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탐식마(貪食魔)
류 현은 손에 쥐고 있던 삭정이를 뚝 부러뜨리곤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당장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들이 그의 머리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전 생에서도 아프리카에 와본 적이 없는 그로서는 드물게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감상에 빠지기에는 그가 가진 감성이 너무 둔했다. 그는 하늘이 좀 다르구나 하고 모닥불로 시선을 옮긴 후 삭정이를 밀어 넣었다. 모닥불이 그에 환호하듯이 불티를 피워 올렸다. 류 현은 불티가 허공에서 춤추는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왼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곤 말했다.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하시죠. 괜히 잠 설치지 마시고. 내일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자는 채 하며 류 현의 행동을 살피고 있던 화련이 몸을 일으켰다.
“...언제부터 알았어요?”
“낌새는 저녁 식사 때부터 느꼈습니다. 너무 대놓고 보셔서 아마 다른 분들도 눈치를...”
“...그 얘긴 그만하죠.”
화련은 그리 말하고는 맞은편에 서있는 지프, 그 아래에 자리 잡고 누운 웨인을 빤히 바라봤다. 그 의도를 모를 류 현이 아니었기에, 그는 그녀가 원하던 말을 해주었다.
“깊이 잠들어 있으니까.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아무래도 웨인 씨는 불침번에서 빼든지 해야 할 거 같네요. 저렇게 피곤해 하는데 불침번 세워놓으면 오히려 불편할 거 같군요.”
“마스터는 가끔, 아니 자주 엄한 사람한테 과도하게 친절한 거 알아요?”
“어지간히 말씀하기 힘든 이야기인가 봅니다.”
화련의 에두르는 불평에 류 현은 무덤덤하게 응수했다. 화련도 더 빼진 않았다. 다만 웨인 쪽을 한 번더 돌아본 후에 입을 열었다.
“마스터.”
“예.”
“그 아티펙트 어쩌실 거에요?”
“글쎄요.”
류 현은 양손에 쥐고 있던 나뭇가지를 뚝 부러뜨린 후 모닥불에 밀어놓고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화련이 보기에는 외면하는 듯한 동작이었기에 그녀는 재차 물었다.
“글쎄요, 라니 다 정해두고 지른 거 아니었어요?”
“저야 대충 정해놓기는 했지요. 여러분의 의향을 아직 못 들었잖습니까. 급하게 오느라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못 드렸고요.”
화련은 류 현의 대답이 이치상으로는 맞지만, 뭔가 아닌 거 같다는 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류 현의 발언이 위선이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단박에 아니라고 부정할 것이다. 실제로 류 현은 자신의 말처럼 행동해 왔으니까.
일단 일을 벌여놓고 그 뒤에 시간을 주고 참여 의사를 묻는 경우도 있었지만, 언제나 그는 무를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일을 벌였다. 결국 그녀들이 따랐기에 그 여지가 써먹히는 일은 없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마스터 혼자서도 그 아티펙트 가진 놈 때려잡을 수 있잖아? 그런데 우리 의견이 필요한가?’
화련은 자신에게 던진 질문에 섣불리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자신과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자고 있는 희란을 돌아봤다. 침낭을 거의 끝까지 올리고 있어서 보이진 않지만, 그녀의 목에는 청뢰를 걸어놓은 목걸이가 걸려있을 것이다. 희란은 아직 컨트롤이 숙련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청뢰를 주로 목에 걸고 다녔다.
‘청뢰도 마스터 혼자서 얻은 거나 다름없잖아?’
청뢰를 가지고 우레를 부르던 라가로드의 목을 날려버린 건, 검성 나승하도 아닌 류 현이다. 그 사실을 그에게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라가 부대의 이목을 끌어주지 않았다면, 그럴 수 없었을 거라고 하겠지만 화련은 바보가 아니다.
‘그리고 보스몹이랑 일대일로 싸우면서 보스몹 광역기로 팀킬 유도라니 들어보지도 못했어.’
거기에 생존 훈련이랍시고 희란과 둘이서만 퍼플 던전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그날, 승하와도 이야기를 나눴었다. 승하 또한 그녀들과 비슷한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 류 현에게는 단순히 빨리 강해지는 루키 이상의 뭔가가 있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그가 내놓는 정보나 태도는 설명 할 수 없다고 말이다.
‘...지금 찔러봐야 그 때처럼 될 뿐이지.’
용잡이 팀의 설립 목적을 밝혔을 때, X던전에 대해서 처음 이야기 했을 때 그는 대답을 회피했었다. 누가 봐도 거짓말인 게 분명해서 기분 나쁜 것보다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그런 거짓말을 동원해서 말이다. 화련은 그 때 한 발 물러서긴 했지만 의구심을 버린 건 아니었다. 희란과 승하, 이 둘과 고민을 함께하면서 의구심이 커지면 더 커졌지 작아질 일은 없었다.
문제는 심증뿐이고, 그녀들에게 해가 되는 일은 없어서 강압적으로 캐묻기가 힘들다는 것.
‘그래, 지금은 아니지.’
화련의 입에서 1순위로 준비해둔 말 대신 2순위가 튀어나온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미리 못 박고 왔어도 상관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신가요.”
“협회에서 청뢰를 보고도 우리한테 맡긴 건 그만큼 여유가 없다는 거잖아요? 협회 제일의 실력자도 저렇게 쥐어짜는 거 보면 원정대 보내는 건 아무리 빨라도 월 단위 후의 일인 거 같고.”
“그렇겠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협회가 수습하는 것보다는 유럽 연합 쪽에서 손을 뻗쳐오는 게 더 빠를 겁니다.”
류 현의 주억거림에 화련의 미간에 얕은 계곡이 생겨났다. 보통 사람이라면 모닥불 빛으로 알아보기 힘든 변화였지만, 류 현은 그녀의 반응에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잘 알면서 왜 계약서도 안 쓰고 먼저 날아왔냐, 이렇게 말씀하고 싶으신 거 같군요.”
“우리가 무슨 배식 봉사 하는 건 아니잖아요. 나름 목숨 걸고 하는 일인데. 마스터나 승하 씨가 있으니까 무슨 일이 생길 가능성이 낮긴 하겠지만...”
“아무리 준비한들 확률을 제로로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맞는 말씀입니다.”
“거기다가 우린 청뢰까지 깠잖아요? 마스터가 그 뒤에 메리트 챙기려고 미리 깐 거라고 하긴 하셨는데. 그런데 지금까지 보면 그거 깐 메리트도 없어 보이고...”
“챙기지 않아도 됩니다.”
“...네?”
화련은 말로 묻는 걸로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말없이 고개를 기울이며 눈빛으로 다시 물었다. 네?
류 현은 웨인을 한 번 힐끔 본 후에 조용조용하게 말했다.
“어제 습격으로 확실하게 느꼈거든요. 협회 상태가 사람들 생각보다 훨씬 좋지 않습니다.”
“정보가 샌 것 때문에요?”
“예, 그것도 있지만 사실 협회는 상태가 좋을 수가 없는 조직입니다. 강대국들의 견제를 끊임없이 받을 수밖에 없지요.”
플레이어 협회는 1차 ‘대소환’ 이후, 5년여의 시간동안 억압받은 플레이어들이 해방되었다는 상징이다. 또한 그들을 억압했던 강대국들을 향하고 있는 화살촉이기도 하다. 또다시 국가가 플레이어들을 살인 병기로, 전쟁 도구로 만드는 걸 방지하는 게 가장 기본 되는 목적이고, 나머지는 부록에 불과하다.
억압의 시대를 거치지 않은 플레이어나 일반인들은 잊고 지내는 이유지만, 슈퍼 솔져 프로젝트 같은 걸 포기하기 힘든 강대국들 입장에서는 거북하기 그지없는 존재다. 더군다나 플레이어라는, 기존 사회규칙 밖에 서있는 존재를 응집시킬 수도 있는 단체가 국가 입장에서는 편할 리가 없다.
자연히 협회와 강대국은 면전에서는 미소를 짓지만, 뒤로는 칼을 가는 그런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죠.”
“개인적으로는 그런 환경적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겉보기에는 문제없을 정도로 일은 잘 처리했다고 생각합니다. 웨펀 마스터라는 실력자를 제대로 꽃 피워낸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그런데 문제는 지금은 그게 한계라는 겁니다.”
“한계요?”
“네, 한계요. 어제 우리가 습격 받았을 때 웨인도 직감했을 겁니다. 지부 지원 잘못 받았다가는 정보가 새겠구나 하고요. 그렇지 않고서야, 제가 하자는 대로 무조건 끌려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한 번 생각해보겠다고 시간을 달라고 했겠지요. 저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지원팀이라도 불렀을 겁니다. 현장에서 주도권을 뺏긴 후에 아티펙트 소유권을 주장하는 게 얼마나 웃긴 일인지 현역인 그가 제일 잘 알 테니까요.”
화련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까딱였다. 류 현은 계속했다.
“화련 씨는 협회가 우리에게 가칭 유성우를 확보를 위탁한 게 여유가 없어서 라고 하셨지요. 저는 거기에 협회 또한 이 아티펙트를 숨기고 싶어 한다고 덧붙이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협회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신호지요.”
“계속 해주세요.”
“협회는 지킬 자신이 없는 겁니다. 가칭 유성우가 세간에 공개되고, 그 위력이 강대국들에게 알려질 경우 그걸 쥐고 있을 자신이 없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 팀에게 요청한 겁니다. 소속이 애매하지만, 검성이라는 확실한 전력까지 포함시킬 수 있으니까요. 이것만으로도 상태가 말이 아니라는 걸 인증한 거나 다름없죠. 거기다가 비밀을 지킬 능력도 부족하다는 걸 어제 보여줬습니다. 아프리카 지부라서 구멍이 생겼다? 그건 변명도 안 됩니다.”
류 현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말했다.
“제가 보기에 지금 협회는 우리가 유성우를 확보해서 넘겨줘도 달군 돌을 넘겨받은 것 마냥 끙끙 앓다가 우리에게 돌려 줄 겁니다. 차라리 우리가 가지고 있다가 걸려서, 국가에 강탈당하고 그걸 찾아주는 정의의 사도 역할이 더 편하니까요. 비슷한 명분으로 우리로부터 찾기도 어렵지 않고요.”
“......”
턱을 매만지며 류 현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던 화련은 이제 완전히 고개를 아래로 향한 채로 말이 없었다. 류 현은 그녀의 침묵을 잠자코 기다려주었다.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럼 마스터 말대로 그 달군 돌을 돌려받은 뒤에 어쩌실 생각이시죠? 우리한테도 뜨겁다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달군 돌을 쥐고 있는 게 아니라 던지면 되지요.”
“던져요?”
류 현은 씩 미소 지었다. 화련은 그 미소에 알 수 없는 섬뜩함이 느껴진다는 것에 놀랐다.
“우리가 돌 던질 상대가 괴수 말고 더 있습니까? 아마 X던전이면 좋은 데뷔 무대가 될 겁니다.”
그 미소는 인간 남자의 것이라기보다도, 맹수의, 사냥을 앞둔 포식자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