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탐식마(貪食魔)
푸욱! 푸핫!
검은 손가락이 비늘을 두부처럼 뚫고 들어갔다 빠지자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손가락은 빠져나갔지만 잔존한 검은 안개가 샌 드래곤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캬아악!]
류 현은 샌 드래곤의 비명과 피에 취한 사람처럼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가 황급히 입가를 더듬었다.
‘씨발, 또 이러네.’
이전 생에서 류 현이 ‘강림’의 단계에 올라서고 ‘스위치’를 만든 이유.
‘미치려면 악룡 그 새끼는 잡고 미쳐야 돼.’
자기 자신이 봐도 점점 정상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자신 때문이었다. 정신줄 놓고 폭주한 건 ‘강림’각성 직후 밖에 없지만, 범상치 않은 전조는 계속해서 있었으니까. 전투 도중에 피를 흠뻑 뒤집어쓰고 실실 쪼개는 걸 누가 정상이라고 하겠는가?
거기에 제 능력에 맞출수록 점점 남에게 보이기 힘들어지는 싸움법도 크게 한 몫 했었다.
류 현의 싸움법은 별 거 없다. 무시무시한 마력량과 그에 기반을 둔 단단하고 재생력 좋은 몸뚱이로 일단 부딪히고 보는 육탄전! 에너지 드레인이나 ‘강림’같은 비장의 패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우월한 스펙을 가진 몸이 기반이 될 때나 성립되는 패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싸움방식과는 다르게 이전 생에서 류 현은 제 싸우는 모습을 극도로 드러내기를 꺼렸다. 여타 플레이어들이 싸우는 모습과 비교하면 자신이 봐도 이상했으니까.
다른 스트라이커들이 바늘하나 들고 코끼리에게 달려드는 개미라면, 그는 나무창 든 유인원 정도는 되었다. 둘 다 싸움이 성립하기 힘들 정도로 괴수와의 스펙차가 났지만, 류 현과 여타 스트라이커들 사이도 그 수준의 격차가 존재했다. 여기에 에너지 드레인까지 더해지면 플레이어처럼 생긴 괴수라는 헛소문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그리고 류 현이 이전 생에서 자신을 드러내기 가장 꺼렸던 이유는 대 괴수전이 아니라 대 플레이어전, 즉 대인전 때문이었다.
상대하기 곤란해서가 아니라, 류 현이 유명 플레이어와 맞붙을 때 마다 또 다른 적과 함께 괴상한 소문이 생겨났다. 이유인 즉 슨 너무 압도적이기 때문에!
애초에 시비 붙을 생각은커녕 내버려 두면 괴수나 족칠 생각이었던 류 현으로서는 억울하다 못해 울화통이 터질만한 상황이었다.
가장 웃긴 건 소문이 만들어진 이유가 그와 부딪힌 작자들이 그와 부딪히는 걸로 목숨을 걸면 안 되는 놈들이었다는 점과 류 현이 그 사실을 깨닫는 건 괴소문이 퍼진 이후라는 것!
그 정도로, 하룻강아지와 범을 붙인 것보다 더 압도적으로 류 현은 플레이어들을 짓눌러왔다. 그것도 그냥 널린 작자들이 아니라 길드를 대표할 수 있고,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놈들을 말이다.
그럼에도 그의 상대들은 그에게 변변한 상처조차 입히지 못했다. 차이라고는 죽인 여파가 오래가느냐 마느냐 정도였다.
가장 오래 시달렸던 건 중국 대표라던, ‘무신’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웃기지도 않는 작자와 붙었을 때였다. 중국 무술의 혼이니 어쩌니 하던 그 자의 검격은 류 현의 손바닥조차 뚫지 못했고, 류 현은 보답으로 그 자의 목을 뽑아버렸다.
그 때 자신만만하던 ‘무신’의 추종자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던 광경은 아직도 생생했다. 그 뒤로 네임드 괴수 사냥에 나설 때마다, 대놓고 비협조적으로 나오던 중국 측의 반응은 생생하다 못해 지금도 이가 갈릴 지경이었고.
가장 짜증나는 건 그 때 에너지 드레인을 운용해서 상대한 터라, 그가 괴수화 상태에 있는 플레이어니 어쩌니 하는 소문의 시발점이 되는 영상을 찍혔다는 점이었다. 편집이라는 마법까지 더 해지자 그냥 류 현이 적당히 공격을 받아주다가 목을 뽑아버린 고어영상은, 현세에 강림한 악마가 정의로운 플레이어를 찢어 죽이는 광경으로 변했다.
그 당시에는 언론 플레이의 무서움을 알지 못했었다. 언론이 저력을 드러낼만한 시대가 아니기도 하였고. 애석하게도 그 뒤에는 언론이 재기능을 할 수 있는 통신망이 완전히 붕괴해버려서 그 쪽에서는 언론 플레이를 할 수도 없었다.
그 이후 류 현은 소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불가피하게 플레이어와 상대하게 될 경우, 목격자를 다 죽일게 아니라면 바로 목을 뽑아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과 펜대 휘두르는 것들과는 상종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류 현이 그 소중한 교훈을 떠올린 건 저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쉽게 샌 드래곤들을 도살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미 늦어도 한참을 늦어서 그가 올라타고 있던 샌 드래곤의 몸이 천천히 기울기 시작한 터였지만.
‘아오 진짜 일 제대로 꼬이네! 씨발 모르겠다. 일단 다 족치고 생각하자.’
류 현은 풀길 없는 짜증을 삼키며 훌쩍 뛰어올랐다. 동포를 돕겠답시고 주변에 얼쩡거리던 또 다른 샌 드래곤이 딱 좋은 거리에 떠 있었다.
쿠웅! [끄르르륵!][꾸오오오!]
날개를 잃고 추락한 그것은 곧 샌 드래곤에서 샌 드래곤이었던 사체가 되었다. 동포를 잃은 분노에 우두머리가 흉성을 터뜨렸지만, 이미 다른 샌 드래곤에게 매달린 류 현에게는 닿을 리가 없었다.
화련은 땅에 떨어진 채 발만 구르고 있는 우두머리의 기색을 한 번 살피고는 허공으로 시선을 향했다. 백업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격전지였던 그 곳은 이미 싸움의 기색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방금 전 떨어진 놈이 다섯 마리 째였다. 총 일곱 마리 중 우두머리를 제외한 보통 샌 드래곤은 여섯 마리. 그 중에서 이미 다섯이 차가운 늪지에 몸을 뉘였다. 날개가 망가져서 땅에 억지로 내려선 우두머리는 물론이고, 유일하게 떠있는 마지막 샌 드래곤도 같은 처지가 될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사람...맞아?’
[뿌드득!][찌이익!][캬아아악!]
멀찍이 떨어져 있음에도 똑똑히 들리는 섬뜩한 파열음과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마치 허공에서 불꽃이 튀는 것처럼 샌 드래곤의 날개 죽지에서 핏물이 퍼져 나왔다. 화련은 처음으로 괴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괴물’ 샌 드래곤을 산 채로, 그야말로 종이인형처럼 찢어버리는 걸 보고 다른 생각을 하기란 어려웠다. 방금 전과 달리 소름끼치는 느낌은 덜했지만, 여전히 보고 있자면 흉흉한 기분이 드는 검은 안개까지, 화련은 자신의 질문 리스트가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것과 함께 이걸 정말 물어봐도 되는가 하는 의구심 또한 느꼈다.
누가 봐도 류 현의 싸움방식은 플레이어의 사냥이라기보다도 맹수 대 맹수의 싸움이었으니까.
쿠웅! 하늘에 떠있던 마지막 샌 드래곤이 추락했다. 화련은 저도 모르게 손에 배어나온 식은땀을 바지춤에 닦았다.
***
화련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한방향이 아니라 입으로, 코로 흩어져 나가는 숨을 고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눈은 질끈 감은 채였다. 도저히 눈앞에 있는 것을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진짜 해야 돼요?”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지만 발음만큼은 명확했기에 플레이어의 청력으로는 문제없이 들을 수 있었다. 류 현은 못 박듯이 고개까지 끄덕여가며 말했다.
“지금 해야 됩니다. 지금 안 하면 나중에 만났을 때가 제삿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윽...꼭 그렇게 말을 해야겠어요?”
“밥 몇 끼 못 먹는 걸로 목숨이랑 퉁칠 수 있으면 남는 장사 아닙니까.”
“진짜, 말이나 못하면...”
위세 좋게 투덜거린 것과 달리 화련은 그러고도 한참이나 머뭇거렸다. 류 현이 한숨을 내쉬며 어떻게 격려를 해야하나 고민하던 때에 화련의 뒤에 서있던 희란이 앞으로 불쑥 나왔다. 그녀는 감았던 눈까지 반쯤 뜬 채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제, 제가 먼저 해볼게요.”
류 현은 저도 모르게 무리하지 말라고 내뱉으려다가 말을 삼켰다. 어찌 되든 간에 한 번은 거쳐야할 관문이었다. 무슨 레드, 오렌지 던전을 전전하는 수준의 플레이어도 아니니 탈이 나봤자 체한 수준으로 그칠 것이다. 전투 중에 피어에 노출되는 게 아니라 팔다리 전부 자른, 다 죽어가는 놈으로 피어 체험을 하는 것 뿐 이었으니까.
하지만 류 현은 오른손에 힘을 가하며 알아듣지도 못할 놈에게 조용히 경고했다.
“지랄하면 곱게 못 죽을 줄 알아라.”
그의 말을 알아들었리가 없겠지만 그의 기세에 눌린 샌 드래곤이 몸을 잘게 떨었다. 그러는 동안 희란이 다가왔고, 다섯 걸음 거리에서 멈춰 섰다. 사지가 다 잘려나간 샌 드래곤 우두머리의 머리에서 다섯 걸음 떨어진 곳에 말이다. 우두머리의 머리에 올라타서 누르는 시늉을 하고 있던 류 현이 마음이 바뀔 새라 얼른 말했다.
“더 다가오지 마세요. 네, 쉼호흡 하시고요. 천천히 준비 되시면 눈 뜨시면 됩니다.”
걸어올 때만 해도 반쯤 뜨여있던 희란의 눈은 다시 굳게 감긴 채였다. 마주 본 것이 아님에도 피어의 영향권에 들어온 희란은 오들오들 떨다가 결심을 한 듯 천천히 눈을 떴다. 그 조심스러운 동작에 류 현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흐읏...”
희란이 샌 드래곤을 마주 본 건 채 십초가 되지 못하는 시간이었다. 희란은 더는 못 버티겠다는 듯이 가슴을 움켜쥐더니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뒤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보고 있던 화련이 후다닥 달려왔고, 류 현은 괜히 샌 드래곤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희란아, 괜찮아? 나 봐. 이거 몇 개야?”
이번 원정의 팔부능선을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
“으아아 진짜 못해먹겠네!”
괴성과 함께 화련은 보란 듯이 풀밭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냥 풀밭이 아니라 늪지라서 온갖 찐득거리는 것들이 머리칼이며 옷에 달라붙었지만, 화련은 신경 쓰지 않았다. 던전에 들락거리다 보면 현실에서 보이는 노숙자들이 청결해 보일 정도로 험한 꼴이 되는 건 일상인지라, 던전 내에서 조금 더러워지는 건 그녀의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류 현은 떼쓰는 아이처럼 벌렁 드러누운 그녀를 내려 보다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드러누운 화련의 옆에서 희란이 열심히 살살이풀을 뽑아서 자루에 집어넣고 있어서 배로 한심해 보였다.
“그거 깔고 누우신 것만큼 배당금에서 뺄 겁니다.”
“아 씨, 우리가 던전에 풀 베러 왔어요?”
“그냥 풀이 아니니까 뽑아가는 겁니다.”
“......”
류 현의 대꾸에 화련은 샐쭉한 얼굴로 눈을 흘겼다.
‘어떻게 그냥 풀이 아닌지 아는 건데?’
늪지 지하에 웅크리고 있던 우두머리와 여섯 마리 샌 드래곤을 죽인지 이틀. 그 지난 이틀 동안 그녀의 입안에서 수십 번은 넘게 맴돌았던 말이었다. 그리고 입안에서 맴돌기만 할 뿐 내뱉을 생각은 하지도 못할 말이기도 했다.
그가 숨기고 있는 사실들을 관통하는 질문이었으니까.
‘진짜 이렇게 대놓고 없는 정보를 혼자 알고 있는데 묻지도 못하고...아으 속 터져!’
협회의 데이터베이스에는 없는 풀이었다. 이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화련은 정말 제대로 공부했었다. 학명까지는 아니어도 특징이나 효과 정도는 외울 수 있었다. 문제는 그런 그녀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이 일관성 없어 보이는 식생군락은 협회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 정도로 인상적인 형태인데 기억 못 해낼 리는 없었다. 밖에 나가서 다시 확인해 볼 생각이긴 했지만 화련은 확신했다.
길가에 잡초처럼 생긴 것까지 태우면 환각효과를 낸다고 등록되어 있는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걸 보면, 송장목 진액처럼 레시피가 있어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거나 희귀해서 발견된 적이 없는 종이라는 걸 텐데 어느 쪽이든 이해가 안 가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런 정보를 쥐고 있어선 안 되었다. 용잡이 팀 창립 당시에 화련에게 늘어놨던 누가 봐도 거짓말 같은 중2병기 넘치는 변명이 사실이 아닌 한은 말이다. 혹은...
‘진짜 트랭크스라도 되는 거야 뭐야?’
(추정)퍼플 이상의 퍼플 던전 클리어와 샌 드래곤 우두머리를 이용한 피어 적응이 끝났음에도 화련의 속앓이는 계속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