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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화 〉탐식마(貪食魔) (78/429)



〈 78화 〉탐식마(貪食魔)

[끄르륵..]

쿠웅! 단말마를 내뱉으려던 응룡의 목에서 피거품이 내뿜어지더니, 그대로 그 커다란 머리가 대지를 때렸다. 응룡은 몇 번 들썩거리더니, 그 뒤로는 다시는 몸을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후우.”

응룡의 목 위에 올라타고 있던 남자, 류 현은 응룡이 움직이지 않는 걸 몇 번  확인한 후에 그 사체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류 현은 일행에게로 다가가며 픽 웃고 말았다.

화련은 아예 주저앉아서 헐떡거리고 있었고, 희란은 티를 안내려고 애를 쓰곤 있었지만 자꾸 다리가 풀려서 승하에게 부축 받고 있는 상태였다.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탈진 상태. 둘이서 응룡을 반죽음으로 몰아넣기 위해서 치른 대가였다.
‘무리도 아니지.’


응룡과 화련 희란 콤비는 상성이 안 좋았으니까. 화련의 마법은 아직 응룡의 항마력을 짓누를 정도는 아니고, 희란은 둘이서만 싸울 때는 류 현 흉내를 내곤 있지만 기본적으로 보조역이니까. 아니, 제대로  전열도 없이 여태껏 괴수들을 둘이서 참살해온  더 신기한 일이다. 퍼플 던전은  바닥이 드러나기 충분한 괴물들의 서식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응룡을 반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현이 선사한 보기에도 두개골상태가 걱정되는 움푹 들어간 외상 외에도, 크고 작은 상처들이 꽤 많이 자리하고 있었다. 주로 다리와 목덜미 부분에.


류 현은 이제 거의 승하에게 매달려있는 희란을 바라봤다. 응룡을 상대하면서 희란은 잡을만한 자리가 확보되자 위에 올라타서, 응룡을 죽어라 찌르고 두들겼다. 초기 버전 브류나크가 전부 떨어지자, 그녀가 택한 공격법은 파쇄권이었다. 류 현의 것과 비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지만, 타점에 도달하자 마력이 폭발하는 걸 그는 분명히 보았다.

‘그래도 그것까지 흉내 낼 줄은 몰랐는데.’


둘이서만 싸울 때, 참고할 만한 이가 없으니 류 현의 움직임을 흉내 내는 것까지야 그러려니 했다. 흉내 내지 못할 건 없으니까.  현은 남들이 못하는 걸 하는  아니라, 남들도 하는 걸 좀 더 잘할 뿐이니까. 파쇄권도 그런 기술이다. 남들도 할 수 있지만 잘하진 못하고, 류 현이 잘하는 것.


 현의 파쇄권은 그런 기술이다. 보는 입장에서 위력은 굉장하지만 가르쳐주겠다고 하면 대부분 거절할 그런 기술. 류 현마저 에너지 드레인이 없었다면 네임드 괴수에게 쓸 다른 기술을 개발했을 것이다. 그런 파쇄권의 비효율성을 마력 흐름에 있어선 지금 멤버 중에서 가장 민감한 희란이 모를 리가 없을 터. 계산하고 한 행동이라기보다도, 그냥 흐름에, 감에 몸을 맡긴 행동이다.


‘그러고 보면 둘이서 사냥할 때는, 평소 행동이랑 영 딴판이란 말이지.’


애초에 희란은 전열역을 맡을 필요는 없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다. 괴수 피 솟는 것만 봐도 움찔하고, 내장이 보이면 하얗게 질리는 희란을 세울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류 현은 둘이서 괴수만 처리하면 히트 앤 런이든 뭐든 아무래도 좋다는 쪽이었고, 화련은 오히려  작은 몸으로 자신이 전열을 빙자한 미끼라도 하겠다고 나설 정도였다. 둘이서 사냥할  지금 같은 포지션이  건, 희란의 고집이 반영된 결과였다. 말이 고집 부려서 관철 시킨 거지, 희란이 사고의 기미를 보였다면 그는 가차 없이 잘랐을 것이다. 이미 입증된 지원 특화 플레이어를 위험에 노출 시킬 필요는 없지 않은가?

플레이어들은 농담처럼 말하곤 한다. 윗단계로 올라갈수록 전열은, 특히 스트라이커들(근접공격수)은 또라이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그 또라이스러움이 재능이라고.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이다. 온 몸이 칼날처럼 날카롭거나, 피부로 불을 뿜거나, 저층 아파트만한 괴수를 상대로 어그로를 끌고, 때때로는 그 몸에 달라붙어서 데미지를 넣는 게 어디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짓이겠는가?

거기에 빠질 때를 가늠할 수 있는 촉도 필요하다. 계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아 소리가 나오게 하는 스트라이커들이 입을 모아서 하는 소리다.


류 현이 혼자서 네임드 괴수 대부분을 잡아 죽일 수 있었던 것도  또라이스러운 재능, 스트라이커로서의 재능 누구보다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신장이나 힘의 비례로 보면 인간과 개미보다 차이가 극심한 상대를 맞이해서 그는 매달리고, 악착같이 물어뜯어서 그것들을 잡을 수 있었다. 물러설 때는 미련 없이 물러섰다. 계산? 그런 걸 할 정도로 자신의 머리를 신뢰하지도 않고, 그럴 틈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현이 봤을 때, 희란이 보여준 행동은 거친 부분은 많았지만 스트라이커로서의 싹 정도는 있다고 할 수준이었다. 평소에는 제 의견도 쉽사리 내지 못해서 머뭇거리는 여자가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재능이다. 특히 반쯤 그의 추측이지만 전투 모드 스위치가 있다는 점에서.


‘거 참, 이런 재능을 발견할 줄은 몰랐는데. 개발 해주기도 뭣하고.’

***

“뭐?”


승하는 자신이 바로 들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되물었다. 너무나도 뜻밖의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희란과 둘이서 불침번 서고 있는 이 때에 들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승하의 얼굴 위로 모닥불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일렁거리자 그녀의 외견과는 별개로 조금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희란은 한 발 빼며 더듬더듬 다시 말을 꺼냈다.


“스, 스트라이커 훈련을 받아보고 싶어요...”


희란이 다시 말하자 승하는 얼굴을 슥 들이밀더니, 희란의 이마를 짚어보고, 그걸로는 만족하지 못했는지 제 이마를 갖다 대서 열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열은 없는데?”
“그, 그런 게 아니라 전 진지하게...”
“류 현이 시켰어?”

희란은 저러다 고개가 떨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고개를 붕붕 내저었다. 승하는 손으로 희란의 머리를 덥썩 잡아서 멈췄다.


“그렇게 오버 안 해도 돼. 남을 보고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는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솔직히 너 스트라이커 재능 있어도 싫다고 할 만하잖아? 안 그래?”


희란이 승하의 시선을 피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희란을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니고, 벌써 열흘 가까이 던전 플레이를 같이 하고 있다. 친하지 않던 이들도 원수로 돌아서는 게 아닌 이상 어느 정도 가깝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으니, 그 정도는  수 있다.

“사실 스트라이커 하고 싶어서 하는 놈들이 몇이나 되겠어. 다른 부분은 재능이 없고, 먹고는 살아야겠고. 고위 던전만 안가면 스트라이커나 후위나 사망률이 십 프로 이상 차이는 안 나니까 하는 거지.”
“......”
“그런데 그걸 자청해서 하겠다고? 너 지금 당장  팀 나가서 능력만 까면 서로 데려가겠다고 난리일 텐데?”


희란은 말없이 모닥불 뿌리 부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승하는 이럴 때 닦달해봐야 아무것도 얻을  없다는 걸, 지난 열흘 간 경험했기에 잠자코 기다려주었다. 희란은 모닥불을 보고 있는 게 괴로워질 쯤 돼서야 입을 열었다.


“제가...지금 할 수 있는 건  해보고 싶어요.”
“...지금 네가 도움이 안 되는 거 같아서?”

희란이 고개를 들었다가 곧바로 떨어뜨렸다. 그녀는 거의 팔에 입을 묻은 채로 웅얼거렸다.

“...네.”

승하는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류 현에게서 희란의 능력을 들은 그녀로서는 어처구니없고, 한 편으로는 이해가 가기도 하는 이야기였다. 희란의 능력은 직접 전투에 쓰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보조다.

거기다가 지금 류 현과 승하가 다 해먹는 구도에서는  묻힐 수밖에 없다. 승하나 류 현이나 그녀의 마력을 받을 정도로 통이 작진 않으니까. 처음 사흘가량은 지루해도  일이라도 있었지. 응룡을 마주한 뒤에는 나흘 전에 복수전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죽어가는 떨거지 뒷정리나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 본인이 류 현과 ‘연결’해서 류 현의 마력을 끌어다 써도 무방하지만, 희란에게는 본인이 아는 전투법이라고 할 만한  없다. 여태껏 브류나크 초기버젼이나 화련의 능력 백업으로 어떻게든 해왔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에 부딪혔다. 브류나크는 응룡의 가죽은 뚫었지만, 상처를 벌리거나 하진 못했다. 화련의 마법도 응룡을 완전히 억누를  없었다.

승하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희란의 포지션은 버프 아티펙트를 둘둘 감고 괴수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아티펙트로 이따금씩 화력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마력은 남아돌지만 본격적인 화력이 부족한 편인 용잡이 팀에게는 이상적인 배치라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희란이 보유한 아티펙트는 일회성 방어막 정도가 전부다.

그것도 전부  현이 서해란을 통해서 공수해온 것들이다. 같은 아티펙트를 화련도 가지고 있으니, 역할 분담이라기보다도 그냥 보험이라고 봐야겠지.

승하 또한 의아하게 여기는 부분이었다. 팀원을 아껴서 사리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놀리는 수준이니까.  결과 희란은 친하다고 하기 힘든 승하에게 훈련 시켜달라고 할 정도로 심리적으로 몰려있다.


‘대체 무슨 생각인건지. 아티펙트 사용이라고 해도 경험빨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너네 마스터 지금까지 깐 실력만 봐도 전세계 스트라이커 열 손가락 안에는  수 있거든? 다른 놈들도 실력을 숨기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걸 감안 할 순 없으니까 넘어가고. 어쨌든 그런 스트라이커가 팀에 있는 데 왜 굳이 그러겠다는 건데? 솔직히 말하자면 네가 스트라이커에 엄청 재능 있다고 하더라도 별 도움 안 될 거야. 네가 스트라이커로 크는 동안 류 현이랑 격차는  벌어질 테니까. 그리고 너 아직 네 능력도 숙달되지 않았잖아. 근접전 병행하면서 능력 유지  시간 이상 가능해?”

희란도 승하의 말이 옳다고 여기는지 말이 없었다. 승하는 멀뚱히 희란을 바라보다가, 그녀가 도무지 입을  기색이 없자 한숨과 함께 내뱉었다. 그러면서도 반대편에서 눈만 감고 있는 류 현을 흘겨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 듣고 있으면서 무슨 얼어 죽을 자는 척이야.’
“세 마리.”
“...?”
“라가 챔피언 급 덩치 괴수 세 마리 가죽을 벗기면 생각해 볼게.  스트라이커 훈련. 죽은 괴수 해체도 못 하면서 스트라이커를 하겠다는  말이 안 되잖아?”

희란은 조금 질린 얼굴이 되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승하는 그 모습을 슬쩍 흘리고는 류 현쪽을 돌아봤다.

‘이제 어떤 방식이든 간에 반응을 보이겠지. 대체 뭘 어쩌려고 여태껏 공격용 아티펙트 하나 안 쥐여 준 건지 감이  잡힌단 말이야.’

그리고 그런 그녀의 의문은 다음날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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