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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화 〉탐식마(貪食魔) (39/429)



〈 39화 〉탐식마(貪食魔)

화련은 불이 꺼진 체육관 한가운데 양팔을 늘어뜨린  눈을 감고 있었다. 창문이란 창문은 전부 커튼으로 가려놨기에 체육관 안은 한밤중처럼 어두컴컴했다. 그래서 그녀가 눈을 감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감을 필요도 없었지만 그녀는 굳이 눈을 자청해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퉁퉁!

배팅기가 맹렬한 기세로 야구공을 토해내었다. 사방에서 덮쳐드는 수 십 개의 야구공에 대한 그녀의 대응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육신만.


쉬익! 퍼억! 터덩!

화련을 향해서 날아들던 야구공들이 그녀의 주변에 도달하자마자, 방향을 바꾸어 반대편 배팅기에  박히거나 서로 부딪히기 시작했다. 나비처럼 흐느적거리며 공중을 날아다니거나. 쉭쉭소리를 내며 빠르게 체육관 천장 근처를 날아다니는 것도 있었다.


이 기괴한 광경을 연출한 장본인인 화련은 어느새 눈을 뜨고 그 광경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하얀 빛이 꽃처럼 만개한 상태였다.

그렇게 멍하니 서있던 화련은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자, 신경질적으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마스터? 뭐해요?”


화련의 물음에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뻐엉!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아드는 야구공의 형태로. 화련이 그 소리에 기겁을 하며 마력을 집중하자마자 야구공이 그녀의 몸에 도달했다. 화련은 신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우당탕 하고 체육관 끝으로 날아갔다.

그녀의 작은 몸이 장난감처럼 날아가는 모습은 무게감이 없어 보였기에 더 섬뜩했다. 화련의 신음소리 대신 다른 이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언니!”


희란의 새된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체육관에 불이 들어왔다. 불을 켠 희란은 거의 앞으로 구를 기세로 화련에게로 달려갔다. 가장 먼저 도착한 건, 살인사구를 날린  현이었다. 공이 자신의 손끝을 떠나자마자 아차하고 화련에게 달려갔기 때문이었다.

“화련 씨! 괜찮습니까?”
“콜록! 콜록!”


화련은 누운 상태로 몸을 웅크린  기침만 연거푸 해대었다.  현이 손도 못 대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자 희란이 도착했다. 희란은 곧바로 화련에게 들러붙었다.


“언니, 괜찮아요? 어디, 어디에 맞았어요?”

희란이 거의 울 기세로 다그쳐 묻자 화련은 손을 내저으며 만류했다. 그녀는 그러고도 한참을 더 콜록거렸다. 기침이 대충 멎자 화련은 바로 앉았다.

“으하아, 사레들려서 죽는 줄 알았네.”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이럴  아니라 병원에...!”


옐로우 급을 돌 수준만 되도, 차에 치여도 멀쩡하게 걸어가는 플레이어가 야구공 맞은 것 치고는 참으로 과격한 반응이었지만 그럴 만도 했다.


그냥 야구공이 아니라 곰 정도는 그냥 때려죽일 정도의 마력이 담긴 투구였으니까. 충격량만 따지면 교통사고보단 못하겠지만, 충격 집중도와  플레이어의 방어력의 기반이 되는 마력이 잔뜩 담겼다는  컸다.


하지만 두 사람의 걱정이 무색하게 화련은 둘의 표정을 둘러보고는 씩 웃었다.

“악취미라는 거 아는 데 이런 식으로 걱정 받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네.”
“언니. 정말, 농담이나 할 때에요? 진짜 괜찮아요?”
“응, 진짜 괜찮아. 좀 놀라서 사레가 심하게 들린 것뿐이야. 그러니까, 마스터도 과실치사  같은 얼굴 그만하셔도 되요.”
“...죄송합니다.”


류 현은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훈련 도중에 딴 생각을 하다가 힘조절도 잊다니. 명백한 자신의 실수였다. 화련이 재빨리 반응해서 방어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병원신세를 졌어야 했을 것이다.


“또, 또. 오버하신다. 갑자기 명치로 날아와서  놀란 거라니까요. 이 정도면 멍도 안 들겠구만.  믿겠으면 보여줘요?”


화련이 자신의 상의를 들추려고 들자 희란이 기겁하면서 그녀를 뜯어말렸다. 희란에게 제지당한 화련은 입맛을 쩝 다시더니 명치 부근을 슬슬 쓰다듬으면서 물었다.

“마스터 무슨 일 있어요? 오늘 내내 영 집중을 못하시던데. 혹시 집에?”

화련이 집이라는 단어를 꺼내들자 류 현은 표정을 잠깐 굳혔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세아가 지내고 있는 병원을 수배하는 데 서해란이 큰 도움을 주었다.

자연히 해란이 세아의 상태를 알고 있기 때문에 류 현은 굳이 팀원들에게도 숨기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알리지도 않았지만. 두 달 전쯤에 우연히 그녀들도 류 현의 누나인 세아의 상태를 알게 되었다.


실례인 걸 알지만 화련이 돌 직구를 던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녀 또한 장기간 입원해 있는 가족을 돌보는 이의 심정을 알고 있었으니까. 세아에게 문제가 있다면 훈련 때문에 그를 붙잡고 있는 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검성이 또 사고 쳤어요? 이 여자가 진짜...”

화련이 눈에 불을 켜고 벌떡 일어서려고 했다. 류 현은 슬쩍 어깨를 눌러 앉히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안 그래도 백혜라에게 왕창 긁히고 있을 텐데 뭔가를  할 수는 없었다. 이번 일에 한해서 검성이 무고한 것도 사실이었고.

“그게 아니라 다른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서요.”
“다른 일?”
“?”

‘그래, 숨길 일도 아니지.’

류 현은 뒷머리를 긁적거리다가 입을 떼었다.

“엊그제 ‘공방’의 대리자에게 조만간 ‘공방’의 마스터와 만날 자리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순순히 만나주기로 했네요? 처음에 띠겁게 굴던 거 생각하면 일년 정도 걸릴 줄 알았는데.”
“마, 맞아요. 통째로 사가는 것도 아니면서 주문은 까다롭고...”


두 여자가 쏟아내는 불평에 류 현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그녀들의 불만은 당연한 것이었다. ‘공방’은 이렇다 할 메리트를 제공하지도 않고, 갑자기 추가 주문을 불쑥불쑥 하면서 주문은 까다롭기 그지없는 짜증나는 거래 상대였으니까. 류 현이 먼저 나서서 선을 대었기에 입을 다물고 있었을 뿐, 불만이 없는  아니었다.

특히 희란은 이래저래 불만이 많이 쌓였는지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류 현이  모습에 약간 얼이 빠져있자 화련이 정리하고 나섰다. 그녀는 이제 괜찮아졌는지 가슴에서 손을 뗀 채로 말했다.

“그것 때문에 고민하고 계셨던 거? 매번 생각하지만 마스터는 고민하는 기준이 참 희한하네요. 그냥 주인 성질이 더러운  말고는 별 특이점도 없어 보이던데. 아, 그  그 단창인가 뭔가는 좀 인상적이긴 하더라. 희란아  기억나? 마력 집어넣으면 황금색으로 변하던 거.”
“아, 기억나요. 언니가 갑옷 멧돼지를 그냥 뚫어버렸었죠?”
“응, 완전 마력 먹는 하마라서 두  이상은 쏘지도 못했지만. 피탄 면적도 너무 좁아서 별의미도 없었고.”
“실질적인 타격 능력은 별로지만 괴수 방어력 무력화 측면만 보면 수위 급이죠.”
“뭐, 그렇긴 하죠. 웬만한 아티펙트들도 다이렉트로 타격은 못 주니까요. 그런데 우리 팀한테는 크게 의미 없는 성능 아니에요? 우리 팀, 화력자체가 모자란데. 마스터도 화력 형이라기보다도 괴수 방어력 무시하는 쪽이고요. 보조 장비 보다는 마법사나 하다못해 마스터 보조해 줄 근접계열이 필요한  같은데.”
“화력은 아티펙트로 보강할 생각입니다. 희란 씨 훈련도 겸할 수 있으니 그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근접계열 영입은...생각 중이긴 합니다만 마땅한 인재가 없군요.”
“아티펙트요? 그린 이상에서  만한 화력이면 거래자체가 법으로 막혀있지 않아요?”


대소환 초기, 그러니까 짧았던 1차 대소환 시기에 플레이어들에게 행해졌던 국가차원의 범죄 때문에, 플레이어의 신변에 대한 문제는 국가에서 독단으로 손을 대지 못하게 국제법이 막고 있다.


하지만 던전 안에서 나오는 물건들에 대해서는 다르다. 던전에 대한 별 지식이 없었던 때에는 별의 별 제한이 다 붙었었다. 던전에서 채취해 온 것들은 의무적으로 한 달 이상 보관소에 묶인 채, 미지의 균이나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게 확인 되고 나서야 불출이 허가 되었고, 자체로 무기가 되는 마법 아티펙트는 사실상 거래 불가능 품목이었다.


지금이야 여러 가지 규제가 풀렸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아티펙트의 존재는 여전히 규제대상이다.

당연한 일이다. 클리어 전의 던전에서 랜덤으로 나오는 아티펙트의 생산을 국가가 조절할 수도 없으니 유통을 규제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블루 이상의 던전에 대한 국가의 마크가 견고한 것도  때문이다. 거기서부터 주목할 만한 수준의 아티펙트가 나오기 시작하니까.

물론, 아직까지는 괴수 방위력 차원에서 규제하는 측면이 크지만. 아티펙트가 아무리 화력이 좋아도 괴수에게 효율적인 무기이지, 일개 포병대대의 화력이나 미사일에 댈 정도는 아닌 것이다.


‘그것도 청뢰급이 나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그것도 류 현이 기억하는 유니크 이하의 아티펙트에나 통용되는 이야기다. 이제 퍼플 던전을 찔러보는 정도인 인류가 알 턱은 없겠지만. 류 현은 그런 유니크 급의 아티펙트 소유자나 소유 길드가 판을 치던 시대를 살았기에 누구보다 그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화력을 아티펙트로 보충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거래가 불가능하다면 그냥 직접 찾아내면 된다. 모든 유니크 아피펙트의 발견처를 알고 있는  아니었지만, 한국에서 발견된 것 중 하나의 발견처는 알고 있었으니까. 아티펙트에 대한 규제도 류 현이 알고 있던 것보다 비교적 느슨한 편이니, 소유 사실을 확정시킨 후에 규제가 생겨봤자 큰 의미는 없을 터.

‘귀찮은 규제 생기기 전에 청뢰도 확보 해놓긴 해놔야 하는데.’

“물론 구매는 힘들겠죠. 우리 팀이 지금 보유하고 있는 자금이 그 정도 수준도 안 될뿐더러, 화련 씨 말씀대로 거래 금지를 뚫기에는 인지도도 모자라죠.”
“그럼 어떻게...?”
“직접 찾아내야겠죠.”
“직접 찾아내요?”


류 현은 아티펙트가 길가에 널린 것인 마냥 한가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청뢰의 발견처를 알고 있는 그로서는 당연한 여유였지만.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는 화련은 고개만 갸웃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전에도 그래왔듯이 화련은 굳이 깊게 파고들진 않았다. 그가 곤란해 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각별한 재미지만 뭐든 정도가 있는 법이고, 그 이전에 그는 그녀의 마스터였다. 화련은 그런 면에서는 꽤나 깍듯한 편이었다. 정작 그렇게 대해지고 있는  현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예, 그래서 앞으로는 미개척 던전 위주로 다닐 생각입니다.  고생스럽겠지만요. 정 곤란하시면  혼자서라도 가면 되고요.”
“에이,  혼자가요. 멀쩡한 팀 냅두고. 마스터 이런 소리 할 때마다 듣는 사람 회의감 드는  알아요? 무슨 꿔다놓은 보릿자루 취급도 아니고.”
“제 개인적인 계획이기도 하고...”
“어차피 그거 대여형태든 뭐든 간에 우리 들려줄 거잖아요? 정 찔리시면 보너스나 두둑하게 챙겨주시든지.”
“마, 맞아요. 그렇게 하셔도 되요. 대신 돈말고 회식으로...”

이리저리 눈치만 보던 희란이 기다렸다는 듯이 동의했다. 화련은 픽 웃더니 자신보다 머리 두 개 분량은 큰 희란의 머리칼을 헝클어놓았다.

“봐요, 얘도 좋다고 하잖아요. 마스터는 우리 의견 존중해주는 것 같으면서 은근히 독불장군이라니까.”


할 말이 없어진 류 현은 애꿎은 뒷머리만 긁적거렸다.


“근데 ‘공방’ 마스터랑 만나는  왜요? 그냥  만나서 다른 거래하기로 했어요?”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앞으로  더 빡세질  같아서 말입니다”
“무슨 소리에요?”
“해란 씨한테 듣기로는 ‘공방’이 여기저기 손을 뻗친 기업체나 길드가 제법 된다고 합니다.  그래봐야 전속도 아니고 가끔 발주 받는 모양이던데, 그런데 원료 거래를 고정적으로 하는 곳이 없다더라고요.”
“아, 그래서 주문이 그렇게 지랄 맞...”

화련이  현의 눈치를 보며 말을 멈췄지만 충분히 뒷말을 예상할 만큼 나온 뒤였다. 류 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얼버무렸다.

“주문이 까다로웠던 이유도 그런 이유 때문이겠죠. 제가 선을 댄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지금 선을 대놓으면 여러모로 후에 편해질 테니까요.”
“이 참에 전속 공방도 만드실 생각이에요? 우리 팀 규모 생각하면  빠른 거 같은데.”
“당장 그럴 건 아니고요. 일단 선을 대놔야 할 거 같아서요. 규모가 작아서 그렇지 저번에 투척용 단창 보면 실력은 있어보였으니까요.”
“흐음,  주거래 공방이 있으면 좋긴 하죠. 짜증나는 주문 맞춰서 괴수 해체하는  좀 귀찮긴 하지만 마스터 의향이 그렇다면야, 그렇게 하세요.”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좀 짜증난다고 여태껏 해온 거 공염불로 만들 수도 없잖아요?  그 단창 우리 팀에 별 필요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마스터가 따로 화력 보충할 계획 짜놓으신  있는 거 같으니까. 그거 말곤 딱히 반대할 이유는 없죠. 그냥 괴수 사체에   두 어  더 하면 되니까요.  미안하시면 제 순번 좀 줄여주시고요.”

화련에게 답을 받은 류 현은 희란을 돌아봤다. 그의 시선을 받은 희란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 괴수 해체에 대해서는 발언권은커녕  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는 그녀기에 답은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알겠습니다. 그건 예정대로 자리에 나가면 되겠군요. 그리고 말입니다...”
“응? 뭐가 또 있어요? 엊그제 술 먹고 뻗었으면서 많이도 벌려놓으셨네.”

류 현은 다시금 어색하게 웃어넘기는 수밖에 없었다. 오늘 화련이 본격적으로 따지고  줄 알았는데 그녀는 얌전히 훈련에 임했고, 지금도 빈정거린다기보다도 그냥 하는 말 같았으니까. 그로서는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제 저녁 검성의 뒤를 봐주고 있는 곳과 접촉했습니다. 정확히는 접촉이라기보다도 검성을 통해서 그냥 연락한 겁니다만. 언제든 만나도 좋다고 답변을 얻은 상태입니다.”

화련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희란도 그 기세에 놀라서 따라서 몸을 일으켰다.  현이 앉은 채로 그녀를 올려다보자 화련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훈련할 때가 아닌데 왜 훈련부터 한 거에요? 대충 생각해봐도 이쪽이 완전 큰일인데!”
“약속이잖습니까. 제가 최소 일주일의 여섯 시간 이상 두 분을 봐드리는 거요.”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땀냄새 풀풀 풍기면서 할 얘기는 아닌 거 같으니까, 샤워장 먼저 쓸게요. 희란아? 가자.”

아직 사태 파악이  끝나서 멍하니 서있던, 자신보다 훨씬 큰 희란을 질질 끌고나가는 화련의 모습을 보며 류 현은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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