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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화 〉탐식마(貪食魔) (14/429)



〈 14화 〉탐식마(貪食魔)

던전 솔로 플레이는 플레이어들에게 있어서 로망이다. 던전에서 나오는 수익에 대한 독점이 가능해서기도 하지만 솔로 플레이어 라는 타이틀은 그 이상의 명예를 보장하니까.


그러나 막상 기회가 와도 시도하는 플레이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옐로우급만 되도 시도자체가 거의 없어진다. 솔로 플레이는 위험하니까. 혼자서 던전 내의 상황을 대처해야 한다는 사실은 직접 겪기 전에는 실감 할 수 없는 위험요소다.


옐로우 던전의 두 단계 위인 블루 던전을 밥 먹듯이 들락거리는 원정대 소속 베테랑도 옐로우 던전을 혼자 들어가서 사지 멀쩡하게 나올 거라고 장담하지 못한다. 아니, 목숨이 붙어서 나오는 걸 기적이라고 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서 말한다. 혼자서 던전내의 모든 변수를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에 불과하다고.


반대로 블루 던전 원정대에 끼지도 못하는 플레이어가 옐로우 던전을 혼자 들락거리는 경우가 드물게나마 있다. 심지어 그들 중 과반이 원정대에 끼어서  두 단계  높은 던전에 들어가는 것 보다 혼자서 뛰는 게 훨씬 편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솔로 플레이야 말로 변수통제에 용이하며 보스룸 앞에서 정치질 당하는 꼴을 면할 수 있으니 원정대 보다 낫다고들 한다. 동료라는 배제  수 없는 변수가 없으니까.


류  또한 그런 주장에 동의하는 편이었다. 그의 능력 특성 탓도 있었지만 그는 원정대 동료라는 존재가 영 껄끄러웠다. 원정대에 속해서 좋았던 기억도 없을 뿐더러, 그의 눈에 차는 상대는 그가 죽기 직전에 꾸린 용잡이팀 동료들이 전부였으니까.


배제 할 수 없고 사고까지 치고 다니는 동료보다는 혼자가 낫다. 숱한 던전 사냥 경험으로 얻은 결론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기준으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퀴퀴한 피냄새가 코를 잡아 비트는 것처럼 파고들어왔다.  현은 눈살을 찌푸린 채로 목이 없는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우거진 나뭇잎 때문에 어두웠지만 시체의 정체를 알아보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라가.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으며 활과 창으로 무장한 침팬지 같은 괴수다. 육체 스펙으로 보면 땅돼지와 비슷한 수준. 무장한 걸 보면 알 수 있지만 도구를 다룰  알고 지능도 제법 되는 드문 타입의 괴수.


‘씨발.’


라는 사실은 지금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류 현은 이를 사려 문 채로 앞을 노려보았다. 우거진 수풀을 꿰뚫어  수는 없었지만 그는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들을  있었다.


‘멍청하게 거기서 얼을 타서 일을...’

“안 올거야? 떼놓고 간다?”

재촉하는 목소리에 수풀을 헤치고 나가자 어슬렁 어슬렁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검성의 뒷모습이 보였다.

‘진짜 재수 옴 붙었...’


속으로 불평을 내뱉으려던 찰나였다.

[끼익!]


기성과 함께 덮쳐드는 그림자의 머리를 류 현은 돌아보지도 않고 낚아채었고,

[캬악! 캬익! 캭!]


[우드득!]


그대로 손아귀의 힘을 주었다. 버둥거리던 라가의 사지가 축 쳐졌다.


진득한 핏물과 함께 누런 뇌수가 손에 묻어나왔지만  현은 여전히 돌아보지 않고 정면을 노려보았다.

‘이젠 일부러 몹도 흘린다 이거지?’

이번이 벌써 세번째다. 검성을 지나친 괴수가  현을 급습해 들어온게 말이다.  볼 것도 없이 의도적으로 괴수를 흘려보낸 거다.


실력을 숨기고 자시고 할 여지가 없었다. 검성의 행동은 이미 심증을 굳힌 상태가 아닌 이상 나올 수가 없는 행동이었으니까. 의심되는 인간을 처리하려고 든다기에는 너무 번거로운 방법이었다.

빠득! 류 현은 어금니가 으스러져라 사려물고 검성의 뒤를 따랐다.



‘오냐 나가서 보자. 나가서. 내가 보상으로 아주 그냥...’

***

콧노래를 부르며 앞으로 걸어가던 검성이 갑자기 나뭇가지를 향해서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캬아악!]

선혈과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피를 쏟아낸 나뭇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져 나오더니 검성을 향해서 남은 팔을 휘둘렀다. 검성은 당황하는 기색 없이 닥쳐드는 나뭇가지를 향해서 검을 내밀었고,

[스걱-]


나뭇가지는 멈추지 못하고 스스로 검에 꿰이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 일련의 과정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이 검성은 다시금 검을 휘둘러 시체를 털어냈다. 류 현이 봤다면 나뭇가지가 짜증나기로 유명한 고목원숭이라는 걸 알았겠지만 검성은 그런 사실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콧노래마저 부르고 있는 그녀의 관심사는 실시간으로 기분이 썩어가는 중인 뒤쳐져있는 동료였다. 그 동료는 그녀와 자신이 동료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을 테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별로 중요한 사실은 아니었다.

‘세 마리째 인데 별로 지친 것 같지도 않고...역시 거짓말이 맞았어.’

잠깐 멈춰 섰던 검성은 뒤쪽의 인기척이 따라붙는 걸 확인하자마자 다시금 발걸음을 떼었다. 그런 그녀의 감각에 거슬리는 존재가 하나 다시금 걸려들었지만 그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진행방향으로  때 그녀의 동료와 마주치게 될 것이다.

‘이 페이스도 따라오는 걸 보면 그린 급까지  거 같은데..좀 더 억지를 부려서 그린에 끌고 갔어야 했나. 가늠이 잘 안되네. 설마 그냥 육체파였을 줄은.’


류 현이 들었다면 쌍욕을 퍼부었을 생각이었지만 검성은 즐거울 따름이었다.

‘나이도 많아봐야 혜라 또래정도 인거 같은데, 벌써 저 정도라니. 무소속이라는 것도 거짓말이려나? 그건 사실이면 좋겠는데.’

기분전환 겸 나선 던전 나들이 도중 마주친 남자. 류 현은 여러모로 그녀를 즐겁게 하는 의외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주로 자신이 내뱉은 변명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처음 괴수를 슬쩍 흘리고 류 현이 그걸 처리했을 때 심증은 확신이 되었다. 류 현은 자신이 늘어놓던 거짓말과 달리 옐로우 급에서 출몰하는 괴수들을 거의 일격에 끝장 내놓으며 착실하게 따라붙었다. 보통 플레이어는 아무리 스펙차가 나도 저런 식으로 괴수를 처리하진 못한다.


아니 안한다. 애초에 이런 식으로 그녀와 거리를 둔다는 생각도 못 할 것이다. 던전 입장 전에 위협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괴수 시체에 별 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과단성까지.

‘솔플도 하루 이틀  게 아닌 거 같고.’


뒤쪽에서 터져나오는 괴수의 단말마를 들으며 검성은 콧노래까지 부르며 앞을 헤치고 나갔다.


그저 기분 전환겸 나선 던전사냥이었다. 가는 길에 촉에 거슬림을 느꼈을 뿐이었다. 던전 사냥 전에 이런 느낌을 받는게 썩 기분 좋지 않아서 거슬림의 원인을 찾아나섰고 그곳에서  현과 마주쳤다.

직접 마주하게 되자 거슬림은 알 수 없는 위화감으로 바뀌었다.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녀가 처음 퍼플던전에 도전한 이후에 인연이 없었던 감각이었으니까.


그것과는 별개로 처음에는 눈앞의 남자가 암살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경우를 한 두  겪어본게 아니니까.


반응이 이상하기도 했다. 류 현은 자신의 변명과는 달리 너무 과도하게 당황했다. 그런 반응을 보고도 의심하지 않는  이상할 정도였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류 현의 행동은 요인을 노리는 암살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수룩했다. 보는 이의 기분이 괴상해질 정도.


그 어수룩해보이는 언행에 자신도 감화되었는지도 모른다. 평소의 그녀라면 이렇게 귀찮은 짓을 사서  리가 없으니까.


누가봐도 급조한 변명같은 류 현이 살피러 왔다는 대답에 사과대신 옐로우 던전을 돌아주겠다고, 동행하면 상응하는 보상을 하겠다는 괴상한 제안을 하면서 까지 그의 거짓말에 어울려줄 필요가 없다.

그저 싹수가 보이는 루키를 하나 만났는데 무소속인거 같더라, 라고 말만 흘려도 원하는 정보는 접할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녀는 굳이 번거로운 일을 자처했다. 서류만으로 접하는 관계로 끝내고 싶지 않았으니까. 오랜만에 만난 솔플러다. 그것도 수익 내는데 혈안이 된 던전 도굴꾼 같은 치들이 아니라 진짜 사냥꾼.

‘재미있어. 혜라보다 재능이 나은 것 같지도 않은데 곧 잘 따라오고.’

정말 오랜만이었으니까. 이런 기분은.


***


“..예?”
“내 컬렉션이라고 해봐야 그냥 기념품 창고 수준이거든. 기껏 해봐야 기념으로 받아둔 송곳니  개 등뼈 몇  정도 밖에 없어. 있는 것도 옐로우 이하 급뿐이고. 아티펙트는 전부 길드창고로 보내거나 애들 나눠줘서 말이야. 별 도움이 안 될 거야.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날 써먹는 게 낫지 않겠어? 그래서 하는 소리야.”
“그럼 현금으로 라도..”
“돈이야 있긴 하지만 내가 개인계좌도 감시당하는 처지라서. 거의 백 프로 추적당할 거야. 현금 빼서 주면 아마 더 수상하게 생각할 걸. 내가 현금 빼서 쓰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당신, 얼굴 팔리는  싫잖아? 무소속 솔플러를 고집하는 걸 보면.”
“...”

류 현은 입을  다문채로 검성의 다음말을 기다렸다. 할 말은 많았지만 저렇게 까지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걸 보면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역효과다. 검성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다.


“내가 당장 내줄 수 있는 건 당신한테 별 도움이 안 돼. 그렇다고 따로 마련해서 주자니 당신이 곤란해 질거 같고. 좀 얼굴 팔려도 상관없으면 원하는 걸 말하면 구해다 줄 게. 어떤  원해?”

이렇게 까지 말하면 다른 선택지는 있으나 마나다. 상대의 페이스에 휘말리는 느낌이었지만 류 현은 그리 대답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냥 말씀하신 대로 하죠.”
“좋아, 좋아. 핸드폰  주겠어?”


핸드폰을 건네자 검성은 신이 나서는 번호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류 현은 뚱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며 푸념하듯이 내뱉었다.

“이 정도로 구속당하고 사시는 줄 몰랐군요. 제가 연락한다고 도우러 오실 수 있긴 합니까?”
“걱정 마, 걱정 마. 내가 아무리 막장 길마라도 잠깐 외출하겠다는 걸 막겠어?”
“안 될 거 같은 상황이면 괜히 억지 부려서 나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말씀하셨던 것처럼 얼굴 팔리고 싶진 않거든요. 아직은.”
“걱정 안 해도 된다니까. 땡깡이 안 먹히면 생각해둔 다른 수가 있으니까.”
“예?”

류 현의 되묻는 눈빛에 검성이 미소 지으며 답했다.


“최선을 다 해서 달려가겠다는 소리야.”
“아, 네.”

미인의 웃는 얼굴을 대하기 멋쩍었던 류 현은 등을 돌렸고, 그 때문에 검성이 중얼거린 뒤엣말을 듣지 못했다.

“덕택에 결심도 섰고.”

***

검성은 자신의 손아귀에서 뒹굴고 있는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방안을 비추는 불빛이라고는 한 점 없었지만 그녀에겐 별 문제가  되었다.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던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언니! 또 미등록 던전에 가셨죠!”

문이 벌컥 열리며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눈이 부실 법도 한데 검성은 찡그리는 기색 없이 문 쪽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고 검성은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온 이는 작정했다는 듯이 팔을 걷어붙이는 시늉을 하며 성큼성큼 검성에게로 다가갔다.

“숨길 생각도 없으면서 미등록 던전만 들어가는 건 대체 무슨..언니?”
“응.”
“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고 있어요? 어디 아파요?”
“너무하네. 내 딴에는 반가워서 그런 건데.”

소녀는 질색하는 표정을 지어보였고 검성은 더 깊게 미소지었다.


“던전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으면 내가 이렇게 멀쩡하게 널  수 있겠니.”
“그럼 무슨 바람이 분거에요. 만날 죽상 쓰고 다니던 사람이."
“이제 결심이 서서. 결정하고 나니까 후련하네.”
“네? 언니 그럼..”


검성은 대답 대신 손바닥에 놓인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끝나기도 전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협회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검성님.


남자도 여자도 아닌 탁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검성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지지 않겠다는 듯이 그녀는 기계적으로 말했다.

“조건은 전과 동일하게. 그리고 나 말고 군식구 한 명이 더 있는데 문제없겠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실례가 안 된다면 마음이 바뀌신 이유를 여쭤 봐도  런지요.
“예거즈 이름 달고 다가가면 질색할 만한 사람이 있어서.”
-예?

그 이상의 대답은 없었다. 검성은 전화를 끊었고, 의문감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소녀와 마주하게 되었다.


대답 대신 검성은 미소 지었다. 소녀도 몇  만에 보는 한없이 맑은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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