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탐식마(貪食魔)
화련은 현관문을 열다 말고 두 눈을 비볐다. 혹시 자신이 잘 못 본게 아닌가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잘못 본 것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잔혹한 법이다. 그녀의 집 앞마당을 쓸고 있던 남자, 류 현이 그녀 쪽으로 돌아보았다.
“어?”
“아, 안녕하세요.”
“저기, 혹시 모르니까 물어보긴 하겠는데. 지금 뭐하는 거예요?”
“나오시는 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냥 기다리기 무료해서 빗자루 질 좀 하고 있었죠.”
“혹시 어제부로 팀 창단한 게 아니라 정신병원에서 탈출했어요?”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등록증 보여드릴까요?”
“아뇨, 가세요.”
“예?”
“가시라고요.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전 어디에 소속될 생각 없고, 설사 그런 생각이 들더라도 그 쪽 팀에는 안 들어가요. 그러니까. 가세요.”
류 현은 머쓱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더니 빗자루를 정리해놓고는 미련 없이 휘적휘적 떠났다. 싱겁기 그지없는 퇴장이었다. 화련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그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 날 이후, 류 현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서 화련에게 거절당하고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이를테면 기껏 기분 전환하려고 간 영화관 매점 음료수 코너에서 불쑥 나타난다 던가. 헬퍼 일을 마치고 내려오는 산 아래에서 택시를 잡아놓고 기다렸다가 거절 한마디에 택시비까지 이미 내놓은 택시를 양보하는 등 스토커 수준으로 그녀를 쫓아다녔다.
웃긴 건 자신이 하려는 말을 한마디도 못했더라도 화련이 먼저 거절의 말을 내뱉으면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난다는 점이었다. 작정하고 신고하려고 했던 화련도 그런 맥 빠진 퇴장이 같이 맥이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화련의 짜증이 임계점에 달할 때쯤이면 귀신같이 며칠 동안 모습을 감췄다가 다시 나타나곤 했다. 화련 으로서는 귀신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류 현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는 분명히 신고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지만 막상 그가 나타나면 그런 생각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버리고 만다. 이야기를 끝장낼 수 있는 화련이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자 이 기묘한 만남은 계속 되었다.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화련은 류 현이 시야에 들어오면 거절의 말을 뱉었고, 류 현은 아주 자연스럽게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저기요.”
“예?”
화련을 보자마자 떠날 자세를 잡던 류 현을 화련이 붙잡았다.
‘대체 저럴 거면 왜 자꾸 찾아오는 거야?’
자신이 계속 내쫓고 있긴 했지만 화련은 류 현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유망주 영입을 위해서 위법의 영역까지 손대는 길드는 꽤 많지만, 자신은 이미 유망주가 아니라는 점과 기묘한 적극성을 보이는 류 현의 태도 때문에 혼란은 더 했다. 차라리 화련이 뭐라고 거절하든 말든 들러붙었다면 이해라도 가지.
‘산군’에서도 키우지 못한 자신을 키워주니 어쩌니 하는 것만 봐도 제대로 된 인간 같지는 않았지만, 언제까지 이러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조금만 더 지났다간 이 수상한 인간을 일상의 부분으로 받아들일 것만 같았다.
먼저 말을 붙이고 카페까지 끌고온 건 그 때문이었다. 한 달 가까이 계속 찾아온 걸 그냥 무시하기는 뭐하니 대충 들어주는 채 하고 이번에 확실히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다음은 없다. 경찰이 그녀를 대신해서 그를 맞이할 것이다.
그런 그녀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류 현은 맞은편에서 생글거릴 뿐이었다.
“류 현씨, 라고 하셨죠?”
“예.”
“한 달 전쯤에 처음 만났을 때 저를 키워주겠다는 뉘앙스의 말을 하셨던 거 같은데 맞나요?”
“네, 그랬었죠.”
“실례가 안 된다면 구체적인 계획을 들을 수 있을까요.”
“아, 네. 당연히 그래야죠.”
쾌활하게 대답하고는 옆에 벗어두었던 배낭을 뒤적거리는 류 현을 바라보며 화련은 생각했다.
‘끽 해야 물약정도 꺼내겠네. 생각보다 훨씬 빨리 벗겨지는 도금인걸. 진작에 이렇게 쫓아낼 걸.’
이런 부류의 사기를 한두 번 당한 것도 아니다 보니 직접 보지 않아도 훤하다. 영약이랍시고 수상쩍은 혼합물을 내놓고 팀 가입을 종용할 테지. 대놓고 사기꾼 패턴이 나오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오늘부로 스토커 아닌 스토커에게서 해방이다.
“이걸 한 번 잡아주시죠.”
“네?”
“잠깐이면 됩니다.”
“아니, 그렇게 말씀하셔도..이게 대체 뭔데요?”
“그림자 두꺼비의 혓바닥입니다.”
“그럼..괴수 사체?”
“예, 그렇죠.”
화련의 안색이 확 바뀌었다. 류 현이 내놓은 건 피라미드에서 금방 도굴해온 미라 팔 같은 시커먼 무언가 였다. 화련이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류 현을 돌아보았지만 류 현은 변함없이 미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참다못해 화련이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저보고 이걸 만지라고요?”
“그렇습니다만.”
“아니 전 이게 뭔지도 정확하게 모르는데요?”
그림자 두꺼비는 지랄 맞은 사냥 난이도만큼 보기 어려운 괴수였다. 거기에 현 시점에서는 활용방법이 밝혀지지 않아서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현 시점에서 그림자 두꺼비의 활용방법을 아는 건 류 현 뿐이다.
그러니 화련이 기겁하는 표정을 짓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듣도 보도 못한 괴수 사체를 들고 와서 만져보라니.
“독 같은 건 없습니다. 이렇게 맨손으로 잡아도 아무 이상이 없죠.”
류 현이 그것을 집어서 눈앞에 휘둘러보기 까지 했지만 화련의 표정을 변화가 없었다. 화련은 한참이나 앞에 놓인 말라비틀어진 혓바닥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지금 확실히 말해두지만, 제가 그쪽의 요구대로 움직여주는 건 이게 마지막이에요. 그 이상은 꿈도 꾸지 말아요. 아니라면 구치소에서 꿈꾸게 해줄 테니까.”
화련은 결연한 표정으로 그림자 두꺼비의 혓바닥을 집어 들었다. 생김새대로 마른 장작 같은 촉감이 소름끼쳤지만 가까스로 그녀는 그걸 집어던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
그녀는 자신이 내뱉을 말을 전언 철회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빠진 얼굴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화련의 모습에 류 현은 입가에 걸고 있던 미소를 더욱더 깊게 지었다.
여유 만만한 그 모습이 좀 재수 없어 보이긴 했지만 화련은 손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감각에 집중하기로 했다.
잡힐 듯하면서 잡히지 않는 그것은 닿자마자 화련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녀의 피부에 닿자마자 그것은 열기가 되어 온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목적지에 도달하자 열기는 청량감으로 모습을 뒤바꿨다.
화련은 잠시 고양감에 부르르 떨다가 의문어린 눈으로 류 현을 바라보았다. 꽁으로 마력을 흡수한 플레이어 같지 않은 태도였지만 류 현은 개의치 않았다.
“이게..뭐라고 하셨죠?”
“그림자 두꺼비의 혓바닥입니다. 죽이기 전에 마력을 잔뜩 먹인 녀석이죠. 원래는 그림자 두꺼비가 마력을 빨아들이는 통로지만 죽고 나면 이렇게 마력통이 되죠.”
“이런 귀한 걸 대체 왜 저한테..”
플레이어 전력을 강화하기 위한 시도는 수없이 많이 있었다. 아티펙트 개량이나 약물을 통한 도핑 등 어마어마한 투자를 쏟아 붓는 중이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게 사실이었다. 가장 핵심이 되는 마력을 다루는 방법을 아직 모르기 때문이었다.
마력을 포집하는 아티펙트들은 제법 있지만 그것들은 마력을 포집하자마자 마력의 성질을 바꿔버리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되질 못했다.
플레이어들과 똑같이 마력을 축적해서 강해지는 괴수들도 죽여 버리고 나면 마력을 축적해 놓는 기관이 완전히 파괴 되어버리니 도움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플레이어를 잡아다가 해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런 시도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지만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던 플레이어 협회에 걸려서 작살이 나고 말았다.
그런 상황에서 플레이어가 체감할 정도로 확실한 양의 마력을 주입할 수 있는 아이템의 가치는? 숫자로 환산하려고 드는 게 무의미한 짓이다.
그리고 화련은 정확한 가치까지는 몰라도 자신이 잡고 있는 물건이 굉장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 정도는 판단 할 수 있는 이였다. 류 현은 화련의 의문어린 시선에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화장품 샘플 같은 겁니다.”
“샘플..요?”
이런 굉장한 물건을 샘플이라고 하다니 이 남자는 대체 뭘 내놓을 생각인 것일까. 화련은 마른침을 삼키며 류 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류 현은 그녀가 조바심을 느낄 때까지 콜라잔을 매만지다가 입을 떼었다.
“저는 백화련 씨의 능력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네?”
맥락 없이 튀어나온 말에 화련은 잠깐 동안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말을 이해했을 때 화련은 자신이 인지하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섰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죠?”
“거짓말에는 별 재능이 없으시군요.”
다음 순간 화련의 눈동자에 하얀빛깔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빠직 하고 류 현의 앞에 놓인 콜라잔에 금이 갔다. 콜라잔을 짓누른 압력은 순식간에 영역을 넓혀서 테이블 전체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오직 화련만을 제외하고.
식기가 저절로 덜그럭 거리고 테이블이 당장이라도 내려앉을 것 같았지만 류 현의 표정은 한가롭기 그지없었다. 실제로 그는 테이블 자리 전체를 짓누르는 압력에 별 영향을 받고 있지 않았다. 그가 앉아 있는 의자도.
화련이 눈을 더욱 더 부릅떴지만 류 현의 한가로운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결국 화련은 포기 하는 수밖에 없었다. 테이블 자리를 짓누르던 압력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류 현이 말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저를 찾아온 목적이 뭐죠?”
“이미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귀하를 저희 용잡이 팀에 영입하고 싶어서입니다.”
“실험체로?”
“무슨 말씀인지?”
“아무한테도 말 안한 내 능력까지 알고 있는데다가, 저보다 강한 사람이 대뜸 찾아와서 이럴만한 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네요. 제가 알지도 못하는 기술로 제 능력을 알아낸 사이비 실험실에서 날 잡아가서 포르말린에 담그려는 것 말고는.”
“영화를 많이 좋아하시나 봅니다.”
화련의 눈초리가 사나워졌지만 류 현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전 백화련 씨가 기대한 거대 실험실 소속 에이젼트 같은 게 아닙니다. 백화련 씨의 공간마법에 대해서는 그냥 보고 안겁니다. 제 능력의 일부분이죠.”
‘뻥이지만.’
“그냥..보고 알았다고요?”
“예, 일반인을 보면 아무런 효과가 없지만 던전에 관련된 걸 보면 이 눈이.”
류 현은 자신의 왼쪽 눈 밑을 톡톡 두드렸다. 속으로는 이런 짓까지 해야 하나 하고 한탄을 수만 번 내뱉는 와중이었지만 그의 표정에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단편적인 정보를 뽑아서 보여줍니다. 그림자 두꺼비 혀에 그런 효과가 있다는 것도 그래서 알았죠. 뭐 정보를 볼 수 있는 대상도 랜덤으로 정해져서 평소에는 그리 큰 쓸모는 없습니다만. 이번에 재수 좋게 연달아 터져준거죠.”
화련은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이었지만 류 현은 할 말 다했다는 듯이 멀뚱히 그녀를 마주 볼 뿐이었다.
“그것만 들어선 제가 그 쪽의 말을 믿을 이유가 없는 거 같은데, 더 준비해둔 변명이 없나보죠?”
“변명이라기보다도 제 능력을 증명할 방법이 하나 있긴 합니다만.”
“그게 뭐죠?”
“같이 던전 한 번 갔다 옵시다.”
화련의 경계하는 눈빛이 미친놈 보는 눈빛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