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0화 〉탐식마(貪食魔) (100/429)



〈 100화 〉탐식마(貪食魔)

2차 ‘대소환’이 터지고 던전과 괴수, 플레이어의 존재가 세간에 드러났을 때, 가장 개판이 났던 건 우습게도 증권시장이었다. 부동산 가치가 폭락할 거라는 예상이 나오자마자 세계 증시가 혼돈 상태에 빠져들었다.


가장 예상하기 쉬운 치안 마비는 원래 치안 상태가 별로였던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큰 이상이 생기지 않았다. 분탕질 치려고 나대는 인간들을 괴수들이 먼저 물어뜯었으니까. 오히려 정부의 압제에서 벗어난, 착란 상태의 플레이어들로 인한 사건이  많았다.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지만 경찰력이 힘을 잃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평화로운 상태였냐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주거라는 인간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가지 기본적인 요소 중 하나가 붕괴할 위기였으니까.

던전은 민가 근처에 잘 생성되진 않았지만,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고 그 안에서 튀어나오는 괴수들은  키로 미터 밖에서도 인간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것들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걸로는 전혀 안심할 수가 없었다.


집이 기본적인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데 분위기가 좋을 리가 없다. 불안이 현실로 확인되자 증권시장 마비가 괜한 일이 아니라는 듯이 부동산 가치가 폭락했다. 간간히 터져 나오는 괴수의 분탕질보다 부동산 가치의 폭락이 더 민심을 흉흉하게 만들었다.


그 시점이 되자 각국 정상들은 최우선 해결과제로 던전 감시 시스템을 구축해야 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예방책이 있음을 민중에게 보여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리보존은커녕 나라 말아먹은 지도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판이었으니까.

각국의 총리나 대통령들은 제 목을 걸고 던전 연구에 예산과 인력을 쏟아 부었다. 그들의 요구사항은 단 하나였다. 돈을 땔깜으로 쓰든 어쩌든 빌어먹을 던전을 찾아내는 레이더를 만들어!

결정체를 사용한 던전 레이더 그토록 빠르게, 높은 정확도로 개발된  그런 배경이 있어서였다. 급한 불을 끈 뒤로도 연구 지원을 계속 되었다.

얼마 가지 않아 요동치던 부동산 가치가 안정을 되찾고, 던전 감지능력은 해당 국가의 국방력에 맞먹는 중요도를 띄게 되었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 했다. 당장 전쟁이 터지지 않는 이상 느끼기 힘든 군사력과 달리 이쪽은 생계와 직결되어 있었으니까.

그런 측면에서 보면 류 현이 동네 뒷산에서 다람쥐라도 봤다는 식으로 퍼플 던전을 발견했다는 발언은 던전 감시체계에 커다란 구멍이 있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류 현은 그런 사실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덤덤한 어조로, 사흘  그녀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다시 말했다.


급하게 나오느라 아직 정신 수습을 못한 남자, 문민호를 향해서.


“제가 일주일  쯤에 던전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결정체로 확인해보니 최소 블루 퍼플급이더군요. 제 생각에는 퍼플급인 것 같습니다만. 그거야 정확한 계측을 해보면 되겠지요. 오늘 연락드린 건  던전에 대해서 우선권을 보장받고 싶어서입니다.”


갑작스러운 연락에 불려나온 문민호가 류 현의 말에 당황하는 것도 당연했다. ‘터주’라는 국가 소속이면서 파고 들어보면 소속이라기보다도, 외주 업체에 가까운 미묘한 위치에 있는 조직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그도 공무원 비슷한 것이었으니까. 만에 하나, 매스컴에 흘러 들어가면 1면에 대서특필 될 특종 중 특종이었다.


퍼플 등급 판정 받은 던전 방치 돼. 한국의 던전 감시망 이대로 괜찮은가? 문민호는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기사 제목이 벌써 선하게 보이는 착각마저 들었다. 떠들기 좋아하는 기자놈들은 당장 던전이 터질 것처럼 기사를 쏟아  테고, 여론이 벌 떼처럼 일어날 테지. 아마 관련자들은 목이 줄줄이 잘려나갈 것이다.

“문민호 씨?”
“예? 아, 네...죄송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라...”
“저도 처음 보고  놀라긴 했었습니다. 플레이어들이 바글거리는 병원 뒤쪽에 던전이 있을 줄이야.”


표정하나  바뀌고 그리 말하는 류 현을 보며 문민호는 음모의 냄새 비슷한 것을 느꼈지만, 뭐라 캐물을 수는 없었다.

눈앞의 남자가 심기가 상해서 발걸음을 돌리곤 “그럼 기자 불러서 정보료나 받지요.” 라고 해버리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자신에게 권한이 있든 없든 지금은 그의 말을 최대한 들어줘야만 한다. 높으신 분들 문책이 아무리 매서워도 목이 잘리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사실 여부도 확인 안하고 허가를 내주는 건 월권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지만, 확인 후에 답변 주겠다는 말조차 쉽게 나오질 않았다. 눈앞에 무덤덤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남자는 그야말로 상식을 이탈한 행보를 계속 보이고 있었으니까. 한마디로 계산이 안 되는 상대다.

‘처음 만났을 때는 이런 인상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문민호는 그로서는 드물게 과거를 그리워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혹시 해당 던전 위치를...”
“예, 물론 알려드려야지요. 그러려고 온 거니까요. 난이도 계측도 정확히 받고요.”
“...죄송하지만 우선권에 대해서는...”

더듬더듬 말을 하면서도 문민호는 류 현의 눈치를 살폈다. 어쩌다 이렇게 위치가 뒤바뀌었는지 고민하던 문민호는  만남 때도 그가 경계는 했지만 고분고분하진 않았다는 걸 떠올리고 더 우울해졌다. 이겨 먹을 수 있었던 짧은 시절에도 그러지 못했다.

“힘듭니까?”
“힘들다기보다도 제 선에서 처리할 문제가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말씀하신대로 퍼플 던전이라면 조금...”
“그런가요.”

류 현이 소파 등받이에 몸을 묻는 모습이 마치, 그럼 다른 곳을 알아봐야하나? 신문사에 가면 되나?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문민호는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권한도 없는 사람 붙잡고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연락을 줄 때 간단하게 윗선과 연결해 줄 수 있냐고 언질만 줬더라도 이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류 현이 일부러 이런 식으로 나왔다는  알면 문민호는 아마 게거품을 물겠지만, 류 현은  사실을 알려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가 아는 문민호는 사냥꾼 보다는 정치꾼에 가깝고, 그가 정치꾼을 상대하는 방침은 매우 간단했다.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고 밀어붙인다. 그럼 상대가 알아서 말하지 않은 부분을 추측하고 그 추측에 짓눌려서, 꼬리에 불붙은 쥐 마냥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게 된다. 문민호가 그 쥐다.

류 현은 문민호가 말하는 윗선과 얼굴을 맞대고 비비꼬인 말을 주고받을 생각 따윈 조금도 없었다. 그 양반들에게 쥐어 줘야하는 사과박스는 둘째 치고, 지체될 시간이 아까웠다.


압력은 던전의 존재를 발설했을 때부터 문민호에게 계속 가해지고 있을 테고, 이제 마무리만 하면 되었다.

류 현은 비어져 나오려는 웃음을 억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짐짓 실망한 것처럼 미간을 찌푸린 채로.

“제가 갑작스럽게 연락을 드렸으니 어쩔 수 없군요. 문민호 씨라면 해결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제가 너무 쉽게 생각했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최대한 빨리 윗선에...”
“아니요. 제가 너무 쉽게 생각한 게 문제지요. 던전 위치는 오늘 중으로 문자 드리겠습니다. 자리가 준비되면 연락 주시길. 그럼 이만.”


류 현은 그대로 뒤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섰다. 아마 문민호는 오늘 하루가 아주 길게 느껴질 것이다. 혹은 윗선의 연락에 치여서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할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그의 알바는 아니었다.


***


류 현은 사방이 시커먼 방 안에 앉아있었다. 방주인의 성정이 의심이  정도로 악취미적인 광경이었지만 류 현은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이 응접실 같지도 않은 방에 온 게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류 현의 기괴한 방의 외관이 아니라 이 방으로 오기 전의 만남을 되새김질 하고 있었다.

‘슬슬 같이 뛰는 데 익숙해져야하는 시점이었는데...쯧.’


오늘 외출한 건 다름 아니라 서해란을 퍼플 던전 원정에 끼워 넣기 위해서였다. 정부가 그에게 우선권이 아직 배당되지도, 퍼플 던전이라고 확인 해주지도 않았지만 류 현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이전 생에서 그 퍼플 던전은 몇 안 되는 스팟, 그러니까 두 번 이상 클리어  수 있는 상위 던전으로 유명했고, 안에 들어앉아 있는 괴수 종류까지 알고 있었다. 제 기억력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편인 류 현이 기억할 정도로 유명한 던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블랙 던전이 등장하기 전,  던전은 퍼플 던전까지 잡아내는 레이더에도 걸리지 않았다. 거기에 한 번 클리어해도 소멸되지 않으며, 내부에 똬리를 틀고 있는 괴수 수준 때문에 보통 퍼플 던전 이상의 퍼플던전이라고 불리며 유명했었다.


중국과 일본 같은 주변 국가들은 물론이고 바다 건너 미국이나 유럽까지 관심을 보일 정도였다. 거기서 나오는 부산물도 그렇지만 던전 자체가 지니는 특성에 대한 관심이 더 컸다. 퍼플 던전보다는 조금 높은 난이도를 가지고 있지만, 완전히 그 기준에서 벗어나진 않았다고 판명되자 관심은 사그라들었지만.

그런 사정은 어찌됐든  현은 청뢰가 잠든 정선과 인천에 자리한  던전 만큼은 반드시 독식할 생각이었다. 던전이 소멸할 때까지 독식하는 건 무리겠지만, 발견자에 첫 클리어까지 하면 지분 요구 정도는 할 수 있을 터였다.

이전 생의 ‘예거즈’가 그랬던 것처럼  던전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첫 번째 네임드 몹을 칠 무기를 만들 생각이었다. 유니크 아티펙트나 전력 라인업을 생각해보면 과한 준비일 수도 있겠지만, 류 현은 여유는 있으되 과한 준비 같은 건 없다는 주의였다.


그리고 그런 역사적 족적을 남기기 좋은 던전의 첫 원정에 서해란을 끌어들이려고 한 건  나름대로의 호의였다. 다른 이들이라면 죽으러 가는 길에 끌어들이는 거라고 고개를 내젓겠지만 서해란은 다를 테니까. 애초에 플레이어가 될 필요도 없는 여자였다.

이전 생의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현은 그녀가 화련과 비슷한 부류일 거라고 생각했다. 화련이 향상심이 자신에게 국한되어 있다면, 해란의 범위는 자신의 팀일 테지.

‘파도잡이’라는 별명을 얻는 미래를 알고 있었기에  현은 그녀를 팀으로 끌어들이진 못해도, 동맹관계 정도는 맺어둘 생각이었다.  만남  들었던 경계심은 누그러진 상태였다.

그녀의 실력은 둘째 치고 자격조차 얻기 힘든 퍼플 던전 원정 동행이라면 괜찮은 빚이라고 생각했고, 제의를 위해서 이틀 전에 연락했었다.


전화상으로 해란의 반응은 퍽 긍정적이었다.

그도 그럴 게 팀 전체를 끌고 들어갈 수는 없어도, 퍼플 던전 경험은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스펙이 된다. 이  퍼플 던전에 자기 팀을 이끌고 도전할 때, 자격을 얻는 데 적지 않을 도움이 될 터였다.

거기에 그녀가 멋대로 착각한 것이지만, 그녀는 검성이 이번 원정에도 동행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위험은 정말 최소한으로 잡아도 될 상황. 해란은 밝은 목소리로 곧 연락 주겠다고 했고, 오늘 류 현을 만나러 왔었다.


그녀의 답은 거절이었다. 굉장히 아쉽다는 얼굴로 해란은 자신을 높게 평가해준 것과 후의에 감사하며, 사정상 같이 가지 못해서 유감이라고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기 직전에 아버지가 어쩌고 중얼거리긴 했지만, 류 현은 되묻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정말 인연이 아닌가 하고, 찝찝한 기분으로 병원으로 향하려면  현의 발걸음을 돌린 건 강 찬의 연락이었다. 돌로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은 아저씨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공방에 와줄 수 있겠냐고 요청하는 걸 거절할 정도로 바쁜 것도 아니었으니까.

정작 그 당사자는 류 현이 공방에 온지 삼십분 넘게 코빼기도 보이지 않은 상태였다. 류 현이 회상을 끝내고 슬슬 지루함을 느낄 때 쯤,

벌컥 하고 방문이 열리며 반지의 제왕 영화 촬영장에 돌아다닐 법한 남자가 저벅저벅 다가왔다. 허리춤에 뭘 그리 많이 달고 왔는지 움직일 때마다 쩔렁거리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류 현은 덥수룩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밀림수준이 되어가고 있는 남자의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상기된 얼굴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 같은 양반이 무슨 일이지?


“자네.”
“예, 말씀 하시죠.”


공방의 주인이 아니라 거의 걸인 같은 모습의 남자, 강 찬은 류 현을 부르더니 한참을 말이 없었다. 보다 못한  현이 권하자 강 찬은 이상하리만치 조심스럽게 물었다.


“퍼플 던전에 들어간다면서? 사실인가?”
‘어디서 들었지?’
“예,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거의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돌아가서 웨인에게 전화를 걸 것이다.

그리고 피자를 주문하는 것처럼 말할 것이다. 퍼플 던전 하나를 발견 했는데, 정부에는 이미 정보를 찔러놨으니까 협회 쪽 처리를 부탁한다고. 아마 웨인은 속이 끓는 것 같은 신음을 삼키고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최대한 시간에 맞춰보도록 하겠습니다.


류 현은 협회 쪽에서 말썽이 날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검성만 해도 그렇게 어려워하면서 쩔쩔 매는 데,  상황에서 그의 부탁을 거절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가? 그러면 말일세...그게...”
“...?”
‘이 인간이 안 어울리게 왜 이래?’

강 찬은 다시금 말문이 막혔는지 입을 떼지 못하고 입술을 쥐어뜯으며 초조해했다. 류 현이 보다 못해 다시 그를 도와주었다.


“무슨 부탁 할 거라도 있으십니까? 원하시는 재료가 있으신지? 그런데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수가 없어서...”
“아니, 그런  아닐세. 내가 부탁하고 싶은 건...성능 테스트 일세.”
“그 단창이요?”
“그, 그렇네.”

류 현은 떨떠름한 얼굴로 강찬을 봤다. 평소랑 다를 게 없는 일인데  이렇게 어려워한단 말인가? 퍼플 던전에 대한 위기의식이라곤 없고, 브류나크 최종판의 성능을 알고 있는 류 현은 조금 이해하기 힘든 태도였다. 그 속내를 알 리 없는 강 찬은  현의 표정을 다른 의미로 해석했는지 당황해서 덧붙였다.

“알고 있네. 검증되지도 않은 장비를 퍼플 던전에서 쓰는 게 얼마나 부담되는 건지 잘 알아. 나도 공짜라고는 말하지 않겠네. 한 번이라도 좋으니...”


더 밀어붙이면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였다. ‘이 인간 내가 아는 그 말종 맞아? 10년도 안 지나서 그렇게 바뀔 수가 있나?’ 류 현은 당황스러운 기색을 억누르며 말했다.


“아뇨,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요. 이 공방의 장비의 성능은 저도 잘 알고 있으니 지원해주신다면야...”
“정말인가? 고맙네! 아 참, 창을 보기 전에 일단 이것부터  번 보시게나. 최근에 입수한 레시피로 만든 물약인데 효과가 아주 괜찮아. 자네가 준 송장목 진액도 첨가해 볼 생각인데...”

강 찬은 류 현이 말을 바꿀 새라 허리춤에 매달고 있던 주머니를 하나 풀더니 그 안에 있던 길고 얇은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입구를 틀어막고 있던 코르크 마개가 열리자 류 현은 움찔했다.

‘이거 설마...?’

황금빛 액체, 그리고 퍼져 나오는 알싸한 쇠 냄새. 누가 봐도 물약 같지 않은 특징이었다.

류 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가지 만으로 확신할 수 있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꺼낸 이가 강 찬이라는 점이 그의 의심을 짓눌렀다.


앞의 두 특징은 류 현이 평생 찾아다닌 비약의  알려진 특징이었고, 눈앞의 남자는 그 비약에 대한 소문의 중심에 있었던 자였다.

류 현은 떨림을 억누르며 강 찬에게 물었다.


“이런 향이 나는 물약은 들어보지 못했는데, 최근에 발견된 레시피인가 봅니다.”
“그렇네. 정말 운이 좋았지. 마탑놈들이 레시피가 적힌 큐브를 해체하다가 포기해서 나한테 온 거거든. 덕분에 마탑놈들이랑 레시피 공유하게 생겼지만 말일세. 망할 놈들, 나 아니면 풀지도 못해서 쓰레기 될 걸 풀어줬더니.”

유적형 던전에서 발견되는 유물들은 석비처럼 그냥 바로 볼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열쇠를 꽂거나 퍼즐을 풀어서 내부를 드러나게 해야 내용을  수 있는 것들이 꽤 있었다.


이전 생에서 강 찬의 ‘황금손’이라는 별칭은 아무도 손대지 못하는 큐브 같은 것들을  만은 어린애 장난처럼 풀어냈기 때문에 얻은 것 이었다. 그걸 바탕으로 강 찬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무구들을 일구어내었다.

브류나크의 합성법도 그렇게 얻었다고 들었다. 강 찬의 입으로 직접. 송장목 진액이나 오우거 뼈 같은 부산물을 거의 거저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공급해주면서 듣게 된 이야기였다.

“혹시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까?”
“응? 적혀 있긴 했는데 내 입으로 말하긴 좀 민망하군. 어디까지나 최종판에 붙은 이름이니 웃진 말게. 엘릭서. 엘릭서라고 적혀 있었네.”


류 현은 저도 모르게  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