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탐식마(貪食魔)
국가가 ‘대소환’의 발발과 플레이어의 존재를 은폐하고, 그들을 억압했던 5년여의 시간이 모두 지나가고 2차 ‘대소환’이 일어났다.
그 2차 ‘대소환’이 일어나서 플레이어의 존재가 세간에 알려졌을 때, 각국 정부가 가장 먼저 강구한 것은 플레이어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어떻게 말하든 간에 끔찍한 일이고, 소름끼치는 소리였지만 플레이어들을 슈퍼 솔져로 만들겠다고 쥐어짜던 이들로서는 당연한 조치이기도 했다.
그 시점에서 그들만큼 플레이어의 강력함을 잘 아는 이들도 드물었으니까. 플레이어라는 존재가 얼마나 이질적이고, 괴물에 가까운 존재인지 알고 있는 건 우습게도 그들을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이 다루던 자들이었다.
당장 플레이어들에게 국가를 뒤집을 힘은 없었지만, 혼란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 당장 별 특출한 힘도 없는 성인 남자도 국가 분위기를 뒤숭숭하게 만드는 연쇄살인범이 될 수 있는데, 인간을 초월한 플레이어라면 두 말할 것도 없겠지.
5년 여간 온갖 고문과 협박을 당했던 플레이어들은 고삐가 느슨해지자마자 세상으로 뛰쳐나갔다. 그 대부분은 자기 정신을 수습하기도 전에 사건에 연루되어서 사살되거나, 어딘가 깊숙한 곳에 수감되는 신세가 되었다.
협회가 출범 초기 플레이어의 사망률을 책정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였다. 괴수보다 사람의 손에 죽은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으니까. 강대국이나 협회나 들추기 힘든 치부였고, 양쪽의 암묵적인 합의하에 그 일들은 묻혔다.
그 시기에 정말 온갖 수법들이 실험되었다. 국가별로 독자적인 대 플레이어 전 교범이 만들어 질 정도였다.
물론 그 뒤에 플레이어들은 지속적으로 정보를 쌓으며 이전보다 평균적으로 강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교범의 존재가 유명무실해지는 건 아니었다. 강하든 약하든, 특수한 훈련을 받지 않는 이상 사람이 보이는 반사적인 반응은 같으니까. 그 반응을 유도해서 찌르는 전법은 강함의 정도를 떠나서 먹힐 가능성이 아주 높은 것이다.
문제는 이 교범에 대한 보안이 영 시원찮았다는 것. 이름만 들어도 아 소리 나오는 군사강국들은 기밀을 잘 지켰지만, 몇몇 나라에서는 이런 교범들이 유출되기도 했었다. ‘대소환’ 이후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던 아프리카가 그에 해당 되었다.
그리고 류 현과 팀원들이 앉아있던, 402호 창문을 향해서 똑바로 날아오고 있는 RPG 7의 탄두는 그 교범에 철저히 따른 결과 중 하나였다.
류 현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건 탄두가 호텔 창문에 닿기 직전의 일이었다. 그가 눈을 돌려 창문 쪽을 바라봤을 때, 탄두는 이미 창문에 머리를 갖다 대고 있었다. 생각하고 자시고 할 새도 없었다. ‘설마?’ 그의 본능은 창문을 향해서 날아오는 쇳덩이가 뭔지 판명하기도 전에,
“마, 마스터?”
“이, 이 남자가 갑자기 왜 이래? 이거...”
두 여자를 품안에 끼워 넣고는 침대 밑으로 뛰어들게 만들었고,
[콰앙!]
직후 폭음이 그들의 세상을 뒤흔들었다. 지독한 열기와 소음, 충격파가 그의 등을 세차게 후려쳤지만 류 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감지도 않은 채, 자신의 그림자가 다시 드리워지는 지를 살폈다. 화련과 희란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파악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그의 옷깃을 찢어져라 움켜쥐었다.
폭발 자체는 정말 짧은 순간에 끝이 났다. 허무할 정도로 짧은 폭발.
하지만 류 현은 일 분 정도를 더 기다린 후에 고개를 들었다. 그는 이미 날아간 방문 쪽을 힐끔 한 번 봤다. 이미 방문 어쩌고 운운할 수준이 아닐 정도로 복도와 맞은 편 방까지 처참하게 박살난 상태였다. 류 현은 그 광경에서 무심하게 시선을 떼며 생각했다.
‘바로 돌입할 정도로 머저리 새끼들은 아닌가 보군.’
대 플레이어 전 수칙 하나, 플레이어에게 접근하는 건 그 시체를 수거하러 갈 때뿐이다. 아군에 플레이어가 있지 않는 이상, 플레이어가 침묵하고 한 시간이 경과하기 전에는 절대 접근하지 않는다.
이 정도는 아는 걸 보니, 그냥 왈패들을 끌어 모은 패거리가 아니라 나름대로 훈련 비슷한 걸 시키는 조직인 모양.
방안은 흙먼지로 자욱했지만 류 현의 시력으로는 맞은 편 건물을 보는데 별 문제는 없었다. 류 현은 맞은 편 건물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 한 후에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팍에 매달린 짐 덩어리들을 보고 저도 모르게 픽 웃었다.
‘청뢰보고도 멀쩡하던 사람들이...’
위력을 따져도 청뢰가 우위고, 임펙트는 비교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게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류 현은 알고 있었다. 자신도 이런 식으로 처음 제대로 된 화기에 당했을 때는, 위력 때문이 아니라 그 사실에 놀라서 대처가 늦었으니까.
‘그래, 이게 정상이지.’
류 현은 그리 생각하며 가슴팍에 매달린 두 여자를 도닥였다.
“화련 씨? 희란 씨? 일단 고개 좀 들어보시죠. 예, 잘 하셨습니다. 이제 심호흡을 해봅시다. 예, 그렇게요.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고. 잘 하고 계시네요. 계속, 계속.”
다행스럽게도 심호흡 몇 번 만에 둘은 당황을 완전히 물리치진 못했지만, 어느 정도 정신을 수습했다. 아직도 류 현의 옷깃을 움켜쥔 채인 화련이 손을 덜덜 떨면서 말했다.
“대체 이게 무슨...이게 무슨 일이죠...?”
“어디라고 특정지어서 말씀드리긴 그렇고, 그냥 아프리카에 널린 테러조직 일겁니다. 하도 많아서 대표로 하나 이름 대기도 힘들군요. 아마 우리가 협회의 개라고 생각해서 공격한 것 같습니다. 하는 걸 보니까 꽤 이거저거 배운 친구들 같은데. 거 참 이럴 시간에 괴수나 때려잡을 일이지.”
“테, 테러리스트요?”
다른 단어는 들리지도 않는 지, 두 여자는 테러라는 말만 되뇌었다. 류 현은 그 시점에서 깔끔하게 포기했다.
‘정신 되돌려 놓으려면 좀 걸리겠네.’
대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서 방금 전까지 창문과 벽이 있었던 곳으로 이동했다. 바깥은 공격당한 방안 보다 난리였다. 행인들 중에서 갑자기 앞으로 넘어져서 다쳤는지 다리를 부여잡고 소리치는 이나, 호텔 건물을 보고 괴성만 지르는 이, 지나가던 경찰을 붙잡고 사정을 설명하고 있는 이까지 난리법석이었다. 개 중에서 호텔로 접근 하는 이는 단 한명도 없었다.
대충 인원수는 예상할 수 있지만. 덤벼들지 않는 이상 다 잡기는 쉽지 않을 터.
‘머저리가 아닌 수준이 아니라 제법 훈련을 받았나 보네. 보통 테러리스트면 그냥 여기서 건물을 내려앉히거나 방 쪽으로 총을 갈길 텐데.’
류 현은 자신보다 멀쩡한 정신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동료를 불렀다.
“승하 씨!”
콰릉! 그의 부름에 응하듯 갑자기 방 벽이 터져나갔다. 그 굉음에 희란과 화련이 다시 움찔하며 그의 옷을 찢어져라 움켜쥐었다.
흙먼지가 걷히자, 그곳에는 테러 현장보다는 플레이보이지 표지에 더 어울릴 것 같은 차림의 여인이 서있었다.
“너희 괜찮아?”
“예, 보다시피 다친 곳은 없습니다. 두 분이 좀 놀라긴 하셨지만...”
승하의 꼴을 보게 된 류 현은 말을 하다 말고 그녀를 짐승 보듯이 봤다. 승하는 침대보인지 커튼인지 모를 물건을 대충 감은 모습이었다. 어깨선이나 골반 쪽 비어있는 부분으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녀들의 말처럼 홀랑 벗고 있다가 갑작스러운 공격에 옷을 다 날려먹고 대충 감고 뛰어온 모양이었다.
류 현이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승하가 류 현이 있는 곳까지 다가왔다. 그녀도 류 현과 같은 생각인지 뻥 뚫린 벽을 통해서 밖의 정황을 살폈다.
‘아니 대체 왜 내 친구라는 인간들은 하나같이...’
류 현은 머리를 감싸 쥐고 싶은 기분을 애써 억누르며 말했다.
“두 분께서 좀 놀라셔서 저는 여기 있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놀랄 만도 하지. 알았어. 가서 잡아올...”
그 때, 호텔 밖으로 인영하나가 쏜살같이 뛰쳐나왔다. 그냥 뛰쳐나온 것이 아니라 걸리는 건 모두 족쳐버리겠다는 흉흉한 기세를 사정없이 흩뿌리면서! 인영은 순식간에 맞은 편 골목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승하가 휘파람을 불었다.
“꽤나 빡친 모양이네. 흠, 따라가서 구경하면 화내려나?”
“저도 저 분이 저렇게 화낼 줄은 몰랐네요. 안 그래도 화난 분 부채질 하진 맙시다. 일단 내려가죠. 가서 구급차라도 불러서 두 분 상태 체크라도...”
“무슨 상태 체크야. 좋아서 시시덕거리고 있구만.”
“예?”
승하의 말에 류 현에 고개를 시선을 아래로 내리려고 하자,
“칫.”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흙먼지를 채 털어내지도 못한 채 허리를 숙이는 남자를 내려다보던 류 현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옆을 돌아봤다. 그와 멀찍이 떨어져서 사태를 관망하던 세 여자는 호흡을 맞추기라도 한 듯 동시에 고개를 내저었다. 류 현은 한 숨을 내쉬고 싶은 걸 애써 참으며 말했다.
“웨인 씨의 과실도 아니고, 사고 아닙니까. 그런 식으로 따지고 올라가면 가장 큰 잘못은 아프리카 정부가 한 거고요. 다친 분도 없으니 이쯤 하시고 일어나시죠. 아직 먼지도 못 터신 분이 이러시면 제 낯만 깎입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고개를 든 웨인의 모습은 그야 말로 먼지투성이였다. 하지만 류 현은 그보다는 튄 피가 없다는 것에 더 주목했다.
‘염력도 쓸 수 있다고 했던가.’
낮에 그들을 습격한 테러리스트들은 나름 훈련을 거친 정예겠지만, 상대를 잘 못 찾은 게 문제였다. 던전 안에서 보다 밖에서 화기를 다룰 수 있을 때, 더 강하다는 평을 받는 웨펀 마스터가 그들의 상대였으니까. 화기에 익숙하지 않은 여느 플레이어들과 다르게 그는 별칭이 사실임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화기마저 능숙하게 다루고, 주력은 아니지만 염력까지 사용한다.
총을 염력으로 다루는 플레이어. 이미 거기서 이야기는 끝난 거나 다름없다.
승하가 나서서 족치는 것보다야 덜 고통스러웠겠지만, 팔다리 성해서 잡힌 놈들은 없을 것이다. 못해도 열을 헤아리는 인원수가 산개해서 도망가는 데 한 사람이 멀쩡하게 생포할 수는 없으니까. 웨인이 호텔로 돌아오는 데 네 시간이 걸린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혹시 몇 명 잡으셨는지 들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당연히 알려드릴 생각이었습니다. 둘 정도를 놓치긴 했습니다만 나머지 열둘을 생포했고, 그 중 행동대장 같은 녀석이 위스프 출신이라는 걸 확인했습니다.”
“...위스프요?”
생각지도 않았던 거물 테러조직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류 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위스프? 설마 그 뉴욕에 테러한?”
“위, 위스프요?”
화련과 희란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2년 전 만해도 심심하면 사고를 쳐서, 언론사들이 심심할 일 없게 만들어준 테러 단체였으니까. 몇 달에 한 번씩 일을 벌이는 지금이 얌전해졌다고 할 정도인 것이다.
“웨인 씨, 일단 쉬시고 나서 저녁 먹고 나서 이야기 하도록 하는 게 좋겠습니다. 도착 한 뒤로 앉지도 못하고 내내 뛰어다니셨잖습니까. 여기서 서서 이야기 할 것도 아니고요. 저희가 일단 급하게 잡은 호텔이 있으니 그리로 이동하도록 하지요.”
“그렇게 하지요. 제가 안내역인데 내내 배려만 받는 것 같군요.”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거지요. 자, 일단 이동하도록 합시다.”
오늘 밤은 꽤 길어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