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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화 〉탐식마(貪食魔) (41/429)



〈 41화 〉탐식마(貪食魔)

화련은 벙찐 표정으로 류 현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희란은 두 사람의 눈치를 바쁘게 살피다가 슬그머니 손을 들고 물었다.

“저기...마스터, 협회라고 하셨죠...?”
“네, 플레이어 협회요. 우리한테 이걸 채워놓은 작자들 말입니다.”

 현은 사무실에 앉아 있는 세 사람 모두가 차고 있는  손목의 팔찌를 톡톡 건드렸다. 플레이어들에게 있어서 수많은 의미를 담을  있는 동작이었다. 일각에서는 플레이어라는 새로운 인종에 대한 구속구라고 했고, 반대편에서는 사회질서 유지를 위한 구성원으로서의 당연한 제약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의미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는 희란은 눈알만 굴려서 그의 손짓을 쫓다가 다시 물었다.


“제가 이해를 잘 못한 걸 수도 있지만...마스터가 말씀하신 이야기 중에서 협회 이야기는 전혀 안 나오지 않았어요? 그, 그러니까...”
“예, 좀 많이 뜬금없다고 생각하셔도 무리는 아니죠.”
“무리가 아닌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그런  같은데요. 마스터가 말해준 통화 내역에는 그렇게 생각할 만한 내용도 없었잖아요? 설마 말 안하신 부분 있어요?”
“그럴 리가요. 그럴 생각이었다면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을 겁니다.”


화련도 그의 말에 동의하는지 입을 다물고  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류 현은 턱을 만지작 거리며 약간 뜸을 들인 후에 말했다.

“통화를 마친 후에 검성이 말해줬습니다. 약속 장소에 웨펀 마스터가 나타날 거라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자신도 동행하고 싶다고 말입니다.”

정확히는 자신은 가고 싶지 않지만 특별히 가주겠다는 듯이, 보답은  달 후쯤에 퍼플 던전에 같이 가주는 걸로 족하다며, 김칫국부터 마신 거였지만 그는 굳이 그것까지 전하진 않았다. 그녀의 도움이 있으면 편해지는 상황인데 팀원들이 이상한 반감을 가지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특히 화련은 지금 검성과 관련된 농담만 해도 과민 반응할 게 뻔한 상태였으니까.

“웨펀 마스터? 그, 영국의 웨인 크로이츠요? 퍼플 던전 솔로플레이 한?”
“예, 그 웨펀 마스터 맞습니다.  아시네요.”
“모, 모르는 게 이상하죠!  여자는, 아니 검성은  근거로 그렇게 확신한데요? 웨인 크로이츠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닌데?”

화련이 호들갑을 떨며 말하자 희란은 고개를 갸웃했다. 검성과 달리 웨펀 마스터는 플레이어에 별 관심이 없는 이들은 잘 모르는 이름이다. 그리고 희란은 각성 이후에 이렇다 할 정보를 접할 기회도 없이 훈련과 던전만 들락거리고 있는 상황이니 모르는  무리도 아니었다.


웨펀 마스터, 웨인 크로이츠. 유럽의 퍼플 던전 슬레이어.


영국과 유럽 쪽에서는 그를 열심히 추켜세워서 아시아의 검성의 대항마로 키우려고 노력 중이지만, 아직까지는 검성의 뒤를 따라가는 수준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서구권 최초의 퍼플 던전 솔로 플레이어에 대한 평가치고는 꽤나 가혹한 편이지만, 검성은  상처 없이 솔로 플레이를 마무리 한  비해서 그는 거의 세 달 동안 요양해야 했으니 상대적으로 저평가 되는 건 별 수 없었다.

 점을 감안하더라도 웨펀 마스터, 웨인 크로이츠는 틀림없는 거물이었다. 거기다가, 국가 기관이나 국가 대표급 길드에 소속되지 않고, 협회에 적을 두고 있었으니 검성의 곱절은 바쁘면 바빴지 한가할 리는 없는 인물인 것이다. 말 그대로 플레이어 협회의 간판이라고 해도  정도다.


“검성이 보호를 수락한 이후에 직접적인 접촉은 모두 그를 통해서 했다고 합니다. 그 이전에도 그와 계속 통화 한 것 같다고 하던데 이건 뭐 확실한 건 아니고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번호도 웨인 크로이츠의 개인번호라더군요. 이정도면 협회 전체는 아니어도 웨펀 마스터를 움직일 정도의 고위층이 한 발 걸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죠. 우리를 상대로 그가 나온다면 거의 확정지어도  무리는 없을  같습니다. 웨펀 마스터가 움직인다면 적어도 협회 플레이어들은 움직여  테니까요.”
“확실히 그럴  같긴 한데...이번에도 나올 거라는 보장은 없잖아요? 이런 말하기 좀 그렇지만 검성은...”
“엄청 유명한 사람이잖아요. 그 영향력도...”

입을 꾹 다문 채로 화련과  현을 번갈아보던 희란이 재빨리 끼어들어 화련의 말을 대신했다. 대놓고 검성을 꺼리는 화련과 달리, 희란은 좀 낯을 가리는 정도였다. 모르는 얘기만 오고가다가 아는 얘기가 나오니 재빨리 끼어든 것이었다.


“예, 지금 당장 예고도 없이 검성이 미국에 관광가도 미대통령이 만나 달라고 찾아다닐 정도죠. 협회 측에서 급을 맞추려고 한다면 위원회 의장이나 플레이어 중에서는 웨펀 마스터를 빼면 없겠죠.  사실 웨펀 마스터가 우리 대화 상대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진 않습니다만. 신경 쓰이신다면 확인시켜 드릴 수는 있습니다.”
“어떻게요?”

화련의 물음에 류 현은 픽 웃고는 휴대폰을 꺼내서 전화를 걸었다. 스피커 폰 모드로 돌리자마자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목소리에 그녀들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예, 전화 받았습니다.
“저번에 말했던 미팅에 제가 나간다면 상대로 웨펀 마스터가 나오는 겁니까?”
-예, 제가 나갈 겁니다. 마음에 안 드신다면 다른 대리자를 불러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스피커 폰으로 웨인의 대답에 듣고 있던 두 여성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녀들이 상상했던 것과는 영 딴판으로 웨펀 마스터는 자신의 정체를 밝힌 것이다.


“아뇨, 그냥 확인 차 전화 드린 겁니다. 유명인사를 만나는 데 사인지 하나도 없이 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하하, 나와 주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사인정도는 몇 장이고 해 드리겠습니다. 혹시 결정 하셨습니까?

 현은 그녀들을 돌아보았다. 희란은 고개가 떨어져라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고, 화련은 얼빠진 얼굴로 그를 마주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현은 씩 미소 짓고는 말했다.


“예, 한 번 만나보죠. 저희 팀원들도 같이 동석시킬 생각인데 괜찮겠습니까?”
-안 될  없지요. 적당한 장소를 수배한 다음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언제쯤이 괜찮으시겠습니까?

류 현은 다시 그녀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묻는 듯한 시선에 화련이 대표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했다. 무조건적인 동의를 받아낸 류 현은 잠깐 생각 하는 듯하다가 말했다.

“일주일 이 후면 날짜는 크게 상관없습니다. 되도록 한국 밖에서 만나고 싶은 데, 되겠습니까?”

통화 상대는 잠깐 고민 하는 듯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미국은 어떠십니까?
“나쁘지 않군요.”

한국만 아니라면 어디라도 좋았다. 웨펀 마스터와 협회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유럽 어디라도 괜찮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굳이 영향력을 어필하면서 상대를 위축 시킬 수 있는 자리를 피했다. 류 현은 웨펀 마스터에 평가를 한 단계 높여주기로 했다. ‘검성이랑 다르게 대장질 한 티가 나네.’ 눈에 보이는 아부보다는 이런 배려가 훨씬 어려운 법이니까.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서 오실 장소와 함께 보내드리겠습니다. 준비 기간은 삼일 정도 남겨드리겠습니다. 추가로 요청할 것들이 있으시면 당일이라도 연락주시면 됩니다. 그럼, 그 때 뵙도록 하겠습니다.
“예, 조만간 뵙죠.”

전화가 끊어졌다. 류 현은 주머니에 휴대폰을 도로 넣고는 말했다.

“이제 닷새 동안 휴가입니다. 화련 씨랑 희란  여행 계획을 본의 아니게 망쳐서 마음에 걸렸었는데 이 기회에 다녀오시면 될 거 같네요.”
“...마스터 진심이에요?”
“이 중요한 때에요?”

화련과 희란이 한마음이 되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들이 보기에 지금 용잡이 팀은 팀의 존립이 달린 중요한 결정을 한 참이었다. 그런 중요한 결정을 하자마자 못 갔던 여행이나 가라니?

그런 그녀들의 심정을 배반이라도 하려는   현은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예, 중요한 때죠. 하지만 여기서  분이 뭘 더 하실 겁니까?”
“그..그건...”
“......”


 여자는 류 현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서로 마주 보았다가 하며 말이 없었다.  모습에 류 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야기는 끝났고, 저쪽에서 모든 준비를 해주겠다고 했으니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 쪽에서 따로 뭔가를 준비하면 도움이 될 가능성보다는 괜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죠.”
“그, 그래도...”
“그래도 가 아닙니다. 화련 씨. 지금 우리의 최선은 다칠 일 없이 조용히 기다리는 겁니다.”
“검성이라든가 미리 얘기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제가 손잡자고 해놓고 이런 말 하긴 좀 뭐합니다만. 그녀가 그렇게 쓸모 있는 의견을 내놓을 거 같진 않군요.”

화련은  말을 잃었다. 정말로  현이 입에 담을만한 말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생각하는 사실 그대로였으니까.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튀어나오려는 걸 억누른 후 화련은 수긍의 말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그녀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알겠어요. 휴가, 감사한 마음으로 즐기죠. 그런데 마스터는 뭐 하실 거에요?”
“전 일이 있어서요.”

류 현의 가차 없는 대꾸에 화련의 표정이 빠르기 식었다. 덩달아 옆에 있던 희란도 그렇게 되었다.

“네?”
“‘공방’마스터와의 미팅이 내일 모레라서 말입니다.”


화련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듯 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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