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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5화 〉탐식마(貪食魔) (115/429)



〈 115화 〉탐식마(貪食魔)

일주일 넘게 찬바람만 감돌던 용잡이 팀 사무실은 내부 온도는 상승했을지 몰라도, 분위기적으로는 얼음이라도 얼  같은 상태였다. 그야말로 바늘이 떨어지면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의 정적.


그 정적을  것은 일행  가장 가녀려 보이는 여자였다.


화련은 팔짱을 풀고 제 머리를 헤집으려던 손을 미간으로 향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한테 보여주려고 일주일 동안 수련하셨다. 이거에요?”
“...예.”

화련에 비하면 두 배는 커 보이는 남자, 류 현은 그야말로 덩치에 걸맞지 않은 힘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화련은 미간을 주무르며 한 숨을 삼켰다. 이러다가 정말 스트레스성 편두통이라도 생길 것 같았다.

‘...진짜 거짓말은 못 하네. 어쩜 이렇게 티가...에휴.’


팀 결성 때 당한 이후로, 거짓말을 잘못한다는 자각은 생겼는지 직접적인 거짓말은 피했지만 의도가 너무 뻔했다.


화련이 웨인에게 던전 안에서 캐온 풀-살살이풀-에 대해서 묻는 장면을 봤으니 그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녀가 뭘 궁금해 하고 있는 것인지 정도는 알 수 있을 터.

화련이 보기에 지금 류 현의 행동은,


‘감추기 위해서 다른 일을 떠벌이다니...무슨 애도 아니고.’


감추고 싶은 일을 가리기 위해서 다른 걸 떠벌리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대놓고 캐묻는다고 냉큼  불  같지도 않고...’


“그래서 성과는 있는 거에요? 아까 보니까 좀...”


상태가 좋아보이진 않던데. 화련은 뒷말을 삼켰다.

던전 안에서 승하와 치고받던 류 현의 모습은 누가 봐도 정상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승하와 주고받던 일격 일격의 위력이 말이  되는 건 둘째 치고, 기세가 달랐다. 플레이어 치고는 이상할 정도로 차분한 평소 그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정말 뭔가에 씌었다고 해도 될 정도.


그걸 보고 상당히 놀랐는지, 희란은 대놓고 류 현과 눈조차 마주치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침묵이 화련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는 상황이라서 나쁠 건 없었지만, 화련 또한 위화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보신대로 아직까지는 실전에서 써먹긴  그렇죠.”


류 현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그녀가 삼킨 뒷말 정도는 유추해 낼 수 있었다. 수련을 시작한 이래로 승하가 계속 해온 말이기도 했다. 그녀는  나아가서 부작용 같은 게 없냐고 물었지만  현은 대충 얼버무렸다. 현재 괴수들의 수준을 보면 ‘강림’수준의 힘이 꼭 필요하진 않으니까. 바로 체감되는 부작용이 있는 힘을 당장 수련해야 할 정도의 위기 따윈 없다.

‘아직은 말이지.’


꼬투리가 잡히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잡힐 수도 있으니 조심, 또 조심할 뿐이었다.

“...아무리 봐도 오버파워 같던데.”
“패는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아닌 것 같은데.’ 화련의 슬쩍 올라간 눈꼬리가 그렇게 묻는 것 같았지만, 류 현은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얼버무렸다. 언젠가는, 아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식으로 얼버무릴 수도 없게 되겠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이었다.

어색하게 미소 짓는  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화련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감추고 싶은 게 있어서 감추고 있던 사실을 하나를 깐 것이지만, 그가 아주 모르쇠로 입을 꽉 닫고 있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얻었다.

‘...막말로 마스터가 대놓고 모르쇠로 일관해도 마땅히 항의할 방법도 없고.’

“그렇네요. 하지만 다음부터는 안 이러셨으면 하네요. 팀이잖아요? 비밀 없는 사이가 되자는 게 아니라, 암시라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마스터.”

하지만 그가 대답하기 곤란한 부분을 찌를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진 않았다. 류 현은 얼굴에 걸린 어색한 미소가 더 뻣뻣하게 굳은 채로 말했다.

“...이런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휙 하고 두 달이 흘러갔다.

“‘예거즈’ 마스터 구정아, 징글벨이 울리기 전에 퍼플 던전 클리어 천명. 원정대 퍼플 던전에 돌입. 놀고 있네. 진짜.”

국어책 읽기로 기사 제목을 읽은 화련은 신문을 미련 없이 탁자위에 던져놓았다. 기다리고 있던 희란이 그것을 받아들고는 탐독하는 것까지 보고 화련은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탁자에  발을 올린 껄렁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그녀의 대장을 바라봤다. 반쯤 감겼다가 뜨이고, 감겼다가 뜨이기를 반복하는 두 눈에는 잠기운이 가득했다. 보기 드문 무방비한 모습이었기에 화련은 굳이 류 현을 부르지 않고 지긋이 그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지난 두 달 간 그는 안 피곤해 보인 적이 없을 정도로 바빠 보였었다. 내내 붙어있지 않았으니 아닌 날도 있었겠지만, 최소 일주일에 한 번씩 얼굴을 볼 때마다 류 현은 머리만 닿으면 잠들  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 두 달간 그가 짜놓은 블루 던전 실전 훈련에 죽어나가면서도 변변한 불평조차 못했었다. 던전 안에서 사흘 연속으로 혼자서 말뚝 불침번을 서고도, 멀쩡하게 괴수를 때려죽이는 인간이  죽어가는 얼굴로 훈련 매뉴얼을 나눠주니 목구멍까지 올라온 불평이 쏙 들어갔다.


그에게 바로 묻긴 뭐해서,  현과 계속 붙어 다니고 있는 승하에게 슬쩍 물어보자, 히죽히죽 웃더니 “부럽네. 부러워.”같이 종잡을  없는 소리만 할 뿐이었다.

다시 캐물어도 다른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같이 류 현의 비밀을 캐보자고 먼저  내민 것 치고 어처구니없는 태세변환이었지만, 타박할 생각조차 안 들었다.


‘뭐가 부럽다는 거야? 진짜 정상인이 없다니까.’


저도 모르게 뚱한 표정이 된 화련은 류 현의 얼굴을 관찰하는  관두고 툭 내뱉었다.

“웃기다고 생각 안 해요?”
“...예?”

평소보다 약간 높은 정도의 목소리였지만, 비몽사몽한 상태였던 류 현은 곧바로 반응했다. 류 현은 입가를 훔치며 좌우를 돌아보다가 화련과 눈이 마주치자 자세를 바로 했다.

“마스터는 웃기다고 생각 안 하냐고요.”


화련은 희란이 읽던 신문을 받아들더니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기사 제목을 손가락으로 짚어 보였다.  현은 누가 봐도 잠이  깬 눈을 비비적거리며 그것을 두 번,   거푸 읽고 나서야 이해하는 데 성공했다.

“기분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예상했던 일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사람 그렇게 귀찮게 해놓고 주력을 이쪽으로 돌리는 게 사람이 할 짓 인가. 이 인간들 우리랑 같이 뛸 생각도 없어 보이는데 이대로 둬도 되는  맞아요?”
“어쩌겠습니까. 그렇다고 ‘예거즈’나 ‘산군’ 쳐들어가서 우리 원정대에 집어넣을 일선급 전력 내놓으라고 깽판 칠 수도 없고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대꾸하는 류 현의 머릿속에는 내뱉는 말과는 정반대의 생각이 들어있었다.

‘다 같이 손잡고 열심히 해 봅시다 하면 곤란하지. 이게 베스트야.’


검성, 나승하로 인해서 X던전의 존재가 밝혀진지 9개월가량이 지났다. 검성과 류 현이 주체한 회담이 열린 것도 벌써  달여 전의 일.


 뒤로 회담에 사람을 보내왔던 ‘터주’, ‘산군’, ‘예거즈’, ‘파이터즈’ 같은 알만한 플레이어 단체들은 그 날 회담이 없었던 일인 양 침묵을 지키는 중이었다. 덩달아 위치가 애매해진 협회도 양 측의 눈치를 보며 침묵하고 있는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예거즈’가 예정대로 퍼플 던전에 원정대를 보낸 것이다. 보란 듯이 대문짝만한 기사까지 내가면서 말이다. 거기에,  뒤를 이어서 한 달 내로 ‘산군’도 예약해두었던 퍼플 던전 원정을 단행할 예정이다. 누가 봐도 X던전은 뒷전이고 자기 할 일에만 치중하고 있는 상황.


대형 길드들의 생리에 훤한 류 현은 이런 반응을 예상했고, 그래서 회담개최 라는 방식으로 호응하는 시늉을 한 것이지만 화련이 보기에는 불합리 그 자체였다. 사람을 말려죽일  같이 귀찮게 굴더니 그런 일 없었다는 양 행동하는 하고 있으니까. 그 위험한 곳에 꼭 들어 가보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 나쁜 건 기분 나쁜 거였다.

“우리 칼잡이 씨는 아무 말 없어요? 그 양반이 제일 몸 달아있을 거 같은데.”


승하를 지칭하는 괴상한 별명에  현이 떨떠름한 얼굴이 되었지만, 화련은 뻔뻔스럽게도 무슨 문제 있냐는 듯이 고개를 기울이며 대답을 재촉했다.

“아직까지는 괜찮습니다. 요새 제 상대 해주시느라 바쁘기도 하고요.”
“...둘이 아주 깨가 쏟아진다고 하지.”
“예?”
“아뇨, 그냥 헛소리였어요. 의외네요. 당장 ‘예거즈’나 ‘산군’ 중에 하나 골라잡아서 쳐들어 갈  같았는데.”
“뭐 그런 것도 있고. 오늘 연락이 왔거든요.”
“어디서요?”


다시 받아든 신문을 읽진 못하고 눈치만 보던 희란이 불쑥 끼어들어왔다. 희란식 대화법에도 꽤나 익숙해졌기에 류 현은 자연스럽게 받아넘겼다.


“회담에 참석 했던  전부요. 아침부터 휴대폰에 불붙을 정도로 연락해대더군요.”
“...실력자들이 던전에 들어간 상황에서?”
“뭐 그  내부 사정은   없습니다만, 지금 자리만 유지해도 모자랄  없는 양반들이 나서서 나  던전에 넣어주시오. 라고   같진 않잖습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양반들 입장에서는 판을 깨더라도 자기 몸 값을 불리고 싶을 거고요.”


그 특이 케이스에 해당되는 화련은 헛기침을 해댔다. 헛기침을 하던 화련이 사래가 들려서 콜록거리자 희란은 등을 두들겨주며 류 현에게 물었다.

“저기...그럼 받아봤자 위험하지 않을까요? 외부 압력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랑 손발을 맞추기는...”
“톡 까놓고 말해서. 그 쪽에  기대는  합니다. 아마 자기네들이 생각하기에 방해는 안 될 수준만 갖춰서 원정대에 끼워 보내려고 하겠죠. 그 쪽 진심은 우리 원정이 실패하길 바라겠지만...대놓고 깽판 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죠. 이미 퍼플 던전 혼자서 뚫어본 사람이 있으니까요. 저도 방해만  되는 수준이면 뭐라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조금의 꾸밈도 없는 진심이었다. 대형 길드들과 마찰을 빚어가며 뭔가를 뜯어내야 할 만큼 전력이 모자라진 않다. 튜토리얼 수행지라는  수 없는 변수가 추가되긴 했지만, 류 현은 클리어 자체에 대해서는 큰 걱정을 하진 않았다.

당장 류 현이 끌어들일 수 있는 전력으로도 힘이 부칠 정도면 네임드  급이라는 건데, 그 수준이면 대형 길드의 일인자들을 끌고 와도 전력이 될까 말까한 수준이다. 그 이하는 아무리 있어봐야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난이도 추정조차 힘든 미지의 던전에 대형 길드의 일인자들이 나설 리가 만무, 그렇다면 통제하기라도 편하게 인원수가 적은 쪽이 낫다.

‘솔직히 말해서 이름만 걸어놓고 아무도  보냈으면 좋겠지만...그건 힘들겠지.’


속으로는 X던전 원정의 실패를 바라겠지만, 그러면서도 발을 걸칠 여지는 남겨두고자 할 터.

류 현이 걱정하는 건 이 부분이었다. 일선급 전력이 아닌 방해가 안 되는 수준의 플레이어라도 눈과 귀는 있으니까.


만에 하나 X던전의 난이도가 통상 블랙 던전 보다 높을 경우 ‘강림’을 써야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바보가 아닌 이상  현의 능력 행사에 이상점을 눈치 챌 것이다.

“뭐, 이것도 다 제 추측일 뿐이고 오늘부터 열심히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다니면서 확인해봐야겠지요.”
“우리는 뭐 할 거 없어요?”
“......”

기침을 다한 것인지 한결 살 것 같은 얼굴이 된 화련이 묻자 희란이 힘을 실어주려는 것처럼 눈을 빛내며 류 현을 바라봤다. 류 현은 화련이 악마의 미소라고 명명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훈련 할당량 다 채우고 오시면 생각해보죠.”
“...이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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