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탐식마(貪食魔)
플레이어들은 말한다. 플레이어 중에서 안 미친놈은 없다고.
만약 플레이어 중에서 일 년 이상 제대로 활동한 자가 성인군자 행세를 하고 다닌다면, 그놈이 제일 위험한 미친놈이라고. 성인군자 행세가 그 자의 정신병 증세일 확률이 매우 높다고 말이다.
류 현 또한 동의하는 이야기였다. 정상적인 정신을 가지고서는 플레이어로 길게 살아남을 수 없다. 미치기 전에 죽거나, 아니면 미칠 것을 강요받거나. 비교적 멀쩡한 정신을 가진 플레이어가 맞이할 수 있는 미래는 그 두 가지 뿐이다. 그게 아니면 처음부터 하자가 있던 이가 플레이어가 되거나.
그 테두리 안에는 류 현 또한 포함되어 있다. 이전 생에서 류 현은,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더 격렬하게 그 문제와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능력이 강해질수록, ‘강림’에 가까워질수록, 그 안에 있는 ‘무언가’가 커져갔으니까.
거기에 그는 부양해야할 가족이 있었다. 자신이 다른 플레이어처럼 미쳐서 던전에서 무모한 짓을 벌이다가 변을 당하거나, 괜한 원한 관계를 만들면 위험해지는 가족이.
그 가족을 위해서라도, 그 안의 ‘무언가’에 먹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류 현은 인간성을 지켜야만 했다. 강해질수록 그 인간성과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는 그에게는 기준이 필요했다.
그런 선택지 앞에 놓인 류 현의 선택은 스위치를 만드는 것이었다. 적의 앞에서는 켰다가, 평상시에는 꺼두는 스위치.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것을 잊어먹게 하는 것.
딸깍하고 들어가는 순간 상대를, 적을 망설임 없이 부술 수 있는 스위치. 들어가는 순간, 인간과 괴수를 의도적으로 구분하지 않는 스위치. 적을 살아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샌드백 취급하는 심리적 방어기제.
일단 스위치가 들어가면 그는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는다. 십 수 년 간 교육받아온 도덕, 개인적인 혐오감, 다른 것을 먹어서 자신을 유지하는 생물로서의 거부감. 모든 제한이 풀린다.
스위치 들어간 그의 모습을 보고 살아남은 이는 거의 없지만, 그 극소수의 생존자들은 하나같이 류 현이 제대로 미쳐버린 괴물이라고 평했다. 스위치가 들어간 그에게 적은 죽여야 하는, 같은 생명체가 아니라 부숴야하는 대상이다.
그렇게 움직이는 류 현을 막을 수 있었던 존재는 단 하나도 없었다. 악룡 아지다하카 마저, 그와 서로 죽는 공멸이라는 결말을 맞이했으니까.
그러나 스위치가 꺼지는 순간, 그는 누나를 과하게 챙기는 조금 과묵한 남동생으로 돌아간다. 그 갭은 직접 보지 않은 이라면 알 수가 없다.
그건 어찌 보면 지속적으로 폭력과 유혈에 노출되어서 미쳐버린 일반 플레이어들보다, 더 미친 짓거리였다. 의도적으로 정신병을 만드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정신과 의사가 본다면 그를 환자보다는 관찰대상으로 볼 법한 상황.
하지만 이 스위치는 그에게 잘 맞았고, 비전투시 그는 그냥 좀 무뚝뚝한 남자처럼 보일 정도로, ‘무언가’와 함께 커지던 폭력성을 잘 억제할 수 있었다. 그 반동으로 안 그래도 과묵했던 류 현은, 세아의 앞이 아니면 하루에 네 마디이상 말을 하는 게 드물 정도로 말이 없어졌지만 감내할 만한 부작용이었다. 적어도 그가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여자, 베니 에벌린이 기절한 걸 확인 한 후. 류 현은 ‘스위치’를 내렸다.
“후우.”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고 있자, 그의 옆으로 인기척이 하나 다가왔다. 인기척의 주인이 바라는 것 같았기에 류 현은 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웨인 크로이츠가 입을 반쯤 벌린 채로 서있었다. 웨인은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주변을 한참 돌아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괜찮으십니까?”
묻는 말과 다르게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진 채였다.
‘세상에...’
핏자국만 없었지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비위가 약한 사람이라면 일단 토하고 봤을 법한 광경이었으니까.
여자의 두 다리는 비틀려 뜯겨져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었다. 잡아 뜯는 과정에서 튀어나간 살점들이 지저분하게 골목 곳곳에 흩뿌려져 있었고, 절단면은 어떤 명의가 와도 고개를 내저을 정도로 뒤틀리고, 지저분하게 뜯겨져서 접합가망은 요만큼도 없어 보였다.
사투를 벌인 현장이라기보다도, 폭발 사고 현장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광경.
오히려 마땅히 있어야할 핏자국이 없어서 더욱 그로테스 해 보였다.
다년간의 플레이어 생활로 못 볼꼴을 끝을 봤다고 할 수 있는 웨인이, 순수하게 이 광경에 질린 건 아니었다. 그는 이러한 무지막지한 폭력을 가한 남자에게 놀라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는 대 플레이어 전은커녕 군복무 경험도 없는데...?’
그가 알기로 류 현이라는 남자는 플레이어 전 경험은커녕, 격투기조차 배워본 적이 없다. 기술의 보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플레이어는 각성 패턴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자신에 능력에 맞는 기본적인 싸움기술은 자연히 깨우치니까.
문제는 사람을 때려본 경험. 죽일 각오는커녕, 맨 정신으로 작정하고 사람을 때려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그의 상대였던 베니 에벌린은 그런 경험을 운운하는 게 우스울 정도로 수 없이 많은 인명을 도살한 인간이다.
같은 인간을 공격하는 거부감? 그런 게 있었더라도 오래전에 고사했을 터.
그리고 이 차이는 굉장히 크다. 보통 인간보다 월등한 내구도와 반사 신경을 가진 플레이어 간의 싸움이라면, 이 차이는 절대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멈칫하면 뼈까지 닿을 공격이 살갗만 베고 말 것이고, 그건 곧 상대의 반격을 의미한다. 대부분 방어력보다 공격력이 좋은 플레이어 간의 싸움에서 그런 틈은, 최소 중상으로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이다.
거기다가 괴수와 인간을 상대하는 방법도 천지 차이다. 괴수를 잡는 게 정과 망치로 바위를 깎아내는 거라면, 플레이어를 상대하는 건 작은 바늘이라도 제대로 찔러 넣으면 된다. 플레이어에게는 괴수 같은 초월적인 재생능력도 쉴드도 없으니까. 육체강도는 논할 필요도 없다.
두 쪽 중 어느 쪽이 어렵냐는 부분은 제쳐놓더라도, 요구되는 능력이 다른 건 당연지사.
물론 스펙차가 압도적이라면 그런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는 있다. 웨인이 류 현의 그 말도 안 되는 기습작전을 반 억지로 납득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가 보기에 류 현은 지금 당장 퍼플 던전에 진입해도 팔다리 하나 떼놓고 올지언정 죽을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스펙으로 차이를 채웠니 어쩌니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순간적인 격분만으로는 만들 수 없는 광경이다. 류 현이 격분에 휩싸여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면, 베니 에벌린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테니까.
‘작정하고 부쉈군.’
차가운 머리로 생각한 끝에 만들어낸 파괴의 현장. 웨인이 병원에서 이 골목까지 내려오는 데 걸린 시간은 2분 남짓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여기까지 해놨다는 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그 베니 에벌린의 육체를 저 정도까지 부숴놓는 파괴력.
웨인은 아직도 간헐적으로 핏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베니의 허벅다리를 봤다. 몇 차례 끊어서 분출된 피가 바닥에 닿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화하는 모습은 아무리 좋게 이야기하려고 해도 소름끼쳤다.
온갖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베니 에벌린을 포함한 ‘광대들’과 류 현이 이 일이 있기 전부터 원한관계가 아니었을까 하는 자기가 생각해도 황당한 생각마저 들 정도. 류 현이 이상할 정도로 병원에 찾아오는 놈들을 직접 상대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기도 했었기 때문에 든 생각이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건가?’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은 했지만, 첫 실전에 이렇게까지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류 현이 평소에 보여주는, 플레이어답지 않은 특유의 무덤덤함 때문에 충격은 더욱 컸다. 누가 봐도 보통 악의를 가지고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머릿속 사정에도 불구하고 웨인이 내뱉을 수 있는 말은,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류 현의 안부를 묻는 것뿐이었다.
***
“척 봐도 멀쩡하잖습니까. 못 믿으시겠으면 들춰 보여드립니까? 아니, 그렇게 붙잡고 늘어지면 어떻게 보여드립니까?”
웨인은 헛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억누르며 세 명이 실랑이를 벌이는 걸 지켜봤다. 류 현은 자신의 팀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벌써 오 분째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고 했던 말을 하고, 또 하는 중이었다. 불과 두 시간 전에 여자 다리를 뜯어낸 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
발단은 류 현의 말실수 때문이었다. 그의 팀원들은 류 현이 직접 ‘광대들’을 상대하는 줄 모르고 있었다. 검성에게 그들을 부탁하고, 본인은 웨인과 같이 행동할 거라고 했으니 그녀들은 자연히 웨인이 직접 처리하고, 류 현은 옆에서 구경이나 하겠지 하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건 류 현이 의도한 착각이었다. 밥이 다 돼서 이제 퍼 담기만 하면 되는데, 류 현이 말실수 한 번으로 자신이 베니 에벌린을 잡았다는 걸 말해버린 것이다.
13일부터 지난 열흘 간 ‘광대들’에 대한 정보를 웨인에게 캐물었던 그녀들로서는 기절초풍할만한 일이었다. 사람을 죽여보기는커녕 능력으로 제대로 해를 가해본 적도 없는 그녀들로선, ‘광대들’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같이 히어로 무비 스토리만큼 현실성이 없었다. 그런 만큼 두려움도 컸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들의 마스터가 직접 나서서 미친 살인광을 잡았다고 하니, 놀라움 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마스터, 무슨 정의 사회 구현에 관심 있어요?”
“그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십니까.”
“굳이 자기가 머리 안 디밀어도 되는 곳까지 디밀고 다니니까 하는 소리죠!”
“그럼 그걸 냅둡니까? 우리 잡겠다고 여기까지 기어들어온 놈들인데? 피해봐야 소용 없...”
“이거 봐, 처음부터 미끼 작전이니 어쩌니 하던 것도 이러려고 시작한 거였어!”
정곡을 찔린 류 현은 쩔쩔 매며 변명을 찾다가, 결국 묵비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화련의 분노가 더욱 거세어졌다. 웨인은 피식 웃어버렸다. 그리고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인기척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표정을 보니까, 거나하게 한 판 벌인 모양이지?”
검성이었다. 그녀는 나른한 표정으로 웨인에게로 다가왔다. 그녀에게서 비릿한 피 냄새가 났다.
“거나하게 보다는 압도적이라고 해야겠지요.”
웨인은 자신의 휴대폰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검성은 휴대폰 액정에 떠오른 사진을 뚫어지게 한 번 보더니 웨인에게 돌려주었다. 그녀는 픽 웃으며 말했다.
“화나긴 어지간히 화난 모양이네. 하기야, 나라도 뚜껑 열렸을 거야. 근데, 그렇게 화났으면 그냥 치워버리지 굳이 또 살려놨네. 어차피 들을 수 있는 답도 정해져 있을 텐데. 얘기 안 해줬어?”
사진에 찍힌 베니 에벌린을, 그 짧은 시간 만에 그 지경으로 만든 류 현의 잔인성이나, 검성의 도덕관에 대해서 강변할 생각은 없었기에, 웨인은 그녀에게 묻고 싶었던 걸 물었다.
“혹시 류 현 님과 개인대련 해주신 적 있습니까? 대인전 훈련으로요.”
“응? 없는데?”
‘생각보다 훨씬 괴물일지도 모르겠군.’
자신의 짐작이 확신이 되어감을 느끼는 웨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