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탐식마(貪食魔)
류 현이 이상을 감지한 건 잠행 3주째가 되던 월요일이었다. 아주 사소한 변화가 그를 일깨웠다.
여느 때처럼 정보상에게 던전 위치를 전해 듣던 그는 정보상이 평소와는 달리 자신의 눈치를 살핀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여태껏 눈치는커녕 배짱을 있는 대로 부려서 그의 골치를 아프게 만들던 자였다. 분명 뭔가 있었다. 그리 생각하자 수면 부족에 이래저래 신경 쓸 거리가 많아서 무뎌져 있던 신경이 확 곤두섰다.
던전 밖에서 까지 이러고 다니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는 딱 삼일만 정도만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 안에 뭔가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걸리는 게 없다면 정보상을 족쳐서라도 해결을 볼 생각이었다.
정보상들 사이에 소문이 퍼지면 방치된 던전을 구하기 힘들어지겠지만 안일하게 대처하다가 뒤통수 맞는 건 사절이니까.
허무하게도 그는 바로 다음날 더 큰 이상한 점을 포착할 수 있었다.
세아 몰래 밤중 던전 사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미행이 붙었다. 미행자는 이런 일이 꽤 익숙한지 그에게 별로 시선을 보내지도 않았다. 던전 사냥을 나설 때를 제외하면 따라붙지도 않기에 미행이 맞는지 긴가민가할 정도였다.
그래서 류 현이 미행이 붙었다고 확신하는데 하루가 더 소모되었다.
그리고 이상을 감지한 지 삼 일째 되는 오늘. 류 현은 토벌전을 쉬겠다고 해은에게 연락하고 멍하니 동네를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미행자는 류 현의 스케줄까지 꿰고 있었는지 던전 사냥을 나서는 것이 아님에도 따라붙은 상태였다.
‘누가 보낸 거지?’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서해란이었다. 직접 영입의사를 나타낸 적도 있고, ‘산군’에서 자기 팀을 가질 정도면 저런 미행자를 붙일 재력은 충분하다. 동기도 있고, 능력도 있다.
그러나 류 현은 그녀의 얼굴을 떠올렸다가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 여자는 아니야.’
서해란은 이미 해은을 그에게 붙였다. 그게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이런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 들켰다가는 영입은커녕 류 현의 적의만 불러일으킬 테니까.
그가 기억하는 서해란의 성격상 맞는 일도 아니었다. 서로 죽일 듯이 치고받을지언정 그녀는 이런 식으로 뒤로 손 쓴 적이 없었다. 본인이 아닌 이상 확신은 금물이지만 지금 하는 추측도 어차피 다 어림짐작이다. 류 현은 서해란을 후보 명단 최하위로 내렸다.
‘소문 들은 다른 길드에서 이러는 것도 좀 이상하고.’
협회 검사장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중소길드에서 미행자를 붙였다는 것도 좀 이상했다. 수지타산이 전혀 안 맞을뿐더러 그냥 영입제의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서해란이 류 현이 ‘산군’의 영입제안을 거부했다고 소문내고 다녔을 리가 없으니 그게 정상이다.
거기에 류 현은 밤 중 던전 사냥을 할 때 한 번도 신분을 노출 시킨 적이 없다. 지난 일주일을 돌이켜봐도 별다른 점은 없었다.
‘혹시 그 새끼가 내 정보를 팔았나?’
정보상이 꾸준히 방치된 던전 위치를 물으러 오는 자신의 정보를 팔았다고 해도 아귀가 안 맞기는 마찬가지였다.
소속된 길드 없는 소규모 팀이 결정체 상납안하고 독식하려고 방치된 던전을 찾는 건 흔한 일이니까. 이상할 게 없다. 류 현이 ‘솔플 좀 하려고 하는데 적당한 던전 좀 찾아주십쇼.’라고 말하고 다닌 것도 아니었으니까.
팔아봤자 요새 꾸준히 던전 위치 물어보러 오는 놈이 하나 있다 정도 일 텐데 그게 가치 있는 정보일까?
‘에잉, 더 생각해봐야 무슨 소용이야. 그냥 저거 잡아서 쥐어짜보고 안되면 그 정보상 놈도 쥐어짜면 되겠지. 아니야, 일단 그놈도 잡아놓는 게 낫겠어.’
안 돌아가는 머리를 굴리는 것 보다는 손닿는 곳 일부터 처리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마음을 정한 류 현은 휙 뒤돌아서 내달리기 시작했다.
***
“내가 왜 이러는지는 네가 더 잘 알거야. 그러니까 발언을 할 때는 신중하게 해줬으면 좋겠어. 친구, 알아볼 만큼 알아보고 온 거니까. 내가 요 며칠 동안 신경이 좀 곤두서서 이상한 대답을 들으면 좀 과격하게 나갈지도 몰라. 알겠지?”
허공에 손을 휘두르면 검댕이 묻어날 거 같은 어둠속에서 갈라진 류 현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이름이 뭐냐는 물음에 강채산 이라고 답한 남자는 입을 틀어막힌 채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남자, 강채산은 위치 파악이 안되서 방치된 저급 던전을 다루는 정보 클랜 소속 정보상이었다. 지난 3주 동안 류 현과 거래한 그 정보상 이었다.
작달만한 키에 희멀건 안색. 그게 인상의 전부인 남자는 지금 하얗게 질린 채로 떨고 있었다.
“좋아. 그런 태도를 유지한다면 좋게 좋게 헤어질 수 있을 거야. 대답을 해야 하니 손을 치워줄게. 허튼 짓하지 말길 바라. 우리 관계가 더 재미없어질 테니까. 최근 삼 일 안에 김지민 이라는 남자랑 만난 적이 있지?”
끄덕끄덕. 어지간히 겁을 먹었는지 말을 할 수 있음에도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그 남자한테 나에 대한 무슨 정보를 팔았지? 딱히 팔 것도 없을 텐데.”
“파, 판 게 아닙니다. 삼 일전에 찾아와서 이상한 점이 없냐고 하기에......”
“이봐, 그런 걸 보고 팔았다고 하는 거잖아. 그런데 이상한 점이라니 정보상한테 던전 정보 얻으러 오는 게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나 딱히 이상한 짓 한 적도 없는데.”
“그, 그렇죠. 그래서 딱히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가 그럼 최근에 안 보이던 새 손님은 없었냐고..”
“그래서?”
“있다고 대, 대답 했습죠.”
“묻는 대로 술술 다 불었다고? 이거 완전 정보상 실격이군.”
“그게..협조 안하면 장사 접게 될 거라면서.”
“뭔 소리야 그건 또. 그놈이 뭐 길래 장사 접게 만드니 마니 하는데? 그놈 짭새야?”
류 현의 물음에 남자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눈알만 굴렸다. 눈알의 굴려봐야 주변에는 시커먼 어둠뿐이었지만.
류 현은 어둠속에서 사납게 미소 지으며 남자를 찍어 누르고 있던 왼쪽 무릎에 힘을 가했다. 강채산의 입에서 짓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이봐, 친구. 내 생각에는 말이야. 지금 장사 접니 마니를 걱정하는 것보다는 명줄 걱정하는 게 급한 거 같은데.”
“끄흡..”
“유감이구만. 그 남자보다 내가 더 만만해 보이다니.”
“터, 터주에서 보낸 사람이었습니다!”
강채산의 대답이 터져 나오자마자 류 현은 무릎을 슥 치우고는 눈높이를 맞춰 쪼그려 앉았다. 강채산은 한동안 기침을 멈추지 못했다.
“터주? 그 이름이 여기서 왜 튀어나와. 너무 막 던지는 거 아냐?”
“아, 아닙니다. 콜록. 의, 의정부 일대 정보 클랜은 전부 그 쪽 관리를 받습. 콜록.”
“아니, 그러니까. 정부 소속 기관이 불법 집단이랑 손잡은 것도 아니고 직접 관리를 한다? 거짓말을 너무 성의 없게 하는 거 아냐? 좀 그럴싸한 거짓말을 해야 속아줄 맛이 나지.”
“진짭니다. 비, 비상 연락망도 있습니다.”
“터주 핫라인을 알고 있다고? 니네 같은 불법 클랜이?”
“예에, 경력 있는 클랜원들은 다 외우고 다닙니다. 원하시면 그 번호라도..”
“연락하면 니네 클랜원들이 엽총 들고 나타나는 게 아니라?”
“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류 현은 몸을 일으키고는 강채산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강채산은 그의 얼굴 윤곽정도만 보이겠지만 류 현의 눈에는 강채산의 세세한 표정 변화까지 훤히 보였다.
‘거짓말 같지는 않은데. 둘 다 하는 소리도 비슷하고.’
붙잡은 미행자는 허무할 정도로 쉽게 자신의 소속과 자신을 보낸 자의 이름을 불었다. 협박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시종일관 담담한 태도로 묻지도 않은 연락처까지 불러주는 친절함을 발휘하기 까지 했다. 너무 쉽게 불어서 믿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정보상도 붙잡아왔다. 얼마나 알고 있을지는 몰라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그런데 붙잡아서 다그치고 보니 둘의 말이 서로 엇비슷했다.
미행이 발각되어서 붙잡힐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입을 맞췄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여태껏 했던 추측들이 전부 무의미해진다. 그렇다고 다른 단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종합해 보면 미행자는 터주 소속이며, 그를 보낸 자도 터주 소속이며 팀장급이다. 류 현에게 미행을 붙인 이유는 정보 클랜들이 보내온 보고 중에 이상한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보고를 종합해보니 피로도 개념 없이 매일 던전 사냥을 하는 팀이 있는 것 같아 류 현의 뒤를 밟아 그 팀을 찾을 작정이었다고. 이미 류 현에 대한 보고를 해놓은 상태며 오늘 마지막 확인을 한 후에 팀장 쪽에서 류 현에게 접촉을 해올 예정이라고 했다.
일단 아귀는 제법 잘 맞아 들어갔다. 생각보다 너무 잘 맞아 들어가서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다고 이 정도에 발을 빼고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그냥 넘기기에는 너무 찝찝하다.
현 시점에선 터주와 딱히 원수진 일도 없으니 공격당할 가능성은 낮다. 미행자를 붙잡아서 감금해놓기는 했지만 두 시간 정도 연락 안 된다고 다짜고짜 류 현을 공격하진 않을 것이다. 아직은 막 나가는 군벌 세력이 아니라 국가 소속이니까.
연락 한 번 해본다고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지도 않았다. 문제가 생기더라도 제 몸 하나 정도는 건사할 자신은 있었다. 지금 상태면 터주 전체면 무리지만 팀장이 동원 가능한 전력 정도는 감당 가능하다.
‘서해란으로 모자라서 이번에는 터주냐.’
어째 재회를 원했던 이들은 소식조차 접할 길이 없고, 불쾌한 인연들만 자꾸 재회하게 되는 것 같았다.
‘빨리 해치우고 오늘은 쉬자. 늘어지게 한 숨 자는 거야.’
마음을 정한 류 현은 자신을 올려다보며 떨고 있던 강채산을 향해서 손을 내밀었다.
“좋아, 그럼 일단 번호를 받아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