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2화 〉탐식마(貪食魔) (22/429)



〈 22화 〉탐식마(貪食魔)

회귀 직후, 정말 마지못해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류 현은 안돌아가는 머리를 최대한 굴려서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웠었다. 용잡이 팀의 최소 구성인원을 정하고,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낼지, 동맹을 맺어야하는 단체들도 대강 정해두었다.


미래가 자신이 아는 대로 흘러간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그게 멍청히 손 놓고 있어야 될 이유는 되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계획을 세우는 와중에 정말 원치 않았지만 보류로 남겨두었던 게 ‘링커’의 영입이었다. 아는 게 없었으니까.

과거 용잡이 팀은 내력 같은 걸 시시콜콜하게 따지는 팀이 아니었다.  내버리고 악룡을 잡아 족치자는 기치 아래에 모인 자들이 서로 과거를 캐서 뭣에 쓰는가. 그렇다고 팀원 간의 사이가 나빴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좋은 편이었다.

악룡 사냥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마지막 전우가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서로 너무 늦게 만난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런 분위기와 동떨어져 있는 건  현과 ‘링커’정도였다.


류 현이 악룡 사냥 이외의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랬던 것에 반해서, ‘링커’는  애매한 포지션이었다. 용잡이 팀의 일원이니 그녀 또한 당연히 아지다하카에 대한 원한이 있었지만  현처럼 악룡 사냥에 모든 걸 쏟아 붓는 쪽은 아니었다.

그 반대에 가까웠지. 다른 이들이 보기에 그녀는 반쯤 초탈한 상태였다. 악룡의 극독 때문에 성대와 얼굴이 드러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고, 중독 되서  전체가 썩어 들어가는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아지다하카에 대한 강렬한 살의를 내보인 적이 없었다. 동료애를 갈구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신체적 어려움을 핑계 삼아 적당히 거리를 둘 뿐이었다.


그래서 류 현은 ‘링커’에 대해서 별로 아는  없었다. 어쩌다 한 번 기분이 내킬 때마다 그녀가 끼적거리는  마디를 통해서 각성시기와 성별정도를 알고 있는  전부였다.


그나마 그녀와 자주 어울리는 편이었던 ‘에스퍼’라면 다른 뭔가를 더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팀원들의 과거사에  관심이 없었던  현은 묻지 않았다. 어느 누가 자신이 죽어서 과거로 날아온 뒤에 팀을 재소집하는 처지가 될  예상했겠는가.


 수 없이 ‘링커’찾기를 우선순위 최하위로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제 발로 찾아올 줄이야.’

뜻밖의 행운 정도가 아니라 행운이 그의 뒤통수를 후리러 직접 찾아왔다.

류 현은 이미 한 번 오희란과 만났을 때 자신의 감을 무시했었다. 속된 말로 ‘뇌를 떼어놓고 하는 행동’을 선호했던  현에게 있어서 그건 꽤 이례적인 행동이었다. 그렇게까지 걷어찬 기회였는데, 오희란이 알아서 다시 그를 찾아온 것이다.

류 현은 그녀의 능력을 보자마자 속으로 이미 결론을 내놓은 상태였다.


‘오희란은 ‘링커’다.’


그가 느껴본 그녀의 능력이 가장 강력한 증거이며 다른 정황들도 다시 생각해보면 들어맞는다.

‘링커’는 자신이 의식불명이 되기 전에 짐꾼 일을 하다가 괴수의 습격을 받았다고 했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플레이어가 된 후에는  협회소속이었으며, 협회가 3차 대소환으로 괴멸되자 재건 운동에  발 걸쳤다가 악룡 아지다하카에게 변을 당했다고 그리 말했다.

희란에게서  현을 빼면 다 들어맞는 말이다. 류 현이 그 원정대에 참가하지 않았으면 희란은 목 위쪽으로 몇 바늘 정도로 끝나지 않는 큰 부상을 당했을 것이다. 재수가 없으면 식물인간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터.

‘짐꾼 짐에 텐트 넣어가는 인간들이 응급조치를 똑바로 할 리가 없지.’


몇 년 자고 일어났다고 사람 성격이 확 바뀔 리도 없으니 그녀는 그대로 협회의 말을 따라서 검사를 받고 딱히 마음 가는 곳도 없었을 테니 협회소속 되었을 것이다.

‘진짜 골 때리네.’

작정하고 맞추려고 드니, 다 맞아 들어간다. 자신이 감을 무시하고 나름 정황에 맞춰서 생각한 게 바보 같이 느껴질 만큼.

설사, 이게 억측이고 엉터리더라도 그에게는 별 상관없는 일이다.

그가 필요한 건 속내는커녕 신상명세도 파악 못한 ‘링커’ 자체가 아니라 그녀의 능력이니까. 그리고 오희란은 그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만큼은 확실하니 나머지는 어찌되든 별 상관없다.


‘‘링커’가 다른 인간이어도 나쁠  없지.’


만에 하나 그가 만났던 진짜 ‘링커’가 따로 있더라도 그건 호재지 타박할 일이 아니다.

‘링커’는 이전 생에서 이미 검증된 강력한 패고, 강한 패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이미 하나가 손안에 들어온 상황이라면  생각할 필요도 없다. ‘링커’의 성정을 생각해보면 스카웃까지는 몰라도 동맹정도는 어렵지 않게 체결   있을 터.


웃음이 인색한 편인 류 현조차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상황이다.


문제는,


“왜 그렇게 보시는 거죠.”
“왜 이렇게 본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무슨 독심술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압니까.”

옆에서 그를 짐승 보듯이 노려보고 있는 화련의 존재였다. 화련은 오희란이 정신을 잃고 난  줄곧 그를 감시하듯이 바라봤다.

아니 정확히는 류 현이 오희란을 확 끌어당겨서 품안에 넣고 나서부터. 오희란을 소파에 조심스럽게 뉘일 때는 뭐가 그리 불만인지 입가를 씰룩이기까지 했다.

이쯤 되면 사람간의 관계에 둔한 류 현도 그녀가 뭔가에 굉장히 불만스러워하고 있다는   수밖에 없다.

잔뜩 골이 난 화련에 대한 류 현의 대처는,

“혹시 모르니까 구급차라도 불러 봐야하나.”


무시였다. 좋은 일을 만나 좋은 기분을 자처해서 잡치고 싶진 않았다.


그는 화련의 시선을 무시한 채, 희란에게 새로 들여온 담요를 덮어주었다.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던 화련이 결국 볼멘소리를 냈다.

“와 대우 차이 나는 거 봐. 내가 몇  튕겼다고 지금 차별하는 거죠?”
“무슨 차별을 했다고 그럽니까. 따지고 보면 화련 씨 쪽이 더 고급 대우였지.”
“고급 대우요? 제가 무슨 고급 대우를 받았는지 전 저언혀 기억이 안 나는데요?”
“삼고초려도 아니고,  달 동안 꾸준히 스카웃 제의했지, 팀에 들어오겠다고 확답도 안한 사람  마력 털어서 벽도 넘게 해줬고, 지쳐서 뻗어버린 걸  사비까지 털어서 고급 호텔에 보내줬잖습니까.”
“이익...”


작디작은 화련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 모습이 애처로워서라도 사과했겠지만  현은 그런 감성을 밥 말아 먹을 인간이었다. 그는 기세등등하게 한 번  쏘아붙였다.

“봐요, 할 말 없으시죠? 당연히 그래야죠. 내가..”
“됐어요!”


화련은 소리를  지르더니 사무실 문을 쾅 닫고 나갔다. 류 현이 어이없다는 듯이 문쪽을 바라보고 있자, 십 여초  뒤에 다시 문이 열렸다. 화련은 목덜미까지 빨갛게 익은 상태로 물었다.

“...화장실 어디에요.”
“복도 쭉 걸어가다가 오른쪽으로  다음에 왼쪽입니다.”

화련은 다시 문을 닫고 나갔다. 문을 닫기 전에 왜 남자 여자 표시를 안 해놓느냐고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류 현에게는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는 구급차 생각까지 한  무색하게 편안한 표정으로 잠든 오희란을 내려다보다가  쪽을 한 번 보고는 한숨을 내어쉬었다.


“하아-”

이전 생에도 잘 제어가 안 되었던 두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

일주일 뒤. 사무실.


 현에게 서류를 건네받던 서해란은 손이 미끄러질 뻔 했다. 눈앞의 남자가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네? 벌써..팀을 구성을 끝내셨다고요?”
“예. 편성이 끝난  아니고, 최소한의 짜임새를 갖춘 정도긴 하지만요. 필요한 인원이나 영입할 만한 인재가 보이면 규모 확장은 계속  겁니다.”
“아니, 하지만 류 현 씨를 포함해도 세 명인데요?”
“무슨 문제라도?”
“아, 아뇨. 문제라기보다도..”

서해란은 열심히 머리를 쥐어짜내 봤지만 결국 나올 말은 하나였다. 해야  말 또한. ‘팀 구성이 너무 허술하다.’

공방밸런스를 생각 안하고 마구잡이로 인원만 채우는 저급 던전용 급조 원정대도 최소 다섯 명을 맞춘다.


그 이하로 떨어지면 기껏 모아놓은 인원까지 던전 진입을 거부하고 떠나가곤 한다. 그 심리적인 장벽을 만든 건 플레이어 협회였다.

협회는 원정을 신고한 원정대의 인원과 도전하는 던전수준, 그들의 손실율을 종합해서 원정대의 안전을 위해서는 최소 5명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뒤에 그 만큼 중요한 공방밸런스에 관한 수많은 주석이 붙어있었지만, 사람들이 눈여겨 본 건 최소 5명이라는 숫자였다.

협회의 의도도  쪽이었다. 이윤 문제 때문에 극단적으로 인원 감축을 시도하다가 원정대가 괴멸되는 걸 막는 것. 그게 진짜 의도였다. 협회의 의도는 훌륭하게 먹혀들었고, 레드급 정도의 저급 던전이 아닌 이상 플레이어들은 5명 이하로는 던전을 들락거릴 생각도 안했다.

물론 서해란은 협회가 뿌린 찌라시 아닌 찌라시만 믿고 이러는 건 아니었다.

‘길드 소속도 아니면서 진짜로  명으로 팀을 돌리려고?’


서해란의 애기살 팀원의 숫자는 그녀를 포함해서  여섯. 동생인 해은을 키워서 넣을 걸 생각하고  명 더  받고 있는 것이니 실질적으로는 일곱 명이라고 봐야한다.

그런 서해란도 블루 던전을  때는 자신의 팀만 끌고 가진 않는다. 길드의 요청도 있기도 하지만 자신이 필요해서 지원을 요청해서 최소 열 명을 채워서 간다. 이윤에 눈이 멀어서 리스크를 자처할 짬밥도 아니지만 그 이하의 인원으로 던전 진입을 시도하면 팀원들이 반발하기 때문이다. 돈도 좋고, 기록도 좋지만 그건 살아있을 때 해당되는 이야기니까.

다른 팀들도 별로 다를 건 없다. 길드 소속이면서 자신의 팀만으로 던전을 클리어 하는 건 저급 던전 담당뿐이다. 블루퍼플 부터는 인원수 제한이 붙는다는 이야기를 들어보긴 했지만 그녀에게는 아직 별세계이야기다.


그러니 서해란이 당황하는 건 당연한 이야기였다. 아무리 류 현이 각성  달여 만에 그린 던전을 혼자 씹어 먹은 괴물이라도, 아니 그런 괴물이기 때문에 더 위험했다.

솔플도 위험하지만 솔플만 줄창 하던 사람이 어쭙잖은 생각으로 팀을 운용하면 어떤 대참사가 터질 것인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만큼은 자신의 예상이 맞을 것이다. 그 증거로 류 현은 달랑  명으로 팀 짜임새를 맞췄다고 하고 있다.

‘그게 아니면 설마 다 자기랑 비슷한 스타일로 끌어 모은 건가?’

팀원 전원이 그린 던전까지 솔플이 가능한 솔로 플레이어 팀.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그럴 리가 없지. 그런 괴물이 그렇게 흔할 리가.’

“걱정하시는 바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도 꽤 생각해서 짠 조합이라서요. 실제로 몇  돌려보니 꽤나 만족스러운 수준이었고요.”


거짓말이다. 류 현은 ‘링커’를 3차 대소환 전에 찾을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둘 아니, 셋의 조합이 엄청난 시너지를  수 있을 거라는 건 사실이지만.

당연히 그런 사실을 모르는 서해란으로서는 류 현의 여유로운 표정이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보일 뿐이었다.


“뭐, 이렇게 말로만 해봤자 별 의미 없는 일이죠.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당장 블루 던전은 좀 오버고 저번처럼 그린 던전 정도면 괜찮겠죠. 기한은 음..팀원들한테 휴식을 좀 주고 싶으니 일주일 후 어떻습니까?”
“네? 아직 팀원 구하신지 일주일 밖에  되지 않으셨나요. 분명 그렇게 들었는데..”
“예, 그렇게 말씀드렸었죠. 일주일 동안 좀 빡세게 굴렸습니다.”
“......”


다른 이가 그렇게 말했다면 서해란은 코웃음 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두 달 만에 혼자 그린 던전을 씹어 먹을 정도로 성장한 괴물이다. 그런 남자가 빡세게 굴렸다고 하면 어느 정도 수준인걸까. 서해란은 갑자기 아직 보지도 못한 그의 팀원들이 불쌍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