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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화 〉탐식마(貪食魔) (33/429)



〈 33화 〉탐식마(貪食魔)

‘..괜히 오늘 왔어. 그냥 예정대로  걸.’


그것이 자리에 앉으면서 류 현과 그의 팀원들의 안색을 살핀 서해란의 결론이었다. 플레이어 팀 사무실이 너무 풀어진 분위기인 것도 안 좋다고 생각하는 그녀였지만 이건 아니었다. 용잡이 팀의 팀원들은 그들의 팀장이 뿜어내는 분위기에 짓눌리고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문제?’

해란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듯 한 그를 바라보며 유추해보았다. 류 현은 딱히 화난 것 같은 제스처를 보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좋아보이지도 않았다. 그의 가까이 다가가자 더욱 또렷해진 칼날 같은 기세에 가슴이 답답해  지경이었으니까. 실제로 그녀의 옆에 자리한 박주희는 연신 손부채를 부치고 있었다.

‘뭘 물어보는 건 글렀네. 화낼지도. 그냥 거래 얘기만하고 가야겠다.’

좋은 핑계거리가 없어지는 셈이지만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 그를 떠보려고 하는 건 정말 멍청한 짓일 테니까. 해란이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말을 고르려던 때였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있던  현이 입을 떼었다.

그를 제외한 사무실 안의 모든 이의 시선이 류 현의 입술에 모였다.

“제가 어제 내일 모레까지 시간을 드리겠다고 했었습니다만. 너무 길다고 생각하셨던 건지, 세   그 이후에 제게 연락을 주셨습니다. 따로 이야기할 시간을 내달라고 말이죠.”

오늘 사무실에 모여 있는 것만 봐도 뻔히 알 수 있는 사실이었지만, 해란은 맞은편의 두 여자와 차례대로 시선을 맞춰보았다. ‘당신네 팀장 오늘 왜 저래요?’ 화련과 희란은 모르겠다는 대답마저 거부하고 시선을 피했다.


명백히 비정상적인 반응에 해란이 의아해 하고 있자 류 현의 다음 말이 떨어졌다.

“연락을 받은 직후에는 단순히 제가 의도전달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생각을 해보니까, 좀 이상하더군요.”


류 현은 말을 끊고 좌중을   슥 돌아보았다. 한 명씩 시선을 맞춰가면서. 그가 내뿜고 있던 기세는 사그라지기는커녕 더욱 짙어진 채 였고, 가뜩이나 찔리는 게 있었던 그들  누구도 그와 2초 이상 눈을 맞추지 못했다. 그는 하나같이 자신을 외면하고 있는 좌중에게 냉담한 어조로 말했다.


“전화 통화나 문자로 재차 확인하면  걸 왜 그랬을까.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었고, 전 지금 여러분의 반응을 보고 확신을 얻었습니다.   다 저를 떠보고 싶어서 자리를 요청하셨군요.”


류 현은 짧게 한 숨을 몰아쉬었다. 목소리를 내고 있는 건 그 뿐이었기에 모두가 그 소리를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고, 모두가 한 숨 소리에 움찔했다.  현은 선고를 내리듯이 단정적으로 말했다.


“돌아가십시오.”

그 말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류 현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그는 반론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덧붙였다.


“제가 여러분께 시간을 드린 건  의도를 생각해서 제 기분을 맞춰주기 원해서가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어제 했던  중에서 본심과 다르게 에둘러서 한 말도 없고요.  목숨을 같이 할 동료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취미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이 저를 떠보려고 시도하는 걸 알고 나니 그렇게 유쾌한 기분은 아니군요.”

류 현에게 모였던 시선이 다시 바닥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던 그는 다시 한 숨을 내쉬었다. 이쯤에서 달래줘도 되겠지만 그도 그럴 심적 여유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 세아를 돌보다가 왔으니까. 지금 자리를 빨리 파하고 싶을 뿐이었다.


“돌아가서, 제 생각이 아니라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어떤 게 좋을지 결정 하십시오. 오늘을 기준으로 내일 모레까지 다시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생각이 많으신 거 같으니  이상은 시간을 드려도 독이 될 것 같군요.  이상 시간을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내일 모레까집니다.”


류 현의 말이 끝나자 네 여자는 부리나케 자리에 일어나서 떠날 준비를 했다. 그 모습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던 류 현이 뭔가를 떠올렸는지 해란을 불러 세웠다.


“서해란 씨.”
“네엣?”


저도 모르게 낸 새된 소리에 해란에 입을 급히 틀어막았지만, 그렇다고 나간 소리가 되돌아오진 않았다. 나쁜 짓을 하다 걸린  처럼 어쩔 줄 몰라 하는 해란에게 류 현이 말했다.


“마나 포션 계약건도 그 때 이야기 했으면 좋겠군요. 어느 쪽을 선택하시던 단순한 스폰서 관계로 남기도 힘들 것 같으니 말입니다. 무턱대고 계약을 체결했다가는 서로 나중에 얼굴 붉힐 일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하도록 하죠. 내일 모레 뵙겠습니다.”


 자리를 위해서 밤새도록 준비한 자료를 한 아름 안고서 해란은 그렇게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네 여자는 양치기 개에게 몰리는 양떼처럼 순식간에 문 밖으로 몰려나갔다. 혼자 남게  류 현은 소파에 몸을 내맡기며 고개를 젖혔다.

오 분여 정도 미동도 없이  쳐져있던 그는 오른손만 움직여 어디론가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다시 시체모드로 돌아갔다.

그가 다시 움직이게 된 건 십 분여 정도가 흐른 뒤였다. 똑똑하고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 들어오십시오.”

문이 열리고, 다가오는 발소리가 지척까지 다가왔지만 류 현은 그 자세 그대로 내방자를 확인하지도 않고 있었다. 이윽고 내방자가 목소리를 내자 그는 고개만 들어 자신의 생존을 알렸다.

“많이 피곤하신 거 같은데 저 내일 다시 올까요? 마스터.”
“아닙니다. 아쉬운 건  쪽인데 그럴 수야 없죠. 좀 긴장이 풀려서 그렇습니다.”


문을 열고 온 이는 백화련 이었다. 화련은  쳐져있는 그를 이리저리 살피다가  현의 뒤쪽에 있는 찬장으로 향하며 물었다.

“커피, 드려요?”
“...설탕 많이 부탁드립니다.”


컵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현은 다시 눈을 감았다. 잠깐 눈을 붙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생각의 끊을 놓아버리자 사방에서 오만가지 생각들이 덤벼들어 그를 괴롭혔다.

벌써부터 시력이 심하게 떨어진 세아를 안전하게 돌 볼 방법이 필요하다. 검성과 협업을 밝히기 이전에 용잡이 팀을 화려한 데뷔를 시킬 것인가. 서해란이 검성과의 관계를 의식해서 계약이고 뭐고 파투낸다면? 만약 오희란이 용잡이 팀을 따라가는 걸 거부할 경우 적어도 눈에 보이는 곳에 묶어 두어야한다.

이걸 해야, 아니 저것부터 해야. 해야 한다, 해야 한다, 뭐든 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테니까. 류 현은 자신의 눈꺼풀 위로 손바닥을 꾹 눌렀다. 분명히 어둠 뿐 인데도 망연하게 의사의 질문에 대답하던 세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그 표정이 싫었다. 미치도록 싫었다.

그리고 그렇게 될 거라는 걸,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라는  알고 있었음에도,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이라고 안심하고 있었던 자신이 증오스러웠다.


무슨 자신감으로 그랬을까? 자신이 거의 독식하다시피 한 네임드 괴수나, 밥 먹듯이 부딪힌 3차 대소환 이후 세계의 축을 이룬 군벌이나 길드들에 대해서는 자신할 만하다. 실제로 겪은 일이니까.


하지만 세아의 일은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되었다. 그 누구도 세아의 병세를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세아와 비슷한 일을 한 이들이 쓰러져나가자, 괴수사체 공정과정에서 새어나온 마나가 몸에 축적되면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거라는 예측정도가 전부였다.

세아는 같은 병세를 앓고 있는 환자 중에서 최장기간 생존해 있었지만, 그 병치레 기간이 무색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뿐. 그녀가 병세 속에서 계속 살 수 있었을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는 세아의 병에 대해서 아는  없었다. 절망적일 정도로.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봤던 엘릭서에는 전생에서도 닿지 못했었다. 존재한다는 것과 그것을 복용해서 살아난 부자와 만나봤을  실물은 보지조차 못했다.

그런데도 안심하고 있었다. 아직 기간이 남았다고, 이번에는 엘릭서에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막연한 희망에 잠겨서.

‘병신새끼..’

하지만 그는 자기혐오에 자신을 매몰시키는 짓은 하지 않았다. 해야  일이 많았다.


세아의 병세에 답이 될지 아닐지 모를 엘릭서의 행방을, 제조법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황금손’과 전략적 제휴든 뭐든 해야만 한다. 그 남자에게 필요한 건 돈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용잡이 팀이 필요하다. 혼자서도 충분히 그 수준에 도달할 수는 있겠지만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걸 위해서는 일단 용잡이 팀의 구성을 확정 시켜놓아야 한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나자 복잡한 머릿속이 그래도 좀 정리 되는  했다.

‘그래, 지금 제일 집중해야하는 건 용잡이 팀이야. 전제 조건이 갖춰져야 ‘황금손’을 족쳐서 엘릭서를 뜯어내든 말든 할 거 아냐.’

류 현은 자신에게 악담을 몇 마디 퍼부어준 다음 눈꺼풀에서 손을 떼고 앞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커피가 그의 앞에 놓여 있었고, 고개를 좀  들자 걱정스러운 눈초리를 하고 있는 화련이 보였다. 류 현은 고개를 갸웃하며 커피잔에 손을 뻗었다. 커피가 차갑게 식어있었다.


멍하니 커피물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던 류 현이 물었다.

“...제가 얼마나  때리고 있었습니까?”
“제가 시간을 본 다음부터 삼 십분 쯤 그러고 있었어요.”
“......”

겨우 정리한 자기혐오의 감정이 다시 부풀어 오르는 느낌에 류 현은 다시 손바닥으로 눈꺼풀을 문질렀다.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이의 행동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피곤에 찌든 모습이었다. 보다 못한 화련이 입을 열었다.

“마스터.”
“...괜찮습니다.”
“보고 있는 제가 안 괜찮아서 그래요. 팀 스쿼드 확정되기도 전에 마스터가 쓰러지겠어요. 혹시 집에 무슨  있어요?”


 현은 멀거니 화련을 바라보았다. 한 달간 그녀를 쫓아다닐 때 그녀의 이모 또한 세아와 비슷한 증세로 입원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라면 알고 있지 않을까? 손 쓸 도리도 없이 가족이 천천히 메말라가면서 사람이 가진 것들을 하나하나 잃어가는  지켜보는 심정이 어떤 것인지. 공감해 주지 않을까? 아무 생각 하지 않고 그냥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현은 떼었던 입을 다물고 고개를 내저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화련이 의아해했지만 류 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화련 씨가 신경 쓰실 만  일은 아닙니다. 조금 피곤해서. 예, 좀 피곤해서 그렇습니다. 어제 여러 가지 일이 있었잖습니까.”
“그럼 오늘 말고...”
“화련 씨와의 이야기를 끝내고나서 아무 일도 안하고 쉬겠습니다. 그럼 되겠습니까?”
“후우, 알겠어요.”

화련은 말을 고르는 것인지 조금 지체한 후 말했다.

“마스터. 우리 팀을 만든 목적이 더 강해지기 위해서라고 하셨죠? 지금은..그 뭐더라, X던전이 목표고요.”
“정확히는  X던전이 최상위 던전이니 그렇게 잡고 있습니다. 더 상위 던전이 있다면 그게 목표가 되겠죠.”
“이제 확실하게 이해했어요. 솔직히  어제 그 말 듣고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사람 잘 못 보진 않았구나, 하고요.”


그녀가 물어주길 바라는 것 같았기에 류 현은 물었다.

“다행이라고요?”
“이런 말 하면 좀 이상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전 괴수가 밉거나, 돈이 필요해서 던전에 가는 게 아니에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 원래 의대생이었거든요.”

알고 있었다. 이번 생에 따로 조사할 필요도 없이, 전생의 그녀의 입으로 직접 들은 얘기였다. 그녀는 아지다하카를 만나기 전에는 괴수를 미워하지 않았다고 했다. 돈이 필요해서 플레이어로 활동한 건 더더욱 아니라고. 그리 말했었다.

류 현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그의 눈치를 보던 화련은 말을 이었다.


“전 제가 가진  힘을. 그러니까 이 마법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지 알고 싶어요. 끝은 있는지, 누군가가 만들어서  머릿속에 집어넣은 거라면 목적이 뭔지. 그리고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그러시군요.”

애써 무표정을 연기했지만 류 현은 다시금 화련에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있는 화련은 그가 알았던 화련보다 6살은 더 젊다. 그렇다는 건 화련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길만 추구해왔다는 말이 된다.

던전에 파묻혀서 사는 플레이어는 많았지만 명확한 목표를 가진 이는 드물다. 유혈 속에서 삶이 고꾸라지는 게 일상인 던전을 들락거리면서 목표를 끝까지 바라보는 건,  아수라장 속에서 계속 살아남는 것보다 힘든 일이다. 눈앞의 여자는 그것을 계속해서 관철해왔다. 이번 생에서도 아마 죽을 때까지 그럴 테지.


화련은 언제나 자신의 목표를 향했던 곧은 눈으로 류 현을 바라보았다. 류 현이 오랜만에 전우의 향수에 빠지려고 하는 그 때 화련은 자신의 의지만큼이나 곧은 질문을 던졌다.

“그러니까, 알고 싶어요. 마스터. 마스터가 추구하는 목표는 정말 마스터의 의지로 추구하게 된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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