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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6화 〉탐식마(貪食魔) (106/429)



〈 106화 〉탐식마(貪食魔)

쿠웅! 피부를 때리는 것 같은 굉음에 화련의 작은 몸이 움찔했다. 보고도 쉽사리 납득이 가질 않는 광경에 화련은 왼손으로 눈을 한  비비적거렸다. 남은 오른손은 희란과 마주 잡은  마력을 공급받는 중이었다. 화련은 묘한 탈력감 속에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화련에 한숨에 희란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희란은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화련이 팀 결성 초기 때도 몇 번 없었던 완전 방전 상태였기 때문이다. 마력을 잘못 공급하면 크게 내상을 입을 수도 있는 상태.


“언니? 어디  좋아요?”
“응? 아, 아냐. 그냥 우리 마스터가 과하게 굉장하다 싶어서.”

화련의 말에 희란의 표정이 풀어지며, 그녀도 한숨을 내쉴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두 여자는 그 이상의 말을 주고받진 않았지만 서로의 심정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녀들의 시선 끝에는 죽은 샌 드래곤의 목 위에 올라타 있는 남자를 향해 있었다.

퍼억! 퍼억! 쩌억! 류 현은 혀를 길게 내 빼물고 죽은  드래곤의 목을 연거푸 내려쳐서 기어코 머리를 떼어냈다. 목뼈를 쪼개느라 날이 다 망가진 도끼를 바닥에 내버린 류 현은 휘적휘적 두 여자에게로 다가갔다.


‘생각보다 멀쩡하네.’


딱 붙어있는 두 여자의 안색을 한 번  살핀  현은 그녀들이 들었으면 기겁했을 생각을 하며, 주변에 대충 풀썩 주저앉았다.  여자가 눈에 띄게 움찔했지만 그는 피 냄새 때문이려니 하고 넘겼다. 용혈에는 다른 괴수들과 다르게 기묘한 기운 같은 게 있으니까. 던전 내에서 잠자리 주변에 뿌려두면 웬만한 잡몹들은 근처에도  올 정도니 그럴 법도 했다.

‘빡세다 빡세...괜히 그냥 때려잡았나.’

육체적으로는 별로 지치진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피로감이 상당했다. 괜히 에너지 드레인을 봉하고 때려잡았나 생각이 들 정도.

‘결국 사서 고생이지...’


 여자에게 반죽음 상태의 샌 드래곤을 묶어두라고 하긴 했지만, 완전히 주의를 거두진 않았다. 위험해지면 주변을 에너지 드레인으로 감싸든, 무리를 해서라도 ‘강림’을 땡겨 쓰든 간에 커버할 수단을 계속 염두에 뒀다. 다 그녀들 경험을 늘려주겠다고 한 짓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써먹을  없으면 하지만 그래도 할  있을 때 경험을 시켜주는 건 중요했으니까. 그 대가로 오랜만에 체력이 딸리는 상태가 되었지만.

‘오늘은...더 이상은 됐어. 진짜 꼼짝하기도 싫다.’

혼자서 들어왔다면 그냥 드러누워서  잠 붙이고 나서 행동할 시점이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  현은 기어코 그녀들의 입에서 죽는 소리를 뽑아내었다.

“고생들 하셨습니다. 오늘은 이쯤하고... 야영지로 복귀하고 쉽시다.”

화련과 희란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는 시선으로 그를 힐난했지만, 류 현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털고 일어났다.


***

화련은 졸린 눈을 두어  비비적거리다가 기지개를 켰다. 뚜뚝하고 젊은 여자 몸에서 날 것 같지 않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화련은 개의치 않고 잠든 이들의 눈치를 한 번 살피고는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그리곤 손목에 차고 있던 기계식 시계를 한 번 봤다. 불침번 시간이 아직 반이나 남아있었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로 시계를 보는 거였다. 마치 플레이어로 각성한 직후 첫 불침번을  때로 돌아간 듯 했다. 다음날 눈을 뜨면 괴수의 아가리 안이라고 해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소에는 적당히 라는 게 없어서 짜증을 유발하던 모닥불의 열기가, 뼛속까지 녹신녹신 녹이는 것 같았다.

‘죽겠네. 진짜...’


용잡이 팀에 소속되고 본격적인 원정을 시작한 후에 편했던 원정은 없었지만, 이 정도로 쥐어짜내어진  처음이었다. 심지어 청뢰를 얻었던  퍼플 던전 원정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마스터가 본격적으로 쥐어짜내기 시작하니까 진짜 답이 없네. 감당이 안 돼...’

화련은 이 피로의 원인을 알고 있었다. 류 현이 평소와는 딴 판으로 그녀들을 굴려대고 있기 때문이었다.

평소의 류 현이 널널하다고 하긴 힘들었지만 어느 정도 여유를 두고, 안전제일주의 원칙에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굴렸다면 오늘은 달랐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가이드라인이 있는 것 같았지만, 평소에는 가이드라인에 접촉은커녕 근접만 할 것 같아도 자신이 나선 것에 비해, 오늘은 라인에 접촉해도 기겁하면서 나서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가속 페달을 밟았다. 평소라면 새끼 샌 드래곤을 잡고 나서 내단부터 파먹자고 할 인간이, 내단은 그냥 챙겨두고  시체로 샌 드래곤을 끌어들였다. 그걸로 모자라서  마리를 상대로 싸움까지 걸었다. 그 이후 싸움 구도를 생각해보면 근거 없는 닥치고 돌진 같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화련은 그답지 않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모르는 사이에 그 안에 들어있던 알맹이가 바뀐 것 같은 기분이었다.


화련은 오늘 샌 드래곤 세 마리를 잡으면서 몇 번이고 우는 소리를 삼켜야 했다. 마지막 사냥 때는 완전히 방전 되서 불평할 기운조차 없었다. 용잡이 팀 초창기에도 몇 번 없었던 완전 방전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놀라운 건 그렇게 쥐어 짜이고도 부상이 없다는 것.

프로 스포츠맨도 거듭되는 훈련이나 경기로 쥐어 짜이다 보면 부상당할 확률이 높아진다. 스포츠 경기만 해도 그럴진대 던전 사냥은 더하면 더했지 덜 할 수는 없다.


각성한지 1년 이내에 던전 안에서 사망하는 플레이어들의 사망 원인 중에, 돈맛에 미쳐서 휴식기를 제대로 갖지 않고 연속 원정을 시도하다가 떼몰살 당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오죽하면 협회에서 매년 연말마다 플레이어들의 상대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 1장에 들어가 있을 정도다.


이렇듯 쥐어짠다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 위험을 내포한 행위다. 그럼에도 그녀들이 여태껏 긁힌 상처 이상의 부상을 당해본 적이 없다는 건 누가 봐도 말이  되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오늘처럼 평소와는 비교도   없는 강행군을 한 경우에는.

‘진짜 생각할수록 말도 안 되는 인간이라니까.’

화련은 모포를 둘둘 말고 있어서 감긴 눈밖에 보이질 않는 그녀의 대장을 보며 생각했다. 드물게도 류 현은 오늘 불침번 순서를 정하자마자 곯아떨어졌다. 그녀가 우는 소리를 속으로만 삼킨 이유였다.

그녀가 볼 때 희란과 자신을 쥐어짜서 가장 고생한 건 류 현이었다. 새끼라고는 하나 샌 드래곤 하나를 혼자서, 그것도 일명 마력검이라고 불리는, 근접 계열 플레이어들이 달고 사는 마력 코팅 기술만 써서 도살하더니  드래곤을  번에 두 마리 상대할 때도 거의 혼자서 다 해치웠다.


희란이 청뢰로 공격한 개체가 그걸 맞고도 류 현과 오 분 넘게 사투를 벌였던 걸 기억해낸 화련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의 기준에서 청뢰는 게임으로 치면 버그템이나 다름없었다. 운영자가 끼고 있는 공격력 9999짜리 검 같은 그런 것. 다른 놈들은 이제 막 활의 달인, 창의 달인하고 있는데 갑자기 대포가 하늘에서 떨어진 격이다.


희란이 말하기를 최대 출력은 아니었다고는 했지만, 화련의 생각에는  영향을 주진 못했다. 청뢰를 얻었던 퍼플 던전과 동일한 퍼플 던전의 보스몹이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런 괴물 같은 놈을 혼자서 때려잡은 인간은 대체 뭐라고 불러야하는 걸까. 화련은 대답을 내놓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사실 사냥능력이야 개인차가 날 수 있는 거지만...’


단순히  잡는 거라면 화련은 원래 저런 인간이구나 하고 별 생각을 안했을 것이다. 주변에 검성이라는 재능으로 정점을 찍은 괴물이 있으니까. 그 괴물이 싸우는 것도 봤으니까.

검성의 스펙은 소문과 달리 특출난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류 현보다 육체 스펙은 모자란 것 같은 데 그걸 기술로 채우다 못해 뻥튀기 시킨 느낌이었다. 남들은 이제 제 발로 서서 활을 쏘는데, 그녀 혼자서 등자도 없이 달리는  위에서 활을 쏘는 것 같은 느낌.


정말 차원이 다른 재능이 이런 거구나 하는 예시를 똑똑히 목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류 현은 그것과는 달랐다. 기량은 출중했지만, 검성이 싸우는 모습을 볼 때 느껴지는 재능의 벽이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히 격차는 있지만, 그는 남이 못하는 걸 하는 게 아니었다. 에너지 드레인이라는 수상한 기술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남들도 다 할 수 있는  주무기로 삼았다. 그저 훨씬 능숙했을 뿐.


그리고 화련이 가장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부분이었다.

류 현은 각성한지 만 2년이  된 루키 소리를 들어야하는 이다. 그런 사람이 능숙하다니? 류 현은 그 비슷한 경험을 할 만한 격투기나 군대와의 인연조차 없다.

 이상한 건 그의 능숙함은 그가 분명히 처음이었을 상위 던전으로 갈수록 더욱 두드러진다는 점이었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서 블루 던전까지 올라온 이들이 가장 고생한다는 눈보숭이 같은 완전 환수형 괴수를 잡는 노하우를 전수하질 않나. 해독법이 어려운  아니었지만 그 시점에서 누구도 몰랐던 송장목 진액 해독법을 협회에 양도하기까지 했다.


거기에 오늘 보여준 채찍을 이용한  샌 드래곤 전투 양상은 놀랍다 못해 어이없는 수준이었다.

화련은 류 현에게 원정 전날까지 시간을 뺏기는 경우가 아니면,  목숨이 달린 던전조사에 소홀한 적이 없었고, 주변에 경험담을 듣기 좋은 베테랑도 있었으니 맘껏 묻고 다녔었다. 나승하라는 경험담이 곧 권위 있는 전문가 의견이 될 수 있는 존재에게 말이다.


샌 드래곤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승하는 대 드래곤 전의 난해함을 두 문장으로 표현했다.

“그냥 화살 몇 대 가지고 헬리콥터 떨구는 게 훨씬 편해. 물론 걔는 떠 있는 상태에서.”


그 이후에 모은 정보들을 봐도 승하의 말은 틀린 말은 없어보였다. 몸에서 떼어낸 비늘을 조금만 갈아도 칼 대용으로  수 있을 정도라니, 이것만으로도 스트라이커들은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괴수 쉴드 때문에 괴수와 바짝 붙는 것만으로도 스트라이커들의 마력이 소모가 된다. 거기에 물리적인 방해까지 있으면 소모는 곱절이 된다.


덤으로 용종 괴수들은 반드시 까지는 아니어도 대부분 비행능력을 가지고 있다. 잡을 곳이 없는 90도 절벽이 흔들리기까지 하는 그런 상황.

원거리 공격 방법이 없는 류 현에게 기대는 바가 많은 용잡이 팀의 팀명을 무색하게 만드는 특징들이었다.

거기에 마법 저항력도 무지막지한 수준이라고 하니, 화련은 그냥 죽을 때까지 응룡 이상의 용종 괴수를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생전 찾지도 않던 누군가에게 빌었다.

그런데 그 기도를 비웃는 것처럼  현은 채찍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 접촉면은 최소화 됐고, 매달리는 어려움은 있지도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채찍의 효용은 충분했는데, 무기로서 효용까지 기가 막혔다. 싸움이 끝나고 나서 그것이 응룡 가죽을 가공해서 만든 것이라는  그녀는 들을 수 있었다.

마치 샌 드래곤이 나올  알았다는 것처럼 만들어서 들고 온 응룡 가죽 채찍은 화련의 의구심에 불을 당겼다.

류 현은 이전에 채찍을  적도 없고, 쓰는 연습하는 모습조차 보인 적이 없었다. 보급품 목록에 포함시킨 적도 없었다. 화련에게 와이번 발목에 묶으라고 로프를 챙긴 적은 있었어도, 그 대용으로 쓸 법한 채찍은  번도 보여준 적이 없었다.


화련이 보기에 오늘  현이 채찍을 들고 싸우는 모습은 하루 이틀 벼락치기로 보일 수 있는 그런 게 아니었다. 몰래 수련해왔을 수도 있겠지만, 화련은 그래야할 이유가 뭔지 도무지  수가 없었다.


‘아니, 단순히 패를 숨기는 거면 이해라도 하지...’

그가 이따금씩 푸는 정보와 능숙함은 패를 숨기는 도박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패를 숨기고 싶다면 송장목 진액 같은 패를 그렇게 쉽게, 협회에 거저나 다름없는 식으로  리가 없다. 상대를 쉽게 주무르기 위한 버림패라고 생각해도 이상했다. 그런 거라면 지금까지 최대한 눈을 피하는 행보를 보일 필요가 없다.


‘대체 뭘 노리는 거야?’

의구심은 깊어갔지만 그것을 풀길이 없는 화련은 제 마음속의 노트에 오늘 느낀 의구심을 추가하는 걸로 끝낼 수밖에 없었다. 던전 밖에 총대를 메주겠다던 상식이 결여된 무대포가 있으니 그녀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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