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5화 〉탐식마(貪食魔) (105/429)



〈 105화 〉탐식마(貪食魔)

[꾸오옹!][끄르륵!] 쿵!

목구멍을 뚫고 나오려던 단말마는 결국 피거품 속에 파묻혔다. 단말마마저 다 내지르지 못한 샌 드래곤은 두 눈을 부릅뜬 채로 땅으로 고꾸라졌다. 반쯤 벌려진 아가리로 검붉은 피가 꾸역꾸역 쏟아져나왔다.

대지에 몸을 누인 모습은 생전의 위엄 있는 하얀 동체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상태였다. 거듭된 채찍질과 도끼질로 목둘레는 피범벅을 넘어서 걸레짝 꼴이었다. 목덜미에 박힌,  드래곤의 숨통까지 파고든 도끼의 존재는 기괴하기까지 해보였다.

류 현은 숨이 끊어진 샌 드래곤의 몸에서 훌쩍 내려섰다. 그의 양손에는  드래곤을 끊임없이 괴롭힌 채찍이 쥐여져 있었다. 류 현은 채찍 줄을 한 번 슥 훑어보더니 혀를 찼다.

‘역시 응룡 가죽으로는   못 쓰겠네.’

샌 드래곤 사냥의 일등공신이었던 채찍은, 볼품 없는 외관과 다르게 저번 퍼플 던전 사냥 때 얻은 응룡 가죽으로 만든 것이었다. 응룡 가죽을 용혈에 담갔다가 말리고, 담갔다가 말리는 과정을 열 번 가량 반복한 후 추가 처리 과정을 거치면 보기에는 썩은 동아줄 보다 못한 외견과는 다르게 샌 드래곤의 방어력도 뚫는 물건이 된다.

물론 그것도 그냥 되는  아니라, 무식하게 마력을 때려 붓는 그의 전투방식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류 현이 파쇄권으로 두들기는 것보다 도구를 택할 정도로 용종 괴수의 방어력은 대단했다. 특히 순수 마력만으로 이루어진 공격에 대한 방어력은, 동급 괴수보다 0.5 단계 수준이 아니라  단계이상 높은 수준이었다.

용종 괴수를 상대로 마법과 류 현의 파쇄권은 에너지 드레인을 동반하지 않는 이상 별로 좋은 공격법이 아닌 것이다. 용종괴수가 들어있는 던전에서 스트라이커들의 사망률이  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피어 때문에 접근하기도 어려운데, 마법사들의 평소 같은 지원도 기대하기 힘든데다가 둔한 편이냐면 그것도 아니었으니까.

롤러코스터보다 더 끔찍한 움직임을 보이고, 잡을 곳이라고는 잡으면 손이 베일 것 같은 비늘이 전부인 드래곤의 몸뚱이에 창, 칼 하나 쥐고 매달린 채 상처를 내는 건 곡예를 넘어서 완곡한 자살행위로 보일 정도다.

혼자서 수많은 용들의 멱을 따버렸던 류 현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현이 굳이 에너지 드레인은 위협용으로만 쓰고, 채찍과 도끼 몇 자루만으로  드래곤을 상대한 건 용종 괴수에 대한 여유와 그가 말했던 시범을 겸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그녀들에게 그대로 따라하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화련은 애초에 용종 괴수와 상성이 나쁜 마법사고, 희란도 굳이 분류하자면 그 쪽이었으니까.

그녀가 스트라이커 흉내를 몇 번 냈었고, 재능도 있어 보이긴 하지만 류 현은 굳이 그쪽으로 키울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재능이 넘쳐도 스트라이커라는 포지션은 위험하다. 이미 검증된 인재를 위험한 수렁에 밀어 넣을 이유가 없었다.


그저 대 드래곤 전투의 두 가지 유형을 전부 보여줄 생각에서 한 행동이었다. 스트라이커를 제외한 원정대원 전원이 방해꾼 역할을 하고 스트라이커가 달라붙어서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해결하는 근접전부터, 용종괴수가 현실로 뛰쳐나오지 않는 이상 할 일이 거의 없는 맞포격전까지.


전자는 류 현이 혼자 다 해먹는 바람에 다시 해야겠지만, 류 현은 달라붙는 순간 용종 괴수의 강력함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는 걸 보여주는 걸로 만족했다. 사실 전자를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현이 달라붙은 상태로 천천히 지휘하면 되니까.


굳이 채찍 사용법이나 매달린 채로 싸우는 법을 보여준 건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서였다. 괴수가 현실로 뛰쳐나오는 3차 ‘대소환’이 되면 정해진 역할만 소화할 수는 없으니까. 팀원이 그와 떨어진 채로 용종 괴수와 마주쳤을 때를 대비해서, 잡지는 못해도 시간만  수 있으면 족하다.


정작 그녀들은 그 부분 보다는 류 현의 말도 안 되는 기량에 경악하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라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수는 없었기에, 류 현은 별 걱정 없이 샌 드래곤의 사체를 파치며 내단을 찾기 시작했다.  거 아니라는 듯이 샌 드래곤을 때려잡고, 사체를 헤집는 모습이 두 여자에게는 어떻게 비칠지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

[꾸오옹!] 콰콰콰!


칼날 같은 비늘이 싸인 꼬리가 스쳐지나가자 살살이풀들이 우수수 무너졌다. 꼬리가 아니라 거대한 낫이 쓸고 지나간 것 같은 섬뜩한 장면이었지만, 류 현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왼손에 쥐고 있는 채찍 손잡이를 확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화련 씨 프레셔 풀렸습니다!”
“아, 알았어요!”

 현의 지적에 화련이 움찔하며 흩어졌던 집중력을 끌어 모았다. 순식간에 그녀의 동공에 하얀 빛이 어리며 마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린 건 언제나 처럼 투명한 면으로 막혀 있는 방이었다. 그녀가 상상한지 채 십초가 지나지 않아, 그녀의 시선 끝에 마력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육면체가 나타났다. 방의 이미지가 완성되자 화련은 지체 없이 두 손을 아래로 휙 휘둘렀다. 그녀가 만들어낸 ‘방’이 지체 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자,

쿠웅! [오오옹!]

방금 전까지 꼬리를 휘두르고, 한쪽 밖에 안 남았지만 남은 날개를 퍼덕거리던 샌 드래곤의 움직임이 멈추더니 고개가 갑자기 아래로 확 쳐 박혔다. 그것도 잠시 샌 드래곤은 다시금 고개를 들어 올렸지만, 기다란 목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드래곤이 몸을 떨며 고개를 들어 올리려고 할 때마다, 입을  다물고 있는 화련의 입술도 바르르 떨렸다.


그녀는 자기 외에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투명한 면으로 이루어진 ‘방’을 노려보며  존재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애 쓰는 중이었다. 화련은 머리가 깨질  같은 집중 상태에서 생각을 했다.

‘묶어두는 것만 해도 이렇게 힘든데...어떻게  마리를 혼자 잡은 거야?’


조금이라도 집중이 흐트러지면  드래곤을 누르고 있는 ‘방’이 깨질 것만 같았다. 샌 드래곤의 마법저항력이 말도  되는 수준이었다. 비효율의 극치라지만, 마법 저항력의 영향을 다른 마법사들보다 훨씬  받는 그녀조차 묶어두는 걸로 버거울 정도였다.

아니, 묶어뒀다고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뻐억! [캬아아악!]


류 현의 주먹이 뒤통수를 후려치자 샌 드래곤의 몸뚱이가 거칠게 요동쳤다. 금방이라도 그녀의 마법이 깨뜨릴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화련은 솔직히 말해서 제 마법이 효과를 보고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웠다. 플레이어로 각성하고 나서 제 마법에 이렇게 자신이 없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의구심의 중심에는 족히 5미터는 넘어 보이는  드래곤의 목덜미에 매달려서, 로데오를 하고 있는 류 현이 있었다. 그는 정말 평상시처럼 아무런 장애도 없다는 듯이 샌 드래곤의 목덜미를 창으로 찌르고, 도끼로 패고, 주먹을 휘둘렀다.


‘자기도 마법 영향권 안인데...대체...아니 애초에 대형 괴수에 매달려서 저런 움직임이 가능하긴 해?’


그는  드래곤과 같이 화련의 마법의 영향권 안에 있는 상태였다. 5톤 트럭을 그냥 고철로 만들어버릴 압력이 우습다는 듯이 류 현의 움직임에는 멈칫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그가 시킨 일이긴 했지만 화련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기분이었다.


[오오옹!] 콰릉!

하지만 그녀는 길게 고민할 팔자가 못 되었다. 뇌성이 사위를 찢어놓자 마자 그녀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언니!”
“알았어!”

화련은 돌아보지도 않고, 목소리가 터져 나온 뒤편을 향해서 손을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희란의 몸이 두둥실 떠오르더니 반대편으로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희란이 날려가자마자,

후화악! 브레스라고 불리는 마력의 폭풍이 희란이 서있던 자리를 초토화 시켜놓았다. 살살이풀들과  아래 흙이 열기도 없는데 타들어가는 장면은 소름끼칠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


희란은 그 광경에는 조금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대신 저보다 더 높은 곳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적을 노려보며 오른 손을 겨냥했다. 희란의 오른  검지에는 청뢰가 자리하고 있었다.


콰릉! 다시금 뇌전이 허공을 내찢으며 내달렸다. 뇌전의 타겟이 너무 거대해서 빗나갈 일은 없어 보였다.


샌 드래곤! 5미터 정도가 아니라 거의 8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몸뚱이와 그에 걸맞은 웅장한 날개를 펴고 날고 있는 괴물이 목표였다. 뇌전은 그야말로 섬전과 같이 허공을 내달렸으나,


지지직! 뛰쳐나가던 기세와는 달리  드래곤의 주변에 도달하자 맥없이 스러졌다. 샌 드래곤은 광경을 보고 비웃듯이 날개짓  번을 하더니 탄환처럼  몸을 내쏘았다.

목표는 방금 전부터 자신이 지상의 동포에게 다가갈  없게 깔짝거리는 날파리! 거리가 좁혀지는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희란은 놀라는 기색 없이 돌진해 오는  드래곤을 나른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도주는커녕 그녀는 땅에 내려선 채, 하늘에서 땅으로 내쏘아진 화살 같은 괴물을 향해서 다시금 오른손을 펼쳤다.


 번이고 본 광경이었지만,  드래곤은 신경 쓰지 않았다.  번이고 저 수에 노출되었지만 피해는 전무했었다. 한 번이 아니라 수차례 확인했다. 저 날파리에게는 자신을 위협할 수단이 없다!

 정도는 얼마든지 받아주마!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날아드는 샌 드래곤을 바라보며 희란은 씩 미소 지었다. 화련이나 류 현이 봤다면 입을 쩍 벌렸을 평소 그녀와는 거리가 먼, 조롱하는 듯한 미소였다.

‘멍청하긴.’


콰릉! 뇌전이 천지사방을 찢을 기세로 뛰쳐나갔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그저 소리와 빛만 있는 위협사격이 아니라 희란이 보유한 마력의 1/3을 때려 박았다는 것!

그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꾸오오옹!] 여태껏 수차례에 걸친 공격에도 꿈쩍하지 않던 샌 드래곤이 괴성을 내지르며 허공에서 몸을 비틀다가, 쿠웅! 류 현에게 붙잡혀 있는 제 동포처럼 몸을 땅에 누이게 되었다.

방심 한 번에 땅으로 추락한 샌 드래곤이 부들부들 떨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콰직! 뻐어억! 뒤통수를 뭉개놓을 기세로 내려쳐지는 주먹과 도끼가 그 시도를 무위로 되돌렸다. 붙들고 있던 샌 드래곤을 반죽음으로 모는 데 성공한  현이 어느  샌 드래곤을 갈아탄 것이다.


“희란 씨는 이제 화련  보조하시면 됩니다. 금방 끝날 테니 두 분이서 저 놈만 붙들어 놓으시면 됩니다. 절대 가까이 접근 마시고요. 데미지를 더 줄 필요 없습니다.”

콰직! [오오옹!]


담담하게 말하며 거듭 샌 드래곤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현의 손속에 샌 드래곤이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었지만, 류 현은 손을 멈출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애초에 류 현은  구슬픈 울음소리를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


‘여기 놈들은 다 덩치가 크네. 덕분에 채찍이나 용린갑은 원껏 만들겠네.’

아직 죽지도 않은 놈의 가죽으로 이것저것 만들 생각으로 가득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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