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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화 〉탐식마(貪食魔) (68/429)



〈 68화 〉탐식마(貪食魔)

자정이 넘긴 시각. 좀 쌀쌀한 정도가 아니라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거리를 휘감고 있었다. 원래도 인적이 뜸해질 시간이었지만, 최근 들어 급격이 추워진 날씨 때문에 간간히 인적마저 끊긴 골목에 여자는 서있었다.

여자의 차림새는 특이했다. 날씨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건 둘째 치고, 코스프레 행사장에서나 볼법한 차림이었다. 이런 밤이 아니라 낮에 누군가 봤다면 단 번에 ‘아이언맨!’ 이라고 외쳤을 법한 모습이었다. 두 번 훑어보고 나서는 디자인이 전혀 다르다는 걸 깨닫고는 실망하겠지만.


관절부위나 등 같이 무방비로 노출되는 부분에는 여지없이 검고 두터운, 강철 갑옷 같은 장갑이 자리하고 있었다. 맨살이 노출된 부분은 단  곳도 없었다. 지금 헬멧을 벗고 있어서 그렇지, 헬멧마저 뒤집어쓴다면 여자는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되리라.


물론 여자는 이 한 밤중에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 코스프레를 하고 나온 건 아니었다.

그 증거로 여자가 갖추고 있는 무장은, 코스프레 소리가 쏙 들어갈 정도로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한국에서는 보기도 힘든 m4카빈, 등허리에 매달고 있는 1m가량 되는 직도, 다리부근 장갑에 숨겨진 단도 3개, 단도와 연결된 아라미드 소재의 와이어 2미터, 추가 탄창 4개, 수류탄 4개, 위의 무장에 코팅되어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예비  등.


흉흉함을 넘어서 난잡함이 느껴질 정도의 무장이었다. 그런 차림새의 여자는 자신의 가슴부근의 장갑을 열더니 그곳에서 무전기를 꺼내들었다. 여자는 지체 없이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몰이 팀, 여기는 사냥꾼. 몰이 팀 나와라.”

대답은 없었다. 무전기 특유의 노이즈만이 귓가에 울릴 뿐. 여자는 미간을 찌푸리고 재차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킬리언, 듣고 있다면 응답하는 게 좋을 거다. 니가 엄한 구멍 쑤시고 있다면 더더욱.”

이번에도 대꾸는 없었다. 여자는 이마에 돋아 오른 혈관을 문지르며  숨을 내뱉었다. 그걸로 무전 시도는 끝이었다. 여자는 미련 없이 무전기를 갈무리했다. 하지만 터져 나오는 한 숨을 막진 못했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아무리 군기를 강조해도, 그녀의 부하들은 ‘광대들’이라는 이름을 따라가기라도 하는 건지, 전투 이외에는 괴상한 짓거리를 밥먹듯이 저질렀다. 임무 수행 도중 연락 두절은 그 축에 끼지도 못할 정도로 흔한 일이었고.


“이 자식들을 다루려면 즉결 처분권이 아니라 성욕 저하제가 필요해.”


그 이상의 푸념은 없었다. 여자는 고개를 돌려, 건물 틈새로 빛을 발하고 있는 초록색 십자가를 바라보았다. 누가 봐도 기분 좋아 보이는 눈빛은 아니었다.


그녀 또한 부하들처럼 이번 임무에 불만이 많았으니까. 대인전 경험도 없는, 팀 꾸린지 이제 반년  애송이 둘 납치에, 그 애송이들의 대장에 대한 인질을 잡아놓고 대기하라니. 시시하다 못해 얕보여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다.

검성을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괴수 좀 썰어본 애송이들 셋 잡겠다고 팀 전체를 움직이다니. 솔직히 말해서 처음 내려온 지령과 소집령을 보고 은근히 기대했었다. 드디어 검성을 잡는구나하고.


하지만 소집 후에 다시 내려온 세부 지령은 그녀와 그녀의 부하들의 기대를 완전히 배반하는 것이었다.

용잡이 팀의 팀원 둘과  대장의 가족을 완전 제압 후, 대기할 것. 이 뒤에 여유가 된다면 검성의 최측근인 백혜라에 대한 작업을 할 수도 있다는 암시 비슷한 것도 있긴 했지만, 여지껏 패턴을 본다면 뻔했다. 화력이 모자라니 검성에 대한 작업은 하지 않는다. 복귀하라.


“그렇다고 해서 퍼플 던전에 기어들어간  끄집어 낼 수도 없고 말이지...”

거기다가 주인에게 변명거리라도 만들어주려는 건지 검성은 이틀 전에 퍼플 던전에 진입했다.


그나마 기대를 걸어 볼만했던 웨펀 마스터는 그들이 움직인다는 소식을 듣고 움직인 게 아닌지, 한국에 입국한 이후 행방이 묘연했다. 다른 낌새라도 있다면 그가 매복해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타겟들의 행동은 전혀 변한  없었다.


설사 매복해 있다고 해도  상관은 없다. 상대가 웨펀 마스터라고 해도 몸 정도는 빼낼 자신이 있다. 그 뒤는 걱정할 필요도 없다.


웨펀 마스터가 대단한  사실이지만, 자신을 포함한  전체를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보진 않았으니까. 유럽이라면 다시 한 번 주변 조사를 하겠지만, 이곳은 그의 입김이 닿지 않는 극동의 아시아다.

결국 조사는 도착한 당일에 대충 끝나버리고, 하릴없이 시간만 일주일 넘게 죽이다가 작전 수행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작전명은 ‘선물’.


자기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협회에게 선물을 줄 것이다. 아주  포장된 목을 말이다. 굳이 전할 메시지를 생각하지 않아도 될 테지. 자신들이 포섭한 실력자의 목이 떨어지면 의도를 읽었든, 읽지 못했든 협회는 몸을 사릴 테니까.


‘쫄지 말고 차라리 발악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실없는 생각을 하던 여자는 시간이 다 되었음을 확인하고, 헬멧을 뒤집어썼다.

그녀의 임무는 시시한 임무 속에서도 가장 시시한 것이었다.


만에 하나 매복이 있다면, 이런 곳일 테니 자신이 자청해서 이쪽으로 오긴 했지만. 아무리 낌새를 살펴도 매복의 기미라고는 없다. 자신이 기척을 눈치 채기 힘든 실력자 둘은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는 상황. 그냥 병원 안으로 들어가서 환자 하나를 끌고 나오면 된다.

“이름이...류 세...하? 흔한 성이 아니라고 했으니 그냥 성만 보고 찾으면 되겠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여자는 뛰어올랐다. 양옆에 서있는 건물 벽을 교차로 밟으며, 옥상까지 오른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옥상에서 옥상으로 펄쩍펄쩍 뛰며 이동했다. 순식간에 초록색 십자가가 가까워졌다.


여자는 병원 옥상에 사뿐히 내려섰다. 이미 밤 산책 같은 걸 고려하기 힘든 겨울밤 날씨 덕에, 옥상 공원에는 인기척이라고는 없었다.

‘생각보다 훨씬  시시하겠군.’


기껏 장비를 손질하고, 차고 왔건만 보람을 찾기도 힘들어보였다. 그녀는 헬멧도 그냥 벗어버릴까 하다가 관두고,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꼭대기 층이 10층이고, 타겟은 6층에 입원 중이다.

뚜벅뚜벅. 여자는 발소리를 숨길 생각도 하지 않고, 평범하게 계단을 내려갔다. 당직인 간호사나, 순찰 도는 경비 인력이 발소리를 듣고 쫓아 올라 올 수도 있지만 알바 아니었다.

거치적거리면 그냥 죽이면 그만이다. 플레이어도 아닌 일반인이  트럭 있다고 해도 자신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딱히 은밀함을 요하는 임무도 아니니 죽이든, 간호사가 비명을 지르든 상관없다. 애초에 그런 팀도 아니었다.

‘차라리 몇 명  나와 줬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여자는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고, 아무런 제재도 없이 6층 복도에 도착할  있었다.


“류, 류, 류. 아, 이건가. 류...세...아?”


호실 명패에서 류세아 라는 이름을 발견한 여자는, 자신의 품을 뒤져서 휴대폰을 꺼내었다. 다시 확인 해봐도 타겟의 이름이 맞았다. 류세아.  확인할 것도 없었다. 일인 실이니 안에 있는 여자를 잡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진짜 아무 것도 없네.”

정확히는 병실 안에는 타겟으로 생각되는 사람 말고는 아무것도 느껴지질 않았다. 막상 이렇게 되니 허탈감이 느껴질 정도.

“쯧, 이쪽이 이러면 그 쪽도 방비라곤 없겠네. 이 자식들 한창 해 제끼는 중이라서 대답을 안 한 거구만. 설마 하다가 죽이진 않겠지?”

여자는 투덜거리며 병실 문을 열어젖혔다. 밤이 내려앉은 일 인실은 휑뎅그렁해보였다. 침대 위에 누군가가 누워있는 것까지 확인한 여자는 병실을 가로질러 침대 옆에 섰다.

여자는 침대 위로 손을 뻗으면서도 계속해서 투덜거렸다.


“다음부터는 협회에 예고장이라도 써서 보내야 하는 건가. 명색의 협회라면서 무슨 정보망이 그렇게 후진건지...”
“뭐가 후지다는 건데?”


그 때, 아무 것도 없다고 여겼던 바로 옆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가  방향으로 주먹을 휘두르며 급하게 고개를 돌렸을 때는,

“안녕. 이건 선물.”

남자, 류 현의 로우킥이 그녀의 정강이 측면을 후려치고 난 뒤였다. 그녀는 자신이  당했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공중을 한 바퀴 빙글 돌게 되었다. 류 현은 여자가 떨어지는  그냥 보고 있진 않았다.


여자의 헬멧으로 덮인 머리를 붙잡은 류 현은 그대로 창문 쪽 벽으로 몸을 날려,


쿠웅! 사정없이 벽에  박아버렸다. 어찌나 단단한지 헬멧에는 흠집은 하나 나지 않고, 되레 벽에 금이 갈 정도였지만, 류 현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에게는 붙잡은 상대의 몸을 젤리 취급할 수 있는 기술이 있으니까.

에너지 드레인! 10일 전, 능력 개발이 2단계에 진입하면서 보다 완전해진  능력을, 류 현은 망설임 없이 헬멧을 잡은 왼손으로 그것을 펼쳤다. 헬멧에서 마나가, 생기가 빨려들어왔다.


 현은 다시 벽에 여자의 머리를 쳐 박았다.


파각! 대물저격총 정도는 되어야, 관통을 장담할 수 있는 헬멧이 맥없이 깨져나갔다. 여자는 혼란 속에서도 저항하려고 들었지만, 재차  현이 에너지 드레인을 펼치자 멈칫하더니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현은 그런 여자의 머리를 움켜쥔 채 그대로 창문을 조준하고는,

와장창! 있는 힘껏 집어던졌다. 류 현 또한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여자는  현이 던진 대로 힘없이 날아다가다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니 정신이 들었는지 그 와중에 몸을 뒤집어서 착지했다.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며 자신의 뺨을 후려치는 듯한 어지러움 속에서, 여자는 가슴께에 달아놓은 수류탄 두 개의 핀을 뽑고는 냅다 집어던졌다.

그리곤 터지는 걸 확인하지도 않고, 비껴 매고 있었던 m4카빈의 방아쇠를 사정없이 당겼다. 이성적인 판단이 아닌 반복된 훈련으로 인한 반사였다.

류 현은 여자의 발악에 지극히 무덤덤하게 대응했다. 여자가 집어던진 수류탄을 캐치볼이라도 하듯이 하나씩 받아낸 그는,

빠지직! 그것을 그대로 뭉개버렸다. 수류탄은 변변한 폭음 한 번 내보지 못하고 고철덩어리가 되었다. 고철덩어리 두 개를 내팽개친 류 현은 그대로 앞으로 내달렸다.


그보다 빨리, 그에게 총탄이 도달했다. 총탄에 대한 류 현의 대응은 그냥 무시였다. 총탄은 아무런 장애도 없이 그의 몸을 두드렸다.


하지만 예견되었던 끔찍한 상황은 없었다. 옷은 찢겨나갔지만 유혈은 없었다. 떨어져나가는 살점도 없었다. 총알은 그저 콩알이 팽팽하게 당겨진 가죽을 때리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맥없이 떨어졌다.


여자가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류 현의 복부에 눈에 보일정도로 마력이 집중되어있다는 걸 알 수 있었겠지만 그녀의 의식은 아직도 반쯤 꽃밭을 헤매는 중이었다. 실제로 그녀의 오른쪽 눈꺼풀은 사정없이 떨리는 중이었고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실에 여자는 안 그래도 어지러운 정신이  사나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육체강도라면 시멘트벽에 쳐박히면 부서지는 건 오히려  쪽이다. 머리로 유리창 좀 깼다고, 이런 식으로 데미지가 남아있는  말이 안 되었다.


‘나를 던지기 전에 뭔가를...했어...뭐지...그게...?’

여자가 무언가 답을 얻기 전에 류 현이 도달했다. 그는 다시금 왼손으로 여자의 머리를 움켜쥐고는 그대로 달려 나갔다. 물론 에너지 드레인을 펼친 채였다.


쿠웅! 여자의 머리가 건물 외벽에 부딪히며 피가 터져 나왔다. 여자는 그 통증에 정신이 확 들었다. 코를 부딪치지 않았는데도, 흘러내리는 정도가 아니라 콸콸 쏟아지고 있는 코피가 입안으로 자꾸 흘러들어왔다.


“놔앗..놔았!”

‘아파? 아프다고? 내가?’


이럴 수는 없다. 벽에 쳐박히는 정도로 이렇게 아프다고? 자신은 이미 그냥 칼로 찔러도 피부만 좀 까지고 마는 경지에 올랐다.


마력을 얻은 플레이어들은 마력량이 늘어날수록, 자연스럽게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마력 때문에 몸이 자연히 단단해지지만, 그녀는 개 중에서도 독보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총은 물론이고, 플레이어들이 만들어내는 화염도, 혹한도 그녀의 몸을 침범하진 못한다.

‘광대들’의 2대째 대장을 맡은 것도 그 몸을 베이스로 꾸준히 단련했기 때문이었다. 부하들 전부가 덤벼도 그녀는 몸을 빼내고, 천천히 역으로 그들을 사냥할 수 있다. 검성의 검격 또한, 그 전설적인 검격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몸이 이런 원시적인 공격이 부서진다니? 그래선  되었다. 여자의 몸이 세차게 요동쳤다.


“놔아앗!”
“시끄럽고.”

쿵! 류 현은 다시 여자의 머리를 벽에  박았다. 이번에는 정면으로. 덕분에 여자의 앞 이빨들이 사정없이 깨져나갔다. 코뼈는 붙이는 게 아니라 전부 적출한 후에 인조 뼈를 삽입하는 게 나을 정도 박살이 났다.

그러든 말든 류 현은 에너지 드레인의 강도를 높였다. 여자의 눈이 풀리며 깨진 이빨 때문에  그래도 새던 발음이 못 들어줄 지경이 되었다. 저항은 거의 흐느적거리는 수준정도로 약화되었다.

“나아아...”
“뭐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류 현은 여자를 땅에 엎드리게 만든 후, 남는 오른손으로 여자의 오른쪽다리 오금을 붙잡았다. 그리고 오른손도 왼손과 마찬가지로 에너지 드레인을 펼쳤다. 그 에너지 드레인을 펼치고 있는 오른손으로 그는,


으직! 여자의 오금을 말 그대로 잡아 으깨버렸다. 사람의 몸이 아니라 두부를 움켜쥔 것처럼, 그의 손가락은 너무도 쉽게 여자의 살과 뼈를 으깨버렸다.


“꺼어어억...”

괴이한 신음소리가 들려왔지만 그가 알바는 아니었다. 류 현은 그대로 여자의 오른쪽 다리를 뜯어내고는,


찌이익! 왼쪽 다리에도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였다. 여자의 몸이 들썩거렸지만, 말 그대로 조금 들썩거렸을 뿐이었다. 이미 여자의 눈은 하얀 부분이 더 많이 보일 지경이었다.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게 기적인 상황.


류 현은 여자의 의식이 완전히 날아가기 전에 귓가에 속삭였다.


“비명은 아껴둬. 베니 에벌린. 앞으로 마음껏 지르게  테니까.”

여자, 베니 에벌린의 의식은  말과 함께 심연으로 침잠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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