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탐식마(貪食魔)
방 한가운데 놓인 탁자와 의자 두 개 말고는 가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살풍경한 방이었다. 류 현은 별로 편하지도 않은 철제의자에 기댄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류 현은 어떤 남자의 얼굴을 떠올려보고 있었다. 인상적인 얼굴이었기에 떠올리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아주 잘 생기거나, 아주 못생긴 것도 아니었지만 그 남자는 한 번 보면 쉽사리 잊을 수 없는 인상의 소유자였다. 마치,
‘바위를 깎아 만든 인간. 같았지.’
인간 형태의 돌덩이가 살아 움직이는 듯 한 느낌이었으니까.
‘성격도 지랄 같았고.’
류 현이 그 남자를 무정물처럼 말 할 수 있는 건 생김새도 있었지만, 그 남자의 성격도 큰 몫을 했다. 그 남자에게는 손해와 이득, 두 가지 기준 밖에 없었다. 마치 덧셈, 뺄셈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계산기처럼. 인간으로서 교육받는 동정심? 사회적 도덕? 공감능력? 그런 건 없다. 오직 플러스냐 마이너스냐 만이 있을 뿐.
사고로 동료를 잃고 나서 그렇게 됐다는 소문도 들어봤지만 그의 알바는 아니었다.
직접 만나 본 건 세 네 번 정도고 그 마저 열 마디 이상 나눈 적이 없지만, 류 현은 그 남자의 성정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거래 상대는 될 수 있지만 동료는 될 수 없는 자.
회귀 전,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의 한 축에 있던 자, ‘황금손’ 강찬. 그 남자를 다시 만나는 자리인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손해 보는 장사까지 해가면서 말이다.
‘엘릭서만 뽑아내면 진짜 손 털든지 해야지...’
류 현은 그리 생각하며 방안을 한 번 훑었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응접실이 아니라 심문실 같은 방이 그라고 마음에 들 리 없었다. 차는커녕 달려있는 조명마저 후줄근한 방. 사방이 검은 칠이 되어있는 건 무뚝뚝한 걸 넘어서 악의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아직 유명해지기 전인데도 손님 대접 개판인 건 똑같네, 똑같어.’
류 현이 본격적으로 푸념을 중얼거리려던 찰나였다. 그의 맞은편에 있던 문이 열리더니 사람이 들어왔다. 류 현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자기소개를 듣기 전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떡 벌어진 어깨는 신장에 걸맞지 않게 넓었다. 너무 벌어진 나머지 어깨에 비해 작은 신장이 짓눌려서 짜부라 질 것 같아보였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자의 강건한 허리와 언뜻 보면 살집이 푸짐해 보일 수 있는 단단한 몸이 그 아래에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아무렇게나 기른 갈색 머리는 대충 끈으로 묶어서 등 뒤로 넘기고도 앞머리가 눈을 다 가릴 지경이었다. 수염 또한 머리와 마찬가지로 손질을 하지 않아 덥수룩했다. 그 아래에 숨어 있는 형형한 눈빛과 꽉 다문 입은 굳게 자리 잡은 채, 묵직한 무게감을 만들어내었다.
소싯적에 판타지 소설을 제법 읽은 이라면 벌떡 일어서서 드워프가 나타났다고 외칠 법한 외모의 소유자. ‘황금손’ 강 찬은 이렇다 할 인사말도 없이 류 현의 맞은편에 자리 잡고 앉았다.
“미안하지만 제안한 비율은 받아들일 수 없네.”
화법도 생긴 값을 하는 남자였다. 처음 겪어보는 것도 아니었기에 덤덤하게 대꾸 할 수 있었다.
“비율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어느 정도 추가 조율은 가능합니다만.”
“모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너무 과하네.”
“과하다니요? 제가 말하긴 좀 그렇습니다만. 그럼 좋으신 거 아닙니까?”
강 찬은 고개를 내저었다. 어떻게 돌아가는 지 신기할 정도로 짧은 목이었지만 의사 표현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정도 이상으로 막 받아쳐 먹으면 결국에는 탈이 나지. 세상 모든 일이 그렇고, 특히 플레이어 놈들이랑 연관되면 그게 더 해. 자네도 그걸 알 정도는 되지 않는가. 무조건 낮게 부르고 보는 애송이들이랑 같은 부류 같지는 않은데.”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제 성의를 봐서 받아주시는 게?”
“농담하지 말게. 천지 분간 못하는 애송이들이야 한 번 벗겨먹고 치우면 그만이지만, 자네는 그것도 아니지 않은가. 한 번 거래하고 손 털게 아니라면 받을 수 없네.”
“곤란하군요. 전 거래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데 말입니다.”
“어차피 자네도 진짜로 손해 보는 거래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인상을 남기고 싶은 것 아닌가? 질질 끌지 말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왜 하고 많은 공방 중에서 우리였나?”
류 현은 손을 모아 탁자에 얻고는 상체를 조금 앞으로 내밀었다. 강 찬이 얼굴을 찌푸렸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고 말했다.
“일전에 공급받았던 단창 말입니다.”
“단창?”
“직접 공급받았던 건 아니고 서해란 씨를 통해서 공급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 왜 발동시키면 황금색으로 빛나면서 진동하는 것 있지 않습니까.”
“아, 그거. 그게 어쨌다는 건가?”
류 현은 속으로 미소 지었다.
‘제일 신경 쓰고 있는 거 뻔히 아는데 연기하느라 고생이 많네.’
이전 생에서 강 찬의 브류나크에 대한 집착은 유명한 사실이었다. 재료를 자급자족 하다가 브류나크의 레시피를 발견한 그는 원본에 가까운 성능을 내기 위해서 개량을 거듭했고, 마침내 악룡의 방어막과 항마력을 뚫을 정도의 아티펙트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청뢰나 엑스칼리버, 유성우 같이 던전에서 출토된 쟁쟁한 유니크급 아티펙트들도 뚫지 못한 그 악룡의 방어력을 말이다.
“성능이 꽤나 인상적이라서 말입니다. 갑옷 멧돼지의 몸뚱이를 그냥 뚫어버릴 정도인데 관심이 동하지 않으면 그게 바보지요.”
“그런가? 어떻던가. 직접 써 보니.”
‘정말 그 소문대로 였던건가? 사람이 다르긴 하네.’
생긴 값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딱딱하기 그지없던 강 찬의 태도가 눈에 띄게 누그러졌다. 누가 봐도 칭찬받고 싶어 하던 부분을 칭찬 받아서 기분 좋은 사람이었다. 이전 생의 강 찬에게서는 기대조차 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그 사실이, 단문으로 거래 내역만 툭툭 내뱉고 떠나버리던 그를 알고 있는 류 현에게는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류 현은 이 대목에서 킥킥거리지 않기 위해서 얼굴에 잔뜩 힘을 주었다.
“관통력은 확실하더군요. 다만 피탄 면적이 너무 좁아서, 라가 같은 인간형이 아니면 큰 타격을 주긴 힘들 거 같았습니다. 급소를 노린다면 한 발 처치도 가능하겠지만, 아시잖습니까. 그게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건.”
“그렇긴 하지. 끙, 역시 피탄 면적이 너무 좁은 게 문제군. 관통력에 신경을 쓰다보니까 힘을 한 점 집중 시킬 수밖에 없긴 했네만. 이걸 취하면 저쪽이 부족해지고 저걸 취하면 이쪽이 부족해지니...골치 아프군. 마력 소모정도는 어떻던가? 우리 공방 측에서 실험 할 때는 말일세...”
몇 마디 던져주자 알아서 열을 올리는 강 찬을 바라보며 류 현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아무래도 생각 보다 훨씬 수월하게 계약을 마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으니까.
***
어둠을 내쫓는 가로등은커녕 횃불조차 없어 사위는 칠흑 자체였다. 그런 어둠 속에서 남자는 커다란 고깃덩어리에 상체를 반쯤 묻은 채 낑낑거리고 있었다.
“진짜, 손칼 하나 새로 장만하던지 해야지.”
남자, 류 현은 손에 쥐고 낑낑 거리던 날이 다 빠진 손칼을 내팽개치고 고깃덩어리를 향해서 입을 벌렸다. 그는 와이번의 시신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마름모꼴 머리는 이제 무슨 도형이라고 지칭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 방향으로 찌그러져 있고, 꼬리는 이미 잘려서 저만치 떨어진 곳에 떨어져있었다. 몸뚱이는 류 현이 고기를 뜯어먹고 있는 지점 반대편에 내장이 다 튀어나올 정도로 커다란 구멍을 포함해서, 열 곳이 넘는 곳에 성인 남성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려있었다. 그의 주변은 당연히 피바다였다.
사냥한 사냥감이 아니라 가지고 놀다가 이리저리 쥐어뜯긴 누더기 인형 같은 모습이었다. 와이번을 이렇게 무참하게 죽인 자는 당연히, 지금 던전 내에 유일하게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인 그였다.
물론, 화풀이나 심심풀이로 한 짓은 아니었다. 몸통에 나있는 열 곳이 넘는 구멍은, 계약을 마치자마자 강 찬이 시험해봐 달라고 떠맡긴 브류나크의 시제품이 낸 것이었고, 머리나 꼬리에 낸 상처는 피로로 인해서 한 헛손질의 흔적이었다.
던전을 들락거릴 때 발생하는 마력손실과 피로도, 브류나크 시제품을 사용할 때 소모되는 집중력. 아무리 그라고 해도 오전 동안 ‘공방’과의 계약을 마치고, 오늘만 두 번째 그린 던전을 사냥했는데 피로가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브류나크를 제공한 강 찬은 오늘 안에 다 써보라고 준 것이 아니었고, 하루에 두 던전을 터는 강행군을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는 자청해서 이 피곤한 짓을 감행했다. 화련과 희란이 봤다면 지체 없이 세아에게 연락을 하려고 들었을 강행군이었다.
그래서인지 류 현은 와이번의 사체를 뜯어먹으면서도 계속해서 눈가를 비비적거렸다.
‘이게 무슨 뻘 짓이야. 그냥 퍼플 털어먹으면 와이번 스무 마리 쳐 먹는 것보다 나은데. 정부 미친 새끼들.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렇지 돈 때문에 던전 출입을 제한해?’
피곤하긴 했지만 와이번을 뜯어먹는 와중에 푸념을 포기 할 정도는 아니었다.
십 분여가 지난 후, 류 현은 와이번의 반신을 거의 다 뜯어먹을 수 있었다. 그 살점의 양만 해도 그의 몸무게보다 더 나가겠지만, 위장에 넣자마자 마력으로 치환시켜버릴 수 있어서 위가 터질 일은 없었다. 그는 먹던 걸 멈추고 피가 엉겨 붙은 앞머리를 걷어붙였다.
‘계속 감출 수도 없고, 슬슬 알리긴 해야 할 거 같은데.’
그의 고민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것이었다. 팀원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알릴 시기 말이다.
용잡이 팀을 만들고 난 이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따로 사냥을 나섰다. 주로 밤이나 새벽녘에. 그게 좋아서 그런 건 아니었다. 마음 같아서는 내일이라도 당장 밝히고 괴수사체에 대한 지분을 주장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의 능력이 대놓고 밝힐만한 능력이 아닌 것도 있었지만, 그녀들이 의심할 만한 일을 너무 많이 했다는 것이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이유였다. 그것도 이제 슬슬 한계에 도달했지만.
‘따로 사냥질해서 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어야지. 진짜 더는 못 해먹겠다.’
류 현은 그대로 땅에 벌렁 드러누웠다. 두 여자의 얼굴이 떠오르자 심사가 더 복잡해졌다. 두 사람 다 서로 다른 의미에서 반응이 예상이 안됐다. 자기네 팀장이 괴수를 쳐 먹고 이렇게 강해졌다고 하면 뭐라고 반응할까?
‘차라리 질겁하는 게 나을지도.’
류 현은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반응을 생각해보다가 그만 두었다. 그녀들이 그보다 더 골 때리는 반응을 내보일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데 알리니 마니, 어떻게 반응할까 하는 것도 웃긴 일이지...’
그 자신도 해결하지 못한 의문을 아직 정면으로 맞닥뜨릴 자신이 없기도 해서였다. 류 현은 자신의 오른 손을 들어서 유심히 바라봤다. 주변이 암흑천지라는 것은 암적응이 끝난 플레이어인 그에게는 별 문제가 되진 않았다.
‘대체 뭘까?’
그는 이전 생에서 최강의 플레이어이자 악룡 사냥꾼이었지만, 끝내 자신의 능력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각성 직후에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되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혹여 그렇지 않더라도 던전 사냥을 하면서 마력을 모으고 하면서 천천히 라도 깨달아 가기 마련이건만 그는 그런 것도 없었다.
그가 아는 거라곤 괴수의 살점을 취해서 마력으로 환원하고, 그 마력을 일정량 몸 안에 비축하면서 마력통 자체를 늘린다. 그것이 그가 확실히 알고 있다고 장담하는 자신의 능력이었다.
마력을 뚫을수록 그는 강해졌고, 쓸 수 있는 능력도 늘어났다. 단순히 마력만 모으는 1단계를 넘어서, 2단계의 에너지 드레인, 그 윗 단계인 3단계의 ‘강림’까지.
‘강림’을 습득한지 얼마 안 돼서 아지다하카와 함께 죽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류 현은 그 습득도 낮은 ‘강림’을 쓸데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껴야만 했다.
자신이 깎여져 나가는 듯한, 먹히고 있다는 두려움. 류 현이 3단계를 뚫고 나서 얻은 힘에 ‘강림’이라고 이름을 붙인 건, 말 그대로 쓸 데 마다 자신 안에 다른 뭔가가 튀어나와 몸을 장악하는 듯 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자신이 클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그가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는 걸 꺼린 것도 ‘강림’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근본도 모르는 능력이라 껄끄러웠는데, 이상 징후 같은 것까지 있었으니 당연했다. 실제로 ‘강림’을 쓴 후에 며칠 동안은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았다. 그 외 에도 사냥에 대한 강박증 같은 건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 중 하나였다.
‘이번에는 알기 싫어도 알게 되겠지.’
이전 생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
대체 무슨 조화인지 몰라도 각성과 동시에 어느 정도 돌아온 마력과 올라간 흡수율 덕택에 목표달성에는 문제는 없어보였다. 2단계 진입하지 않은 지금도 2단계의 에너지 드레인을 잠깐 유지할 수 있을 정도니까.
이대로 별 사고 없이 진행한다면 필연적으로 이전 생보다 ‘강림’의 습득도도 높아질 터. 알고 싶지 않아도 그는 결국 알게 될 것이다. ‘강림’이 대체 뭘 끄집어내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