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탐식마(貪食魔)
“너희 마스터 생각보다 훨씬 괴물이라니까.”
승하의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류 현은 속으로 웃었다.
‘누가 누구더러 괴물이라는 건지.’
지금 당장 블랙 던전 안에 집어넣어도, 팔다리 하나는 떼놓고 올지언정 머리를 떼놓고 올 일은 없을 것 같은 괴물이다. 류 현이 죽기 직전에도, 그 정도 수준 되는 플레이어면 단체를 대표하는 간판이라고 할 만했으니 기량 면에서는 이견을 제시할 건덕지가 없다.
‘3차 ‘대소환’까지 살아있었으면 어느 정도의 괴물이 됐을지...’
류 현은 고개를 내저으며 왼손에 마력을 집중시켰다. 그리곤 에너지 드레인을 펼친 상태로, 올라타고 있는 응룡의 등을 붙잡았다.
반응은 곧바로 나타났다. 그의 왼손이 닿은 부분의 가죽이, 가죽이라기보다도 자동차 타이어에 가까운 질감을 가진 그것이 흐물텅하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류 현은 그 상태로 일 분여를 더 그러고 있다가, 오른손에 쥐고 있었던 손칼로 물러진 가죽을 베어내었다.
가죽을 벗겨내고 지방만 처리해도 바로 방탄복 대용으로 쓸 수 있다는 응룡의 가죽이, 비단천이라도 되는 마냥 손쉽게 갈라졌다. 류 현은 에너지 드레인을 계속 유지한 상태로 가죽 아래 드러난 살점을 붙잡았다.
이번에는 가죽보다 훨씬 극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총알이라도 튕겨낼 것 같은 빽빽한 근육들이 그의 손이 닿는 곳부터 쪼그라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시커멓게 타들어가 듯 아래로 침잠해갔다. 류 현은 왼손과 오른손에 쥔 손칼을 번갈아 이용해 가며, 응룡의 몸 안쪽으로 천천히 파고 들어갔다. 왼손이 닿는 곳은 전부 말라비틀어졌기에, 용솟음치는 피로 곤란할 일은 없었다.
그렇게 작업을 3분 정도 반복했을 때, 류 현은 손을 멈추고 새빨간 살점 사이에 파묻혀 있는 하얀 무언가를 내려다보았다. 대충 보면 타조 알 같아 보이는, 타조알정도의 크기의 그것이 그가 찾던 것이었다.
‘생각보다 좀 더 큰데?’
내단(內丹)이다. 영미계에서는 드래곤 하트라고 부르기도 하는, 용 종류의 괴수에게서만 발견되는 장기다. 어쩌다가 용 종류의 괴수가 현실에 등장할 경우, 그 사체가 억 정도가 아니라 세금이 십억 단위로 붙게 되는 원인이다.
비싼 이유?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단의 특수성 때문이다. 내단은 허파나, 신장 같은 게 아니라 공기 중의 마력을 포집하고, 축적하는 장기니까. 일반 괴수의 경우, 괴수가 살아있을 경우에만 존재하고, 괴수가 죽을 경우 파괴되는 그것 말이다.
아직 제대로 마력 포집하지 못하는 인류에게는 그야말로 도라에몽의 사차원 주머니나 다름없다.
거기에 용의 형상을 가진 괴수들이 같은 던전에서 나오는 괴수들보다 0.5단계 이상 강하다는 것도 비싼 이유에 포함된다. 무엇보다 용은 보고 싶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한 괴수도 아니다. 퍼플 이상의 던전에서는 짜증날 정도로 자주 얼굴을 마주치게 되지만, 플레이어들의 평균 수준을 생각해보면 굉장히 희귀한 괴수인 것이다.
그런 귀한 몸이었기에, 류 현은 에너지 드레인을 거두어들이고도 믿지 못하고, 다른 곳을 왼손으로 짚어서 완전히 꺼진 걸 확인한 후에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내단을 꺼내었다.
볼링골 뺨치는 볼륨감과 다르게 무게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응룡이 몇 마리 더 있으려나. 정찰대에 포함 시킬 정도면 최소한 두 마리는 더 있겠지? 하나는 공방 갖다주고, 남은 하나는 약 만들어서 누나 좀...’
팀원들이 질겁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모른 채, 류 현은 고민에 빠졌다.
***
“...그러니까, 저희 보고 이걸 먹으라고요?”
화련은 찡그린 얼굴로는 모자라다고 생각했는지, 내단을 손을 가리켰다가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류 현은 다른 대답을 해줄 예정 따윈 없었기에 단호하게 대꾸했다.
“네.”
“으엑...”
화련의 입에서 거의 반사적으로 질겁하는 소리가 튀어나왔고, 희란은 그에 동의한다는 듯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는 아직 피어의 영향에서 다 벗어나지 못했는지 승하의 부축을 받고 서있었다.
번거로움을 감수해 가며 꺼내왔더니 이 반응이라니. 류 현은 한 숨을 삼켜가며 말했다.
“제가 무슨 생간을 씹어 먹으라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외견상 딱히 징그럽지도 않고.”
류 현은 타조 알 같은 내단을 둘러보는 채했다. 화련은 그를 따라하더니 더욱더 질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차라리 그런 거면 음식이라고 생각이라도 할 수 있죠. 이건 너무 매끈매끈 하잖아요. 무슨 담석도 아니고...그냥 돌 아니에요? 생긴 것도 성질나면 돌도 막 삼키고 할 거 같은데.”
“정 의심 되시면 한 번 만져보시죠. 그럼 아실 겁니다.”
류 현이 권하듯 앞으로 내밀자, 화련은 질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녀도 그가 꺼내는 작업을 하는 걸 옆에서 봤기에, 거절할 수도 없었다. 화련은 주저하다가 결국 내단을 넘겨받았다.
“어? 이거 무게가...”
“실제 장기라기보다도 마력 덩어리에 가까우니까요. 그러니까 그렇게 질색 안하셔도 됩니다. 혹시 압니까? 소프트 아이스크림 맛일지.”
화련은 무슨 쉰 소리를 하냐는 듯 류 현을 돌아보았고, 희란도 비슷한 표정이 되었다. 희란을 거의 들쳐 업다시피 한 승하는 고개를 갸웃했다가, 갑자기 눈을 빛냈다.
“나도 한 입해도 돼?”
승하의 물음에 류 현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고, 화련과 희란은 둘을 번갈아 보며 연신 고개만 갸웃거렸다.
***
“이건 사기야...말도 안 돼.”
화련은 스푼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떨며 류 현을 올려다보았다. 류 현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그녀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한 입 배어문 자국이 선명한 고깃덩어리가 쥐여져있었지만, 이 파티의 누구도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심약한 희란도 이제 어색하게 웃어 넘길 정도로 자연스러운 광경이 된 것이다.
화련은 자신의 앞에 놓여있는 용혈로 범벅된 내단을, 반쯤 파 먹힌 그것을 한 번 봤다가 다시 류 현을 보고 물었다.
“피 뿌릴 때 이상한 거 섞어 넣은 거죠?”
“뭘 이상한 걸 뿌립니까. 보급품 목록 다 보셨잖습니까. 제 ‘가방’안에는 그것만 딱 들어있습니다.”
“아니 그럼 어떻게 피 뿌린 거 가지고...”
‘여기서 소프트 아이스크림 맛이 나냐고!’
류 현은 그녀들이 먹겠다고 하자마자, 응룡에서 피를 한바가지 퍼오더니 내단에 끼얹었다. 그걸 보고 기껏 했던 결심이 녹아 없어진 화련은 먹지 말라는 거냐고 따졌지만, 류 현은 내단만 손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내단을 다시 봤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내단을 감싸고 있던 껍질이 용혈에 녹아 없어진 것이다.
그 안은 소프트 아이스크림 그 자체였다. 부드러움과 입안에 남는 달콤함, 차가운 식감까지. 딱히 미식에 일가견이 있는 화련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확언할 수 있었다. 이보다 더 소프트 아이스크림스러운 건 없다! 어쨌든 분명히 던전에서 느낄만한 맛은 아니었다.
류 현이 다른 대답을 해줄 것 같지 않았기에, 그녀는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서 내단을 열심히 파먹고 있는 승하를 바라봤다. 그녀는 피가 입에 범벅이 되든 말든 신경도 안 쓰고 열심히 내단을 퍼먹는 중이었다.
‘이렇게 먹는 걸 저 여자도 모르는 거 같았는데 마스터가 어떻게 알아?’
승하가 이런 걸 알고 있는 건 이상하지 않다.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퍼플 던전을 클리어한 플레이어니까.
하지만 류 현은 이번 원정이 첫 퍼플 던전 행이다. 그린까지야 몰래 몰래 어떻게든 한다지만, 퍼플 급은 협회나 국가나 허투루 관리하는 급수가 아니다. 퍼플 던전과 관련된 정보 또한 마찬가지다.
물론 협회와 공조관계 비슷한 것을 맺었으니, 퍼플 던전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는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지난 일주일 동안, 화련과 희란이 몸으로 한 번 겪게 만든 후 설명을 해주는 식으로 정보를 풀었다.
그 리스트 안에 내단을 섭취하는 방법이 들어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런데 그걸 퍼플 던전 최전선에서 싸우는 승하는 모르고, 이제 막 첫 경험을 시작한 류 현만 알 가능성은?
협회가 승하를 굉장히 싫어하지 않는 이상 매우 낮다. 그리고 그녀가 아는 한 협회는 승하를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호감을 사려고 애쓰고 있지. 그런 상황에서 사람 가려서 정보를 알려줄 이유가 있을까? 둘이 같이 던전에 들어간다는 걸 뻔히 알면서?
‘대체 마스터의 정보력 기반이 뭐지?’
그런 그녀의 상념을 류 현의 목소리가 자르고 들어왔다.
“참고로 내단 섭취를 많이 할수록 피어에 저항하기 수월해집니다. 경험도 경험이지만, 사람에 따라서 적응이 늦어지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하니까요. 뭐 이것도 응룡급이거나 그 이하한테 해당하는 얘기고, 응룡보다 상위 종한테는 그리 큰 의미는 없습니다만. 안 먹는 것보다야 낫겠죠.”
그의 말에 화련은 불과 한 시간도 안 된, 그 공포를 떠올렸다. 무엇인지 생각할 수도 없는, 의심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공포. 공기가 풍부한 숲속에 선채로 질식사 할 것 같은, 폐부를 옥죄는 공포.
심약한 이라면 트라우마 정도가 아니라, 심장마비가 왔을지도 모른다. 화련 본인도 다시 한 번 더 그 피어에 맨몸으로, 정면으로 노출되면 견딜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런 건 빨리 말 해줬어야죠!”
화련은 말을 내뱉기 무섭게, 내단에 고개를 쳐 박을 기세로 바쁘게 숟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류 현은 세 여자가 머리를 맞대고, 내단을 퍼먹는 모습을 멀거니 지켜보다가 픽 웃고는 뜯어먹던 고기 덩어리를 마저 뜯어먹기 시작했다. 참고로 응룡 고기 맛은 폐기름을 그대로 들이키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