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4화 〉탐식마(貪食魔) (64/429)



〈 64화 〉탐식마(貪食魔)

퍽! 파각!

나무에 도끼질하는 소리가 건조하게 숲속에 울려퍼졌다. 성별을 감안해도 작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작은 체구의 여자는, 자신의 품보다 훨씬 굵은 나무를 왼발로 밟고 연신 도끼질을 해대고 있었다.

외형만 보면 손도끼도 감당하기 힘들어 보이는 여자가 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나무가 퍽퍽 깎여나갔다. 여자는 어느 정도 파고들고 나면  옆을 찍기를 반복했다.


류 현은 팔짱을  채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녀가 다시 옆자리를 찍으려고 할 때.


“그만, 그만하셔도 됩니다.”

그녀의 행동을 제지했다. 화련은 그대로 도끼를 놔버리고는 나무 위에 걸터앉았다. 이정도로 어깨가 결리거나  일은 없었지만 그녀는 어깨를 돌려가며, 류 현이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류 현은 ‘가방’에서 비닐팩과 호스, 수동 펌프를 꺼내서 그녀가 패어놓은 홈에 고인 진액을 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스며 나온 진액을 대충  담아내자, 류 현은 펌프를 희란에게 맡기고, 숲 여기저기를 누비며 나뭇가지를 모았다. 그중 튼실한  가지는 대충 깎아서 기둥처럼 세워두었다.

만족할 만큼 나뭇가지가 모이자, 그는 다시 ‘가방’에서 커다란 솥 하나와 꽉 찬 혈액팩, 쇠주걱 하나를 꺼냈다. 미리 세워놓은 기둥에 솥을 걸친 류 현은 모은 나뭇가지를 밑에 밀어 넣고 불을 붙였다.

대충 솥이 달아오를 정도가 되자, 류 현은 혈액팩 입구를 비틀어서 솥에 내용물을 쏟아내었다. 혈액팩의 내용물은 피가 아니라 송장목의 진액이었다. 이 던전 내에서 채취한 것들이었다. 한 팩을 다 붓고 나자 솥이 반쯤 차게 되었다.

진액이 끓어오를 기미가 보이자  현은 쇠주걱으로 그것을 천천히 휘저었다. 그러면서 류 현은 펌프를 맡고 있던 희란을 불렀다. 화련과 희란이  주변으로 몰려들자, 그는 자신이 내젓고 있는 주걱을 가리키며 말했다.

“반드시 쇠로  물건을 쓰셔야 합니다. 그냥 가열 하는 동안 쇠로 된 물건을 담그고 있기만 해도 됩니다만, 그래서는 시간이 좀 오래 걸립니다. 이렇게 휘저어주면 훨씬 빠르죠.”

알아들은 건지 의심될 정도로 희란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류 현은 그 모습에 미소지면서 휘젓기를 계속했다. 그러자, 안이 비쳐보일 정도로 투명하던 진액에 검은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류 현이 개의치 않고 휘젓기를 계속하자 검은 빛깔은 서서히 쇠주걱과 솥바닥에 달라붙었다.


“이 검은 기운이 원래 생 진액에 들어있는 독기입니다. 보시면 이렇게 휘저을수록, 이렇게 달라붙기 시작하죠.”


어느 새, 주걱은 원래의 모습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새카만 무언가가 잔뜩 달라붙어 있었다.  현은 그러고도 한참은  휘젓고는 쇠주걱을 빼내었다. 그리고 미련 없이 숲으로 내던졌다.

“한 번 쓴 건 반드시 버리셔야 됩니다. 저렇게 모인 독기는 플레이어라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독하니까요. 되도록 던전에서 작업하시는 게 좋을 거라고 한 것도 이것 때문입니다. 저걸 그냥 일반 쓰레기봉투에 넣어버릴 수도 없고.”

류 현은 말을   끊고는, 자신의 콧잔등을 톡톡 치며 이어 말했다.

“지금이야 이 숲의 냄새 때문에  느끼시겠지만, 냄새가 굉장히 심하거든요. 민원 들어오는 건 둘째 치고, 아마 집안에서 하면 벽지고 뭐고 다 갈아야  겁니다. 이 뒤에 송장목 껍질을 빻아 넣어서 한 번  끓이면 됩니다. 많이도 필요 없습니다.  정도 양이면 한 움큼? 그 정도면 됩니다. 솥은 당연히 갈아야 하고요.”
“생각보다 훨씬 간단하네요? 김빠질 정도로.”

화련의 물음에 류 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치에 비해서 가공 과정이 지나칠 정도로 쉬운 건 사실이었다. 어째서 지금까지 찾지 못했나 싶을 정도. 이 해독 레시피가 풀리고 상위 플레이어들의 생존율이 올라간 것도 그 덕이었다.

급하면 무기라도 집어넣고 끓인 후에 쓰면 되니까. 그 정도만 해도 독기로 죽을 일은 없다. 그 뒤에 전투를 하게 된다면 남은 독기 때문에 마나흐름이 뒤집혀서 요양을 해야겠지만. 죽는 것 보다야 훨씬 낫다.

일반인들이 쓰려면 여기서 두 번은 더 이 과정을 반복해야하지만, 그의 팀이  물건이니 그럴 필요는 없었다.  가지 약재를  첨가한 후에 적당히 희석시킨 후에 쓰면 되는 것이다.


“이 후 처리는  안에서는 하기 곤란하니 밖에 나가서 보여드리도록 하죠.”

 현이 그리 말하고 정리할 자세를 잡자, 멀거니 보고 있던 화련과 희란도 정리를 도우고 나섰다.


원래라면  현은 던전 안에서 불을 피우거나 하는 일은 괴수 정리가 끝나고 나서도 하지 않을 것이다. 밖에서 피워도 될 걸 왜 굳이 던전 안에서 하겠는가?

던전 내에서 불을 피우는  너무 위험하다. 멀리서도 보이는 연기와 냄새, 온도, 빛. 어느 것 하나 던전에 들어온 플레이어에게는 좋을 게 없는 요소들이다. 거기에 거의 각성하자마자 용잡이 팀으로 들어온 희란도 있다. 공연히 불을 피워서 이상한 인식을 심어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런 그가 굳이 던전 내에서 불까지 피워가며 해독 레시피를 가르쳐주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화련이 그의 예상보다 훨씬 손쉽게 송장목을 처리해주었기 때문이었다. 팀원이 분전해주었는데 이 정도 서비스는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다.

이전 생에도 그렇고, 현재도 그는 화련이 자신의 마법에 대해서 하는 설명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이번에 화련이 해준 설명은 대강 알아들을 수 있었다.


류 현에게 송장목 사냥 법을 들은 그녀는 그에게 마력을 요구하면서, 희란의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과 연계해서 일정 범위를 마치 게임의 미니맵처럼 감지 범위에 넣고, 일정이상의 마력을 띄는 지점을 타격할 거라고 했다.


일전에 요구했던, 두 달 가량 되는 개인시간 동안에 둘이서 개발한 기술이라고 했다. 그 뒤에 공간 우선순위를 올린 뒤에 송곳처럼 연마해서 찌르니 어쩌니 하는 건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새로운 시도를 해보겠다는  거절할 필요가 없었으니, 그는 흔쾌히 허락했고 결과는 기대이상이었다. 기술을 한 번 펼 때마다 그녀는 송장목 두 세 마리씩을 거꾸러뜨린 것이다.  바로 물렁한 본체를 타격하니 송장목 쪽을 상대할 필요도 없다.

류 현이 지난 번 송장목 숲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땅을 쑤시면서 돌아다녔던 것에 비하면, 말이 안 될 정도로 빠른 속도. 방금 거꾸러뜨린 놈이 마지막  마리였으니 이제 보스만이 남은 상황.


류 현은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뒤편을 슬쩍 돌아보았다. 회색빛  가운데 검은 성이 우뚝 솟아있었다. 누가 봐도 위화감이 넘치는 광경. 던전 밖이라면 피하고 봤을 불길한 성이었지만, 류 현은 반가울 따름이었다. 보스몹을 특정할  있는 좋은 단서였으니까.


‘리치라, 귀한 놈을 경험시켜 줄 수 있겠네. 괴수 복은 터졌다니까 둘 다.’


두 여자가 들었다면 질겁했을 생각을 하는 그였다.


***


끼익끼익. 오래된 스프링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방안에 가득 울려퍼지는 중이었다. 불빛이라고는 휴대폰 액정빛 밖에 없는 방안. 그곳에는 소파를 차지하고 앉은 채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는 여자와 침대 위에서 허리를 흔들고 있는 알몸의 남자가 있었다.


열심히 허리를 흔들던 남자는 이윽고 욕지기를 뱉으며, 자신이 깔고 있던 여체를 밀어냈다. 정확하게는 여자의 시체를. 이미 싸늘하게 식은 상태인 시체는 남자가 밀어내는 대로 저항 없이 침대 밖으로 굴러떨어졌다.


“씨팔, 벌써 다 식었네.  오르려고 하니까. 식고 지랄이야.”


남자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으로 향했다.

자신이 있는 방에서 시간(屍姦)이 벌어지고 있든 말든 여자는 휴대폰 액정에만 집중했다. 남자가 계속 욕지기를 내뱉으며 옷을 다 입었을 때, 여자가 불쑥 말했다.


“저거, 치워.”
“...예, 예. 치우겠습니다. 누구 말씀인데, 치워야죠.”

남자는 한껏 구겨진 얼굴로 방금 전까지 자신이 범하고 있었던 시체의 발목을 잡고 질질 끌며 문 쪽으로 향했다.


그 때 문이 벌컥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남자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처음 보는 이라도 그녀의 직업을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그대로 군인답게 생긴 여자였다.군복 차림의 그녀는 여자 시체 자체나 시간 때문에 눈살을 찌푸린 건 아니었다. 그녀를 포함한 멤버 전부가 시체에 무슨 짓을 한다고 눈살을 찌푸릴 만한 내력의 소유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녀를 짜증나게 한 건 군기 태만이었다.


“네 취향에 이러쿵저러쿵 참견할 생각은 없다만.  취미 생활은 집에 가서나 해라. 다시 한 번 더 이런 꼴을 보이면, 그 짓도 못하게 잘라버릴 테니까.”
“어, 그게요. 대장. 대기 시간이 좀 길었잖습니까. 그래서...”


남자가 비굴하게 웃으며 변명했지만, 대장이라고 불린 여자는 냉막한 표정으로 잘라말했다.


“두 번 말하는 취미는 없다. 다음에 이런 꼴을 보이면 호스로 오줌을 싸게 만들어주지.”
“...옙.”

남자는 짧은 대답과 함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방밖으로 빠져나가고자 했다. 하지만, 여자의 이어진 말이 남자의 발목을 잡았다.

“소집령이다. 킬리언. 그거 버리고 딴 곳으로 새지 말고 바로 돌아와라. 곧 다른 놈들도 이리로 모일 테니까.”
“어? 소집령이요? 드디어 유럽으로 갑니까?”

남자의 표정이 단박에 밝아졌다. 방안에서 소파에 앉은 채 휴대폰 액정만 바라보던 여자도 군복차림의 여자를 돌아보았다. 여태껏 무표정하기 그지없던 여자의 얼굴에는 묘한 열기가 감돌고 있었다.

군복차림의 여자는 부하들의 심정을 잘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목적지는 한국. 표적에는 너희들이 그렇게 그리던 검성도 포함되어있다.”


남자는 잡고 있던 시체도 놔버리고 만세를 불렀다. 하지만 소파에 앉아있는 여자는 의구심 쪽이  강한지, 만세를 부르지 않고 군복 여자에게 물었다.


“검성도?”
“그래, 타겟은 총 다섯이다. 검성과 그 측근 하나. 그리고 용잡이 팀이라는 소규모 팀 전체. 르시가 브리핑 자료를 들고  테니, 그 때 설명해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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