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탐식마(貪食魔)
던전을 튀어나온 괴수의 추적은 쉬우면서도 어렵다.
쉬운 이유는 괴수가 가진 인간을 향한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본능조차 억누르는 적의 때문이다. 괴수가 자신보다 먹이사슬 아래에 있는 개체를 그냥 지나치는 일은 있어도, 인간을 그냥 지나치는 일은 없으니까. 조금 끔찍한 표현이지만 인간 시체를 따라가다 보면 괴수를 찾을 수 있다.
어려운 이유 또한 간단하다. 그런 적의를 발휘할 대상이 없을 경우, 야생 동물은 우습게 짓누르는 괴수의 스펙은 인간 추적자를 곤혹스럽게 하기 충분하다. 일례로 고리 원숭이는 특수 능력 없이도 도시에서 여자들을 사냥하며, 악명을 날렸다. cctv에 그 모습이 찍히기 전까지 경찰은 범인이 성도착증이 있다는 가정 하에 고리 원숭이를 쫓았다. 괴수의 짓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어느 정도 인프라가 발달한 나라의 경우에는 cctv라는 괴수조차 눈치 챌 수 없는 감시의 눈이 있지만, 아프리카는 그에 해당하지 않는 국가 중 하나였다. 킬리만자로가 터지던 날에 유성우가 세 차례 발동되던 모습이 찍힌 것도 정말 천운이 따라줬기 때문이다.
퍼플 던전의 위치조차 정확하게 탐지해내지 못하는 국가들인데, 던전에서 튀어나온 괴수를 탐지하는 건 거의 불가능 한 거나 다름없다. 그것도 오래 전에 괴수 천국이 되버린 아프리카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류 현이 유성우 추적행에 오르면서, 처음부터 일행들에게 어느 정도가 걸릴 거라고 예상마저 말하지 않았던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그 예상은 아주 나쁜 쪽으로 잘 들어맞아가고 있었다. 유성우를 가진 괴수는 첫날을 제외하고는 눈에 띌만한 행동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감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건 누가 봐도 괴수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괴수 입장에서 지구는 그야말로 이계나 다름없고, 미쳐날뛸만한 요소가 넘쳐난다. 일단 마력부터가 희박하니 숨 쉬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을 테고,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문명의 이기들은 괴수들에게는 괴물같이 보일 것이다. 결정적으로 인간이라는, 정말 괴수를 미쳐버리게 만드는 요소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괴수는 침묵하고 있다.
‘청뢰 때 생각해보면 유니크 아티펙트 급이면 던전 자체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지. 그 때 라가로드만 해도 보통 놈은 아니었고. 차라리 화력만 늘어나고 지능은 그대로였으면 좋겠지만...’
예상이라는 게 의미가 없는 상황이니까. 일이 풀린다면 다음날 도시로 진입해서 분탕질치고 있는 놈과 맞닥뜨릴 수도 있고, 재수가 없으면 아프리카 최남단까지 관광 아닌 관광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돌봐야 하는 사람이 있는 류 현으로서는 썩 내키지 않는 원정이었지만, 걸려 있는 게 유니크 아티펙트이니 그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급해지지 말자. 내가 누나 옆에 붙어있어도 당장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유니크 아티펙트를 쥐고 있으면 교환이든 대여든 엘릭서가 굴러 들어올지도 모를 일이고.’
류 현은 머리칼을 헤집으며 복잡한 심사를 정리했다. 감았던 눈을 뜨자, 운전대를 잡고 있던 화련이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보고 있었다. 보통 도로에서라면 자살 행위나 다름없겠지만, 부딪힐 만한 게 거의 없는 노상이다. 류 현 본인도 운전 도중에 딴 짓을 잘만 했으니 타박할 거리도 아니었다.
류 현은 짐짓 그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화련이 입을 열었다.
“걱정 되세요?”
“...뭐가 말입니까.”
“누나 분이요.”
“......”
다른 사람이 물었다면 반쯤 짜증으로 얼버무렸겠지만, 화련이라서, 그와 같이 가족이 같은 꼴을 겪고 있는 그녀라서 그렇게 얼버무릴 수가 없었다. 류 현은 저도 모르게 찡그린 미간을 주무르며 잠긴 목소리로 대꾸했다.
“안 된다면 거짓말이겠지요.”
류 현의 대꾸에 화련은 아무 말 없이 그의 옆얼굴만 바라봤다. 그녀는 말 뿐인 위로는 짜증만 불러일으킨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도 그랬으니까.
가칭 유성우 추적을 위해서 탄자니아에 온지 일주일 째, 아침에 연락을 받은 이후로 류 현은 줄곧 저런 상태였다. 전화 받던 표정이 워낙 심각해서 캐묻지는 못했지만, 어름어름 들은 내용으로 추측해보면 세아의 상태가 좋지 못한 게 확실했다.
그 뒤로 류 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놓고 불편한 심기를 표출하진 않았지만, 그걸 억누르고 있다는 기색까지는 숨기지 못했다.
그 꺼림칙한 기색 때문에 다른 일행들은 섣불리 류 현에게 말도 못 건넸다. 유일하게 류 현의 기분을 알 수 있는 화련은 어떤 기분일지 잘 알기에 여태껏 침묵하다가 겨우 말을 꺼낸 것이다. 이모가 병으로 처음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녀도 반쯤 미쳐서 지냈으니까. 그 당시 의대생이라는 위치가, 정보를 접하기 더 쉽다는 위치가 그녀를 더 미치게 만들었다.
‘차라리 어디 숙소 한 군대 잡고 새 소식 들려올 때까지 대기하고 있는 게 낫지 않을까?’
무심한 눈길로 차창너머를 보고 있는 류 현을 보며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급하게 확보해야하는 아티펙트고 뭐고, 이대로는 무슨 사고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그냥 괴수 때려잡는 거라면 승하부터 시작해서 웨인 크로이츠로 끝나는 라인업에 문제가 생길 리가 없지만, 청뢰를 봤기에 그 확신은 확고할 수가 없었다.
그런 걸 쥔 괴수를 상대한다는 건 전열 후열의 구분이 무의미해진다. 류 현처럼 벼락을 움켜쥐고 튕겨내는 재주가 없지 않는 한 말이다. 그리고 지금, 그 류 현이 상태가 영 별로였다.
거기다가 그 아티펙트를 지닌 보스몹의 행방은 묘연한 상황. 열심히 아프리카의 너른 벌판을 내달린다고 해서 없던 단서가 생길 리가 없다. 그 보스몹이 아티펙트를 발동하거나 어디 근처 마을에 들어가서 깽판 치지 않는 이상에는 말이다. 그렇게 하더라도 장소가 외딴 곳이라면 소식이 닿는 데 최소 이틀은 걸리겠지만.
“저기 마스터 어디 한 군대 잠깐...”
“괜찮습니다.”
“...진짜요?”
화련은 입으로는 물으면서도 어떤 대답이 나오든 간에 믿을 생각이 없었다. 류 현과 류세아를 긴 시간까지는 아니어도 일 년 넘게 지켜본 결과 그는 괜찮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좋은 기분은 아닙니다만...제가 간다고 해서 뭘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행히 안정됐다고 하니까요.”
무덤덤하게 말하는 류 현의 모습에서 화련은 더 큰 불안감을 느꼈지만 굳이 그걸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저 무덤덤함이 연기라는 것도 알고, 저 연기도 영원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녀는 답을 제시할 수 없으니까.
결국 그가 감내해야 할 집안 문제다. 가족이 아닌 이상 뭐라고 한들 그냥 외부인의 걱정에 불과하다.
그리고 걱정해준다 한들 그를 한국행 비행기에 밀어 넣을 수도 없지 않은가?
‘결국 나도 말 뿐이지...’
화련은 입술을 짓씹으며 액셀을 밟고 있는 발에 힘을 더했다.
***
소식은 점심시간 무렵, 점심을 먹기 위해서 차를 멈췄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왔다. 웨인은 잠깐 통화 좀 하고 오겠다고 차 뒤로 사라지더니, 일 분도 채 되지 않아서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가 내민 휴대폰 화면에는 첫날에 봤던 것과 유사한 광경을 배경으로, 수백을 헤아리는 스켈레톤과 좀비들이 인가를 습격하고 있었다.
그걸 보고서 류 현의 얼굴에 드리웠던 그림자가 걷혔다. 류 현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곧바로 물었다.
“여기가 어딥니까?”
“여기서 세 네 시간 거리에 있는 이한다라는 곳입니다. 이동속도로 볼 때...오늘 안에 국경을 넘을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마을들을 지나쳤는지 모르겠지만...”
“갑시다.”
“예? 바로요?”
“작전이고 뭐고 필요도 없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보아하니 리치 놈 소행 같은데,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지요. 그냥 가서 때려잡으면 그만이니.”
웨인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류 현을 돌아봤다. 류 현의 추측에 동의하기 때문에 보일 수 있는 반응이었다. 그가 보기에도 퍼플 던전에서 튀어나온 괴수는 리치가 분명해보였다.
리치가 어떤 괴수인가. 거느리는 부하 개체 수는 적은 편이지만 존재 자체만으로도 난이도를 보장하는 괴물이다.
웨인이 첫 퍼플 던전 솔로 플레이를 하고, 몇 달간 요양하게 만든 것도 그곳 보스몹이었던 리치였다. 보통 공격마법은 그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했지만, 리치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저주 마법 반지를 하나씩 지니고 있으니까. 그 저주 마법이 리치를 죽이고 나서도 그를 괴롭혔었다.
물론 지금 스트라이커 라인업이나 아티펙트 수준은 그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긴 하다.
문제는 괴수 측도 그러하다는 것! 가칭 유성우는 못해도 청뢰 바로 아래 급이거나 동급으로 예상되고 있는 그야말로 괴물 급 아티펙트다. 그런 물건을 다른 것도 아닌 리치가 가지고 있다면 어림짐작에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다. 거기다가 던전에서의 싸움과 달리 리치는 지금 자신만의 언데드 군단까지 꾸린 상황.
‘그런데...반응들이 왜 이래?’
웨인은 류 현의 뒤편에 서있는 일행들을 보고 더욱 황당함을 느꼈다. 모두들 하나같이 불안감과는 거리가 먼 행동을 하고 있었다. 승하는 검을 빼들고 날을 살폈고, 희란은 청뢰를 어느새 목걸이에서 빼서, 검지에 끼고는 만지작거리는 중이었다. 화련은 정비에는 관심 없다는 듯이 류 현의 뒤통수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중이었다.
마치 리치를 잡는 게 별 문제 되지 않는 듯한 반응.
‘...검성은 왜 이렇게 조용한 거지? 왜 결정권을...?’
그런 웨인의 의문은 류 현의 목소리가 깨부수고 들어왔다.
“내키지 않으신다면 유도만 해주셔도 됩니다. 어차피 리치에 매달릴 인원은 두 명 정도가 한계니까요.”
류 현은 이러고 있을 시간도 아깝다는 듯이 차에 오르며 말했다. 다른 일행들도 그를 따르듯이 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아, 아니 그게...”
“웨인 씨.”
웨인이 붙잡는 말을 하려고 입을 떼던 그 때였다.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미적거릴 여유가 없어서요. 부탁드립니다.”
류 현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웨인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류 현의 시선에 담긴 건 살의도, 적의도 아니었다. 무저갱 같은 어둠만이 그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항거할 수 없는 시커먼 어둠과 마주 보는 듯한 착각 속에서 웨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류 현은 그의 대답에 만족한 듯 운전석 문을 닫았다.
‘...방금 그건 뭐야?’
웨인은 기묘한 안도감을 느끼며 발을 놀렸다. 그 한중간에 그는 자신의 기분을 곱씹어보았다. 곧바로 다른 질문이 튀어나왔다.
‘인간은 맞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