전투 시작과 동시에, 뒤쪽에 멀찍이 떨어져서 차지 중이던 희란의 짓이었다.

 현의 권유로 인해, 마법사인 체 하고 있는 희란은 미궁 내의 괴수들을 샌드백 삼아서 청뢰 수련으로 재미를 쏠쏠하게 보고 있는 중이었다.

거듭되는 전투 속에서 희란은 페이스 배분은 물론, 쥐어짜내서 청뢰의 파괴력을 극대화 하는 방법을 익히는  성공했다. 지금처럼 트윈 헤드 라미아의 몸뚱이에서 연기가 올라오게 만들 정도로 위력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반쯤 억지로 등 떠밀려 들어온 X던전에서 얻은 가장 큰 성과라도 해도 좋을 정도.

스트라이커 비중이 많은 걸 넘어서 비정상적이기까지  원정대였기에, 아티펙트 지분이 상당하다고는 하나, 희란의 성장은 눈에 띄었다. 희란의 진짜 능력을 알지 못하는 알 라시드마저 대놓고 군침을 흘릴 정도였다.

단순히 침만 흘리는 걸 넘어서 대놓고 부담스러워하고 있음에도, 칼리프 클랜이 마법사들에게 좋은 곳이라고 강변했다. 덕택에 희란은  라시드가 어려워하는 승하 옆에 껌딱지마냥 딱 붙어 다녔다.

류 현이 보기에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헛짓거리였다.


‘미쳤냐, 어떻게 키웠는데  쒀서 개주겠어?’


굳이 따지자면 희란은 그냥 혼자서 알아서도  컸고, 류 현과 연계하지 않았어도 성장이 조금 느려졌을지언정 멈출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결국 류 현이  건 멘탈 케어정도였지만, 류 현은  라시드에게 틈을 줄 생각이 요만큼도 없었다.

 결성 초기와는 달리, 그녀가 이전 생에 동료였던 ‘링커’였든 아니든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 여러모로 다루기 까다로웠던 ‘링커’와 달리 희란은 도축같이 무리한 요구만 아니면, 군말 없이 따라주는 편인데다가 함께한 시간을 따지면 ‘링커’는 이미 넘어섰다.


성장 포텐 또한 하루 다르고, 이틀 또 다른 모습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으니, 그녀가 대놓고 팀 탈퇴를 요구하지 않는 이상 끝까지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아니, 탈퇴를 요구할 여지를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경험만  채워 넣어주면 두 사람이 예전 용잡이 팀보다 딸릴 건 없어.’

‘신창’ 김수혁과 채민아를 포함시킨 구성과 비교해도 밀릴  없다고, 류 현은 현 용잡이 팀은 이미 궤도에 올랐다고 류 현은 생각했다.


‘문제는 그  사람이 아니라 나한테 있지...’

문제는 자신의 비밀을 알고 나서 그녀가 이 팀에 붙어 있으려고 할지 알 수 없다는 점.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다. 칼리프 클랜의  좋은 점을 들춰서 스카웃 되어나가는 걸 막을 수는 있겠지만, 팀에 남아있게 할 자신은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입을 다물고 있자니, 그녀들이 이전부터 꾸준히 보여준 징후가 마음에 걸렸다. 자신이 뭘 숨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들도 이상한 낌새를 명백하고 느끼고 있을 터.

‘어디로 발을 뻗어도 지뢰밭이네. 지뢰밭이야.’

류 현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어느 새 재생해서 슬금슬금 일어나려고 하는 라미아의 오른쪽 머리를 향해서 다시 달려들었다.


***

“음...그러니까. 약속? 약속의...시간? 약속의 시간을 준비하라.”


한 문장을 완성시킨 화련의 머리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지자, 뒤에서 지켜보던 이들의 고개도 따라서 오른쪽으로 기울어졌다. 개중에는 신장이 2미터에 달하고 가로 넓이만 해도 화련   분에 달하는 남자도 있어,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었지만 분위기는 진지하게 그지없었다. 화련은 한참이나 벽을 더듬으며, 더듬더듬 단어를 맞춰보다가 다시 문장을 완성시켰다.

“이곳은 악한? 악? 용? 악...룡? 악룡의 둥지로 향하는 문. 문을 닫으려는 자여. 자격을 증명? 증명하라.”

문장을 모두 읽은 화련은 숨을 한  몰아쉬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평소 버릇처럼 옆머리를 손으로 꼬려던 그녀는  주 넘게 제대로 씻지도 못했다는 걸 떠올리곤 손을 거둬들였다.


“내가 읽을 수 있는  이게 다에요.  뒤로는 변형 룬어도 뭣도 아니라서 어디가 글자고 어디가 상징인지 구분도 못해요.”

화련은 자신의 뒤에 멀거니 서있는 류 현을 올라다보며 말했다.  주 넘게 미궁을 빙빙 돌면서 고생한 끝에 만난 유적치고는 영 영양가가 없는 내용이다. 이 통로의 입구를 틀어막고 있던 트윈 헤드 라미아의 끈질긴 생명력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여러모로 지쳐있었던 원정대는 라미아를 잡고 하루를 통째로 휴식으로 보냈다.

그리고 라미아의 시체를 치우고 통로를 빠져나와 지금의 유적을 만난 것이다. 일곱 번째가 마지막인지 수정은 발견되지 않았고, 있는   글자와 그림이 빽빽한 유적뿐이었다. 불행  다행이도 벽면에 새겨진 그림과 글자 중에는 그녀가 읽을 수 있는 룬어가 섞여있었다. 열 줄도 안 되는 아주 짧은 분량이었지만.

화련은 읽어 내려가면서도 모두가 실망할 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고, 실제로 원정대원들의 반응은 대체로 떨떠름했다. 실제로 승하는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투덜거렸다.

“차라리 수정이 정해주는 미션이 훨씬 명확하고 좋았어. 유적들은 대체 왜 하나같이 이렇지?  알아먹기 쉽게 직설적으로 말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하지만 류 현만은 그대로 돌이 된 것 마냥 벽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마치 화련이 읽은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아는 듯한 태도였다.

“마스터?”

“마스...”


화련이 대꾸 없이 서있는 류 현을 재차 부르려는 때였다.

갑자기 류 현의 눈에서 불꽃이라도  것처럼 분노가 어리기 시작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그 분노는, 순식간에 덩치를 불려 그를 집어삼켰다. 화련의 눈에는 그리 보였다. 화련이  번도  적 없는 흉흉한 기세를 내뿜고 있는 그녀의 대장은 짧고 단호하게 말했다.


“갑시다.”

그  마디에 원정대 모두가 홀린 것처럼 그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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