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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화 〉탐식마(貪食魔) (73/429)



〈 73화 〉탐식마(貪食魔)

유니크 급 아티펙트.

정식 명칭은 아니다. 협회에서 인증해주는 아티펙트 등급은 2등급까지고, 유니크  아티펙트가 등장했을 때는 협회는 거의 괴멸상태였으니까.

순서를 생각해보면 1등급 아티펙트라고 명명해야겠지만, 유니크 급이라고 명명된 아티펙트들은 이전에 발견 되었던 아티펙트들과 비교를 거부하는 스펙을 가지고 있었다. 협회가 온전했더라도 등급제가 아니라 그걸 넘어선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3차 ‘대소환’이 터지기 전, 그러니까 2038년에서 2041년 사이에 강원도 정선의 퍼플 던전에서 인류 최초로 유니크 급 아티펙트인 청뢰가 발견되었다. 정확한 일자는 알 수 없다. ‘예거즈’에서 숨겼으니까. ‘예거즈’에서는 청뢰의 위력을 확인하고 사실을 함구하다가, 네임드  레이드에서 사용하면서 그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

따로 광고를 할 필요도 없었다.


이름 모를 누군가가 올린 동영상만으로도 충분했다. 본 드래곤을 조준한 청뢰가 빗나가서 산머리부터 산허리까지 갈아버리는 장면은 아티펙트에 대한 세간의 상식을 뒤엎는 것이었다.


기껏해야, 부자들의 장난감 혹은 화약병기가 안 듣는 던전 내에서나 쓰이는 도구라고 생각되던 아티펙트가, 현대 병기에 근접한 위력을 내었으니까. 그것도 괴수를 타격할  있다는 특성은 그대로 지닌 채 말이다.

물론 인류 문명을 몇 번이고 멸망시킬 만큼 비축되어 있는 현대병기가 위력 면에서는 더할 것이다. 하지만 핵미사일을 들이박아도 잡을 수 있을지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게 네임드 괴수였고, 그 네임드 괴수에 대한 대책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상황에서 유니크  아티펙트의 등장은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산군’의 산지기 팀, ‘예거즈’의 사냥개  같이 유니크 급 아티펙트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길드를 대표하는 정예 팀과 맞먹는 힘의 상징이!


 뒤로 유니크  아티펙트를 가진 길드나 국가에서 경쟁이라도 하듯이 보유한 유니크 급 아티펙트의 존재를 드러내었다. 3차 ‘대소환’이 아니었다면 위험성 때문이라도 공개되지 않았을 아티펙트들이 줄줄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유성우, 엑스칼리버, 개미지옥 등. 3차 이후 세상에 존재를 알린 유니크 급 아티펙트들은 하나 같이 이름값을 하는 일화들을 남겼다. 그 중에서  현과 인연을 맺은 아티펙트는 단 하나도 없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한 건 3차 ‘대소환’ 이후의 일이고, 유니크 급 아티펙트들은 그가 수면위로 부상하기 직전 혹은  때 즈음에 발견되었다. 문제는 소유가 아닌 그 수혜조차 받아 보지 못했다는 것.


 사실은  당시 고위층들이 얼마나 근시안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지 보여주는 대표 사례였다. 이전 생에서 류 현은 과반이 넘는 네임드 괴수들을 도살했었다. 그것도 대부분 혼자서.

쉬웠던 싸움은 단  번도 없었고, 그는 평균적으로 한  이상의 후퇴를 한 뒤에야 네임드 괴수들 잡을 수 있었다. 네임드 몹과의 1:1에서 밀려서, 또 어떤 때는 네임드 괴수와 치고받는 도중에 난입한 괴수 군단의 숫자에 밀려서.

그리고 그가   후퇴할 때마다 괴수 군단의 진격로에 놓인 도시들이 파괴되었다.

단  곳이라도! 유니크 급 아티펙트를 보유한 단체 중  한곳이라도 그를 제대로 지원해줬다면 그럴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다못해 아티펙트를 사용할 플레이어 하나와  호위  셋만 붙여서 보내줬어도, 잔챙이들에게 밀려서 1:1 시도도 못해보고 물러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아는  현 또한 계속해서 요청을 했었다.   만이라도 좋으니 유니크 급 아티펙트로 괴수들을 정리 해달라고. 가까이는 ‘예거즈’부터 멀리 떨어진 중동의 ‘칼리프’ 길드까지.


그러나 그의 요청을 받아들인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류 현은  대목에서 다시금 환멸감을 느꼈다. 인간에 대한 환멸감을!

그는 자신의 행동이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누나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이 살기 위해서 인류 문명이 필요했고, 그에게는 앞에 나가서 싸울 능력이 있었다. 그렇기에 싸웠다.


그런 그의 싸움을 영웅적 희생이니 뭐니 포장질을 한다면, 가장 먼저 화를 낼 건 그일 것이다. 류 현은 살기 위해서 싸웠고, 그래서 그들이 거절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전선이 붕괴하면 곤란한 건 그들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유니크 아티펙트니 뭐니 해도 인류 문명 자체가 붕괴해버리면 아무 짝에 쓸모없는 물건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침묵했다. 마치 그의 요청을 듣지 못한 것처럼 무시했다.


‘이제 아쉬운 소리 할 필요도 없지만.’

그랬던 그가 이제 청뢰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다. 류 현은 여전히 계속해서 번개가 내리꽂히는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복잡한 속내를 정리했다.


“와, 퍼플 던전  되니까 던전 넓이가 장난 아닌...희란아 저기 저거.”
“네?”
“저기 저 산. 꼭대기  봐봐. 내가 잘 못 보는 거 아니지? 저기 벼락치고 있는 거 맞지?”

 여자가 찰싹 달라붙어서 번개 치는 산봉우리를 보며 수선을 떨어대었다.  현은 말을 자를 타이밍을 재다가 승하가 불쑥 머리를 디밀고 가까이 붙어오자 한 발짝 물러났다.


“이상한 장난  치지 맙시다. 여기 던전 안입니다.”
“팍팍하게 굴긴. 그나저나 저렇게 번개 치는 필드는 나도 처음 보는데 보스 특수 능력인건가? 뭐 아는 거 있어?”
“승하 씨도 모르는 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퍼플 던전은 처음인데요.”
“평소에 나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 태도로 일관 하길래 미래에서 온 줄 알았지.”

류 현은 뜨끔 하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애써 표정 관리를 했다. 그녀가 내뱉는 뜬금없는 소리는 묘하게 날카로울 때가 있었다. 승하는 장난기를 지우고 번개 치는 산봉우리를 눈을 가늘게 뜨고 유심히 살폈다.

“흐음...아무리 봐도 저거 좋은 징조는 아닌데. 최소 번개 마법 쓰는 리치겠네. 리치면 최소...5성?”
“저렇게 항시 발동으로 말입니까?”
“자의로 쓰는 것보다는 저주일 가능성이 크지. 저주 받은 리치. 이상할 건 없는 조합이잖아?”

류 현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도 전혀  생각을 했다.


‘차라리 리치였으면 후딱 잡고 나가면 될 텐데. 잔챙이라고 해봤자, 스물 이상 안 나올 테고. 스켈레톤 같은 건 리치만 잡으면 그만이니...그냥 파도잡이도 데리고 올  그랬나.’


 던전 내에 뭐가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 해외 원정까지  정도로 퍼플 던전을 자주 돈 검성조차 본 적 없는 끊임없이 내려치는 번개의 원인을 알고 있다. 청뢰 때문이다.

‘유니크 아티펙트 얻는  한 두 달이면 싼 거지. 싼 거라고 생각하자...’


 때였다. 구릉지 전체에 무성하던 수풀이, 그들이 서있던 공터 근처 수풀이 바람과 역방향으로 부스럭 하고 움직였다. 그 움직임을 놓칠 류 현과 승하가 아니었다. 따귀라도 맞은 것처럼 두 사람의 고개가 그 쪽 방향으로 홱 돌아갔다.


‘벌써 우릴 감지했나? 생긴 건 전혀 아닌데 개  구만, 개 코.’


류 현은 화련과 희란을 향해서 고개를 돌리고 입을 열려고 했다.

“...제가 잡아오죠.”


그러기도 전에, 화련의 몸이 떠오르더니 소리가 난 방향으로 쏘아져나갔다. 그 뒤에 터져 나온 원숭이 같은 짐승의 울음소리. 울음소리는 곧 숨 막히는 신음으로 바꾸더니 이내 끊어졌다. 소리가 끊어지자마자, 희란이 사전에 입이라도 맞춰놓은 것처럼 화련이 뛰어든 수풀 쪽으로 달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이 시체를 끌고 수풀을 헤치고 나왔다. 류 현이 뭐라고 평하기도 전에 승하가 휘파람을 짧게 불며 말했다.


“4월 동안  가르친 거야? 군기 바짝 들었네.”

류 현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

“라가네.”
“예, 라가네요.”
“......”

화련은 곁눈질로 류 현과 승하를 번갈아보았다. 둘은 남매처럼 굳은 얼굴로 라가의 시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화련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고 덮쳐서 괴수를 잡아온 뒤로 줄곧  표정이었다. 화련은 헛기침을 한 번 했다가, 그러고도 두 사람이 다른 말을 뱉을 기미가 안 보이자 기어코 한소리 하고 말았다.

“그건 제가 봐도  수 있거든요? 라가네. 이러면 뭐 어떡하라고요?”
“어쩌고 자시고도 없어. 일이 엄청 번거로워졌고, 거기에 맞춰서 움직이는 수밖에 없으니까.”
“귀찮아져요?”


승하의 무성의한 대꾸에 희란이 고개를 갸웃했다. 승하는 손을 휘휘 내저었고, 류 현이 희란의 물음에 대신 대답했다.


“이 던전을 차지하고 있는  라가 부락일 겁니다.”
“...부락이요?”
“어, 그럼 쉬운  아니에요? 주술사는 마스터한테 밥이고, 챔피언이 몇 마리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주술사랑 떼놓고 잡으면 되잖아요? 잠깐만, 근데 얘는 일반 라가인데?”
“부락이니 약한 놈 강한 놈  모여 있지요. 아예 비전투원도 있을 겁니다. 아마 그 쪽이 숫자는 훨씬 많겠죠.”
“그럼 좋은 거 아니에요?”

라가는 상대하기 힘든 괴수라기보다도 귀찮은 괴수다. 동급의 다른 괴수들보다 육체 스펙이 부족해서, 조우하는 순간 잡기는 편하지만 라가가 침입자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뒤로 빼는 순간 귀찮아진다. 창은 물론이고 활이나 함정도 팔 줄 아는 놈이 작정하고 숨어서 깔짝거리기 시작하면, 위험하진 않더라도 짜증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하다.


물론 지능이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어서 도발에 잘 걸리고, 흔적을  지우지 못해서 라가에 익숙해진 플레이어에게는 준비운동감 정도다. 주술사나 챔피언이라는 호칭이 붙으면 전혀 달라지겠지만, 그마저도 둘이 같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스펙에 비해서 잡기 쉬운 편인 게 현실이다.

화련의 의문은 매우 당연한 것이다. 그녀들은 퍼플 던전에 대한 정보를 접한 적이 없으니까.


류 현도 일부러 말해주지 않은 건 아니었고, 어쩌다 보니 4월의 일정이 꼬여서 교육과 휴식 중에 갈등하다가 휴식 쪽을 택한 것이었다. 휴식은 밖에 아니면 취할  없지만, 던전에 대한 정보는 안에 들어가서   그 때 말해줘도 되니까.


“여기가 퍼플 던전 안이 아니라면 그렇겠죠. 퍼플 던전 안에서 라가가 나타나면...”
“라가 로드가 있지. 부락 규모가 작든 크든. 그리고 일단 지능이  딸리든 어쩌든 지휘관이 있으면, 귀찮아져 엄청.”

승하가 말을 이어받자, 그녀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승하는  숨을 푹 내쉬며 말을 끝맺었다.

“거기다가 얘네 새끼 엄청  쳐. 거의 닭이 알 까는 수준으로.”
“...네?”
“그러니까, 우리가 잡아야하는 괴수 숫자가 지금도 불어나고 있다고.”

승하의 말을 이해한 화련과 희란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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