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7화 〉탐식마(貪食魔) (67/429)



〈 67화 〉탐식마(貪食魔)

“미친놈들이군요.”

웨인은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번 삼켰다.

‘광대들’이 목적지가 한국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왔다. 류 현에게 팀원들을 모아달라고 요청하고, 급한 대로 자료를 준비해서 용잡이 팀의 사무실에 왔다.


사무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인원은 예상보다 두 명이 많았다.  현이 부른 검성과 백혜라가 동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료를 인원보다 많이 준비했고, 그녀들에게도 알릴 작정이었기에 웨인은 여기까지는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급하게 준비한 자료긴 하지만, 꼭 필요한 정보는 전부 기재되어있었고, 무엇보다 웨인 본인이 ‘광대들’에 대한 경험이 누구보다 많았다. 한  그놈들이 자신을 죽이겠다고 설치는 바람에 물조차  번  번 거르지 않고서는 입에 대지 못했던 적도 있을 정도였다.


그런 자신의 경험담을 적절하게 섞어서 웨인은 그들에게 설명했다. ‘광대들’이 얼마나 극악무도하고 위험한 자들인지. 정신병자의 짓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살인현장 사진이나, 직접 칼을 맞대봤을 때 느낀 그들의 실력을 중점적으로 설명했다.

그런 놈들이 당신들을 노리고 있다고 했을 때, 희란과 화련의 반응이  의외이긴 했다. 그녀들은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표출하고 있는 류 현의 옆얼굴만 빤히 쳐다봤다.


그들을 지원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자본가들에 대해서는 일부러 흘리듯 넘어갔다. 협회라고 해서 당장 어떻게 할  있는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그들도 깊게 캐묻진 않았다.


문제는 이야기를 거듭할수록, 노골적으로 불쾌한 기분을 흘리고 있는 류 현이 때문에 태연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가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결국 그는 참지 못하고 험한 소리까지 흘렸다.

웨인이 설명하던 ‘광대들’의 정보에 비하면 점잖은 소리라고 할  있겠지만,  현의 어딘가 초탈한 모습만 봐왔던 이들에게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현이 이렇게 드러내놓고 적의를 내보이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그것도 이야기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웨인이 말을 멈출 정도로 노골적으로 말이다.


웨인은 류 현의 눈치를 살피다가 말을 보태는 쪽으로 노선을 정했다.

“예, 누가 봐도 정상은 아니지요. 더욱이, 이 자들은 경찰 같은 공권력을 무서워하지도 않습니다. 할  있다면 유조차를 공수해서 타겟의 거주지에 갖다 박을 놈들이지요. 실제로 그렇게 한 적이 몇 번 있고요. 총은 기본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봐야  겁니다.”

총이라는 말에 희란과 화련의 어깨가 눈에 보이게 굳어졌다. 그녀들은 소형화기를 두려워할 수준을 이미 넘어섰지만, 총이라는 단어는 이 나라 국민에게는 낯설고, 낯설기 때문에 두려울 수밖에 없는 존재니까. 거기다가 아주 효과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웨인이 굳이 총을 들먹거린 것도  때문이었다. 그는 용잡이 팀과 검성을 어디 한적한 곳에 빼돌릴 생각으로 이곳에 왔으니까. 그의 팀이 아무리 괴물이라고 해도 괴수 한정으로 확인된 전력이니까. 피할 수도 있는데 굳이 위험에 몸을 넣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대인전에 있어서 더욱 괴물이 되는 검성이 조금 걸리지만, 지금은 그녀도 몸을 사려야하는 시기. ‘예거즈’에서 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시가지 총격전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진 않을 터. 실제로 이 자리에 있는 이  웨인 이외에, 유일하게 ‘광대들’과 부딪혀 본 그녀는 지금까지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키는 중이었다.

그리고 웨인이 보기에 ‘광대들’과 싸워서 이긴다고 한들 얻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들을 보낸 자본가들의 견제만 더욱 심해질 뿐이지. 협회가 예상하고 있는 공격이유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응해줘서는 안 된다.


‘협회를 겁주겠답시고, 무고한 사람을 죽이겠다니. 빌어먹을 새끼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갖춘 무장 그대로 쳐들어가서 무력시위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자신이 던전에 들어 가있는 동안 동료를 그런 식으로 잃어본 그였기에 분노는  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움직여서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상대는 협회도 정면으로 부딪히기를 꺼리는 금력의 제왕들이다. 분하지만  쪽이 원했던 제스처를 취해주는 수밖에 없다. 겨우겨우 찾아내고, 건져낸 인류의 에이스 카드들을 이런 식으로 잃을 수는 없으니까.

이미 적당한 장소를 수배해 두었다. 한 곳이 아니라 유럽에 세 곳, 중국에  곳, 미국에 다섯 곳씩. 떠나는 이유가 화나기는 하겠지만, 해외여행 간다는 기분으로 다녀올 수 있도록 조치해두었다.

“부딪혀봐야 좋을 게 없는 자들입니다. 장소를 마련해 놓았으니 여행가시는 기분으로 잠깐 다녀오시면 처리를...”
“잘 알겠습니다.”


류 현이 웨인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자 그에게로 시선에 쏠렸다. 그는 아까  보다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 사람들...아니 그 놈들이 얼마나 또라이고, 붙어봐야 좋을 게 없는 인간들인지 잘 알겠습니다. 잘 알겠는데...”

웨인은 눈빛으로 물었다. ‘그런데 왜?’ 웨인이 그렇게 묻는 이유는 간단했다. 류 현이 자신이 입에 담고 있는 말과 정반대되는 눈빛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은 웨인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덤덤하게 말했다.


“그게 우리가 도망쳐야 될 이유가 되진 않습니다.”
“아니, 류 현님...”


류 현은 손바닥을 내밀어 보이며 웨인의 말을 막았다. 그 동작에 담긴 단호함에 웨인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더러워서 피한다? 예, 적당한 이유가 될  있지요. 옛말에도 그런 말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말입니다.”


류 현은 좌중을  번 슥 돌아보았다. 화련과 희란은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보고 있었고, 백혜라는 바닥을 보고 있었다. 승하는 굳은 얼굴을 풀고 어느새 히죽히죽 웃으며 그를 보고 있었다.  현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씨익 마주 웃어주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저도 성격이 좋은 편은 못 되는지라, 저를,  동료들을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놈들을 못 본채 할 수가 없군요.”
“......”

웨인은 그의 말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가 감정적인 반응을 보일 때부터 불길함을 느끼긴 했지만, 이렇게 나올 줄이야. 검성의 표정으로 봐선 그녀 또한 그와 뜻을 같이할 작정으로 보였다.


웨인은 이를 악물고 다시금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설득은 계속 시도 하겠지만, 정면충돌을 대비한 대비책을 짜 둬야하는 상황이 되었으니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웨인을 내려다보는 류 현의 머릿속도 복잡하긴 마찬가지였다. 주로 짜증과 분노 같은 격정적인 감정들이 그의 머릿속을 헤집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이 새끼들을 쳐 내야 돼. 청뢰를 얻고 나면 정면에서 지랄하는 걸 포기할 테니, 이번 기회를 놓치면 잡기 전에는 마음 편히 던전도  가게 된다. 제 발로 최적의 시기에 찾아와줬어.’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젠장, 지들 파워 싸움에  자꾸 날 끼고 돌고 지랄이야.  아지다하카, 그 새끼만 잡으면 된다고.’

그렇다고 짜증과 울분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


츠으읍. 담뱃불이 바알갛게 타들어가며 연기를 내뿜었다. 피어오르는 연기를 겨울밤바람이 낚아채서 흩어놓았다. 담배를 물고 있던 군복차림의 남자는 몇 모금 빠는 듯하다가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내팽개치며 말했다.

“젠장, 무슨 놈의 ‘표적 검성’ 이야! 정작 검성년은 지금 퍼플 던전에서 괴수나 썰고 있을 텐데. 보나마나 용잡이 인지 뱀잡이 팀인지 하는 놈들 잡고 나면, 위에서 철수하라고 할 텐데. 누님, 진짜 이건 좀 아니지 않수?”

남자의 투덜거림에 휴대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여자는 힐끗 남자를 한 번보고는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되돌렸다. 여자는 건조한 어조로 말했다.


“불평은 브리핑  해.”
“에이, 그랬다간 우리 대장님한테 손가락 꺾이잖수. 대장도 그래, 자기도 검성이랑 붙어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면서 대체 왜 건의를  하는 거야?”
“시끄러, 5분 남았어. 준비해.”


여자는 그렇게 집중하던 휴대폰을 미련 없이 끄고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남자는 궁시렁거리면서도 여자의 말을 따라 무전기를 켰다.

“여기는 몰이 팀. 여기는 몰이 팀. 올가미 팀 나와라.”

무전기 너머로 대꾸는 없었다. 무전기 특유의 노이즈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남자는  번  반복하고는 쌍소리를 내뱉고는 다시 궁시렁거리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 먼저 진입해서   뭐시기 쬐끄만 년 맛보고 있는 거 아니야? 에이 시팔 그 새끼들은 너무 험하게 가지고 놀아서  그런데.”
“킬리언, 다시 방에 시체 끌고 오면 불 질러 버릴 거야.”
“에이, 누님 너무 하신다. 귀여운 동생의 하나 뿐인 취미 생활인데. 그 년 얼굴 보니까. 방부처리 해서 방안에 놓으면 장식으로 딱이겠던데.”
“불지를 거야.”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얼굴에는 왼쪽 귀부터 오른쪽 턱까지 이어지는 커다란 흉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흉터를 제하고도 남자는 아무리 좋게 말해줘도 귀엽다는 인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여자는 그런 사실에는 관심 없다는 듯이 남자를 재촉했다.


“다시 해봐.”
“딱 봐도 이 새끼들 발정 나서 먼저 진입한 거 같은데. 아아, 올가미 팀. 올가미 팀, 여기는 몰이 팀이다.”


이번에도 역시 대꾸는 없었다. 대신 더 강해진 노이즈가 남자의 신경을 긁었다.


“이런 시팔. 누님, 암만 생각해 봐도 이 새끼들 먼저 진입해서 한 판 뜨고 있거나, 아니면 길가는 년 하나 잡아서 하는 중이라니까? 이 새끼들 이러는 거 한 두 번 있는 일도 아니고. 그냥 우리끼리 갑시다.”

남자는 그들의 시선 끝에 자리한 단독 주택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임에도, 아직 주인이 잠들지 않은 것인지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대인전 경험 없는 여자 둘 밖에 없는데. 한쪽이 마법사면 이미 얘기 끝난 거지.”

여자는 남자의 말에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의 말대로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닌 것이다. 그녀가 속한 팀은 그런 팀이었으니까.


무리를 이루기 힘든 쓰레기들을 억지로 모아서 팀이라는 울타리 안에 가둬놓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임무 수행 도중에 오입질 정도는 놀랄 일도 아니다. 여자는 그 짓거리에 대해서 평가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중요한 건 임무를 제 시간에 수행해서 대장의 분노를 사지 않는 것.


결국 여자가 내릴 결론은 정해져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가자.”
“제발 길 가던 년 쑤시고 있는 중이어라.”

여자와 남자가 멀리 보이는 단독 주택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시나.  보고 싶어서 여기  거 아니었어?”

갑자기 뒤에서 튀어나온, 발걸음을 잡아채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남자와 여자가 가장 먼저 본 것은, 눈빛이었다. 시커먼 어둠 속에서도 제 빛을 잃지 않고 있는,  번 보면 잊을  없는 보랏빛 눈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특이한 눈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방금 전만 해도 그들의 대화 주제였으니까.

“검성?”

여자가 굳은 얼굴로 자신의 추측 아닌 추측을 입 밖에 내놓았다. 그 직후, 남자는 쌍소리를 뱉으며 양다리에 차고 있던 곡도를 뽑아들었고, 여자의 몸 주변에는 파란 빛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검성, 나승하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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