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탐식마(貪食魔)
류 현과 그의 팀원들은 지난 이 주 동안 그랬던 것처럼, 던전 사냥이 끝난 후 사무실로 돌아왔다. 정산을 위해서기도 했지만, 사무실 위층을 사들여서 개조한 목욕탕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화련이 던전에 들어갔다가, 나온 뒤에 목욕탕을 이용하려고 했다가 쫓겨났다는 투덜거림을 듣고 류 현이 해란에게 부탁해서 만든 장소였다. 만든 이후에는 류 현도 꽤 유용하게 이용하고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도 목욕탕에서 거절당한 일이 몇 번 있었으니까. 오늘 같이 피 냄새가 특출하게 지독한 괴수를 잡은 날이면, 더더욱 그렇다.
어느 정도 벌이를 한 플레이어들이 차를 기본으로 두 대씩 보유하고, 주택을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가질 만큼 가진 이들이 목욕탕 같은 장소에서 거렁뱅이 취급당하는 것만큼 짜증나는 것도 없을 테니까.
그 목욕탕을 이용하고 나와서 소파 위에 뒤엉켜서 열기를 즐기고 있던 그녀들에게 류 현의 말은 꽤나 갑작스러웠다. 화련은 평소보다 한 박자 늦게 되물었다.
“우리가 들어야 할 이야기요?”
“예.”
류 현의 대답에 화련은 그의 뒤편에 있는 벽시계를 한 번 쳐다보았다. 현재 시각 오후 4시 34분. 평소 같으면 일찍 사냥이 끝난 것에 기꺼워하며 목욕 후에 한 잠 붙일만한 시간이었다.
실제로 류 현은 그녀들이 목욕이 끝나고 자든,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오든 간에 별 상관하지 않았다. 저녁 회식 여부도 그녀들이 내키지 않아하면 파하고 그냥 귀가조치 취할 정도.
그런 일은 거의 없었고, 그녀들은 던전 사냥이 끝나면 회식 전까지 잠깐 자고 일어나서 회식 후에 류 현이 정산을 끝내기를 기다렸다. 좀 피곤한 날은 회식 후에 곧장 집으로 가는 일도 있었지만, 자주 있진 않았다.
그러니, 류 현은 할 이야기가 있더라도 굳이 이 자리에서 꺼낼 필요는 없는 것이다. 화련은 졸려서 반응이 느린 머리를 굴려 말을 짜내었다.
“회식 자리에서 하시는 건?”
“밥 먹는 자리에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서요. 그리고 두 분이 듣고 나서 회식을 안가려고 하실 수도 있고요.”
“?”
화련은 고개를 한 번 갸웃했다. 처음 있는 일이라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화련은 우선 자신의 밑에 깔려서 이미 꿈나라로 가있는 희란을 흔들어 깨웠다. 희란이 일어난 걸 확인한 화련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양해를 구한 후, 다시 세수를 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희란에게 찬물 한 컵을 가져다주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희란이 물을 다 마시고 정신을 좀 차린 듯하자 류 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제 능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한마디에 사무실 공기가 뒤바뀌었다. 물을 마시고도 반쯤 감기는 눈을 감당 못해서 자꾸만 눈을 비비던 희란과, 뒷목을 매만지면서 잠을 물리치려고 애쓰던 화련의 관심이 확 집중되었다.
특히 화련은 엉덩이를 소파에서 반쯤 뗀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내 다시 앉았지만.
‘곧 죽어도 말 안 해줄 거 같더니 왜?’
화련의 머릿속은 그런 의문부호로 가득 찼다. 팀플레이나 신뢰 문제 때문이라도, 팀원들 간에 서로의 능력의 정체를 공유하는 게 평범한 일이었지만, 용잡이 팀은 조금 달랐다.
희란은 처음부터 자신의 능력을 밝히면서 팀에 들어왔다. 경솔한 행동이었지만, 각성한지 얼마 안 된 초보에게 조심성을 바라는 것도 힘들 일이겠지.
화련의 경우에는 무슨 수를 썼는지 몰라도, 그녀가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내본 적 없는 능력의 정체를 류 현이 알고 찾아왔었다. 그에 대한 질문을 류 현은 누가 봐도 수상한 이유를 대서 무마했지만, 화련은 그 변명을 믿지 않았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기에, 기억의 저편으로 밀어두고 신경 쓰지 않았을 뿐.
어쨌든 용잡이 팀은 중심이 대장의 능력만 모르는 괴상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었다. 외부인이 보기에는 이런 팀을 유지시켜주는 팀원들이 더 이상해 보이겠지만, 그녀들은 그 부분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다. 그에 관해서 단 한 번도 질문하지 않을 정도로.
그런데, 류 현이 뜬금없이 자신의 능력을 이야기 해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화련으로서는 기쁨보다는 당황스러움이 앞설 수밖에 없는 상황. 그 짧은 순간 동안 온갖 괴상한 가정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세워졌다가 무너져 나갔다.
하지만 자청해서 말을 해주겠다고 한 이상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래, 말 해주겠다는 데 들어서 나쁠 건 없지. 갑자기 왜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화련은 고개를 끄덕였다. 희란에게로 시선을 돌린 류 현은 희란에게서도 같은 반응을 얻어내었다. 류 현은 한 번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사실 특별한 건 없습니다. 듣고 나면 아마 맥 빠지실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류 현은 입을 다물고 다시 말을 고르는 듯 했다. 그녀들이 조바심을 느낄 때 즈음에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제 능력은 괴수를 먹고, 그 마력을 흡수하는 겁니다. 제가 알고 있는 범위는 그렇습니다.”
“......”
“...네?”
류 현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화련은 입을 꽉 다물고,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겨들었다. 질문을 던지는 건 희란의 몫이 되었다. 그녀는 약간 질린 안색으로 물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
괴수를 먹고 강해진다니 보통 그런 소리를 하는 이를 봤다면 정신병원 전화번호부터 찾을 것이다. 그런 소리를 마스터란 작자가 하고 있으니 혼란해 하는 것도 당연했다.
류 현은 예상했던 희란의 반응에 ‘가방’을 조작해서 오늘 사냥한 부산물 중 하나를 꺼내었다. 시뻘건 고깃덩어리가 그와 그녀들의 사이에 놓여 있는 탁자에 올라왔다. 대충이긴 해도 방혈작업을 마친 라가 챔피언의 허벅다리였다.
바닥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던 화련도 류 현을 하는 짓을 바라보게 되었다.
“오늘 두 분께서 사냥한 라가 챔피언입니다. 보시면 이렇게.”
류 현은 탁자에 비치되어 있던 과도를 하나 집어 들고 고기를 쑤셨다. 아니, 쑤시려고 했다. 칼날이 전혀 들어가지 않아서 미수에 그쳤지만. 두 번 세 번 연달아 시도해봤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그는 과도를 내려놓고 어깨를 으쓱였다.
“죽은 상태인데도 칼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을 정도죠.”
어마어마한 근육질의 라가 챔피언이기에 죽고 나서도 보일 수 있는 광경이었다. 고약한 피 냄새가 없더라도 라가 챔피언 같은 괴수가 식용으로 쓰일 수 없는 이유 중에 하나였다.
칼도 들어가지 않는 고기를 사람의 이빨이 어쩔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잔존한 마력이 다 빠져나가면 물렁해져서 칼이 들어가게 되지만, 그 때가 되면 고깃덩어리가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 수준으로 썩어버린 뒤다.
“하지만...”
그런 단단하기 그지없는 라가 챔피언의 고기를 두 손으로 들어 올린 류 현은,
으적! 단 숨에 한 입 베어 물었다. 시원스러운 동작에 감탄이 나올 정도. 류 현은 아직 만족하기에는 이르다는 듯이 연달아 고기를 한 입, 또 한 입 먹어 치워갔다.
그리고 으적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올 때마다 희란의 안색은 더 없이 하얗게 질려들어갔다.
결국 그녀는 버티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괴수를 직접 찌르고, 이제 방혈정도는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사람이 괴수를 뜯어먹는 광경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것도 생고기를, 자신과 가장 가까운 두 사람 중 한명이 저렇게 뜯어먹을 줄이야.
힘들어 하는 희란을 배려한 것인지 류 현은 순식간에 고깃덩어리를 전부 먹어치웠다.
중간부터 귀까지 틀어막은 희란과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그 과정을 담담하게 지켜본 화련은, 류 현이 입가를 정리하는 것을 바라보며 말했다.
“확실히 폼은 안 나는 능력이네요.”
겨우 표정을 수습한 희란이 어이없다는 눈으로 화련을 돌아보았다. 화련은 담담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마스터의 말도 안 되는 성장력이 그 능력 덕분이라면 고생 꽤 하셨겠네요. 우리랑 만나고 나서도 계속 혼자 사냥하셨다는 거잖아요? 자기 먹을 게 따로 필요하니까. 아니다, 그냥 사먹으면 되나?”
화련의 말에 희란의 얼굴이 다시 하얗게 질렸다. 류 현은 고개를 내저으며 대꾸했다.
“아니요, 제가 들어가지 않은 던전에서 나온 사체는 먹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전생에 이미 실험해 본 바였다. 능력을 재각성할 때 조금 이상한 기미가 있었기에 이번 생에 들어서도 한 번 실험해 보긴 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사먹은 것과 자신이 잡았어도 보관한지 오래된 것은 마력이 다 빠져나가서 별로 효과가 없었다.
그게 가능했다면 이전 생에서 어마어마한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전선이 무너지는 걸 감수해가면서 던전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전선을 지키며 배달되는 고기나 넙죽넙죽 받아먹었으면 됐을 테니까. 아지다하카와의 싸움 준비도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생에서라도 되었다면...
‘지금쯤 혼자 블랙 던전 기어들어가서 깽판치고 있겠지. 그 이상이 되었을 수도 있고.’
아쉽지만 별 수 없는 일이다.
류 현의 답을 들은 화련은 콧잔등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하는 듯하다가, 이내 다시 물어왔다.
“그럼 계약서를 그렇게 쓴 것도...”
“예, 제 능력을 알리고 두 분께 협조를 구하려고 한 것이지요.”
“...그거 감안해도 마스터가 손해 아니에요? 아니, 손해가 확실한데. 마스터 먹고 나면 팔 것도 없잖아요? 아무리 마스터가 대단해도 하루에 세 번 던전 가지는 못할 테고.”
“하하, 맞는 말씀이긴 합니다만. 아직 아티펙트는 발견도 못 해봤는데 손해를 논하는 게 더 웃긴 일이죠.”
류 현의 말은 사실 이였기에 할 말이 없어진 화련은 괜한 머리카락만 꼬아대었다. 화련이 생각에 빠져들자, 이번에는 희란이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저기...마스터.”
“예, 말씀 하시죠. 희란 씨.”
류 현이 능력을 밝혔을 때 반응에 대해서 가장 걱정한 건 다름 아닌 희란이었다.
각성한 지 반 년이 넘은 지금에서야, 소극적인 그녀는 겨우 괴수 시체에 적응해가고 있었으니까. 그마저도 해체과정은 아직 잘 보지 못했다. 보고 토하던 초기 때에 비하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 만 했지만. 팀 동료가 괴수 뜯어먹기 전문이라고 하면 좋은 반응을 기대할 수는 없는 상대인 것이다.
하지만 류 현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방금 전만 해도 얼굴색을 탈색시켜서 진이 다 빠진 듯 했던, 희란은 갑자기 벌떡 일어서서 상체를 쑥 앞으로 내밀더니 그의 두 손을 덥석 거머쥐고는 말했다.
“저, 전 어떻게 되든 믿으니까요..!”
앞뒤가 다 잘려나간 엉망진창인 어필이었지만, 류 현은 그 기세에 밀려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고 말았다.
“아, 네 감사...”
“...선수 치다니 비겁해.”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그 광경을 지켜보던 화련의 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