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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화 〉탐식마(貪食魔) (92/429)



〈 92화 〉탐식마(貪食魔)

화련은 류 현의 기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끔, 아주 가끔씩 류 현이 저럴 때면 화련은 사람이 바뀐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평소의 그가 보여주는 조금 멍하고, 과하게 친절한 모습이 거짓말인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뭐 그것도.”

콰직! 류 현의 오른손이 창처럼 내쏘아지며 무릎 앞의 땅을 파고 들었다. 류 현은 그대로 콧방귀를 흥 하고 뀌더니 땅에서 손을 뽑아내었다. 작은 개만한 무언가가 딸려 나왔다. 자세히 보지 않아도 화련은 그게 무엇인지 알아봤다. 헬퍼로 활동하던 시절 그녀를 수차례 물먹은 괴수였으니까.


“땅돼지..?”
“내일 아침 반찬은 걱정 안 해도 되겠군요.”


류 현의 말에 화련의 표정이 팍 찌그러졌다.  현도 그 모습을 똑똑히 보고 있었지만, 화련은 그걸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꼭 그걸 먹어야겠어요?”
“굴러 들어온 고기를 뭐하러 버립니까. 땅돼지가 맛없는 것도 아니고.”

땅돼지는 드물게도, 아주 드물게도 이빨이나 가죽 외에 고기가 고평가 되는 괴수 중 하나였다. 대량으로 공급되는  아니지만, 기묘한 걸 먹고 싶어하는 미식가들에게 비싼 값에 팔리는 편이다. 초보자 킬러라는 흉흉한 별명이 붙어있긴 하지만, 말 그대로 초보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초보자를 벗어난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괴수 중 보잘  없는 스펙일 가졌을 뿐이니까.


화련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은 건 그 때문은 아니었다. 땅돼지 고기에 대해서는 지겹게 이야기를 들어봤고 호기심에   먹어보기도 했었다. 제대로 가공된 것으로 말이다. 문제는,

‘그것도 한 두 번이어야지!’

신기한 것도, 색다른 맛도 한  번이지 거의 끼니 수준으로 먹게 되면 좋을 리가 없다는 것! 아무리 땅돼지가 괴수 치고는 맛있는 편이라지만 어디까지나 괴수 수준이고, 장기적으로 먹는 다고 생각한다면 인간의 입에 맞게 개량되어온 소나 돼지에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시작은 류 현이 자신의 능력을 밝히고, 슬슬 퍼플 블루급에 적응이 되어갈 무렵이었다. 류 현이 조심스럽게 괴수 고기를 권한 것이다.

당연히 처음에는 둘 다 기겁을 했다. 식량이 모자라는 것도 아닌 상황이었으니까.  현은 거기에 괴수 고기섭취가 마력 적응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실제로 문제될  없었다. 그건 사실이었고, 미래에는 관련 논문까지 나올 정도였으니까. 문제는 근거로 제시할 만한 실험 논문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것.

다행스럽게도  사람은 아주 거절하진 않았다. 내키는 정도 만큼이라는 조건을 달고, 그의 제안에 응했고 그 제안이 한 달 이상 지속되자, 그녀들은 그의 사기꾼 사탕발림 같은 소리가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아주 조금이지만 마력 컨트롤이 용이해졌음을 느낀 것이다.

그 뒤로는 던전에 들어가서  끼를 먹으면 최소 한 끼는 괴수 고기를 씹게 되었다. 라가 같은 부류는 피했지만, 빈말로도 좋은 경험이라고 하긴 어려웠다. 맛이 괜찮다고 평가 받는 괴수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그마저 대부분 하위 던전에 분포하고 있었으니까. 용잡이 팀은 도는 던전 수준만 보면 전체 1% 안쪽이었다.

도축기술이 좋다면 조금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류 현의 도축 기술은 말 그대로 핏덩이를 씹는 것 대신 그래도 고기처럼 보이는 걸 씹게 만들어주는 수준이었다. 눈보숭이 같은 걸 만나면 상대하기도 전에 환호성을 내지를 정도니 말 다한 셈.

그럼에도 두 사람이 쉽게 거절할  없었던 건, 몸으로 효과를 체감하는 것도 있지만  현이 꾸역꾸역 괴수고기를 생으로 씹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능력 때문이라지만, 그 맛없는 걸 시간 없다고 생으로 씹어 삼키는 모습을, 그것도 트럭만한 오우거를 위장에 밀어 넣는 모습을 보고도 우는 소리를 낼 정도로 염치가 없진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던전 안도 아닌데!’


물론 그렇다고 그게 편해지진 않았다. 화련이 희란과 함께 최근에 팔자에도 없는 미식타령을 하게  이유가 이거였다. 던전에서의  끔찍한 기억을 현실에 있을 때 지워두자! 맛을 제쳐놓고 괴수 고기라고 하면 일단 미간을 찡그리게 될 정도가 된 것이다.


류 현은 더 뭐라고 하진 못하고 입만 삐죽이는 화련을 보다가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강요는 안 합니다.  승하 씨가 최근에 맛 들인  같으니  쪽 배로  들어가겠네요.”

화련이 그냥 흘려 넘길  없는 이름이 류 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현은 순간적인 화련의 분위기 변화에 화련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아니,  얘기가 그렇게 흘러가요?”
“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고기 낭비인데. 아깝게.”
“...그냥 마스터가 먹는다는 선택지는 없어요?”
“얘를 통째로 삼켜도 제가 주먹질 한 번 할 마력도  찹니다. 차라리 적응력 늘릴 수 있는 사람이 먹는 게 낫지요.”
“아, 알았어요. 먹으면 되잖아요. 먹으면!”

화련의 대답에 류 현은 씨익 미소 지었다. 속은 느낌이 역력했지만. 화련은 차마 말을 물릴 수가 없었다.
***


포장은커녕 다져지지도 않은 노면을 내달리자 자연히 지프가 심하게 요동쳤다. 차멀미를 모르던 이도 속이 뒤집어지고도 남을 진동이었지만, 차에 올라탄 이들은 묵묵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특히, 두 대의 지프 중 짐이 덜 실린 쪽 짐칸에 걸터앉아 있는 남자, 웨인은 평지에 앉아있는 것 같은 평온한 표정이었다. 머릿속은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마력 적응력을 늘릴 수 있다고?’

웨인이 곱씹고 있던 건 아침에  현에게서 들었던 말이었다. 불침번 도중에 잡았다던 땅돼지를 아침 식사에 내놓으면서, 류 현이 그렇게 말했었다. 그러니 크게 거부감이 없다면 조금 들어보시는 게 어떻겠냐고.

누가 들어봐도 수상쩍기 그지없는 소리였지만, 검성과 화련이 경쟁하듯이 먹기 시작하자 그런 의심도 계속 할 수가 없었다. 괴수 고기가 처음도 아니었기에, 웨인은 성의를 보이는 정도로 입을 대었다.

문제는 그가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는 것.

‘대체 정보의 출처가 어디지?’


웨인은  현의 말이 아주 헛소리 일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협회가 후원하고 있는 연구들 중에서 그런 부류가 더러 있었다. 아직 가시적인 성과를 내진 못했지만, 가설만은 이미 세워져있는 상태였다.


문제는 제대로 실험군을 확보하기가 힘들다는 것. 보통 연구라면 실험용 쥐를 대상으로 해보겠지만 그건 불가능 한 일이었다. 마력을 쌓을 수 있는 건 플레이어뿐인데, 실험이 어찌 성립되겠는가? 플레이어가 될 수 없는 짐승들에게 마력을 간접적으로 주입해봐야 얻을 수 있는 건 끔찍한 고어영상 뿐이다.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한 실험은?


협회는 불가능 한 정도가 아니라 할 법하다는 의혹자체가 없어야만 하는 입장이다. 그런 실험을 막고,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한 슈퍼 솔져 프로젝트가 다시 가동되는  막아야하는 게 협회니까.

‘그에게 정보를 제공해주는 배후가 있다면...티가 안 날수가 없어. 그만한 저력이 있는 단체가 흔한 것도 아니고.’


웨인이  번이고 고심하다가 포기했던 문제를 다시 골몰하려고 하던 때였다.

[뀌이익!]

돼지 멱따는 소리 같지만 그보다는 훨씬 더 높은, 단말마 같은 울음소리가 그의 귀를 잡아끌었다. 웨인은 울음소리의 주인공을 단박에 알아봤다. 긴 다리 도마뱀이 지프 보다 약간 더 작은 크기의, 도마뱀 보다는 영화  공룡 같아 보이는 괴수가 지프와 경쟁하듯이 내달려오고 있었다.

긴 다리 도마뱀. 아프리카에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일반인 괴수 사냥꾼들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존재였다. 차량을 이용한 속도의 우위나, 단단함은 녀석에게 전혀 먹히지 않으니까. 이름처럼 긴 다리로 달리는 게 아니라 거의 나는 것처럼 달려 들어온다. 발이 빠르고 단단한 심플하기 그지없는 괴수. 소형 화기로는  죽이는  아니라 거의 뭉개 죽였다고 해야 할 정도로 상대하기 껄끄러운 놈이었다.

물론  일행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가장 육체 능력이 떨어지는 화련도 맨몸으로 죽일 수 있을 정도니까. 웨인이 운전석 쪽을 두드린 건 밥값을 하고자 하는 의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운전석을 두드렸을 때,


쒜엑! 그것에 응하듯 조수석 창문이 내려가더니, 뭔가가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쏜살이 된 그 무언가는 그대로 긴 다리 도마뱀을 향해서 날아가더니,


퍼걱! [꾸루룩?] 쿵! 긴 다리 도마뱀의 미간을 꿰뚫고 뒤통수에 커다란 구멍을 내며 뚫고 나왔다. 그 뒤는 볼 것도 없었다. 몸집에 비해 작은 뇌를 파괴당한  다리 도마뱀은, 그 긴 다리를 내던지는 것처럼 대지에 쓰러졌다. 임무를 다한 화살촉처럼 보이는 뾰족한 금속물체는, 유유히 조수석으로 돌아왔다.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웨인은 고민거리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백화련. 기록에는 분명히 염동력 계열로 보인다고 적혀 있었는데...방금 그건 염동력이라고 하기에는...전조도 그렇고, 너무 얌전해.’

주력도 아니고, 제대로 된 염동능력자들 앞에서는 재롱 수준의 염동력이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염동력을 다루는 입장에서 웨인은 직감했다. 화련의 능력이 협회 기록상의 염동력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  것이라고.

오늘 하루 동안 지켜본 결과, 그녀의 능력 사용은 너무 얌전했다. 좋든 싫든 발동직전 어느 정도 마력 누수가 기본인 염동력이라고는 생각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긴 다리 도마뱀을 한 번에 꿰뚫을 정도의 힘을 모으고도 별 다른 전조가 없다는 건...염동력자면 이미 입신의 경지거나 아예 다른 능력이라는 이야기지.’

웨인은 다시 한 번 슬쩍 운전석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보이는 건  현의 뒤통수뿐이었다.


‘백화련은 ‘산군’ 출신. 거기라면 염동능력자를 못 키울 정도는 아닌데도 키우지 못했어. 혹여 다른 능력이더라도 바뀌는 건 없지. 그런데 그런 사람을 데려다가 일 년하고 반 만에 탑 클래스로 키웠다고?’
‘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거지?’


웨인의 고뇌를 개의치 않고, 지프 두 대는 나란히 남으로, 남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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