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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화 〉탐식마(貪食魔) (104/429)



〈 104화 〉탐식마(貪食魔)

용종 괴수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평가는 매우 간단하다. 모두들 용종 괴수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똥 씹은 표정이 되곤 한다.


스폰 해주는 기업이나 길드 입장에서는 용종 괴수는 이빨부터 발바닥가죽까지 돈이 되는 보물이지만,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마주치기 싫은 지랄 맞은 괴수일 뿐이다.


그들에게 용종 괴수가 왜 싫은지를 묻는다면 지면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류 현은 간단하게 두 가지로 압축할  있었다. 첫 번째는 피어의 존재고, 두 번째는 동급괴수에 비해서 최소 0.5단계는 높은 방어력이다.


그 외에도 비행능력이나, 괴수 중에서도 짜증날 정도로 귀찮게 엉겨 붙는  같이 짜증나는 점이   가지는 아니었지만  현이 생각하는 핵심은 그거였다.


이전 생에서 세상이 괴수 천국이 되었을 때, 괴수와의 싸움이  이상 플레이어들만의 몫이 아니게 되었던  시절에 가장 골치 아픈 괴수 투톱 중 하나였던 게 용종 괴수다.

다른 투톱의 하나인 리치가 언데드 생성으로 괴수의 개체수를 늘려서 전선부담을 가중시키고, 전선을 유지하는 일반병사들의 멘탈에 심대한 데미지는 줘서 투톱 중 하나로 꼽힌다면, 용종 괴수는 플레이어들을 학살해서 투톱 중 하나가 되었다.

용종괴수가 갑자기 난입한 전선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다. 플레이어들이 죽어나가는 건 물론이요, 피어에 노출된 일반병사들이 나자빠지니, 그들을 수습하느라 사망자가 난 것보다 더 병력운용이 더뎌졌다. 그렇다고 멀쩡히 살아있는 생목숨을 버릴 수도 없지 않은가?

가장 큰 문제는 플레이어들을 쏟아 붓는다고 해서 잡을 수 있는 종류의 괴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피어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열이고 백이고 별 다를 것이 없다. 열보다는 백 쪽이 피어에 적응할 이가 나올 확률이 더 높겠지만, 안타깝게도 인구 대비 플레이어 각성 비율은 일만 분의 일. 원한다고 쏟아 부을 수 있는 종류의 전력이 아니었다.

자연히 용종 괴수는  현 같이 이미 피어에 노출되어 본 전력이 있는 최상위권의 플레이어들의 몫이 되었다.


이전 생에서 류 현은 지긋지긋할 정도로 용이 분탕질 치는 전장에 나섰고, 마주친 용들을 그야말로 도살했다. 호출이 오면 열에 아홉은 무슨 드래곤이 분탕질 치고 있으니 좀 어떻게 해달라는 요청이었고,  현은 그 때마다 욕지거리를 중얼거리며 걱정하는 세아의 손을 뿌리치고 전장으로 향해야 했다. 그 지긋지긋한 인연은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 되었다.


마지막에 가서는 가장 강력한 용종 괴수와 목숨을 맞바꿨으니, 좋게 보일 리가 없다. 사냥 난이도를 떠나서 그냥 용종이라면 마주치기도 싫을 정도.


그리고 그렇게 지긋지긋하게 용종과 부딪혀온 류 현의 용종 사냥 숙련도가 지금 시점에서 보면 비정상적일 정도로 높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마 이전생과 앞으로의 미래를 통틀어도 그보다 용종을  잡는 플레이어는 없을 것이다.


촥! 퍼억! [끄리릭!]

채찍이 허공을 찢으며  드래곤의 떼어서 바로 칼로 써도 문제없을 것 같은 날카로운 비늘에 싸인 몸뚱이를 후려쳤다. 연이어 터져 나오는 파열음은 전혀 예상외의 것이었다. 찢어진 건 말라 비틀어지다 못해 부스러질 것 같은 채찍이 아니라 샌 드래곤의 몸이었고,  자라지 못한 샌 드래곤은 위엄 없는 비명과 함께 몸을 비틀었다.


발치의 살살이풀들이 마구 짓이겨지면서 달큰한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멀찍이 떨어진 두 여자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멀리.


하지만 화련과 희란은 그 향기를 온전히 느낄 수가 없었다.


쿵! [끼라악! 캬악!] 쿵!

3미터에 달하는 샌 드래곤이 부피로 따지면 제 반의 반도 안 되는 인간의 손짓 한 번에 고통에 몸부림치는 꼴은 기괴하다 못해 섬뜩한 느낌이었다. 그런다고  드래곤의 피어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기에 섬뜩함은 더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후들거리게 되는 괴물이 인간에게 농락당하고 있었다.


‘마스터가 강한 건 알고 있긴 했지만...이 정도였어?’


퍼플 던전의 보스몹을, 그것도 청뢰를 가진 라가로드를 그 혼자 잡아 죽였으니, 보스몹도 아닌 샌 드래곤 새끼 정도는 당연히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화련은 류 현이 그 자신도 처음 봤을 샌 드래곤을 상대로, 피어로 인한 멈칫거림도 없이 이렇게 가지고 놀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도 그가 듣도 보도 못한 사냥 방법으로, 저렇게 압도적으로 샌 드래곤을 짓누를 거라고는 그녀들에게 조사를 명한 승하조차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화련은 이걸 사냥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조차 의심스러웠다. 류 현은  드래곤을 유인해야겠다고 말하더니, 금방 그들을 지나쳐갔던  드래곤 새끼를 쫓았다.


얼마가지 않아 그들은 살살이풀을 뜯어먹고 있는 샌 드래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화련은 저 덩치 큰 괴물이 풀이나 뜯어먹는 광경이 괴상망측하다고 생각했지만, 같은 광경을 보던 류 현은 뚱한 얼굴로 보고 있다가 툭 몇 마디 내뱉었다. 사냥의 시작을 알리는 말이었다.


사냥 시작을 알리는 말도 괴상했다. “다 크지도 못한  피어는 체험해 봐야  의미가 없으니, 저건 그냥 미끼로 쓰겠습니다. 그냥 잡기는 좀 아까우니, 사냥법 시범을 보여드리지요.”


그러더니 ‘가방’에서 말라비틀어진  같은 모양새의 채찍을, 제대로 휘두를 수나 있는지 의심될 정도로 긴 채찍을 한 다발 꺼내들고는 그대로 샌 드래곤 새끼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첫 타겟은 펴기 전에는 보이지도 않던 날개였다.

화련은  현이 철퇴와 도끼로 샌 드래곤의 등판을  번 두들겨대자  쳐지는 가죽 주머니 같은 걸 보고나서야 날개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새끼라기에 날개가 아직 돋아나지 않은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 뒤로는 방금 전 같은 광경의 반복이었다.  후 오 분여 동안 류 현은 단 한 번도 샌 드래곤의 몸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건 사냥이라기보다도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노는 것에 가까웠다.


화련은 계속 벌어지는 입을 다물려는 시도를 포기했다. 희란은 일찌감치 주저앉은 상태였다.

쒝! 쫘악! [캭! 컥! 컥!]

 현이 채찍을 쥔 왼팔을 휘두를 때마다 샌 드래곤의 입에서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현은 그런 건 관심 없다는 듯이 노는 오른 손으로 ‘가방’을 조작해서 손도끼 하나를 꺼낸 후,


퍼억! 파각! 있는 힘껏 샌 드래곤의 목덜미를 후려쳤다.

기대와 달리 도끼는 비늘을 조금 깎아내는 데 그치고는 쓸  없을 정도로 날이 나갔다. 류 현은 미련 없이 도끼를 내버리고 다음 무구를 골랐다. 그 와중에도,

쫘악! 헐거워진 채찍을 다시 휘둘러서 밧줄을 매듯이 샌 드래곤의 목덜미를 휘감은 후에 다음 도끼를 꺼내들었다. 마치 평지에 서서 도끼질을 하는 것 같은 평온한 모습이었다. 그가 올라탄 샌 드래곤의 움직임은 전혀 평온하지 못했지만.

[끄리릭!][캬아아아악!]

샌 드래곤은 있는 대로 몸부림치며 대지에 배를 부딪쳤다가, 훌쩍 뛰어올랐다가를 반복했다.   뛰어오를 때마다 샌 드래곤의 시계가 최소 5미터는 높아졌다. 그 때마다 더러움이라고는 모를  같은 하얀 비늘이 흙투성이가 되었다. 던전 안에서 적수라고는 없이 살아온 샌 드래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굴욕이었다.

땅에 구르려고 시도할 때마다, 그러지 말라는 듯 괴상한 기운이 몸으로 스며들었기에 구르는 건 할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날아드는 채찍의 고통도 끔찍했지만, 그 괴상한 기운은 견디고 말고를 논할 수준이 아니었다. 미지의 기운은 고통도 고통이지만, 알 수 없다는 공포 또한 동반했다. 샌 드래곤이 아무리 괴수치고는 똑똑하다고는 해도 그게 에너지 드레인이라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멀쩡한 상태였다면 다 자라진 못했어도 나는 데는 충분한 날개를 펴고 공중에서 마구 몸을 비틀었겠지만, 날개는 습격자의  일격에 망가진 지 오래였다. 평소에는 등의 일부처럼 붙어있던 날개는 마치 가죽을 벗겨내다  것처럼  늘어진  핏방울만 흩날리는 중이었다. 피로 물든 등이 애처로워보였다.


떼어낼 수만 있다면, 이 벼룩 같은 놈을 떼어낼 수만 있다면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은  비늘 숫자만큼이나 많았다. 브레스라고 불리는 마력폭풍을 내뱉을 수도 있고, 앞발로 쥔 다음에 찢어버릴 수도 있다. 꼬리로 움켜쥔 다음에 살살 안쪽부터 터뜨려 죽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이룰 수 없는 꿈에 불과했다. 샌 드래곤의 등에 매달린 류 현은 정말 평지에 서있는 것처럼 여유롭게 채찍을 붙잡고, 샌 드래곤의 목덜미에 도끼질을 해대었다. 언제까지고 굳건할 것 같았던 두터운 목덜미 비늘이 차례대로 떨어져 나갔다.


 드래곤 또한 그것이 뚫리고 나면 죽음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끄오옹!]


샌 드래곤의 애달픈 절규에도 류 현은 별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준비해온 장비의 효과에 대한 찬사나, 핵심 전력인 에너지 드레인을 거의 쓰지 않고  드래곤을 농락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랑스러움 따위는 요만큼도 없었다. 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이전 생에서 역대 최대 크기인 40미터짜리 샌 드래곤을 단독으로 거꾸러뜨렸을 때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하물며 새끼가 상대라면 뭔가를 느끼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이 쯤 하면 됐으려나?’
그저 시범을 보인답시고 시작했던 사냥이 조금 귀찮다는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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