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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화 〉탐식마(貪食魔) (11/429)



〈 11화 〉탐식마(貪食魔)

회귀 전, 류 현과 부딪힌 거물급 플레이어나 단체는 수없이 많았다. 그가 본격적으로 전면에 나선  3차 대소환 이후.

힘든 시기였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원만했던 관계를 찾기 힘들 정도라 류 현 본인도 어지간한 마찰은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사소한 원한을 가지고 계속 으르렁 거리기에는 인류가 직면한 위기가 너무 가혹했다.

하지만 터주는 그런 ‘어지간한 마찰’ 범위를 벗어난 악연 중의 악연이었다. 정부 소속 플레이어 담당 기관에서 순식간에 거대 군벌로 성장한 터주는 그와 무던히도 많이 부딪혔다.

양자의 활동무대가 같았고, 또 너무 좁았다. 중국에 가도 손에 꼽힐 만한 거대 군벌이 한반도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당연했다. 그 당시  현은 파도 잡이를 쓰러뜨린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서로를 못 본 척 외면하기에는   모두 너무 커진 상태였다.

사소한 기싸움으로  현과 터주는 대립하게 되었고, 싸움이 시작되었다. 싸움은 어느 한 쪽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살아남은 것은  현이었다.


파도 잡이 서해란과의 관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다. 서해란이 정면대결을 고집한 것과 달리, 터주는 온갖 뒷공작으로  현을 노렸다. 심지어 주변을 건드리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에 응해, 류 현은 터주를 아예 말소시켜버렸다.

단체 구성원을 일일이  추적해서 말살한 건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실력자를 혼자서 감당했던 것도. 서해란 때와는 달리 후회는커녕 후련함  이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미행자부터 시작이네. 전에는 저격수부터 보내더니.’

서해란과 재회 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머리로는 이미 없던 일이 되었다는 걸 알지만, 찝찝함이 사라지진 않는다. 과거의 인연 중 터주에 대한 인상은 최악이었으니 당연했다.

그래서였다.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던 이유는 터주에 대한 찝찝함 때문이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오는데 그냥  까기도 애매하고.’

만나기에는 찝찝하지만 마냥 무시하기도 곤란하다.


방치중인 줄 알았던 던전을 터주에서 하청을 거쳐서 관리하고 있었다. 그 얘기는 미행자의 이야기를 못들은 채 하고 터주를 무시하면 차후 던전 이용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소리다. 탈법의 영역에 있는 일이니 대놓고 압박하지는 못 하겠지만, 충분히 피곤해진다. 아직 목표치를 채우지도 못했다.


평범하게 원정대에 끼어서 성장할 수도 있겠지만 성장속도 제동이 걸릴 거다. 협회에 원정신고를 하면 협회에서 반강제로 결정체를 매입해가니 결정체도 자신이 독식 할 수 없을 테고.


‘곤란한데.’


미행자를 보낸 자는 류 현이 던전을 혼자서 돌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기껏해야 레드, 오렌지급만 돌고 있지만 기록상으로 류 현은 갓 각성한 애송이가 아닌가. 충분히 흥미를 보일만 했다.

‘어쩔  없지.’

휴대폰 화면을 띄워놓고 한참을 들여다보던 류 현은 결국 전화를 걸었다.


***


“이런 곳이 취향이신 줄은 몰랐습니다. 보고 내용으로 봐서는 조용한 곳을 고르실  알았는데 말입니다.”
“시끄러운 건 질색이긴 한데, 괜히 호기 부리다가 위험해지는  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얼마나 위험한 상대인 줄 알고.”
“하하, 이거 미행 건 때문에 단단히 화나셨나 보군요.”
“화 안 나는 게 이상한 거 아닙니까. 제가 경찰을 대동했어도 할 말 없으실 텐데?”
“그런데  데리고 오셨군요. 이거 기대 좀 해도 되는 겁니까?”
“글쎄요.”


코트차림의 멀끔한 인상을 한 남자가 맞은 자리에 앉는 것을 바라보며  현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거 잘 온 건지 모르겠네.’

통화는 생각보다 그의 의도대로  흘러갔다. 아니, 눈앞의 남자가 그에게 맞춰줬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장소는 자신이 원하는 곳을 고를  있었다. 눈앞의 남자가 먼저 권했다. 장소를 지정하면 자신이 그곳으로 오겠다고.


시내 한복판에 있는 2층 카페의 테라스. 1월의 매서운 추위 탓에 나와 있는 사람도 없었고, 듣는 귀는 적지만 보는 눈이 많으니 습격당할 위험도 적다.

상대가 터주 소속의 그것도 팀장 였으니 당연한 장소 선정이었다. 미행자를 붙인 전과도 있었고.


하지만 원하는 장소를 접선 장소로 고를 수 있었음에도 류 현의 기분은 썩 좋지 못한 상태였다.

눈앞의 남자의 이름 때문이었다. 터주의 화랑팀장 문민호. 그가 알고 있는 이름이다. 류 현과 활동시기가 달랐지만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검성과 마찬가지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물이었으니까. 검성과는 달리 주로 좋지 못한 의미에서.


문민호. 아시아에서도 손꼽히는 거대 군벌 터주를 만든 장본인이다. 류 현이 터주와 부딪혔을 때는 문민호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꺼림칙함이 사라지진 않는다.

적어도 현시점의 소속도 없고 실력도 제대로 쌓지 못한 상태인  현이 만나고 싶은 상대는 아니었다.

“제가 보낸 친구한테서 이야기는 대충 들으셨을 테니 자기소개 같은 서론은 생략하죠.”
“미행 건 까지 넘기자는 거면 저는 더 할 말 없습니다만.”
“설마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히 보상할 생각입니다.”
“끝까지 사과는 안 하시겠다?”
“말 뿐인 사과보다는  현씨가 원하는  들어드리는 게 서로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저한테 원하시는 게 있으실 텐데요?”


류 현은 말없이 미소 짓고 있는 문민호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나는 상관없다는 식의 미소였다. 자신감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절대로 나올  없는 표정.

‘이래서 마스터 놈들이랑은 말 섞기가 싫다니까.’


작든 크든 단체의 리더 위치에 있는 이들은 이래서 대하기 거북하다. 서해란 부터 시작해서 레퀴엠의 길드마스터까지 그들과 대면하면 뭐라 말하기 힘든 거북함이 느껴졌다. 말을 하다보면 그들의 분위기에 말려드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들 특유의 자신감이라고 해야 할지 카리스마라고 해야 할지 모를 그런 분위기가 불편했다. 애초에 그가 말을 잘 하는 편이 아니기도 했고.

류 현도 말년에 용잡이 팀을 꾸려본 적이 있었지만 용잡이 팀은 그의 휘하라기보다도 이해관계 때문에 잠깐 뭉친 것에 지나지 않았다. 팀 내 위치도 리더라기보다도  내에서 가장 강해서 발언권이 가장 크다 정도였으니까.


결국  현이 보일  있는 최선은 너스레를 떠는 것 정도였다.

“글쎄요. 딱히. 각성한지 얼마 안 되서 그런지 몰라도 지금 상태가 불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만.”
“던전 솔플을 뛰시면서 그런 말씀 하셔도 별 설득력 없다는 건 아십니까? 그것도 전부 미개척에, 들어간 던전은 모두 클로징 하셨던데.”

문민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현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그는 당장 문민호에게 달려 들  같은 적의를 내비치며 문민호를 노려보았다.

알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이틀 동안 미행자가 붙어 있었고, 던전 사냥을 나갈  꾸준히 따라붙었으니 모르는 쪽이 더 이상하다. 류 현이 입장했던 던전이 고랭크 던전도 아니었고.

하지만 알고 있기만 한 것과  밖으로 내는 것은 전혀 다르다. 딱히 큰 비밀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반응 해줘야만 한다. 기록상 류 현은 막 각성한 애송이니까. 비밀이 탄로 난 애송이 행세를 해줘야한다.


“터주에서는 미행으로 조사하는 걸 떠벌리는 게 당연 한가 봅니다.”

문민호는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은  말했다.

“다른 의도가 있는  아닙니다. 그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
“류 현씨는 레드, 오렌지급이긴 혼자 사냥할 수 있는 역량이 있습니다. 정확히 무슨 능력인지는 모르겠으나, 혼자서 방치된 그 정도 급의 던전을 전전할 재목은 아니라는 거죠. 그대로 더 이상 성장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 각성한지 한 달이 되가는 루키의 성장한계를 벌써 논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눈과 머리가 있는 인사라면 그리 생각할 겁니다.”

던전 솔로 플레이. 모든 플레이어의 꿈이다. 하지만 꿈으로 그치고 마는 꿈이다.

솔로 플레이에 도전하는 이가 아주 없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저랭크 던전의 경우뿐이며, 굳이 나서서 하고 싶어 하진 않는다. 길드에서도 시키지 않는다. 던전을 혼자서 도는 건 효율이 나쁜  둘째 치고 위험하니까.

보통  던전을 혼자  정도면 해당 던전보다   단계는 높은 던전에서 원정대 중심축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솔로 플레이를 하게 되면 그런 인재가 원정대에 속해서 도전  수 있는 것보다 두 단계 낮은 던전에서 죽을 수도 있다. 모든 상황을 혼자서 대처해야하니까. 개인 입장에서나 길드 입장에서나 할 필요가 없다.

옐로 이하의 저랭크 던전의 솔로플레이는?

가치가 없다.  많은 유망주들이 도전했고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뿐이었다.  유망주들은 정말로 희귀하게 나타나는 혼자 놀기 좋은 능력의 소유자들 이었고, 성장판도 옐로급 이상을 노릴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닫혔다. 길드에서도 그것으로 신경을 끊었다.

말이 좋아서 혼자 놀기 좋은 능력이지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은 동료 플레이어들이 휘말리게 수 있는 능력이 더 많았으니까. 길드 입장에서는 원정대에도 못 넣고 혼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플레이어 하나 보다는 안정적으로 던전을 돌릴  있는 원정대 쪽이 낫다.

인류 전체로 보면 그런 인재는 그냥 고랭크 던전이 터진 곳 토벌전에 투입하는게 나았고.


딱 한명. 예외가 있긴 했다. 고랭크 던전을 혼자서 클리어 하면서도 어떤 걱정에서도 자유로운 괴물이.


하지만  특수한 예외 이외에는 대체로 저런 식이었다.

그러니, 류 현이 혼자서 레드, 오렌지 던전을 돌고 있다고는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능력도 모를뿐더러, 이제 각성한지 한 달 된 루키가 언제 성장이 한계에 부딪힐 지도 모르니까. 서해란 같이 뭔가 알고 있는 경우가 아닌 이상 목 매달 필요는 없다. 플레이어 풀이 그리 아쉬울  없는 대형 길드에서는 말이다.


“그래서요? 키워 줄 테니 터주에 들어오라는 말입니까? 미안하지만 나는 미행을 당연시 하는 곳에는 속할 생각이..”
“저도 그렇게 까지 막 나가지는 않습니다. 미행자를 붙였던 곳에 당장 소속되라고 하는  무리가 있겠죠. 류 현씨가 당장 터주에 속하는 것도 제가 바라는 바도 아니고 말입니다. 제가 원하는 건 하납니다. 사과 대신 제가 편의를 제공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 그거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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