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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화 〉탐식마(貪食魔) (9/429)



〈 9화 〉탐식마(貪食魔)

투다다! 총구가 불을 내뿜기 무섭게 알싸한 혈향이 터져 나왔다. 매캐한 화약 연기와 피안개가 뒤섞여 한치 앞도 분간   없는 지경 이었다. 보이지 않은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안개너머에 있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이는 한명도 없었다.

안개 너머에서 산발적으로 비명소리가 들려왔지만 병사들은 기계적으로 총구를 당기고, 탄창을 가는 것을 반복했다.

그러던 와중,

[크엉!]

안개를 뚫고 괴수 하나가 뛰어올랐다. 내쏟아지는 탄환의 비를  피하지는 못했는지 뒷다리 부근에 총상에 제법 많았지만 그래서 더 위험해 보였다. 말과 늑대를 접붙여 놓은 것 같은 괴수의 핏발 선 눈이 병사들을 향했다.

어지간히 담이 센 이도 오금이 저릴 상황이었지만 병사들은 침착하게 뒷걸음질 쳤다. 조금만 버티면..


“여기다, 이 괴물아!”

하늘 위에서 전장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 얇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괴수가 그에 반응해서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괴수를 향해서 덮쳐드는 그림자는 이미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스칵-, 날카로운 절단음과 함께 괴수가 벌렁 뒤로 나자빠졌다. 단칼에 괴수의 뒷다리를 잘라내는데 성공한 여자는 별로 만족스럽지 않은지  키만한 대검을 이리저리 살폈다.

“이번에도 실패네. 한 번에 딸 줄 알았는데.”


여자가 여유 부리고 있는 동안 괴수는 재빨리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균형이 맞지 않아서 위태로워 보였지만 이정도로 기가 꺾이면 괴수가 아니다.


괴수는 본능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지금이 기회다. 상대가 방심하고 있는 지금!


괴수가 다시금 달리려 발을 떼는  순간이었다.

뻐억-. 오른쪽에서 날아든 묵직한 타격이 괴수의 의식을 날려버렸다. 의식을 잃은 괴수의 몸은 그대로 고꾸라지더니 경련조차 없었다. 볼 것도 없이 즉사였다. 괴수가 죽었다고 판단한 병사들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거의 뭉개지다시피 한 괴수의 머리를 내려다보며 남자가 투덜거렸다. 니킥을 날린 무릎에 진득한 핏자국이 늘어져있었다.

“내가  널보고 있진 않는다고 반장.”
“또 반장이래. 현이 너, 내 이름 불러주는  그렇게 싫어?”
“아니, 뭐. 싫다기 보다도 입에 붙어서.”
“거짓말. 분명히 일부러 계속 반장이라고 부르는  거야.”
“오해야, 오해. 진짜로 반장소리가 입에 붙어서 그래. 근데 이 정도면 대충 끝날 때 된  아냐?”
“어? 벌써 세 시네. 슬슬 뒷정리 시작하겠다. 이제 빠질까?”
“있어봐야 할 것도 없고 그러자.”


계약상 4시까지 머물러야 하지만  사람에게는 별 의미 없는 조항이었다. 조기 퇴근하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토벌전 지휘관도 굳이 말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플레이어에 미성년자이기 까지 하다. 플레이어 신분 때문에 성인처럼 행동할 수 있기야 하지만 어디 부리는 입장에서 성인 부리듯이 할  있겠는가. 이건 계급장만 안 달았지 상전 중의 상전이다.

류 현은 슬쩍 아직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병사들을 돌아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총소리도 슬슬 잦아들고 있었다.

***

“오늘은  빡셌어. 그치?”
“아저씨들 얘기 하는 거 들어보니까. 터진 던전 중에 오렌지 던전 하나 껴있었다던데. 거기에 화력 집중 하느라 그런 거 같더라고. 덕분에  뛰어다니긴 했지만. 별 문제 없었으니 됐잖아?”
“어제처럼 손 놓고 멍 때리는 것 보다는 낫긴 한데 또 오늘 같으면 원래 급료로는 턱도 없어. 올려달라고 할 거야. 너무 많이 흘리잖아.”
“그 소령아저씨 자기는 그런 권한 없다고 할 텐데...”
“권한이 없으면 더 위쪽에 말해야지. 음..대령 정도면 되려나?”
“에이, 그건 좀. 그랬다간 그 아저씨 왕창 깨질 걸.”

이런 저런 잡담을 나누다 보니 금세 산을 다 내려왔다. 산 위쪽에도 뒷정리가  되어 가는지 더 이상 총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처음 조기 퇴근했을 때는 좀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남아있어 봐야 뒷정리에 도움은커녕 병사들이 불편해 한다는 걸 안 이후부터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먼저 내려오고 있지만.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버스 정류장에는 검은색 밴이 두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한 대가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현이 고개를 갸웃하자 해은이 그에 답하듯이 말했다.

“오늘 길드에 들렸다 가기로 했거든. 그래서 두 대. 오늘도 고생했어. 조심해서 들어가.”
“어어, 반장도 조심해서 들어가.”
“또 그런다. 또.”
“아하하.  안 고쳐지네.”


해은이 차에 오를 때까지 적당히 손을 흔들어준 후에 류 현도 차에 올랐다.


“집으로요.”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밴이 앞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서해란이 베푸는 친절은 전부 부담스럽고 귀찮은 것뿐이었지만 교통편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특히 운전기사들이 하나같이 과묵한 점이.

자리에 몸을 파묻으며 류 현은 눈을 감았다. 집에 돌아가서도 마음 놓고 쉬기는 힘들다.  현이 이주 째 토벌전에 참가하고 있음에도 걱정하는 걸 그만 둘 생각 없는 세아를 안심시키고, 그 외에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렇다고 밤에 편히 잘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이럴 때 수면 보충을 좀 해둬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토벌지역인 강릉과 그의 집이 있는 서울까지는 거리가 제법 되는 편이다.


류 현은 자신을 휘감아 드는 수마에 몸을 내맡겼다.


***


[끼익, 끼이익!]


“거 되게 시끄럽네.”


우득-. 목을 잡은 손아귀에 힘을 가하자 바동거리던 것이 움직임을 멈췄다. 류 현은 손아귀에 잡힌 것의 목덜미를 향해서 칼날을 들이밀었다. 칼이라기보다도 면도날에 가까운 작은 손칼이었다.

슬쩍 날을 디밀자 원숭이의 피부가 갈라지며 피가 울컥 샘솟았다. 불빛하나 없는 어둠속에서 박피 작업이 계속 되었다. 박피라기보다도 되는 대로 원숭이를 쥐어뜯는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류 현은 개의치 않았다.

그가 원하는 건 가죽이 아니었으니까.


반시간 동안의 악전고투 끝에 류 현은 어른  만 한 원숭이의 가죽을 모두 벗겨낼 수 있었다. 내장을 꺼내는 건 훨씬 간단했다. 대충 배를 가르고 되는 대로 내장을 긁어내었다.


여기저기 쥐어뜯긴  같은 원숭이의 알몸을 내려다보던  현은 원숭이의 목덜미로 고개를 파묻었다.

류 현은 그대로 고리 원숭이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가죽을 뜯어내던 시간이 무색하게 고리 원숭이가 류 현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데는 십 분이  걸리지 않았다.

고리 원숭이의 고기 맛은 최악이었지만.

‘다시는 고리 원숭이 안 먹겠다고 했는데 또 쳐 먹게  줄이야.’

고리 원숭이. 오렌지, 옐로우 던전에서 출몰하는 괴수다. 괴악한 특성으로 드물게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괴수 중 하나였다.

고리 원숭이의 꼬리는 이름처럼 고리 모양으로 단단하게 고정된다. 그 꼬리 안쪽에는 칼날이 들어있어 사냥감의 목을 꼬리로 휘감고 샥 하고 당기면 목이 거짓말처럼 말끔하게 떨어진다.

거기에  녀석들은 여자를 좋아한다. 아주 많이. 얼마나 좋아하냐면 사냥한 여자의 시체에 대고 그 짓을 할 정도다. 고리 원숭이가 처음 세상에 등장 했을 때 사람들은 미친 변태 연쇄살인마가 등장했다고 생각했었다.

아무도 괴수의 짓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고리 원숭이의 사냥 장면이 CCTV에 찍히기 전까지.

그 모습이 알려진 이후 고리 원숭이는 괴수의 괴악함을 대변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그런 고리 원숭이는  현이 기억하는 괴수 중에서 맛없는 걸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괴수였다.


고기 맛에 괴수의 성질머리가 반영되는 건지 오래된 푸세식 변소냄새가 나는 걸로도 모자라서 목구멍에 들러붙기 까지 했다. 뒷맛은  끔찍했다. 고기를 삼켜도  끈적끈적한 피가 입 안에서 거품을 일으켰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사흘 굶어도 거르고 싶은 맛이었다.


지금 같은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냥 죽이기만 하고 먹진 않았을 것이다. 던전 사냥도 마음대로 못하는 판국에 고기 맛을 가린다는 건 사치를 넘어서서 방만이다.

문제는 고리 원숭이 고기가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지만.

‘내 처지에 무슨 얼어 뒤질 놈의 미식이야. 그냥  먹을 수 있을 때 다  먹어야지.’

한숨을 내어 쉬며 류 현은 흙을  움큼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흙으로 손을 닦고 입가를 훔쳐내었다.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피 냄새를 조금이라도 떨쳐내야 했다.


냄새 때문에 불도 못 피워서 생고기를 뜯어먹지만 우습게도 그래서 피 냄새를 달고 살아야만 했다.

‘정신 차려라 류 현. 십 년도 안 남았어. 그 때가 되면 쳐 먹고 싶어도 못 먹게 된다. 고기 맛으로 징징거릴 때가 아니라고.’


그럼에도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는 건 뱃속에 들어가 있는 녀석이  번째 고리 원숭이였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남은 괴수도 고리 원숭이  테지.

“젠장.”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
“후우-”

 하고 물방울이 콧잔등을 때렸다. 손으로 물을  올려 세수를 하며 류 현은 멍하니 생각했다.

‘일곱 마리였어. 젠장.’


그의 뱃속으로 들어간 고리 원숭이의 마릿수다. 다섯 마리가 넘어갔을 때는 이렇게 까지 해서 강해져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지다하카의 모습을 떠올려서 일단 뱃속에 우겨넣기는 했지만 끔찍한 맛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미 소화 되서 사라졌다는 점이다. 소화라기보다도 마력으로 전환했다고 해야 맞겠지만.


‘인간적으로 이런 능력을 줬으면 미각을 마비시키든가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오죽하면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미각을 마비 시킬  있을 정도로 감각이 확장되는 건 2단계 이 후다. 아직 한참 남았다는 게 된다.


‘뭐든 간에 능력 개방하는  우선이야. 지금 같은 속도면..일 년 안에 2단계 뚫겠네.’
회귀 전 같으면 지금쯤 대학과 취직 사이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뭣 때문인지는 몰라도 회귀  마력이 어느 정도 남아있고 기억도 온전하다. 이런 속도라면..

‘아지다하카가 뜨기 전에 3단계도  개발  수 있을지도 몰라.’


그리 생각하니 힘이 절로 솟았다. 잠까지 줄여가면서 계속 해온 잠행이 효과가 있다는 뜻이니까.

류 현은 욕조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부산스럽게 몸을 닦고 말리고 하며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세아 몰래 호텔과 찜질방을 드나들며 밤중에 던전 사냥을 시작한지도 벌써 이주가 다 되어간다. 토벌전에 참가해서 번 돈의 대부분이 이 잠행에 소비되었다.

옷가지, 미개척 던전을 찾는데 드는 정보료, 던전 사냥 후 씻을 곳에 대한 사용료, 계속 소모되는 장비비 등 모든 활동에 돈이 들었다.


가장 돈이 많이 든  정보료였다. 아무래도 탈법의 영역에 있는 일이라 그런지 정보상들이  있는 대로 배짱을 부렸다. 토벌 보상금을 생활비에 보탰으면 아마 돈이 모자라서 잠행을 그만뒀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세아는 동생이 위험한 일을 하며  돈을 쓰는  거부했기에 그 돈은 고스란히 그의 몫으로 돌아왔다. 세아는 여전히 공장에서 일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현금다발을 들이밀고 집에서 쉬라고 종용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세아는 듣지도 않을 것이다.


무시하고 강행하면? 할 수 있으면 진작 그랬을 것이다.  현은 류세아에게 그렇게 할 수 없다. 세아가 당장 이상 증세를 보이지 않는 다는 것도 꽤 크게 작용했다. 지금 관두더라도 발병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남은 길은 보다 확고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이 길을 가도 자신은 괜찮다고 말이다.


‘1단계 반절만 넘기면  거야.’

그 정도면 촉망받는 루키가 정도가 아니라 중견 플레이어 취급을 받는다. 그 쯤 되면 고집 센 세아라도 마냥 고집 부릴 수 없을 것이다. 돌아온 마력 덕택에 반절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 때까지만 참자.’

거울 속의 시커멓게 다크써클이 내려앉은 얼굴을 노려보던  현은 서둘러 호텔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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